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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사람] "합리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주여성인권연대 이금연 대표

본문

이제 길거리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할 자리를 찾아 고국을 떠나 한국 사회에 온 이들. 몇 십 년 전 다른 나라로 일을 찾아 떠났던 우리의 선배를 기억하는 당신은 혹시 그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혹시 나와는 다른 얼굴색깔을 가졌고 우리말을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지레짐작으로 그들의 존재를 폄하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이번 달 함께걸음은 안양 전, 진, 상 복지관 관장이자 이주여성인권연대 대표인 이금연 씨를 만나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대표의 이야기를 좇아가며 우리 안에 또아리 틀고 있을 지 모르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두려움이 불러올 수 있는 차별의 실체에 직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금연씨

불법체류자 양산, 이주노동자정책 부재의 결과

질문 : 임금과 노동조건 등에서 차별대우와 인권침해가 많이 일어나는 산업기술연수생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을 촉구하는 집회가 지난 14일 있었지요? 그와 함께 법무부에서는 불법체류자 종합방지대책에 따라 불법체류자 자진신고를 받고 있고요.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가 많다고 알려져 있긴 한데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답변 : 중국동포들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불법체류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약 26만 명쯤 된다고 합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산업연수생을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지요. 저는 여성활동가들과 함께 만든 이주여성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여성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좀 더 차별화해서 접근하려고 노력합니다.

 

질문 : 여성이주노동자들은 주로 어느 분야에서 일하고 있나요?

답변 : 중국동포들의 대부분은 요식업이나 서비스업종에 종사합니다. 저희는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필리핀, 몽고 이렇게 다섯 나라의 여성들을 주로 만나는데 이들의 문제는 좀더 복잡하지요. 이주노동자 내에서도 같은 종류의 노동을 해도 여성노동자들은 더 적은 임금을 받는 등 성차별이 존재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몽골 여성은 남성노동자와의 임금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다가, 3, 4년이 지난 후에야 똑같은 용접을 하면서도 남자들은 150만원을 받는데 비해 자신은 60만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렇듯 성차별과 임금차별이 존재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아주 다양해졌기 때문에 전반적인 상황이 이렇다고 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우선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미등록인 채로 있는, 소위 말하는 불법체류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또 산업기술연수생제도로 입국한 연수생이 약 8만 명쯤 됩니다. 그리고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이 있습니다. 현지법인 연수생이라고도 하는데요.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이란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이 그곳에서 모집한 노동자들을 모기업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데, 이 경우 탈법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현지에 공장은 짓지 않고 모집책으로 법인체 사무실만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한국으로 파견시킨단 말이에요. 가장 열악한 상황이지요.

 

질문 : 해외투자법인 연수생의 상황이 오히려 열악하다는 말씀인가요?

답변 : 예. 기업이 노동력을 조직적으로 착취하는 수단으로 해외투자법인연수생제도를 악용하는 예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지요.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회사들이 모국으로 연수를 보낸다는 명분을 보고 연수비자를 내 줍니다. 비자를 내 주는 것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지요. 노동부도 이들이 업무에 필요한 연수를 하러 왔기 때문에 현지법인 연수생에 대한 근로감독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연수를 한다기보다 단순노동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할 뿐이거든요. 임금도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통장으로 입금을 시켜요.

이번에 우리에게 접수된 베트남 사람들 사례를 보면요. 회사가 한 달에 5만원씩 용돈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은행에 예치시켰답니다. 회사에서는 이곳에서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예치된 돈을 주겠다고 했겠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한 달에 5만원씩 받고 어떻게 6개월을 일해요? 그래서 도망을 나왔단 말이지요. 통장 복사본을 가지고 있어서 해당은행에 전화를 했더니 사업주가 이미 인출해 간 후였어요. 은행에서는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고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있어서 인출을 해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3자가 임금을 가져간 경우가 아니냐고 했더니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거예요. 또 회사에 연락했더니 본인이 직접 오면 주겠다,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연수생 신분인 사람이 작업장을 이탈하면 무조건 불법체류자가 되거든요. 받지 못한 임금 때문에 전화하면 노동자가 괘씸해서라도 월급 주고 강제출국 시키겠다고 말하는 사업주도 있어요.

 

질문 : 정부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합리적인 정책을 세우기도 전에 이들이 우리나라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답변 : 그런 부분도 물론 있지만, 90년대 초에 불법체류자의 수가 갑자기 증가했거든요. 그때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합리적인 정책을 마련하는 대신 94년에 산업기술연수생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거든요. 연수생제도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에 불법체류자를 양산시키는 제도입니다. 연수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자들이 계속 늘어난 현실이 그것을 이야기해주지요. 또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나라지요. 더 이상 우리나라의 저임금, 단순노동 인력시장에서 내국인들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영세규모의 업종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인력을 필요로 하는 데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임금이 높은 것도 이들에게 매력적이에요.

 

질문 : 연수생들에게 의료보험이나 산업재해에 따른 보상 등 다른 법적 보호장치는 있나요?

답변 : 연수생들은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지만 산업재해에 따른 보상은 받을 수 없습니다. 사보험에서는 가능하지요. 오히려 불법체류자는 산업재해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어요. 사회보험의 일관성 없는 적용이 그때그때 임시방편에 따라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부 정책은 연수제도를 도입한 것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필리핀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 가져

 

질문 : 그런데 이 대표께서는 언제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답변 : 관심을 갖게 되었다기보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러 들어오기 시작한 92년 경부터 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지요. 이 집은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들이 설립했습니다. 1998년 지금의 이름인 안양 전, 진, 상복지관으로 명칭이 변경되기 전에는 안양근로자회관이었거든요.

근로자회관 설립자이자 초대 관장이 서 말가리아라는 독일인이었는데, 이 분이 92년 8월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10월쯤 필리핀 사람 둘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그 분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찾아왔었어요. 제가 그 분이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그 분을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었지요. 자기들이 이 앞을 지나가는데 들어오라고 해서 응접실에서 차를 대접하면서 사는 것은 어떤지 물어보더랍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영어로 자신들에게 인간다운 대접을 해준 최초의 사람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필리핀으로 돌아가기 전에 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왔어요.

그 후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11월에 열린 바자회에 구경을 왔더군요. 그들을 초대해 이곳이 하는 일을 설명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때는 성남, 안산 등에 있는 이주노동자 센터들이 아직 없었을 때였어요. 그렇게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고에 대한 단순 상담을 하다가 93년 1월에 일년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 네팔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문제를 해결한 것을 시작으로 오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문화적 충만함과 존재의 존엄함을 경험한 안양근로자회관 시절

 

질문 : 이 대표 님은 어떤 인연으로 이곳에서 일하게 되셨는지요?

답변 : 제 자신이 70년대 후반 안양에 있는 공장에 다녔어요. 노동자였지요. 이곳은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으로부터 온 근로청소년들의 복지와 상담과 교육을 위해 지어진 집이었어요. 국내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지어진 집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루는 저의 앞자리에서 일하게 된 언니에게 어디 사느냐고 물으니까 여기에 산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선선히 대답하더군요. 처음 방문했을 때 사람들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너무 좋아나도 여기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지요.

 

질문 : 그때부터 공동체생활을 하신 거네요?

답변 : 그렇지요. 이곳에서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이전에 몰랐던 세상을 많이 접했어요. 이 집이 건립된 69년 이전부터 아피 회원들이 안양지역의 노동자들에게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거든요. 2대 관장이셨던 한성연 언니를 비롯해 외국인인 아피 회원들이 많았던 터라, 포크댄스나 레크리에이션, 가면무도회 같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피정이나 종교교육, 노동자들이 알아야 할 산업재해에 관련된 법이나 노동법 등에 관한 강좌 등 당시만 해도 노동자들이 접하기 힘든 세계에 대한 경험을 통해 문화적으로 충만함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의 존엄함을 깨우칠 수 있었지요. 우주성을 중시한 아피 회원들의 삶의 자세를 배우기도 했고요.

 

질문 : 가톨릭 신자이셨나요?

답변 : 아니요. 이곳에서 가톨릭의 향기를 맡았지요. 종교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분위기였지만 가톨릭 신자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은 대학을 다니느라 서울에서 생활하던 4학년 때였어요. 그리고 나서 86년 졸업하고 집에서 조금 쉬고 있는데 안양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일하면서 아피에 관심을 갖게 돼 91년에 아피 회원으로 입회하고 수련을 받고 회원이 됐지요.

 

질문 : 아피 회원이 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변 : 아피는 개념적으로 수도자와 일반신자 사이를 중재하는 평신도사도직회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벨기에에서 시작됐지요. 입회하면 일정한 기간동안 자신을 탐색하는 시간이 있어요. 그런 다음 앞으로 우리가 전체 안에서 어떤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색하는 4-5년의 수련기를 거치지요. 그 후 서약을 합니다.

 

질문 : 수도회와 비슷하네요?

답변 : 그런 부분도 있지만 우리는 사회 속에 들어가 생활하기 때문에 제복을 입지 않아요. 또 전문직을 갖고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받지요. 서약을 했으니까 물론 결혼은 하지 않고요. 그런데 저에게 잘 맞는 생활방식인 것 같아요.

 

삶의 방향을 결정한 유럽 방문

 

"처음에는 근로청소녀들의 생활지도를 담당했어요. 남자생활지도를 하는 남자선생님이 따로 계셨고요. 한 방에서 같이 살면서 교육과 상담을 했지요. 자신을 다 드러내 놓고 사는 삶이었기 때문에 나를 감출 수 있는 구석이 없었어요. 그런 가운데 정말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지요. 87년부터 90년 사이 기숙사생들과 함께 연일 시위에 참여하고,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면서도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 지 출구는 보이지 않고 혼란을 겪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이던 90년 6월 말 유럽을 처음 방문하게 됐지요. 저는 유럽을 방문하면서 세상에 새롭게 눈떴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관과 세계관이 달라졌으니까요. 그전까지는 한국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어떤 면에서 국수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세상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한국에 돌아와 바로 아피에 입회했지요.

또 하나 유럽의 사회교육기관을 둘러보면서 현장과 이론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학문적인 것과 접목시켜 발표하는 세미나를 진행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기관도 나름의 이론을 정립해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갖고 외부 사람들이 방문하거나 세미나를 할 때 우리의 모습을 알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긍정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사회교육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했거든요."

 

우리 안에 뿌리깊게 자리한 차별의식에 대한 안타까움

 

질문 : 제도적인 보완과 함께 그 사회의 인식 수준이 이주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문제 상황을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답변 : 정책이 부재한 가운데, 이미 파악되지 않은 사람 숫자를 포함한다면 50만 명에 가까운 이주노동자들이 있거든요. 공식적인 통계만 보더라도 불법체류자 26만 명, 산업기술 연수생 8만 명, 현지법인 연수생 2만 명 등 약 40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있어요.

그런데 이 정도 규모의 이주노동자가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이 부재한 가운데 들어와 있다면, 우리로서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 손쓸 수 없는 상황이다 라고 말할 수 있거든요. 그것에 대한 궁극적인 피해는 시민들과 이주노동자 자신이 받게 되겠지요. 노동자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이 없는 가운데 이들이 받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거기에 유색인종에 대한 경험이 없는데서 오는 우리들의 혼란이 더해지지요.

이로 인한 갈등이 분명 있지만, 저는 지금이 우리들 자신이 정말 인종차별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도 물론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백인 선교사 위주였고, 우리가 그들과 많이 접촉할 수 있거나 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를 가더라도 다른 인종의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대하는지, 우리의 인간관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들을 함부로 대한다는 거지요. 하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차별의식이 언제부터인지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전환해 함께 살아갈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대접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운동하는 기관들의 시각전환도 필요합니다. 문제 가운데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해결할 것은 스스로 해결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인권적인 문제는 우리가 동등한 위치에서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할 수 있을 지 고민할 때가 됐다 라는 거지요. 무조건적인 의존을 가져오거나 베푼다는 차원의 접근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질문 :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분명 이들이 중요한 노동력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차별하지 말자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답변 : 이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가운데 일하고 있고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하는데요. 그것을 다르게 생각하면 너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돈을 벌어가지 않느냐. 우리가 너희에게 일할 기회를 줬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라는 식으로 집단이 시혜적인 위치에 있다는 뜻도 됩니다.

집단적인 시혜차원에서의 접근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일민족에서 비롯된 인종학적 인류학적 편견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신문에도 나왔지만 농촌에는 일손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축산농가나 화훼농가 등 곳곳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우리가 준비할 새도 없이 함께 살고 있는 겁니다. 이런 현실로 받아들여 우리가 다른 문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이들도 우리 사회에 통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할 때입니다.

 

가족 곁에서 일할 수 있도록 거주비자 정착되야

 

질문 :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이주노동자가 내국인과 결혼하는 경우도 이제 드물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런 경우 이주노동자의 법적인 위치는 어떻게 되는지요?

답변 :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결혼한 사람들이 아주 많지요. 국내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고국에 돌아가 혼인신고를 한 다음 재입국을 합니다. 불법체류중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지금과 같은 벌금사면기간에 출국해 단순동거비자인 F1비자를 받아 재입국하고요. 그런데 F1비자를 가지고는 취업할 수 없기 때문에 재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다시 불법취업을 하는 예가 많습니다.

올해 5월 1일에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돼 국민의 배우자이면 누구나 거주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주비자는 흔히 F2비자라고 하는데 이 비자를 가지면 취업할 수 있고 사회보험의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 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직까지 F2비자를 받은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외국인 남성과 한국여성이 결혼한 경우 혼인신고를 해서 부부임이 증명되고 남편이 F2비자를 받아 거주하면 일할 수 있는 단계까지는 보장돼야 한다고 봅니다.

 

질문 : 한국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여성은 어떤가요?

답변 : 그들도 임시비자를 가지고 살고 있어요. 3년이라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귀화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많아요. 남편이 가정폭력을 행사해, 살고 있던 집에서 나와 쉼터에 온 여성이 있었어요. 남편의 폭력 때문에 도저히 가정을 유지할 수 없어 이혼을 원했지요. 그래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문의했더니 가족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비자효력이 상실된다고 하더군요. 이 여성은 한국에서 10년을 살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요.

 

이주노동자를 인정하는 대승적이고 합법적인 정책 절실

 

질문 : 정부는 합리적인 이주노동자 정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 무엇보다도 먼저 정부 관계자들이 철학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일민족의 순수성을 지켜야 하고 국토가 좁아 이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사회분석에서도 이미 예견되었듯이 2010년경이면 노령화 사회가 됩니다.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렇지 지방에는 이미 공동화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국토가 좁다고 하지만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그렇지요. 인구증가가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10년 후 단순인력에 대한 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하면 이들을 인력으로만 활용하고 통제해서 빨리 고국으로 돌아가게 할까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정책을 쓴 나라들은 다 실패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이윤도 있지요. 이들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훌륭한 문화 전달자입니다. 자본주의 시각으로 본다면 고국에 있는 이들의 친척까지를 포함해 엄청난 구매력도 가지고 있는 소비자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인식 전환으로 불법체류자를 합법화시킬 수 있는 안을 가지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대승적으로 수렴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법무부가 실시하는 자진신고를 받는다고 하는데 이들은 지금 어떤 형태로든 노동하고 있는 사람이므로 그 자체로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노동자로 과감하게 인정하는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등록한 이주노동자들을 합법화시켜서 일정한 기간 충분히 일하고 억울한 마음을 갖지 않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조건을 제한해 놓으면 국내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커요. 왜냐면 이주노동자들을 싼 임금으로 고용하면 국내노동자들의 임금조건도 자꾸 내려가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이 안 될 거예요.

저는 지금 우리가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독재의 그늘 아래 90년대 초까지 있다가 사회가 분화되고 지각변동을 겪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까지 합쳐지면서 더욱 복잡해졌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럴 때일수록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있는 데도 없는 듯,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은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열린 시각과 새로운 인간관으로 함께 살아갈 인류의 구성원을 받아 안는 넓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사진 · 정리 이수지 기자(soo3881@naver.com)

작성자이수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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