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여성장애우, 자신있게 결혼하세요."
본문
가정의 달, 5월. 함께걸음은 자신의 가정을 일구어 가고 있는 한 여성장애우를 만나보았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존재하는 지금,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여성장애우에게 가정은 어떤 의미인지, 여성이면서 동시에 장애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경희 씨를 통해 들어보았다. 결혼 13년째인 여성장애우 조경희 씨는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전업주부이다.
▲조경희씨 |
여성장애우, 그리고 결혼
―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양육과 집안살림 등 결혼한 여성장애우의 구체적인 생활의 면면들을 나눌 수 있으면 하는 기대에서 이번 만남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신 지 얼마나 되셨는지요?
13년째 됩니다. 어렸을 때에는 결혼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장애우들은 결혼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저도 사춘기를 거치면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을 만나 연애하는 중에도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니까요.
지금도 별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저희가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비장애우 중심의 생활환경이 훨씬 많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걸어다니는 것만 못하는 것뿐인데, 걷지 못하는 그것 때문에 많은 제약이 따르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상태로는 결혼생활을 하기 힘들겠다고 제 나름대로 생각했지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이 일대일 개인만의 결합이라기 보다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것 또한 결혼을 꺼렸던 이유 중 하나였어요. 특히 여자는 시집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혼 이후 시댁과의 관계를 풀어 가는 것도 저에게 큰 부담이었고요. 남편 집안에서도 반대를 많이 했는데, 남편이 가족들을 설득한 다음에 인사드리러 갔기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남편은 교통사고로 발목 하나를 잃어서 의족을 신고 걸어요. 그래서 대부분 그렇듯이 시댁 식구들께서는 자기 자식보다 덜 아픈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셨나 봐요. 시간이 지난 후 시어머니께서 네가 싫어서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너도 자식을 낳아보면 알겠지만 자식 가진 부모 심정은 한가지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친정어머니께서도 반대하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너무나 당연한 거다. 만약 네가 너보다 장애가 더 심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으면 엄마도 반대했을 거다. 내 딸을 반대하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마땅치 않지만 어머니 대 어머니로 생각을 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위로해 주셔서 많은 힘이 됐어요.
자녀들이 먼저 받아들인 부모의 장애
―아이들과는 외출을 자주 하십니까?
일주일에 한번 정도 쇼핑할 때 함께 가는데요. 아이들이 다 컸는지, 할 일이 있거나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은 안 간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남편이 바빠서 같이 못 갈 때면 아이들이 약속을 취소하고 함께 갑니다.
― 외출할 때, 아이들이 휠체어를 탄 엄마의 모습을 조금은 낯설어하지 않나요?
그런 것은 아직까지 못 느꼈어요. 특히 사춘기인 큰 녀석은 말을 잘 듣지 않을 때도 있지만 엄마와 아빠의 장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든지 그런 것은 아직까지 못 느꼈어요.
결혼 초기에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을까 싶었어요. 또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와 아빠의 장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자신이 없었고요. 그런데 남편은 아이를 간절히 원했어요. 그래서 큰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왔는데 막막하지요. 애를 어떻게 건사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런데 모성이 강하더라고요.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무사히 넘겼지요.
아이들도 엄마 마음을 알아준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어요. 큰 아이가 오륙개월쯤 됐을 때, 제가 휠체어를 타고 우유를 타 온다든지 하면 아이가 휠체어 바퀴에 자기 손이 걸리지 않게 피하곤 했어요. 큰 아이가 아장아장 걷게 되어 아파트 마당에 나가 바깥바람도 쐬고 또래아이들도 만나고 그럴 때도, 계단이나 언덕을 올라갔다가 제가 거기는 위험해 하면 아이가 와요. 그런데 작은 아이는 막 돌아다녀서 큰 녀석이 가서 데리고 온 적이 많았어요.
또 아이들은 자주 아프잖아요? 큰 아이가 6살 때부터 작은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다녔어요. 그 때는 남편이 차를 집에 두고 출근했거든요. 소아과가 대부분 건물의 이삼층에 있어서 제가 병원 앞에 차를 세워 두고 의료보험증을 손에 쥐어 주면 큰 아이가 동생이랑 올라가서 진찰 받고 주사 맞고 약 받아 오곤 했어요.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 때까지 엄마들이 교대로 급식당번을 하거든요. 그래서 큰 아이가 1학년에 입학한 후 담임선생님께 제가 몸이 불편해서 아이들 학교 청소나 급식 당번을 하기 힘든데, 꼭 해야 한다고 하면 파출부를 사서라도 보내드리겠다고 편지를 썼어요. 그러면 선생님에게서 괜찮다. 사정이 그러하시니 급식당번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연락이 와요. 그런 내용이 아이들 학년이 바뀔 때 전달되지 않더라고요. 가정환경조사서 같은 것을 쓰니까 저는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매 학기초가 되면 다시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아이들은 장애우를 장애우로 보지 않는다.
― 학부모회의 등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는 누가 참여하십니까?
남편이 갑니다. 유치원 생일잔치에도 남편이 갔거든요. 대부분 엄마들이 참석하기 마련인데 아빠가 오니까 선생님도 아빠가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씀하신대요.
― 조경희 씨는 참석하지 않으시나요?
예.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아이는 친구들에게 엄마가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숨기지 않거든요. 그런데 제 자신이 괜히 용납이 되지 않아요. 혹시 아이가 친구들하고 놀 때 너희 엄마는 휠체어 탔더라 이런 말 듣고 상처받을까봐요.
― 아이들이 엄마는 왜 휠체어를 탔어?이렇게 물은 적이 없어요?
희한하게 큰 아이는 그런 것을 하나도 안 물었어요. 그런데 작은 녀석은 간혹 혼자말로 엄마는 왜 휠체어를 탔을까?, 아빠는 왜 부츠를 신어야 할까? 그래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슈퍼마켓이 지하에 있었거든요. 저녁식사 끝나고 바람 쐴 겸해서 나가면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사 먹자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슈퍼마켓 내려가는 계단에서 기다리고 세 명이 내려갔다 오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아이가 나는 이 다음에 커서 건물을 지으면 절대로 계단은 안 만들어야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계단을 왜 안 만들어? 어떻게 올라가라고? 물었더니 계단을 만들면 엄마가 못 올라가니까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만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피아노 교습을 하면서 아이들과 많이 접하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은 장애우를 장애우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는 것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휠체어를 타는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은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닌, 그 자체로만 봐요. 색안경을 쓰고 장애우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 친척모임에는 잘 참여하시나요?
예. 빠지는 적이 별로 없어요. 시어머니께서 회갑이나 사촌들 결혼 때 당신 자녀들이 모두 오는 것을 원하세요. 음식점이 대부분 2·3층이잖아요. 그래도 상관하지 않으시고 무조건 오라고 하세요. 시어머니의 절친한 친구 회갑에도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일요일로 날짜가 잡혔으니까 아이들하고 왔다 가라고요. 시어머니 친구들은 모두 연로하시잖아요? 그런 곳에 가면 심지어 어떤 분들은 오셔서 다리 같은 것 만져보실 때도 있어요. 아유, 세상에. 아이는 어떻게 낳을까 그래하시면서요. 그러면 저는 기분 나쁘지만, 시어머니 당신께서 휠체어를 탄 며느리를 부끄럽게 생각하시면 그런 자리에 저를 부르지 않으셨을 것이라 생각하면 어머님께 참 고맙지요.
여성장애우, 자신있게 결혼하라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말고 장애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또 제 자신이 아이를 키우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이를 키운 경험에 대한 조언도 얻고 싶었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여성장애우 모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데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결혼하라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 앞서 간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도 궁금했고요. 모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도 그런 이유였지요. 찾아보면 장애를 가졌지만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거든요. 또 엄마, 아빠가 장애를 가진 것에서 오는 아이들만의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들끼리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바램도 있었어요.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을 또래끼리 만나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여성장애우 모임을 알게 되고 그와는 별도로 가까운 지역에 사는 엄마들 몇 명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하잖아요?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들이 이동하는 것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안타까움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보려고 애썼지요. 파라다이스복지재단에서 실시하는 풀뿌리 지원사업에 신청해서 지원을 받아 선생님 한 분을 모시고 아이들과 박물관이나 여러 곳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몇 개월 동안 진행하기도 한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였어요. 지금은 진행하지 못하고 있지만요.
아이들이 참 좋아했는데,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아이들의 연령대가 다양해 아이들의 욕구를 일일이 맞출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아이들은 다양한 볼 거리가 있는 박물관을 좋아하지만 유치원 아이들은 박물관을 지겨워하잖아요. 그리고 프로그램이 주말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여러 가족이 시간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다닐 수 있지만, 자녀가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일 경우 이동이나 다른 부분에 제약을 받는 장애우들은 육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지요. 그래서 비장애우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사회가 특히 여성장애우의 육아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친정어머니도 가까이 살고 계셨고 주변에 살고 있는 또래아이의 엄마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렇게 도움을 청할 여건이 되지 않는 엄마들도 있으니까요.
여성장애우를 위한 정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 그럼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오전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십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아이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찼거든요.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오전에는 집안 정리를 하고 주로 인터넷을 사용합니다. 어디든지 인터넷을 통해 방문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신문도 읽고 주로 장애와 관련된 사이트에 들어가 보는데요. 장애와 관련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부족하더라고요. 특히 여성장애우에 관련한 자료는 더 찾아보기 힘들고요. 나이가 들면서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장애우들을 위한 운동법 등을 찾아보곤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안타깝습니다.
인터넷에서 뿐 아니라 자료로 정리된 정보도 절대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장애우의 출산에 관한 정보도 태부족이지요. 저의 경우에도 임신했을 때 의사가 무조건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양쪽 골반의 불균형으로 출산시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분만이 어렵다고 소견서에 쓰여 있어서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하는지 알았지요. 그런데 모임에 나가고 다른 여성장애우들을 만나 보니까 자연분만을 한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 저도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경우보다 자연분만을 하는 예가 더 많다고 알고 있는데요.
저를 진찰한 의사는 골반의 상태를 조사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무조건 수술을 해야 한다며 좋은 날짜를 잡아오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낳은 이후, 모임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정보를 접하면서 자연분만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이런 예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자료가 정리될 필요를 절감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자료를 공유한다면 저와 같은 예도 조금씩 적어지겠지요. 오전에는 주로 이렇게 인터넷을 이용하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도 봐주고 시간 맞추어 학원 보내고…다른 엄마들이랑 똑같지요. 그리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가 궁금하니까 이야기를 해 주면 좋겠다고 하면서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함께 쉬는 쉼터 꿈꿔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세우고 계십니까?
계획이라기보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남편도 사회생활을 잘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마음에 담고 있는 한 가지 꿈은 비장애우와 함께 장애우들도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에요.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장애우들이 다양한 문화와 여가를 즐기며 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거든요. 피난처가 아닌 그야말로 쉼터 말이에요.
남편과 가끔 노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서울 근교는 비싸니까 조금 떨어진 곳에 그런 쉼터를 마련하면 어떨까 하고요. 아이들 키우느라 아직은 요원한 꿈이지만 언젠가 장애우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화장실, 엘리베이터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맛있고 멋있는 식당도 같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현실은 아직 멀었지만 정부가 장애우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여가나 문화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가 장애우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자인 장애우에만 한정되어 있는 측면이 많잖아요? 생계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우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정부의 이런 정책이 장애우를 너무 빈곤층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