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민중신학은 시대의 은폐된 것을 먼저 읽고 발언하는 예언자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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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위기에 대한 많은 담론들 가운데, 최근 발간된 김진호 목사의 「반신학의 미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 권력을 독점하려는 교회중심의 주류 신학이 가진 권위를 부정하고 다양성을 수용해야한다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안병무 박사로부터 시작된 민중신학의 3세대로 계간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이며 한백교회의 담임 목회자인 김진호 목사를 과천에 자리한 한백교회에서 만나 교회와 신앙, 민중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서양 · 남성 · 백인 중심의 신학에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신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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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오면서 보니까 십자가나 교회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가 없어서 생소하다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한박교회는 기존교회와 예배형식이 많이 다른가요?
"전 교인이 예배 순서에 참여하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설교는 제가 한 달에 두 번 정도하고 한 번은 준목이, 한번은 교인들이 준비하지요. 예배 때 시를 한편씩 읽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시를 읽을 때 가장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 시대의 발언들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예배 순서가 다른 교회와 다른 이유도 기존 교회의 순서가 싫어서가 아니라 정형화된 것이 싫어서였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정형화됐어요. 저희가 찬송가를 만들었던 것도 기존의 찬송가를 부르면서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인데 우리의 찬송가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가 됐어요. 그런 것에서 어떻게 넘어서는가 하는 것이 고민입니다."
- 근래에 내신 「반신학의 미소」라는 책에서 서양 · 남성 · 백인 중심의 기존 신학으로부터 벗어나 다양성을 수용하는 신학을 강조하셨는데요. 모든 것을 하나의 규범 속에 넣으려고 하는 한국사회의 획일적인 모습은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까?
"장애를 가졌거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지요.
제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당대비평에서 작년 한해 동안 "우리 사회에서 타자화(他者化)되어 상대적으로 발언의 기회를 제약 당한 사람들의 말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제약하는 이 사회에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기생해 공모하고 있는가"를 다루는 기획연재를 마련했는데 첫 주제가 장애입니다. 장애일반과 정신장애, 여성장애우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지난 해 기획한 것 중 반응이 가장 좋았습니다.
우리 안에 제약당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너무 쉽게 간과하고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말 즉, 낯익은 것만 취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낯선 것들을 자꾸 도전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신앙고백을 하셨고요."
- 이런 시도들이 다양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시작이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될까요?
""세계가 다양하다, 다원적이다"라는 것은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조건입니다. 우리는 다원적인 사회에 접촉해 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라는 담론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지요. 그것을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 생각대로 동일화시킬 수 없는 다양한 그룹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도 많다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거룩을 이야기하는 것도 위선이고 왜곡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앙의 위기구조를 내포한 그리스도교의 교회화 과정
- 사회적 책무에는 소홀한 채 교회성장주의, 교회중심주의에 몰두하는 한국 교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반신학의 미소」의 화두가 아닌가 싶은데요.
"일단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위기다"라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제 이야기가 주목을 끌기 쉬웠던 것 같아요. 그리스도교 신앙의 위기가 지금에 와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고요. 저는 뿌리 깊은 위기구조를 이미 그 안에 가지고 있었다고 봅니다."
- 오래 전부터 뿌리 깊은 위기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구체으로 어느 시점부터인가요?
"아주 초기부터지요. 제가 생각하는 위기를 단적으로만 이야기하면요. 교회운동으로 이어져 온 예수운동은 분명 의미있는 흐름이지만 그것이 교회만으로 과도하게 대표되어 왔다는 사실이 비극입니다. 교회중심주의의 뿌리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공식적 종교로 대두되던 4세기경부터 성찰의 시간도 없이 교회가 신앙을 과도하게 대표하면서 다양한 다른 신앙양식들은 억압되거나 은폐되어 신앙이 아닌 것처럼 가려져 왔다는 거지요.
또 한 가지, "역사에서 그리스도교만큼 인류에게 해악을 끼친 집단이나 사상, 종교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코소보사태에서도 보듯이 그리스도교가 가해자로 역사에 등장하는 예가 많지요.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얽혀 있는 분노의 감정을 500년 동안 생생하게 저장하고 있었던 것이 종교였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 몇백만 주민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할 때도 가해자인 국가의 통치자가 힘없는 나라를 향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聖戰)을 선포했지 않습니까? 그것이 가능한 종교라는 말이지요.
저는 이런 현실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라고 봅니다. 수치심으로부터 우리의 신앙이 출발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신앙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정에서 민중신학을 만나
- 목사님은 어떤 계기로 신학을 공부하게 되셨습니까?
"교회는 고등학교 때부터 다녔어요. 저희 고등학교 때 교회라는 곳이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지 않습니까? 제 나름대로 신앙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가지고 시작했던 건 대학 입학 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생기는 고민이 신학을 공부하게 된 배경이 되었던 것 같아요. 혼돈을 이겨보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신학을 공부하고 신학교에 들어가게 된 거지요."
- 그러면 신학교에서 안병무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되신 거네요?
"예. 학교에 복직되셔서 강의하실 때였어요. 선배들은 거의 못 들었는데 저희들은 넘치도록 들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신학교에 입학한 때가 86년도인데 제가 몰랐던 세계를 보면서 그것을 다루는 신학이 민중신학이라는 것을 알고 그 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지요.
- 민중신학을 처음 접했을 때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신앙 때문에 혼돈스럽지 않으셨나요?
"민중신학을 만나면서 혼돈스러웠던 것은 아니고요. 신학교 와서 데모도 처음 해 보고 안 가봤던 데도 가 보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에 대한 갈등과 무너짐, 이런 것들을 경험했어요. 실제로 민중신학을 공부한 것은 87년도 이후인데 일년 사이에 제가 가졌던 신앙에 대한 물음이 풀린 이후라 별 문제는 없었어요. 제가 민중신학을 접했을 때 목마른 상태에서 마신 물 같았어요. 대학교 때 못 보았던 것을 신학교 들어와서 보면서 굉장한 죄의식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내 신앙이 얼마나 독선적이고 폐쇄적이었는지 깨달았던 거지요.
그런데 신학을 공부하면서 직접 접해 보지 않고 폄하했었던 것들을 직접 만나면서부터 죄의식과 속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들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그런데 이런 저의 격동을 신학의 언어로 표현한 민중신학을 접하면서 이것을 하는데 내 인생을 걸어야겠다고 맘을 먹었지요."
- 안병무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선생님에 얽힌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제가 본 안병무 선생님 모습 가운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첫인상이기도 한데요. 김세진 이런 분들이 분신하던 때였는데 학생들이 많이 모인 예배시간에 앞에 나오셔서 후배들에게 "학생들이 그렇게 하지 않게 말려라"하시는데 그 목소리의 떨림과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고 개인적으로 찾아뵙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시 몸에 불을 사르고 죽는 친구들의 정당함은 당연한 것이었어요. 민중신학자라면 당연히 지지하고 거룩한 죽음이라고 이야기하실 줄 알았는데, 사람의 생명에 대한,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당신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또 수업 시간에는 아주 무서운 분이셨지만 만약 당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의견일지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인정해 주시는 열린 분이셨지요. 그렇게 열린 자세를 가지신 분을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민중은 특정한 사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집단
- 민중이라고 하면 우리는 소외되고 억압받고 은폐된 집단을 떠올리는데요. 목사님은 민중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십니까?
"이 문제는 복잡한데요. 저는 민중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고요. 우리 사회에는 기층대중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이념으로 묶이지 않고 지향도 동일하지 않고 권력과 결탁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취약한 집단이 있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은 항상 저에게 충격입니다.
가령 저는 나이가 저보다 한 살 많고 공장에서 20년 넘게 일한 노동자 한 분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보다 책에 관한 것과 세상의 지식을 더 많이 열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책에도 썼듯이, 저는 벽에 액자 거는 것도 잘 못합니다. 시멘트벽에 못을 박는데 자꾸 삐뚤어져 다시 박으려다 보니 구멍은 자꾸 커지기 일쑤거든요, 이렇게 살아가면서 불편한 것이 많고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런 관계인데 그 분은 저에게 항상 목사님이나 선생님이라고 하고 저는 이름에 "님"이나 "씨"를 붙여서 말하거든요. 이렇게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그 분으로부터 높은 신분으로 대우를 받는데 우리 사회에서 목사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갖는 지위가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 소득에만 관련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대중이 있습니다.
저는 민중을 기층대중과 동일시하기보다는 어떤 사건에 주체화적으로 참여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층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어떤 사건,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건에 동지가 된 사람들은 다 민중이겠지요."
- 장애문제로 조금 돌아오면 당대비평 편집회의 때 장애를 주제로 기획연재를 제안을 하셨을 정도라면 어떤 형태로든 장애문제에 관심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데 구체적인 경험이 있으신지요?
"지금 돌아보면 고등학교, 중학교 때 부끄러운 기억들이 많습니다. 배려라고 할까요? 인간에 대한 존중보다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비교하면서 느낀 자기 우월감이 많았어요. 지금은 신학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끄러움의 표현들을 해야 하는데,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저희 교회에 다니는 장애인복지를 전공한 친구가 저에게 장애에 대해 많이 들려줬어요. 더 많은 고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평소에 접하면서 몰랐었던 것들을 배웠지요."
민중신학자는 우리 시대의 은폐된 것을 먼저 읽고 발언하는 예언자여야
- 이주민노동자 등 최근 억압받는 계층의 문제를 다루는 쪽에서 아주 소수만이 민중신학을 원용하면서 유지하는 수준이다, 민중신학의 역할은 끝났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부분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입장을 조율해 하나의 공식적인 입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민중신학 하는 사람들은 도처에서 각기 게릴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민중신학은 우리 시대의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은폐된 것들을 먼저 읽고 자기가 있는 곳에서 발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민중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으레 이렇다 라고 예측할 수 있거나 정형화된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민중신학하는 사람들의 잘못 중 하나가 우리 자신을 비판적으로 질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는 비판적으로 질문해야 할 대상들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우리인 줄은 몰랐거든요. 지금은 우리 자신들도 그런 대상으로 올려놓고 누구보다도 혹독하게 우리와 싸워야 한다고 봅니다. 제도화되어 가는 것, 체제에 대한 비판은 나 또한 제도화된다는 것에 대한 비판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제도화된다는 것은 익숙한 것, 낯익은 것에 대해 친숙해 하구요. 낯선 것에 대해 공포감을 가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신앙안에서 낯설음을 욕망한다면 그것이 민중신학인 것 같아요. 물론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답답한 마음에 부정했었던 것과 다시 손잡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지요. 이 두려움이나 욕망으로 인해 우리 자신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결국 또 하나의 권력자의 얼굴로 살게 되지 않을까요?"
소수자를 주목하는 제3세대 민중신학
-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민중신학의 이런 모습이 안병무 박사님이나 서남동 박사님에게서 시작된 민중신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저는 민중신학은 3세대로 구분하는데요. 사람의 분류가 아니구요. 민중신학이 시대를 읽는 양식의 문제인데 대략 70년대 읽는 양식과 80년대의 양식 그리고 우리의 양식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90년대 이후 우리의 문제 의식은 이데올로기만을 가지고 세계를 읽을 수 없고, 훨씬 다양하고 분산된 사람들 이른바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본다는 거지요. 가령 제가 민중신학에 입문한 80년대는 소수자는 못 봤어요. 항상 다수와 다수의 싸움이어서 소수는 안 보였거든요. 그때는 그것이 당연했고 또 필요했던 반면, 지금 우리는 다수를 읽을 수 없어요. 다수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권력조차도 분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구요. 우리가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요. 권력들이 자신의 의지를 도처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제된 사람들의 의지는 어떻게 은폐되는지 읽어내기 위해 분산적으로 노력해야 하지요. 선생님 세대들은 그 시대의 요청들이 있었고 지금 우리들은 더 정교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 다르게 봐야지요. 사회도 변했고 시대를 읽는 사람들의 눈도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됐고요."
- 신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많이 만납니다. 그들을 보면서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기독교의 본질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갖는 신앙의 고민이 신학적인 것만은 아니니까요. 제가 선교단체에 있을 때도 선배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학생이라는 특권 없이 사회와 접했을 때 부딪치는 격동들을 봤거든요. 그것도 처절한 신앙적 사투지요. 저는 신학을 하는 사람이니까 그 고민을 신학의 언어로 표현하는 거지요. 그런데 저의 성찰은 신앙적 성찰인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고민은 인간적 고뇌처럼 보이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그리스도교 스스로 넘어서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 화장실에서 일 볼 때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신앙과 관련되어 있는데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노래 부를 때만 신앙이고 그 이외에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스도교인이나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종교를 가지지 않은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이런 가치들을 몰랐던 것이 아니고요.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고 나왔던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있는 것이지요. 가령 니체에게 배워 온 사상도 있고요. 그리스도교가 그동안 그런 사람들을 기독교 밖으로 쫓아냈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이고 교회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배워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은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고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구원의 방주를 타고 있다는 식의 폭력적인 사고는 정말 유치한 발상이지요. 우리 사회 안팎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먼저 깨우쳐서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체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자부해 왔던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볼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사진 · 정리 이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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