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이 없으면 장애도 없습니다." > 함께 사는 세상


"장애물이 없으면 장애도 없습니다."

[만난사람]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 강병근 교수

본문

2001년은 "노인 · 임산부 · 장애우를 위한 편의시설 촉진에 관한 법률"의 시행과 이동권 확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계기로 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았던 한 해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편의시설은 특정한 계층에게만 필요하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함께걸음은 2002년 신년을 맞이하여 강병근 교수를 만나 편의시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과연 올바른지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정비하는데 어떤 사회적 합의와 실천이 필요한지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의시설은 특정한 부류에게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장애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종종 강병근 교수님께서 건축전공이시지만 어느 누구보다 장애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고 문제해결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계셔서 우리에게 자극이 되고 힘이 된다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누가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만 이런 생각은 들어요. 시각장애우 유도블럭 같은 경우 잘못 이해하시는 분들은 못 깔게 하는 게 아니냐는 말씀을 하십니다. 못 깔게 하는 게 아니라 효과적으로 깔자고 하는 것인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힘이 되는 건가, 짐이 되는 건가 자문하게 되지요."

 

-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서적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영역에서도 많은 편견이 있지 않습니까. 호주제나 군 가산점 등에 대한 남성들의 거부감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뭔지 모르지만 구별하려는 문화에 너무도 익숙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장애문제는 더욱 심한 편이지요.

"그렇지요. 장애우와 비장애우간에만 편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우 상호간에는 물론이고 장애우 상호간에도 상당한 편견이 있지 않습니까? 서로 어느 정도 편견만 버려도 사회가 훨씬 좋아질텐데요.

편의시설이 어떤 특정한 부류에게 특정한 시혜를 베풀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편견입니다. 나는 불필요한데 저 사람에게 필요하니까 내가 양보하겠다고, 과하게 표현하면 내가 좀 손해보겠다고 이야기하는 태도 또한 편견에서 옵니다. 제가 모임이나 다른 곳에 가면 "장애우들 때문에 우리 요새 혜택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이런 말들이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장애우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장애우, 비장애우 구별없이 누구나 이용하거든요. 또 서울 지하철 환승역마다 셔틀 엘리베이터 설치공사가 이제 거의 끝나 연초에 가동될 예정입니다. 그렇게 되면 편의시설이나 다른 것들이 주는 편리함이 얼마나 큰지, 우리에게 만연된 근거 없는 편견을 없애면 어떤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지 많은 분들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 리모콘이나 논스텝 버스도 그 예가 될 수 있겠네요.
"그럼요. 아마 논스텝 버스가 도입되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겁니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는 분들만 해도 행동반경이 더욱 넓어지겠지요. 지금은 자가용이 없으면 유모차를 밀고 쇼핑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앞으로 사회 전반에 확대되면 굳이 장애

, 비장애에 대한 구별이 없어지리라 기대합니다."

 

독일유학에서 편의시설과 인연 맺어

- 건축공학을 전공하는 많은 분들이 계신데 교수님께서 이 분야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특별한 계기랄 것까지는 없고 학위논문의 주제로 이 분야를 정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왔습니다. 제가 1970년대 말 독일로 유학가서 공부하면서 몇 가지 학위논문주제를 놓고 고민할 때 교수님께서 1977년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진 편의증진법에 관해 연구해 볼 것을 제안하셨어요. 편의증진법이라고 번역하는 DIN18024, DIN18025가 만들어진 것이 1977년과 1978년이었으니까 초창기라 거의 연구되지 않았거든요. 제안하시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이 있는지 물으셨는데 그 당시만 해도 장애우를 부를 때 우리는 많은 편견이 섞인 용어만을 썼고 특수학교도 전국적으로 8개밖에 없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장애우가 이용하는 교육시설을 연구해보지 않겠느냐 제안받았던 겁니다. 그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서 망설였어요.

그런데 "너희 나라에 장애우가 없어서 그들이 이용하는 시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장애우와 함께 생활하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서다"라는 그분들의 말씀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그때 한창 경제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었잖아요? 사회여건이 조성되고 안정되면 장애우의 정의자체가 확대된다며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장애우의 숫자가 전체인구의 10%내지 13%를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는 산업화의 필연적인 결과인데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도 필요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공부를 해 보는 것이 어떠겠냐며 제안하셨지요."

 

- 보통 유학을 가는 경우 한국에 돌아와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을 공부하는데 비해 교수님은 사람들의 관심조차 없었던 영역을 공부하신 거네요.

"물론 돈을 잘 벌 수도 없고 그런 분야를 전공한 교수는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선택은 아마 저의 종교적인 신념과도 관련 있었을 거에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오지에 있는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다시 나누는 구체적인 행위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의 제안을 들으니 편의증진법에 관한 연구가 건축을 공부해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쓰지 않는 부분을 제가 뒷받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임 없이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이 분야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편의시설이 특수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수라고 하는 단어가 원래 좋은 표현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 용어부터 편견을 담고 있다고 보는데요. 특수한 것이라고 해서 가서 보면 지극히 평범한 것인데 다루지 않다 보니 특수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제가 1년 반 동안 유럽 각지에 있는 390여 개의 특수학교에 자료를 수집하러 다니면서 그러한 예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중 하나만 이야기하면 우리는 미끄럼틀이라고 하면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것만 생각하기 쉽지요? 그런데 어느 학교에 가니 램프를 설치해 휠체어를 탄 아동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미끄럼틀이 있더군요. 빙글빙글 돌아서 올라가는 과정이 재미있잖아요. 그렇게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그 위에서 놀이를 할 수도 있어요. 무슨 놀이를 하는가 하면 미끄럼틀 주변에 모래밭을 만들어서 도르레로 모래를 퍼 올려요. 플라스틱 주걱을 달아서 퍼 올린 모래를 밀어내리기도 하구요. 또 펌프를 달아 물을 퍼 올리고 내리게도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시설은 장애나 비장애 구별 없이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쉽게 즐길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고 "정말 이 분야는 공부할 만 하구나" 느꼈습니다."

 

 

거제도 애광원을 지으면서부터 편의시설을 건축에 적용

- 그럼 학부에서도 건축을 전공하셨습니까?
"지금은 없어졌지만 5년제 공업고등전문학교라는 게 있었는데 제가 거기를 다녔거든요. 어릴 때부터 만들고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시계며 라디오가 귀했을 때였는데 아버님께서 사오시면 바로 뜯어보곤 했지요. 그러다가 건축을 하게 됐구요.

저는 하느님 다음으로 행복한 사람이 건축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건축가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의미에서 창조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건축가들이 성직자 못지 않은 도덕적인 무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건축가는 대부분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건축행위를 하므로 잘못 만들어진 건축물은 자연의 파괴는 물론이고 이용하는 사람에게 불편을 주거나 자칫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들과 함께 장애체험을 하면 참여한 모든 분들이 진작 장애체험을 하고 건축을 했으면 지금까지 저질렀던 실수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 학위를 받고 바로 일을 시작하셨나요?
"일은 1984년 거제도 애광원에서부터 시작했어요. 학위는 1985년 7월에 받았구요. 일반생활시설이던 애광원이 1978년에 정신지체인 생활시설로 바뀌었어요. 원장님께서 시설을 만들기 전인 1983년에 독일로 답사를 오셨다가 물어물어 베를린까지 저를 찾아오셨는데 만나지 못하고 귀국하셨지요. 귀국하신 다음에 저에게 "정부에서 처음으로 보조금이 나와서 장애우생활시설을 지으려고 하는데 설계를 해달라"고 편지를 하셨어요. 그래서 84년도에 도면을 보내고 건축허가를 받아 1985년에 착공해서 지금까지 계속 짓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것은 1985년 9월입니다. 독일에 유학 가서 편의시설과 인연을 맺었고 애광원을 지으면서부터 건축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공유하는 대안을 찾는 노력 필요

- 편의시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딜레마가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계단 대신 경사로를 만들 때 면적을 많이 차지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미끄러질 위험도 있구요. 이런 불편한 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습니다. 딜레마지요. 이것은 장애우에게 편리하고 이것은 비장애우에게 편리하다는 식으로 편을 가르면 자칫 나의 편의를 위해 내 불편을 다른 사람 앞에 가져다 놓는 모양이 되고 결국 서로에게 손해입니다. 가능하면 공유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합니다. 경사로를 예로 든다면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지에 대해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 경사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제가 보기에 경사로는 목표가 아니라 보조수단이거든요. 실제 목표는 승강기가 되어야 합니다. 승강기를 설치할 여건이 안 되는 경우 경사로라는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승강기가 없는 3층 건물에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었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완만하면 완만할수록 보행길이가 길어지거든요. 그렇게 되면 한번 올라가는 사람은 괜찮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내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계단보다 더 힘들지요.

이런 의미에서 가급적이면 서로 공유하는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문제가 남아있지만 저는 그 대안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 대안이 보조 수단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 수는 있지요. 그렇지만 대안을 잘못 선택하면 오히려 비용은 더 많이 들면서도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리프트를 예로 들면 초창기 취득비용이 승강기보다 비쌌어요. 많은 사람들이 리프트를 설치하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지금은 거의 이용을 못하잖아요."

 

 

문화시설 내 편의시설에 대한 인식부족이 가장 큰 문제

- 편의시설촉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정비하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과정상에 나타나는 문제점은 없는지요?

"가장 큰 문제는 장애우들은 문화나 레저와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풍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우들은 여행을 다니지 않을 없다고 단정해버립니다. 그러니까 문화시설이나 관광지에서는 장애우를 아예 처음부터 고객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애우만큼 문화에 대한 욕구가 큰 계층이 없거든요. 문화나 여가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잖아요? 실제로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다니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호기심이 더 많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사실이구요.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우나 노인 등 활동범위가 좁은 사람들이 그들인데 고객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현실자체가 잘못된 문화정책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외국의 유명한 사진작가 중 시각장애우도 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우들이 가장 영화를 즐겨봅니다. 그들의 묘사가 더 세심하고 뛰어나지요. 연주회장에 루프시스템을 설치하고 전기선을 꽂고 송신장치만 나누어주면 청각장애우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행이나 문화생활 어느 분야에서도 장애우를 소외계층으로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스포츠 경기장도 직접 가보세요. 스포츠는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이 마치 선수인 것처럼 흥분한단 말이에요. 장애우라고 해서 그 흥분과 감동이 없을 리 없거든요. 생활환경도 예외가 될 수 없구요. 장애우들이 이곳에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 바꾸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생활하는 사회를 꿈꾸며

- 대학강단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편의시설에 관한 강의를 자주 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간직했으면 하는 내용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가서 호소하는 거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장애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장애는 문에 달려있고 길에 놓여 있고 건물에 달려 있고 우리 주변에 있지 몸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휠체어가 장애는 아니거든요. 휠체어를 못 가게 만들어진 그 시설이 장애지요.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건축가를 포함해 생활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 장애물이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애물이 없다면 장애를 느낄 수 없을 테니까요.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장애가 느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사로 각도를 몇 도로 하고 길이는 얼마 정도로 한다 이런 것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기술이 진보하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옵니다.

저는 그분들이 누구나 불편을 느끼지 않고 생활하는 사회를 꿈꾸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 주변에 있는 장애물들을 스스로 치우려고 노력하리라 믿습니다. 예전에 공부할 때 알고 지내던 친구들에게서 "함께 길을 가다가 장애를 갖지 않은 친구가 들어가는 곳을 나는 들어갈 수 없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 의사에게서 당신은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던 그 순간에 느꼈던 좌절감보다 크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애물만 없다면 이런 좌절을 경험하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는 편의시설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장애물을 없애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니까요.

이와 함께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 의심하는 시선을 받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나아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장애물들도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점점 사라지리라 낙관합니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정리·사진 이수지 기자

작성자이수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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