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외부평가 도입하여 전문적이고 장기적인 프로그램 수행하는 국립재활원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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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식국립재활원장 |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어떤 기관이나 모임에서는 그를 대표하는 사람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난 결과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훌륭한 기관장은 망원경과 현미경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기준을 갖고 본다면 김병식 원장은 이런 조건에 참으로 합당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동안 재활의학 전문의로서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에 망원경을 들고 미래를 계획하고 대비하는 열린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체장애우이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미세한 부분까지 현미경으로 보듯 꼼꼼히 살펴 장애우 입장에서 재활원의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국립재활원의 홍보기능 강화하고 차별화된 프로그램 개발할 터
- 국립재활원이 올해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돼 기관장을 공개 채용했는데, 김병식 원장님께서 처음으로 민간인 출신 기관장으로 취임하시게 되었습니다. 우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우선 제가 국립재활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제가 그 동안에도 국립재활원의 재활병원 부장으로 계속 일하고 있었고, 저 역시 장애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좀 더 장애우들을 위한 구체적인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워낙 장애우 복지 자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제가 임기동안 다 이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될 수 있으면 그 동안 해왔던 사업들을 보완하고 정리해나가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꾸준히 어떤 프로그램이라던지 사업들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다보면 다음에 이 자리에 오는 사람이 그것을 이어받을 수 있게 그런 환경들을 만들어 두고 싶은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일각에서는 국립재활원의 역할에 대한 불만들이 있었죠. 병원의 이미지가 강하고, 특히 이름도 재활원이어서 시설의 이미지가 풍기고, 또 전체 장애우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지역에 뿌리를 두는 듯한 느낌도 있었고요. 개방형 임용이 되면서 이런 분야에 책임과 권한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역할의 변화에 대한 기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건 저도 동일한 생각입니다. 저도 89년부터 재활원에서 일을 해왔는데 "국립이냐, 국립이면 국립의 역할이 무엇이냐 이제 그것을 바로 정립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 오고 보니 이제 그런 것들이 더욱 구체화되고 더 많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름 자체가 재활원이기 때문에 어딜 나가서 "제가 국립재활원 원장입니다" 라고 하면 항상 질문 받는 것이 "몇 명이 수용되어 있죠?" 혹은 "국가에서 돈은 많이 주나요?" 하는 것들입니다. 여기에는 이름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은 이번에 공개채용에 응모를 하면서 이름을 한번 바꿔보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국립재활센터가 어떨까 했는데 사실 잘 안됐어요. 이런 것들이 불가능하다면 거기에 맞추어서 제 자신이,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우리 국립재활원이 무언가 차별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상당히 차별화 된 프로그램이 많았는데 그 동안에는 우리 안에서만 보고서를 내고 우리만 가지고 있었지 홍보가 미흡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홍보기능을 좀 더 강화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현재도 전국적인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습니다. 또한 지역사회 중심의 재활프로그램은 16개 거점 보건소까지 연결되었고, 보건복지부에서 대상 보건소를 대상으로 해서 보고회와 워크샾도 가졌습니다.
이렇게 국립재활원이 단지 병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프로그램, 즉 지역사회 중심의 재활이라던지 교육 프로그램이라던지 여성재활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오픈 된 상태에서 많이 홍보를 해야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에는 재활훈련과 기능을 곧 바꾸려고 준비중에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다른 장애우복지관에서는 못하는 보호자가 필요할 정도로 장애가 심한 중증장애우들만을 대상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외에도 직접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간접서비스, 간접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장애우들을 교육하는 강사들을 가르치는 전문적인 시스템도 고민 중에 있습니다."
국립재활원의 프로그램 외부평가 실시해 정기적이고
전문적인 프로젝트 수행할 계획
- 원장님 취임 후 본격적으로 국립재활원 운영에 있어서 기존과는 모양이 다른 모습들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가 듭니다. 물론 한계가 있겠죠. 틀을 완전히 벗어나기에는 여전히 국립이라는 명칭도 그렇고, 민간에게 위양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 한계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구체적인 요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앞서 말씀하신 것 중에 도저히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아주 전문적이고, 아주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은 여기서 수행할 수 있는 고유한 기능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활동하면서 느끼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문제를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정책들을 세워나가고 점검하는 기능이 매우 모자라는 게 아닌가 하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일들은 장애우단체라던지 기관에서 가능한 일들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특히 국립재활원에서는 좀 더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일들을 수행해낼 거라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나 바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대표, 기관장이 바뀌면 이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 "그 일을 위해서는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이뤄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많이 개방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 1월 외부 분들과 함께 워크샾을 실시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저희들의 프로그램을 수시로 자문받고 개방을 해서 거기서 잘못된 것은 지적 받고 잘된 것은 계속적으로 추진하는 그런 기능들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에는 그냥 서류상으로 끝내버리고 외부에는 드러내놓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을 공개하고 외부의 평가를 받아서 이를 통해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장애 때문에 좌절됐던 의과대학 입학, 그러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원장님이 의과대학을 입학할 당시만 해도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의과대학에 가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고 기억이 되는데요. 어떻게 의과대학에 가실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 "그 이야기만 나오면 괴롭고 한편으로는 감사하고 그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마도 내가 몸이 불편하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예요. 그런데 소장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때가 장애우가 의대에 가는 일이 많이 힘들 때입니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 학과에는 합격했으나 면접에서 불합격됐다는 그런 기사들이 자꾸 실리는 거예요.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늘 신문지상에 그런 것만 나니까 의과대학 입학이 안 되는 줄 알고 1학년 1학기 때는 인문계반, 2학기 때는 자연계반을 오가면서 계속 갈등을 했죠.
그러니 제대로 공부가 되겠습니까? 그러다가 처음 대학시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의 인문계를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될 리가 없지요. 그렇게 많이 괴로워 하다가 대학을 안가기로 결정하고 집으로 내려와서 지냈는데 10월쯤 되니까 "내가 이렇게 시시하게 있으면 되겠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일단은 서울로 다시 올라와서 강남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버스를 타고는 기사 아저씨에게 이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대학이 어디냐고 물으니까 중앙대학교라고 해요. 그렇게 해서 1976년에 중앙대학교에 가서 둘러보고 그해 겨울에 원서를 써서 중앙대 의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 그럼 중대 의과대 졸업 후 재활의학과를 가신 건가요?
- "그때는 재활의학 전문의가 없을 때라 일단 보건 쪽 대학원으로 진학해서 보건소에서 2년 근무하다가 그때 마침 전문의제도가 생기는 바람에 전주 예수병원으로 가게 됐고, 전문의과정을 마치고 다시 보건소로 갔어요. 그런데 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중에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립재활원이 있는데 이곳에 와서 근무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죠.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장애우들을 위해 일했다고 하기엔 부끄러운 부분들이 많았더라구요.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항상 내가 지닌 것들을 장애우들과 함께 해야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즈음에는 사회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국립재활원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 결혼은 언제 하셨나요?
- "85년도에 했습니다."
- 연애하신 건가요? 아니면 중매로 만나신 건가요?
- "제 경우엔 76년도에 들어가서 우연히 캠퍼스에 누워 있다가 크리스천이 됐어요. 나중에 제가 전주예수병원에 있을 때 선교사님이 우연히 오셔서 이제 장가가야되지 않느냐고 하시기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아가씨를 소개해주셨는데 만난 지 4개월 정도 지난 후에 결혼하게 됐습니다. 글쎄 결혼하는 과정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제가 어쨌건 의사고 먹고사는데 불편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해요."
아빠의 장애를 이해시킨 아내 덕에 아이들과 더없이
좋은 친구로 지낸다.
- 결혼한 후에 장애를 가진 아빠의 경우 가정에서 아이들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형성할 때 엄마가 주도적으로 많이 하지 않습니까? 물론 대체적인 한국 사회의 가정이 갖는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있었나요?
- "없진 않았겠죠. 그런 문제는 우리 집사람이 잘 컨트롤했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잘 설명해 주었고요, 아이들도 이해하는 것 같아요. 어딜 가도 아빠를 아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또 학교에도 가끔 가는데 선생님들 앞에서도 자주 얘기를 하는가봐요. 그런데 큰아이가 중3이니까 사춘기에 있고 밑에 아이가 6학년도 되고 보니 오히려 요즘 신경이 많이 쓰여요."
- 저도 제일 걱정이 아이들이예요. 아내는 이미 제 장애를 알고 결혼했고 쭉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아이는 예측이 잘 안되잖아요. 혹시 이 녀석이 아빠랑 함께 어딜 가면 창피해하진 않을까 하는 그런 것 때문에 아주 공식적인 자리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안 간다던지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 "소장님도 그렇고 저도 그럴 텐데 나이가 먹으면서 점점 더 행동반경이 좁아지는 것 같아요. 행동반경이 좁아진다는 얘기는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얘기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많아지는 게 아니고 거꾸로 얘기하면 그것도 하나의 장애가 될 수 있겠죠."
장애관련 단체들과 연대하여 장애우 인식개선에 힘쓰고 싶다
- 지금 아, 태 장애우 10년이 내년에 마무리되지 않습니까? 큰 정책의 변화들은 10년의 턱들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한 시기별로 정리될 때마다 뭔가 평가되어야 하고 계획도 새로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립재활원에서도 그런 것에 대한 책임성이라던지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그런 준비들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 "그 동안은 구태여 아, 태 장애우 10년 사업하고 우리하고는 깊이 연계되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아, 태 10년 사업 자체가 국립재활원과 연관해서 하지 않았고, 우리는 많은 부분이 장애우 재활협회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 그건 민간차원이고 아, 태 장애우 10년 정책은 정부간의 결의고 복지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정책 아닙니까? 민간레벨에서는 계속 나름대로의 입장에 관련지어서 템포들이 나올 것 같고, 복지부 공식적 소속기관은 복지진흥회보다는 국립재활원이 주도권을 가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복지부가 그 자체의 역량을 가지고 될 수는 없을 것 같고, 어디엔가 그런 평가에 대한 뭔가가 있어야 되는데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것들이 국립재활원이 그런 것을 가지고 할 고유한 기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 동안 제가 복지시설 영역에서 원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 태 장애우 10년 사업은 시작할 때나 중간중간 그 동안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알고 있긴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것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느끼는 건데 그런 것들은 우리 국립 재활원에서 사실은 했어야 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 내년 10월 정도에 아, 태 장애우 10년 평가 발표가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아마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차원에서 평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자기 나라에서 주도한다고 생각하니까 아주 집중적으로 평가작업에 들어간 것 같은데, 평가가 잘못되면 완전히 주도권이 일본으로 가게 되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으로 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은 올해와 내년 2년에 걸쳐서 집중적으로 평가를 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들도 국립재활원의 고유한 일이 아닌가 생각되고요. 그럼 원장님 임기가 3년 이신가요?
-"2년입니다."
- 그럼 2년 동안의 포부를 가지고 계실텐데요.
- "저도 장애가 있기때문에 우리 장애우들을 위해서 한마디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회가 장애우에 대한 인식 개선되어야 한다고 자꾸 그러는데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가 장애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국립기관에 있으면서 몸으로 겪어보면 장애우들도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장애우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회에서 무조건 받으려고 하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에서 지원 받는 일도 무조건적이기보다는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장애우들도 사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런 장애우들의 인식개선을 하는데 있어서 구체적인 여러 방법이 있을 텐데 저는 장애우 전문가들 분들과 힘을 합쳐서 인식개선에 힘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은 CBR 사업이예요. 지역사회 중심의 사업이 지금은 16개 시, 군에서 하고 있는데 앞으로 32개로 확장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립재활원이 국가에서 하는 여러 가지 과제들을 따내서 나름대로 논문도 많이 발표하고, 이런 과정 속에서 장애우 재활을 하는 사람들이 국립재활원을 한번씩은 겪고 가도록 하는 그런 대표적인 장애우종합재활기관이 되었으면 합니다."
- 국립재활원이 공무원 세계에서 채득되어진 특성이랄까요, 공무원세계의 조금은 배타적이고 새로운 곳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유지하려는 것 이런 것들이 결국은 국립재활원을 혼자 있게 하고 그러다 보니 고립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기관에서 "국립재월원은 국가기관중의 하나다"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많은 예산과 여러 가지 규모를 가지고도 장애우들에게 파고들지 못했던 원인이 아닌가 분석도 하고 있는데요. 그 동안 연대에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런 것도 국립재활원의 한가지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재활원에서 지난 1월에 장애관련기관 연찬회를 계획했습니다. 1년에 두 번 정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서 연계를 맺는 것이 참 중요할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사실은 복지관도 많고 장애기관도 많지 않습니까? 사실 서로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주관은 우리 국립재활원이 하더라도 연찬회라던지 집단회라던지 그런 것들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 자리를 통해 서로의 얘기를 자주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여러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 "국립재활원은 장애우 여러분의 기관입니다. 국가기관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장님 말씀 가운데도 있었지만 바깥에서 보기에 우리가 조금 배타적인 것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배타적인 것도 있지만 미리 "여기는 안될 것이다"라고 미리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는 국립재활원에 사회교육을 위한 장애체험장도 설치됩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을 때마다 내 집처럼 생각하시고 많이 활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장애관련기관에 계신 분들이나 장애우 여러분들이 국립재활원에 오실 일이 생기면 제 방에 들르셔서 함께 차 한잔이라도 나누면서 저에게 필요한 이야기 해주시면 제가 복지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목소리를 전할 수도 있고, 이런 상호신뢰와 이해 속에서 장애우 복지를 위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정리 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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