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를 딛고 일반학교 교단에 선 송광우씨, 가와이 준이치 교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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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학교교단에선송광우씨,가와이준이치씨 |
교실 안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립니다
- 시각장애 딛고 일반학교 교단에 선 송광우,기와이준이치 교사이야기-
지난 4월 27일, 충남 당진교육청은 레버씨 시신경증으로 1년 간 병가 휴직을 낸 고대초등학교의 송광우 교사(남,30세, 시각장애 1급)의 복직을 받아들여 우리 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우 일반학교 교사가 탄생되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시각장애우 특수학교에 시각장애를 가진 교사가 있을 뿐, 일반학교에는 단 한명도 없어 이번 당진 교육청의 복직 결정으로 우리 나라에도 시각장애우 교사가 일반학교 교단에 서게 된 것이다.
그동안 시각장애우가 일반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했던 예는 드물게 있었지만 일반학교가 아닌 시각장애우 특수학교에 임용됐던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런 현실속에서 지난 5월 2일에는 일본 최초로 일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시각장애우 가와이준이치 교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한국 방문은 시각장애우 교사가 일반학교에서 아이들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송광우 교사의 복직과 가와이준이치 교사의 한국 방문은 우리 나라에서도 시각장애우 교사가 일반학교에 설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각장애 교사가 능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보조교사제도"나 "장애우 교사를 위한 교과 담당제" 등의 명시된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송광우 교사 시각장애우로서 국내 최초 일반 학교 교사로 복직
복직을 둘러싸고 논란을 빚었던 시각장애우 송광우 교사가 마침내 교단에 돌아왔다.
경남 진주교대를 졸업한 뒤 98년 3월 당진군 고대초등학교에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만 해도 송교사의 시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년 6개월이 지난 99년 10월부터 갑자기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DNA 돌연변이로 인한 레버씨신경증이라는 진단이었다. 약물치료를 계속했지만 별 진척이 없자 결국 교사생활 2년 여만인 지난 해 4월 휴직계를 내고 교단을 잠시 떠나야 했다.
송교사는 "평생 장애우로 살아야 한다는 좌절감보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아팠다"고 회상한다. 병가 휴직을 한 뒤 대학원 특수 교육학과에서 공부를 하는 등 시각 장애우로서도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꾸준히 하며 기다려 온 지 꼭 1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복직한 남산초등 학교는 전교생이 63명에 불과한 벽지학교로 송교사가 담임한 2학년 학생은 모두 11명.
송교사는 1급 시각장애우로 보통사람이 보는 글자를 68배 확대해야 책을 읽을 수 있다. 때문에 송교사는 부임 첫날에는 오후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책을 확대해 칠판에 비추는 특수기기, 모니터를 통해 책을 읽을 수 있는 특수 CCTV 등 시각장애 교사용 기기들을 설치하기도 했다.
교단에 다시 선지 채 두 주일이 지나지 않은 지난 5월 19일 송광우 교사를 만나보았다.
- 99년 10월 레버씨시신경증으로 갑자기 시력을 잃은 후 병가 휴직을 하신 뒤 복직하기까지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병가를 냈을 때는 나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휴직을 하고 치료를 받으러 내려갔어요. 그런데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절망적인 얘기를 들으면서 좌절을 많이 했어요. 누구나 큰 일을 당하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저도 역시 "살기 싫다." 그동안 나쁘게 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올까하는 생각들을 했었어요. 가장 억울했던 것은 제가 시력을 잃었다고 해서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거였죠. 이제 겨우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했는데 그 꿈을 접으려고 하니 너무 억울하고 아쉽더라구요. 그러다가 일반 초등학교는 안되더라도 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일반 초등학교 교사는 마음을 접으시고 특수학교 쪽으로 생각을 하셨나봐요.
"그렇죠. 처음에는 저도 남들하고 똑같이 생각 했어요.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했으니까요. "맹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점자니까 점자를 먼저 배우고 특수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대학원을 도전해보자" 이렇게 마음먹었었거든요. 2000년 3월부터 수소문해서 부산맹인복지관에서 6개월간 점자 및 생활적응훈련을 한 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어떻게 복직을 결심하시게 됐나요?
"대학원 진학하기 전에 제가 졸업한 진주교대 은사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부산대학교를 소개시켜 주셨어요. 그런데 부산대 교수님께서 당신들은 대부분 청각, 정신지체쪽 전공이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대구대가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대구대 특수교육학과를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임안수 교수님을 만나뵙게 됐어요. 그런데 임교수님께서 저에게 학교에 사표를 냈느냐고 물으셨어요. 아직 안 썼다고 하니까 잘 됐다고 하시면서 외국에는 시각장애를 가진 일반학교 교사들이 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없는지 모르겠다고, 이번에 송선생이 한번 해보라고 하셨어요. 저에게 학생들을 다시 가르칠 자신이 있느냐고 물으시더라구요. 그렇다고 했죠. 그러면 싸워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때는 힘들다는 것보다는 이런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그래서 학교에 복직신청서를 내게 됐지요."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등 장애우로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꾸준히 하면서 복직을 기다려 오셨는데 복직 반대에 부딪쳤을 때 심정은 어떠셨나요?
"일이 잘 해결된 상황에서 이야기하자면, "학교장이나 관리자분들도 나름대로 입장이 있지 않았겠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요즈음 수요자 중심 그러니까 학생 중심의 교육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반대할 경우에는 복직시킨 그분들이 책임져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많이 망설이셨을테고 비장애우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때문에 그분들 나름대로 시범수업이라는 평가의 기준이 필요하셨을 겁니다. 시범수업 역시 학교에서 권했다기보다 제가 먼저 해보겠다고 한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힘들었던 점은 눈이 안보인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비장애우 교사가 수업하는 것과 저의 수업을 절대적으로 평가하면서 제가 비장애인 교사보다 부족한 것들만 지적했다는 겁니다. 물론 제가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수업을 하는데 잘 해도 얼마나 잘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직도 교직 사회가 틀을 짜고 그 틀에 맞추어서만 행동하는 관례가 남아있어서 복직이 더 힘들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현재 수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요?
"집에서 수업 전에 실물화상기에 컴퓨터를 연결한 CCTV로 글자를 확대한 내용이나 교사용 지도서로 미리 수업준비를 하구요, 판서할 중요한 내용은 점자로 미리 찍어 놓기도 합니다, 과제 검사할 때는 한사람 한사람 불러서 실물화상기로 확대한 상태에서 한사람 한사람 검사를 해요. 아무래도 그냥 눈으로 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확실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아이들의 수업태도라던지 반응은 어떠한가요?
"아이들이 아직 시각장애라는 개념은 몰라요. "선생님은 눈이 많이 안 보여서 이런 도구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도 깜빡 잊고 갑자기 무엇을 가지고 와서 "선생님 이거 보세요"하고 내밀기도 하고 그래요. 한 아이가 어제 그러더군요. "우리 선생님 눈은 잘 안보이시는데 참 재미있다"고. 아이들이 표현할 수 있는 때 안묻은 솔직함이죠.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라던지 그런 것들은 없어요."
-주변에 동료 교사나 교장선생님의 반응은 어떤가요?
"너무 좋으신 분들이예요. 저에게 기회를 주시고 한번 해보라고 용기를 주시고 있어요 한 선생님은 제가 복직했을 때 송선생님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니 참 복받은 아이들이라고 하시더라구요. 학교에서는 제가 제일 나이가 어린 신참 교사인데 선배님들에게 제가 하기 어려운 일들을 말씀드리면 다들 나서서 도와주세요."
"보조교사제도"나 장애인 교사를 위한 보장구 지원 등의 명시된 제도 마련 시급
시각장애를 가진 선생님들의 경우 역시 개인의 열정이나 자질, 능력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 겠지만 그런 능력발휘가 가능하도록 하는 주변환경을 마련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시각장애우 교사를 위해 수업에 필요한 보장구를 지원하고 보조 교사와 함께하는 팀티칭수업을 적용하고 있다. 송교사는 현재 동료교사의 차를 함께 타고 자취를 하고 있는 당진읍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동료교사들의 협조로 순조롭게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보조교사제도나 장애우 교사를 위한 보장구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저 혼자 수업을 이끌어가는 일이 좀 힘들기는 해요. 제가 아직 교직 경험이 부족 해서 자료를 능숙능란하게 제작한다던지, 시각적으로 세밀한 일을 못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 에서 도움을 주시는 보조교사가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있는 학교에서는 동료교사들이 도와 주시니까 별 문제없이 지내고 있지만 또 다른 학교에 가면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요. 저같은 교사에게 보조교사를 지원해 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요즈음은 학교마다 전용선이 다 들어와 있으니까 인터넷에 프로그램만 깔면 글자를 음성으로 해독하는 것은 가능하거든요. 가장 필요한 것은 실물화상기예요. 지금은 실물화상기를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들고 다니는데 그게 꽤 무거워요. 실물화상기가 학교에 하나 더 있다면 좋겠고 브렐라이터 라고 하는 일종의 점자 노트북도 있다면 좀더 쉽고 효율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노동부에서는 장애우를 고용하는 경우 고용주가 신청하면 보조용구를 구입하기 위한 지원금을 1인당 1500만원까지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일반 초중고등학교에 시각장애를 가진 교사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지원들이 이루어진 예가 전무했다. 그 때문에 송교사는 매일 20Kg에 달하는 실물화상기를 들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장애를 가진 교사를 위한 보조교사제도나 장애인 교사를 위한 보장구 지원 등 명시된 제도가 마련된다면 훌륭한 인성을 갖춘 더 많은 장애우교사들이 아이들의 곁으로 찾아들어 교육 현장에서 장애우와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을 자연스럽게 가르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송광우 교사가 교단에 다시 서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현재 교대나 사대에 재학중인 장애 학생들에게도 그들이 일반학교 교단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열었다는데서 매우 큰 계기와 의미를 가진다.
이에 대해서 송교사는 "시각장애를 가진 교사가 일반학교에 갔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인 것 같아요. 여기에 덧붙여 필요한 것이 열정이겠지요. 사람의 능력은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런 능력의 차이를 극복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열의나 열정,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열흘 정도 수업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해서 1년을 다 가르칠 수 있을까? 앞으로 더 큰 학교에 가면 할 수 있을까? 등등 많은 고민을 했었는데 이렇게 부딪치고 수정해나가 는 과정에서 제 나름대로의 틀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라고 말했다."
우리 나라 일반학교의 첫 시각장애인 교사로 기록된 송교사는 "스스로 선택한 교직의 길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하겠다" 면서 대학원을 졸업하면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교육방안연구나, 일반초등학교의 특수학급에서 장애아동들의 통합교육을 활성화시키고 싶다 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시각장애우들을 위한 복지관이 없는 당진 지역에서 시각장애우들이 정보습득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점자교육을 실시하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송광우 교사를 만나고 돌아오면서 그가 혹시라도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던 교단과 사랑하는 아이들 곁을 떠났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괜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함께 떠올랐다. "른 사람의 희망을 빼앗지 마라 그 희망이 그 사람에게는 전부일 수 있다."
그에게 전부인 학교와 아이들이 앞으로는 좀더 커다란 희망으로 자라나길 기대한다.
교사생활을 하는데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난 5월 2일 98년 일본 최초로, 그리고 현재도 유일하게 시각장애우로 일반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와이준이치 교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의 저서 "을 향해 뛰어라" 한국어 번역본을 출판한 창해출판사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가와이준이치 교사의 한국 방문은 시각장애우 교사가 일반학교에서 아이들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성포도막결손증"로 왼쪽 눈의 시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태어난 가와이 씨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완전히 잃었다. 오른쪽 눈의 시력마저 잃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영선수를 꿈꿨던 그에게 엄청난 시련이었다. 그는 한때 좌절하기도 했지만 중학교 은사인 스즈키 교사의 격려로 다시 용기를 되찾아 츠쿠바대학교부속 맹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한 후 임용고시를 통해 모교인 시즈오카현 마이사카 중학교에 역사교사로 부임해 현재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5월 3일 오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가와이준이치 교사는 전국 장애우 대학생연합회 소속 대학생, 시각장애인 교수 등 30여 명을 만나 자신이 장애를 극복하고 일반학교 교사가 된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가와이 준이치 교사는 "교측에서 나에 대한 배려가 크다. 수업을 도와주는 보조교사와 함께 팀티칭수업을 하고 동료교사들도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이나 직원회의 자료 등을 소리내어 읽어주는 배려를 해 주고 있다. 또한 교무실에 있는 내 책상에는 화면을 음성으로 표시해주는 장치와 노트북이 있고, 점자로 된 교과서도 갖춰져 있다" 말했다.
그는 "사생활을 하는 데 장애가 있고 없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장애우가 비장애학생을 가르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바로 학생들이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하는 교육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 학부모들이 정상수업이나 생활지도가 되겠느냐며 반대하고 나섰지만 내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일일이 녹음해 들으면서 외우고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내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가끔 나의 능력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긴 주변의 학생들이나 학부모, 교사들로 인한 것은 아니다. 내가 힘들 때마다 꿈을 갖고 함께 해주는 학생들이 나의 교사생활을 기쁨으로 바꿔준다" 했다.
가와이 씨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어 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은 없느냐고 질문하자 그는 오히려 자신의 모교이기 때문에 교사 생활이 가능하다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근을 갈 것이라며, 모든 문제의 희망과 답은 학생들이 주는 것 이라고 교사로서의 자신감을 내보였다.
보조교사제나 장애우 교사를 위한 지원제도가 전혀 없는 국내 상황과는 다르게 학교측과 동료교사, 학생들 모두가 시각장애우 교사를 위해 노력하는 마이사카중학교에서 그의 교사생활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종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열린 이날 간담회에는 공주영상정보대학에 복직한 이광만 교수 와 일반학교 교생 실습을 앞두고 있는 황선경 씨가 참석하여 가와이 준이치 씨와 의미있는 만남을 가졌다.
1급 시각장애우라는 이유로 청주대학교에 편입학을 거부당했다가 소송 끝에 입학 허가를 받아 낸 황선경 씨는 교생실습을 눈앞에 두고 있어서인지 가와이준이치 교사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장애우라는 이유로 교육받을 권리까지 누리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었던 그녀는 지난 학기에는 과 수석을 차지해 장학금을 받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도우미와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관 내 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이나 컴퓨터 음성인식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등 작은 배려가 있다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도우미는 전했다.
황선경 씨는 간담회가 끝난 후 "가와이준이치 선생님 얘기를 듣고 나니 힘이 많이 나네요.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시각장애를 가진 교사에 대한 편견의 벽이 너무 높고 장애 를 가진 교사에 대한 주변환경이 아직 미비하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다음주부터 교생실습 을 나가게 되는데 어린 학생들이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더불어 사는 마음을 갖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요"라며 희망을 내비췄다.
시각장애 교사가 일반학교에서 능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주변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
누구나 평등하게 누려야 할 자아실현의 기회, 그것들이 이제 더 이상 장애우라는 이유로 빼앗겨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장애우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영역에서 장애우들은 차별을 받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장애우에 대한 차별과 갖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 온 교육현장에서 조차 이러한 차별이 그동안 수없이 있었다. 교육대학교들의 입시요강을 보더라도 대부분의 신체검사기준은 장애우들이 탈락할 수밖에 없는 단서들 뿐이다.
그동안 장애우들이 어렵게 교대나 사대에 입학했다하더라도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무했을 뿐만 아니라 보조교사제도나 장애우 교사를 위한 교과 담당제 등의 명시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학생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송광우 교사의 복직과 가와이준이치 교사의 한국 방문은 우리나라에서도 시각장애우 교사가 일반학교 교단에 설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복직이나 채용만이 우리가 바라는 정답은 아니다. 시각장애우 교사가 일반학교 교단에 선 일은 하나의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복직 후 교사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과 여건 조성 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남게 되었다.
글/ 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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