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장애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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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 장애우 정책보좌관은 장애우 관련 정책을 입안해 대통령과 의회에 보고하는 직책으로 여기서 선택된 정책이 고스란히 미 행정부 장애우정책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지난 지난 7월초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이 주최한 학술대회 개최 초청으로 방한했다가 출국하는 강영우 박사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어렵게 만나 장애우 복지의 세계적 동향과 함께 우리나라 장애우들의 인권과 복지향상을 위한 애정어린 조언들을 들어보았다.
미국 행정부의 장애우정책 길잡이되는 백악관 장애우정책보좌관
― 이번에 미국 백악관 장애우정책보좌관을 맡게 되시면서 부시 행정부 고위직에 오른 최초의 장애우라는 스포트라인트를 받고 계신 게 사실입니다. 미국 정부의 장애우 관련 직책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강박사님이 맡고 계신 장애우정책보좌관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장애우와 관련한 차관보급 직책은 노동부에 장애우고용분야, 교육부에 특수교육과 재활분야, 백악관의 장애우정책보좌관 이렇게 3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 가운데서 제가 맡고 있는 일은 종교나 비영리단체의 사업지원 신청을 받아서 이 가운데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을 판가름하고, 장애우정책을 만들어서 대통령에게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대통령하고만 일하는 게 아니라 의회의 장애우정책 입안하는 분들이 자문을 구해오면 그에 대한 답변을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의장인 저를 중심으로 15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장애우 정책보좌역을 하는 15명은 장애우단체나 전문가, 부모 등을 만나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을 개발해내는데 그 과정에서 반드시 공청회를 열어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그럼 여기서는 정해진 틀에 의해 관료적으로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실질적인 장애우단체들의 입장을 직접 받아들여 유연하게 내용들을 정리하고 그것을 공청회를 통해서 다듬고 그래서 대통령이나 의회에 건의하는 일을 하시는 거네요.
“저희들이 하는 일은 정책을 세우는 일이죠. 부시 행정부 취임 초기에 발표됐던 ‘뉴프리덤발(New Freedorn)’의 같은 새로운 법안도 이곳을 통해서 세워진 정책입니다. ”
― 장애우단체에서는 운동을 통해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진 않나요?
“대부분 장애우단체나 전문가들은 대부분 법제정과 실질적인 적용의 자문역할을 하게 되죠. ADA(Amarica Disability Act: 미국 장애우 민권법)를 제정할 때에도 실질적인 제안은 EEC(equity enployment commission: 백악관 민권실)에서 한 것이고 세부적인 조항들을 만들면서 장애우단체들의 자문을 받게 된 겁니다.”
― 그래서 ADA 제정의 과정 속에 민권운동이라던지 민권법같은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 거군요. 그럼 ADA는 재활법(rehabilition act)하고는 내용이 아주 많이 다르다고 봐야겠네요?
“재활법은 지금도 개정돼서 남아 있죠. 두 법은 같은 법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아주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없는 게 재활법 505조가 ADA 505조에 그대로 옮겨져 있어요. 이것은 법이 중복되는 게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모습이라 보아야 할 것 같아요.”
― 우리나라 법 체계하고는 많이 체계가 다르네요. 우리나라는 비슷한 법이 있으면 하나로 통합해 버리기 때문에 새로운 법이 구법을 다 조정해 버리는데 미국은 구법도 살아있고 신법이 과거의 재활법을 다 포괄하고 있다는 밀씀이군요. 우리나라도 이번에 통과된 인권위원회법이나 장애인복지법에 장애우 차별금지조항이 들어있긴 합니다. 그런데 인권위원회법에는 ‘인종, 성, 지역, 성적 정체감, 종교, 장애 등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조항에 장애라는 단어는 딱 한번 들어가는 게 전부에요. 저희들도 장애우복지법 조항을 싹 빼다가 장애우차별금지법 같은 독립된 법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미 UN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있어요. 작년 3월에 북경에서 열린 세계 NGO 대표회담을 등푸방 회장이 주선했거든요. 그때 NGO 인사들 중에 장애쪽 인사를 초청을 했어요. 미국을 대표해서 나와 두 사람이 함께 갔었는데 그곳에서도 UN인권에서 장애우인권을 독립된 분야로 만들자는 운동을 전개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지금 한창 노력중에 있어요.”
UN인권에서 장애우인권 분야는 독립적으로 분리되어야
― 박사님의 강연 속에서 자주 강조하시는‘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시각장애를 통해서’라는 얘기를 들을때마다 이렇게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과 태도들이 강 박사님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 박사님은 많은 장애계 인사들 가운데서도 이쪽저쪽에서 두루두루 존경받고 있는 인물로 꼽히시기도 하고, 한국 장애우로서 세계화를 가장 잘 이루어 냈다고 평가받기도 하는데 박사님이 생각하시는 장애우 복지의 국제적인 현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UN 인권 가운데에서 장애우 인권문제를 독립된 부분으로 분리해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1980년 UN에서 ‘세계장애우의 해 선언’할 때 이미 장애문제를 인권문제로 본다고 명시한 것을 보면 장애문제를 인권문제로 보려는 노력은 이미 20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죠. 그런데 거기에는 인권문제의 일부로서 장애우의 권리를 인정해준다는 의미는 담겨 있지만 장애우인권만을 독립해서 인정하진 않았어요. 더군다나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UN의 강제적인 제제조치가 없기 때문에 남녀평등이나 노동권처럼 국제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제제조치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진행시키려고 노력중입니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를 세계 NGO 대표들에게 보냈어요. 다른 정부들이 얼마나 협력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데 2002년 정도에 세계인권대회에서 많은 정부의 지지를 받는다면 UN에서 장애우인권문제를 독립된 챕터로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 이런 국제적인 현안에 따라 장애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확고히 하기 위한 움직임을 위해서 한국에서 노력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RI나 DPI 등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주도해 나가는 것이 좋겠지요. 또한 NGO 대표들의 영향력과 함께 국가 정상들이 모여 결정하는 것이니까 우리 나라에서도 장애우 관련단체 모두가 외무부장관이나 복지부장관에게 의견을 모아 전해주어야 하겠지요.”
한국의 장애문제 해결 위해 영향력있는 인사들,
국회와 정부 설득 위해 전면적으로 나서야
― 한국의 장애우단체들은 장애우문제를 해결할 때 다양한 방식을 취합니다. 운동을 하기도 하고 로비나 집회도 하고 여러 방식을 취하는데 강 박사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 나라의 장애우단체들이 진정으로 장애우들의 인권과 복지향상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한말씀 해 주시지요.
“제가 나서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미국이나 UN에서 하는 것들을 조금 소개해드리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NOD(national organzation of disability: 장애인 대표법인)에요. 그런데 이 법인의 비장애우 이사들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유명 인사들로 구성돼 있어요. 명예이사장 같은 경우 조지부시 미국 전 대통령도 있거든요. 장애우들의 힘만으로는 정책을 만들거나 목소리를 내는 일이 너무 버겁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앞에 포진시키는 거죠.
예를 들면 지난 1월 제막된 루즈벨트대통령 장애우동상이 만들어질 때도 그 과정에서 정부가 아니라 NOD가 주도했거든요. 사실 휠체어 동상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았어요. 1997년에 루즈벨트기념관이 만들어졌지만 그곳에는 그 분이 장애우였다는 흔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장애우가 된 후에는 23년간이나 휠체어를 타고 살았으니까 휠체어에 앉은 동상이 적어도 하나쯤은 있어야 장애를 극복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일끌고 경제공황에서 구한 영웅이라는 흔적이 남게 되잖아요. 그런데 장애우 동상문제를 놓고 의회나 루즈벨트 대통령 후손들이 찬반으로 완전히 갈라졌거든요. 루즈벨트 대통령 자신이 그걸 숨겼는데 왜 그걸 들춰내냐는거죠. 그때 NOG가 전직 대통령 3명을 명예위원장으로 내세워서 당시는 그렇게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의회를 설득시켰어요.
우리 나라는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국회와 정부를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우리 나라도 장애를 가진 이성재, 김명섭 같은 국회의원들이 같은 동료 국회의원들을 설득시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결과에 많은 차이가 날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우리 나라도 장애계문제에 국가나 사회 지도층들을 참여시켜서 어떤 때는 백그라운드로, 혹은 그 분들이 그 문제에 전면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긍정적인 입장에서 장애문제를 바라보자는 것이에요. 지금 우리는 장애문제의 부정적인 것만 파헤치는데 열중하지 긍정적으로 장애문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질 않아요. 그러나 제가 보기엔 대한민국은 장애우 복지 재활분야에서 엄청나게 발전을 했거든요. 물론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60, 70년대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 밤과 낮으로 비교될 만큼 많은 변화들이 있었어요. 구체적인 예를 들면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UN 루즈벨트 기금으로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제정했잖아요. 헝가리에서는 그것을 모방해서 유사한 제도를 만들기도 했어요. 이런 것들은 참 자랑스러운 일 아닙니까? 국제사회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우리 안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없어요. 1988년에도 장애우올림픽도 참 잘했거든요. 오히려 외국에서는 잘했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의 입에서는 절대로 긍정적인 얘기들이 안 나와요.
몇 해 전에는 워싱턴타임즈에 한국 장애우문제의 치부를 얘기하는 기사가 나왔어요. ‘장애우를 숨기는 한국인, 장애우시설의 성폭행사건과 시설비리’ 같은 것들이었는데 보통 미국에서는 그런 기사가 나올 때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입장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그 기사에서 한국의 대학교수나 전문가들의 인터뷰 내용은 순전히 부정적인 부분만을 부각시켜 얘길했더라구요. 자꾸 부정적인 것만 부각시키면 장애우문제에 대해서 사회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힘들죠. 장애우문제를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볼 게 아니라 긍정적인 부분도 볼 수 있는 접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우리 나라의 장애우단체들의 경우 장애우가 주도권을 가져야지, 사회 인사들의 지나친 참여가 이루어지면 장애우들은 다시 들러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거든요.
“미국도 시각장애우연합, 신체장애우협회 등 장애우들이 주체가 되어서 끌어나가는 단체들이 있어요. 제 말은 NOD와 같이 정부나 재계, 의회 등을 상대할 때 효율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 미국에서는 장애우단체들이 그런 기구들을 인정 하나요?
“인정하죠. NOD에서 장애우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지를 받아서 일을 진행하거든요. 사실상 장애우단체 전체의 의견을 물을 수 있는 대표기구입니다. 장애우라고 해서 장애를 모두 잘 아는 것은 아니거든요. 잘 아는 분야가 있는 것이지, 어떤 경우는 장애우가 아니면서도 장애우에게는 이런 것을 해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거든요. 장애우가 이끌어가는 기관에는 장애우가 주도권을 잡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애우를 위한 그런 기관에서 반드시 장애우가 조직의 장이 되고 주도권을 잡을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어떤 성격을 가지는 단체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거지요.”
사회 중심의 재활운동, 이제는 민간지도층 단체들과 연합해 끌고 나갈 계획
― 강 박사님은 한국의 장애우 교육과 복지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시기도 합니다. 1993년에는 서울에 장애인종합컴퓨터시범교육센터를 설립해서 음성인식컴퓨터, 문자확대 컴퓨터 등을 처음 소개해 주셔서 우리 나라 시각장애쪽의 정보화 인프라가 빨리 구축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앞으로 우리 나라의 장애계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면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미국에서 작년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 중고품들을 수선해서 판매하는 가게를 마련했거든요. 16억불 예산에 181개 도시, 가게만도 1700개가 돼요. 32만명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정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6만명이 장애우였어요. 그게 완전히 그들에게 자급자족이 되거든요. 재활서비스를 정부에 파는 경우도 있어요. 무슨 얘기냐면 재활을 시켜야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잖아요. 그런데 정부로부터 직능평가라던가 직업훈련이나 취업 등을 위탁받아서 운영하기도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구직으로 이게 제일 범위가 크죠. 그런 서비스를 정부에 팔아서 벌어들이는 돈이 연간 8억불이예요. ”
― 우리 나라 돈으로 하면 1조 가까이 되는 큰 돈이네요.
“우리 나라에서도 오래 전에 그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이름을 붙여서 실행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일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큰 교회를 통해서 시작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에요.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의 국재학술대회가 내년이면 10년이 돼요. 그래서 내년에 대대적으로 행사를 하면서 국제학술대회는 정리를 하려구요. 그 이유는 대회의 목적이 장애우재활을 통한 국제 이해와 우호증진, 그리고 외국 지도자를 통해서 국회라던가 청와대의 장애우 재활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했던 것인데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어요. 그래서 그걸 정리하는 동시에 사회로 재활운동을 끌고 나가던 것을 교회쪽이나 민간지도층 단체쪽으로 방향을 바꾸려고 해요. 현재 로타리클럽에서 하고 있는 장애우구직프로젝트나 시각장애우에게 시력을 주는 운동 등을 민간지도층의 단체들과 연합해서 수행해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인터뷰 자리에는 강영우 박사의 아내인 석은옥 여사도 함께 했다. 강영우 박사의 결혼이야기는 TV드리마와 책으로 발간돼 널리 알려져 있다. 석 여사가 강 박사를 만난 것은 숙명여대 영문과 1학년때인 61년이었다. 중학교 1학년때 중도실명한 뒤 어머니와 누나를 잃고 주위의 도움으로 뒤늦게 서울 맹학교에 입학했던 강 박사는 당시 걸스카웃활동을 하며 자원봉사로 책읽기와 빨래를 도와주던 석 여사를 만났다. 누나와 동생으로 지내던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한 것은 강 박사가 연세대에 입학하고 석 여사는 1년간 미국의 장애재활교육연수를 받고 돌아온 68년이었다.
당시 강 박사는 석 여사에게 의남매 관계를 청산하고 약혼자가 되는 의미로 석은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금 당장은 고통스럽고 힘든 석(石)의 시대지만 곧 은(銀)의 시대, 옥(玉)의 시대가 온다는 의미였다. 석의 시대는 시련과 역경으로 가득찬 기구한 운명에 도전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데 목적을 두었고, 은의 시대는 행복한 가정을 꾸미며 새로운 가정의 공통된 이상을 위해 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리고 옥의 시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산다는 목적으로 세웠다. 두 부부는 그때 세운 세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고 보아진다. 강영우 박사가 국제적으로 장애우들의 인권문제를 확보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온 것과 마찬가지로, 부인 석은옥 여사 역시 공립학교에서 시각장애 담당 교사로 일하면서 장애학생들의 교욱에 혼신의 힘을 쏟아 왔다.
강영우 박사와 석은옥 여사는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장애우가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는 문제는 장애에서 오는 불편함과 위축감도 있지만 그보다 사회적 편견이 빚는 냉대와 법적 불평등이라며, 장애우의 인권문제가 하루속히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영우 박사 부부의 말대로 개개인의 인격체가 존중받으며 공존과 공생이 함께하는 사회가 어서 빨리 찾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정리·사진 이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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