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함께 일군 지상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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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KBS 옆 조립식 가건물. 이 곳에 밥상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에게 ‘KBS’라는 말은 여의도를 연상시키고, 여의도는 번화한 거리를 연상시킨다. 빽빽이 들어선 고층빌딩에 커다란 8차선 도로까지. 모든 문명의 이기가 집중되어 있는 곳. 원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밥상공동체로 가는 내내 그런 번화한 거리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러한 바람을 무시하고 고만고만한 건물사이를 달리던 택시는 어느 비탈진 오르막길에 기자를 내려놓고는 줄행랑을 쳤다. 어디쯤인지 두리번거리기도 전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 올 것 같은 정겨운 ‘밥’모양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비를 뿌리고도 성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굵은 비를 쏟아내는 하늘을 피해서 급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오셨지요?”
기자의 얼굴에 서울사람이라고 쓰여있는 것도 아닐텐데 어쩌면 그렇게 한눈에 알아보는 걸까.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대도시의 기운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조용하고 온화한 원주의 기운을 흐려놓은 한 마리 미꾸라지가 된 기분에 민망해졌다.
급식에서 시작 전생애에 걸친 복지 서비스로
자리를 안내받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빗속을 뚫고 한 사람이 사무실로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사람들이 그를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지 못했다면, 결코 그가 목사인줄 몰랐을 것이다. 환한 미소를 띄고 직원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위엄있는 목사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넉넉하고 푸근한 그의 인상은 낡고 오래된 문방구 주인 아저씨 같았지만,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가 바로, 4년째 원주밥상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허기복(45) 목사다.
IMF 관리체제 이후 실직자와 노숙자가 급증하면서 무료급식을 시작한 단체가 늘어났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역시 중요한 것은 ‘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 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원주 밥상공동체가 추구해온 사업의 방향은 단순히 먹고 자는 문제의 해결을 넘어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접근해왔다.
1998년 4월 그가 원주천 쌍다리 둔치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밥상공동체가 하고 있는 사업은 무료급식소, 노숙자쉼터, 보물상 등 총 27가지에 이른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놀랍다.
“밥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급식사업을 했어요. 급식을 하고 나니까 이 사람들이 잘 자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잠자리를 마련했죠.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잠만 잔다고 문제가 해결되나요? 그래서 자활을 위한 직업교육을 시작했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워낙 사회적으로 소외된 시간이 길어 사회에 나가도 적응을 못하는 거예요. 자꾸 부적응자가 되서 중도에 탈락하고, 그런 일이 반복이 되니까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사람들한테 맞는 그런 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자체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사업이 집수리업체, 보물상, 구두방 같은 거예요. 원래 집수리 일을 하던 분들께는 집수리 일을 권해 드렸고, 보물상은 고물상을 부르는 말인데, 비록 고물들이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삶에 희망을 얻으니 우리한테는 고물이 아니라 보물일 밖에요. 그리고 나니 없는 사람들의 자녀교육 문제가 마음에 걸렸어요. 그러던 차에 후원해 주시는 분이 나타나 만들어진 것이 깁밥가족이지요. 처음부터 많은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그 분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씩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
그냥 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그의 말을 들다보면 정말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원주 밥상공동체가 한 일들을 조목조목 살펴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얼마나 큰 일이 되었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밥을 먹인 사람만도 20만명, 긴급구호 764명, 의류지원 17,517점, 노숙자 자활퇴소 100명, 취업연계 800명, 무료 집수리 132명, 가정무료진료 2,266명, 주민등록말소자 갱신63명, 취약계층 어린이 지도 13명, 결연사업 102명 등. 그들이 해 온 일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처음 시작할 때는 주위에서 의심의 눈초리도 많이 받았구요.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쉬는 날도 없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쉴 새도 없었으니까요. 지난 5년이 제게는 15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었다면서 짓는 그의 웃음이 고단해 보이기 보다 오히려 환해 보인 것은 기자만의 착각이었을까?
복음과 나눔은 분리될 수 없는 것
요즘의 한국교회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종교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교파와 교회만을 위하거나 교회의 부흥에만 사활을 거는 모습들은 우리에게 ‘신앙’이라기 보다 ‘장사’로 비추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종교단체의 소명이라고 할 수 있는 나눔의 사업들이 단지 교회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리는 모습이나 교회의 세습문제 등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겨줬다. 그런 면에서 교회 밖에서 급식사업을 시작한 밥상공동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처음에 교회 밖에서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전 교인이 반대했어요. ‘교회 안에서 해야 교회가 알려지고 부흥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 교인들의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랐어요. 복음을 전하고 나누면서 그 결과로 교회가 부흥된다면 좋겠지만, 부흥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나누는 것은 아니니까요.”
교회 밖에서 교회재정을 쓰지 않고 시작한 밥상공동체. 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너무나 막막했다. 일단 쌍다리 밑으로 급식 장소를 정하기는 했지만, 교회재정도 쓰지 않기로 한 마당에 당장 무엇으로 무료급식을 한단 말인가.
“그 때, 어떤 사람한테 전화가 왔어요. 매일 도시락 100인분을 제공하겠다구요. 하지만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알고 보니까 그분이 도시락업체 사장님이었어요. 매일 100인분의 도시락이 남아서 좋은 일에 그 밥을 쓰고 싶으셨대요. 그 덕분에 쌍다리 밑에서 밥상을 차릴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방학을 해서 도시락 업체가 쉬는 바람에 당장 급식이 끊길 상황이 발생한 거예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쌀 한 되를 담을 수 있는 자루 2,000개를 만들어서 각 가정에 나눠줬어요. 한달 동안 30가마의 쌀이 모아졌고 그 쌀 덕분에 공동체가 자립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그 때는 교회에서 밥을 하고 리어카로 실어서 쌍다리까지 날랐어요.”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가면서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났다. 날씨는 쌀쌀해지고 찬바람이 들이칠텐데, 언제까지 다리 밑에서 급식을 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급식장소를 구하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급식 할 곳은 쌍다리에서 가까우면서도 외곽으로 벗어나지 않아야 했으니까요. 식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시내 한복판을 걷기를 원했어요. 장소를 알아보면서 처음에는 지레 금액에 놀라 포기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돈은 어디에나 있는 거였어요. 다만 제 믿음이 부족했던 거죠. 그걸 깨닫고는 일단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허 목사가 찾은 장소가 지금 밥상공동체가 둥지를 틀고 있는 이 곳, 원주 KBS 옆 조립식 건물이다. 그때 보증금 2,0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운동이 ‘천사의 사랑’이었다. 천사는 ‘천원의 사랑’을 줄인 말이다. 허 목사는 원주 곳곳을 찾아다니며 1,000원씩을 후원받았다. 그렇게 해서 보증금에 필요한 돈 2,000만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 후에도 후원의 손길은 끊이지 않았다. 아이 돌에 돌잔치를 하는 대신에 돌떡을 밥상공동체에 돌리는 아이 어머니부터 10년 된 빨간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털어놓고 가는 사람, 용돈을 푼푼이 모아 졸업기념으로 내고 간다는 고등학생까지. 작지만 따스한 손길이 이어졌다. 그런 따뜻한 도움에 힘입어 지금은 사무실 뒤 급식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새로이 마련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안정적이고 편안한 길을 버리고 어렵고 험난한 길을 선택한 그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려는 그에게 이 길은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종교와 복지가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종교부흥을 위한 수단으로 복지를 사용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사실 종교와 복지는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모퉁이에 있는 곡식을 수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퉁이를 수확하지 않고 남겨둠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고 그들을 위해 식량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게 종교의 가르침이거든요. 즉, 제대로 종교를 이해하고 그대로 산다면 사회복지적인 입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거죠. 사실 복음과 나눔의 두 영성은 마치 새의 날개 같은 것입니다. 새가 한쪽 날개만 가지고는 날 수가 없잖아요. 이 두 날개가 모두 제대로 기능을 할 때 비로소 종교가 한 인격체를 제대로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자꾸 종교가 내세구원적인 입장으로만 가고, 이런저런 오류가 생기게 되는 거죠.”
그들이 주인 되는 공동체
허 목사가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사업은 ‘그들이 주인되는 공동체’라는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의 설립이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지친 영혼들이 세상에서 찌든 때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되는 곳.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인이고 그들이 주인이 되는 곳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1004명의 후원자가 100만원의 후원금으로 만들어갈 이 공동체 때문에 허목사는 여전히 분주하다.
“지금까지 20명 정도의 후원자가 모였어요. 여기 노숙자 쉼터에서 자활해서 나간 분들이 다시 이 공동체를 위해서 후원하시기도 하고요, 우리 직원들, 저, 모두 후원자에요. 2년 동안 100만원을 우리 공동체를 위해 모아 주시는 겁니다. 매달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형편되는 대로 보내주시기도 하고요.”
모아야 할 사람이 1004명인데 20명밖에 안 모였다니 걱정스러울 만도 한데, 그의 얼굴에서 그런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믿음을 가지고 옳은 일을 하면 반드시 그 뜻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인지 그에게선 앞날에 대한 벅찬 희망의 향내가 났다.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 험한 비 끝에 부드러운 햇살이 살짝 고개를 내밀 때, 잠깐 차창에 얼굴을 기대고 잠이 들었었나보다. 짧은 꿈속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삶을 누리며 서로 돕고 살아가는 행복한 모습을 만났다. 가진 것 없다고 업신여김받지 않고,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다고 차별받지 않는 곳에서 가진 것에 만족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그것은 지상에서 실현된 천국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누군들 그런 세상을 꿈꾸지 않겠는가. 누군들 그러한 천국을 일구는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게는 핑계가 너무 많다. ‘형편이 좀더 나아지면’,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도 많은데’, ‘시간이 없어서’.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핑계들을 하나둘씩 꼽아보고 있을 때, 부드럽지만 강하던 이 사람, 허기복 목사가 던져준 메시지가 떠올랐다.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글 박채란 객원기자 / 사진 이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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