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도움을 받는 것도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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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벤처업계에 ‘부의 사회환원’문화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양적 팽창과 독점의 기존 기업문화를 극복하고, 부의 사회적 나눔에 관심을 가진 KTB, 옥션,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유명 벤처기업들이 총 1백억원을 출자해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를 설립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청소년과 장애우 등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회 소외계층의 복지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 ‘아이들과 미래’ 법인은 복지사업계와 벤처업계,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사업과 대대적인 기부운동을 전개하여 ‘따뜻한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표방하고 나섰다. ‘아이들과 미래’ 법인의 초대 이사장으로는 사회복지재단 ‘밀알’의 이사장으로서 사회복지사업에 적극적인 관심과 활동을 보여온 손봉호 교수(서울대 사회교육과)가 선임되었다. 화제속에 출범한 ‘아이들과 미래’의 앞으로의 행보만큼이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손봉호 교수를 함께걸음이 만났다.
제3의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 이사장 맡아
─ 얼마 전 창립된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가 사회에 신선하고 긍정적인 충격을 줬습니다. 교수님께서 초대 이사장으로 선임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이들과 미래’는 어떤 복지법인이며, 설립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이 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벤처기업들이 기금을 출연해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입니다. 송경용 신부(서울나눔의집 대표)가 빈민들이나 장애우들을 위해서 활동해 오다가 친분이 있는 벤처기업가들을 만난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요즘 벤처기업들이 소위 전통적인 굴뚝산업보다는 이런 기부문화를 이끌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빌게이츠가 엄청난 액수의 기금을 사회로 환원해서 주목을 끈 적이 있었지요. 이게 아마 자극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미래’에서 저를 이사장으로 영입한 것은 아마도 사회에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을 이사장으로 내세움으로써 신용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건 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제가 일단 이사장을 맡았으니까 그 귀한 기금을 효율적으로 신실하게 운영하려고 합니다.”
─ 물론 명칭에서 이미 아이들을 지칭하고 있어 미루어 짐작이 되는 바가 있지만 앞으로 어떤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활동을 하실 계획인지요.
“정부가 하는 사업들의 틈새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나 청소년을 중심으로 하는 사업입니다. 정부가 하는 일을 그대로 우리가 반복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장애우에 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사업을 할 계획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기부문화 정착 기대
─ ‘아이들과 미래’를 통해 어떤 사회적 효과를 기대하고 계십니까.
“이 기회를 통해 우리 기업들의 기부문화를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우리 나라의 기업가들은 ‘이게 어떤 돈인데, 피땀 흘려서 번 돈을 어떻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기부에 인색했습니다. 또 기부를 한다 하더라도 기업체 내의 무슨 복지 재단을 만들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다든지, 가족이 운영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자금만 대주고 완전한 독립법인으로 만들어서 운영에는 일체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굉장한 보람을 느낍니다.”
─ 저희 연구소도 특성상 이런 기부 문화에 대해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삼성이나 현대, SK 등의 대기업들은 거의 기업내의 재단들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족이나 기업이 직접 관여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돈을 준 사람과 쓰는 사람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의 기부, 사회환원이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은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런 식의 직접적인 관여는 어찌 보면 시혜 비슷한 인상을 줘요. 저도 공부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고 했는데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기 돈을 내게 직접 주는 것과 제3자가 맡아서 대신 내게 돈을 주는 것이 그 부담감의 차이가 굉장히 커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서 직접 받으면 굉장히 부담스럽지만, 제3자를 통해서 받으면 내가 신세를 좀 덜 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제가 외국에 가서 좀 우스운 일이 있었는데, 대학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것을 거절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대학 당국하고 한바탕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정부가 주겠다고 하는 것은 덜렁 받았지요. 그래서 내가 왜 그랬을까? 내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봤어요. 대학에서 준 돈으로 공부하게 되면 늘 도움 준 사람을 대하게 되니까 공부할 때 항상 부담을 느끼겠지요. 왠지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하지만 정부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직접적인 부담은 덜 한 셈이죠. 뭐 그런 느낌이 있어요.
이곳에 교수로 있으면서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저에게 큰 돈을 맡기면서 가난한 학생들을 도와주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학생들 만나서 전해줄 때 “이건 내 돈이 분명히 아니고, 돈 준 사람이 누군지 자네에게 말하지도 않겠다. 나는 관리만 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알고 받아라”라고 꼭 강조했어요. 그래야 그 학생이 나한테 신세를 안 졌다고 생각하지, “내가 널 도와준다”는 식으로 말하면 잘 안 받으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3의 법인인 ‘아이들과 미래’가 생긴 것은 굉장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상당히 인정을 해주고, 저 역시 그 문제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벤처기업들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실제로 돈을 출연하는 곳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관심을 표명한 기업이 지금은 1백 군데나 됩니다. 그 기업들은 능력만 되면 꼭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그래서 책임이 좀 무겁습니다.”
─ 교수님은 현재 복지법인 ‘밀알’의 이사장이시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회복지쪽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 그리고 특히 장애우 복지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시죠.
“지금은 제가 밀알의 이사장이기 때문에 신임을 받고 있지만, 원래 냉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동정심 같은 것은 절대 없었고, 철학적, 종교적 연구를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배고픈 사람의 밥 한 숟가락과 배부른 사람의 밥 한 숟가락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픈 사람은 그 한 숟가락에 생사가 걸리기도 하지만 배부른 사람의 한 숟가락은 실제로 있으나마나 하거든요. 그래서 배부른 사람의 밥 한 숟가락을 배고픈 사람의 밥 한 숟가락으로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저의 큰 관심입니다. 이것의 효용가치는 상당합니다. 이처럼 배고프고 고통받는 사람의 범주에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자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장애우를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이들도 모두 공평하게 배부를 수 있어야지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장애우 이야기
─ 교수님께서는 유학 생활도 하셨고, 또 가끔씩 일정한 기간동안 외국에서 생활도 하셔서 유럽의 복지사회에 대한 감각을 계속 유지하고 계실텐데요, 이 유럽 사회와 우리 나라를 비교할 때, 우리 나라 복지 현실은 어떻습니까?
“유학 생활이 유럽의 복지현실을 경험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도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문민정부 중반 이후부터 정부나 시민의 태도도 많이 변했음을 느낍니다. 가령, 초등학교에서도 지금은 장애우라고 놀리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이건 대단한 발전입니다.
제가 옛날에 신문에 칼럼을 하나 쓴 적이 있는데 “병신춤이 문화재가 되어 있는 나라” 라는 제목이었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냔 말이죠. 그래서 막 비판을 해 놓았는데… 지금은 그런 면에서 좋아졌죠. 우리 학교 주차장에 주차할 데가 없어 쩔쩔 매면서도 장애우 전용 주차장은 항상 비어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해요. 그러나 물론 유럽에 비하면 한참 멀었죠. 전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나는 게 하나 있는데, 제가 유럽의 교회를 갔을 때였어요. 한 뇌성마비 여성장애우가 아기를 안고 교회를 왔더라구요. 그런데 그 여성도 자기가 조금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고, 그걸 보는 사람도 전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에 큰 인상을 받았어요. 저는 오히려 ‘참 특이하다’ 라고 느끼는데 말이죠. 거기 있는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고 늘상 봐오던 것처럼 행동하는 데에 놀랐어요.
또한 외국에서는 장애우를 따로 두지 않고, 마을로 통합시키기 위해 커다란 장애우 시설을 해체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옮기고는 있는데, 아직 완전한 결론은 못 내렸다고 해요. 아직은 재정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고, 실험적으로 정신장애우들과 비장애우들이 함께 축구팀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고는 있는데 실질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더라구요. 어쨌든 이 문제에 대해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 조금 전 말씀하신 뇌성마비 장애우가 아이를 안고 왔을 때 주위 사람들은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본인조차 특별하다는 느낌을 안 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늘 일상적으로 부대끼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우리 나라의 경우는 왜 아직 그렇게 되지 않는 걸까요.
“이건 저의 편견일 수 있습니다만, 저는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종교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불교에서는 조금이라도 불행하거나 고통을 당하면 전생의 업보다라는 생각을 했고, 유교에서는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은 불효라고 했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종교가 장애우에 대한 태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만.”
─ 다른 얘기인데, 교수님은 음란물대책협의회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활동 등으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보수적 인사라는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심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한 가지 관점에 서서 쭉 일관성을 유지해왔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은데요, 사람들의 이러한 평가에 대해 당사자인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보수적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마 주로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성적 순결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점과 사회질서확립을 주장하는 점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또한 제 신앙이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성이나 장애우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든지 부를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든지 이러한 관점에서는 그렇게 보수적인 것만은 아니거든요. 저는 공동생활에 있어 소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제가 지금까지 운동해온 것 중 하나가 음란물 퇴치운동이거든요. 이 음란물이라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자극을 주고, 그것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성범죄를 저지르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그런 건 자유권이라 자기 결정권에 속할텐데, 그러면 사무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어떨까요? 기호식품인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애연가들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제가 최근에 서강대학교에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논문의 제목이 ‘피해자 중심의 윤리’ 였어요. 거기서 이런 예를 들었지요. 자기 혼자 캄캄한 골방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욕을 한없이 했다고 합시다. 그건 종교적으로 보면 비도덕적인 일이죠.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에게 아무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저는 그건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야 비도덕적이지, 자기 혼자서 규범에 어긋나게 행동했든 말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징벌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라서 담배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는 얼마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그렇게 보수적인 것만은 아닙니다.(웃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 기대
─ 요즘 신문을 보면 도덕성 추락 사례가 자주 발견되는데요. 심지어는 충동적으로 어린 학생이 사람을 살해하는 등의 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도덕성 추락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 우리 사회의 도덕성 추락이 어느 정도라고 보시는지요.
“인간생명의 존엄성, 인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까지 너무 미약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해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아요. 물질적인 것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고, 정신적이고 인간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죠.”
─ 그러면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진정한 사회적 가치는 무엇입니까?
“건전한 인간주의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휴머니즘이라 함은 신과 다른, 상대적으로 신보다 우위에 있는 인간으로 이해가 되는데요, 건전한 인간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은 적어도 다른 모든 것 보다 더 소중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 인간의 인격성, 자유의지, 소위 존엄성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죠. 그런 건전한 휴머니즘이 키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물질이 더 중요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번은 제가 교회에서 엘리베이터를 만들자고 주장한 적이 있었지요. 그 때 장애우 한 사람을 위해서 2천만원이나 쓰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휠체어 타고 오는사람이 한 명인데 그 사람 하나라면 우리 어깨에 매고 움직여도 충분하지 않느냐, 이런 식이었지요. 이게 바로 돈을 중요시하는 사고 방식이거든요. 저는 장애우 한 사람의 마음이 상하는 것은 돈 2천만원 쓰는 것 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결과가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2천만원이 걸려 있는데 한두 사람 서운하게 하는 게 뭐 대수냐는 식으로 따지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인간보다는 물질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가치를 위해서는 종교나 사회 교육이 매우 중요하구요, 또 한편으로는 시민운동도 해야 합니다. 시민운동은 제도의 개선을 통해 일반 시민들의 의식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효율적인 교육과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장애우도 존엄성을 가져야
─ 교수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우리 한국 사회가 지금은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불거져 있어서 어느 것부터 손대야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꿈꾸시는 밝은 사회는 어떤 사회이며,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사회의 각 분야에서 해야 할 역할과 노력은 무엇인지 평소에 가지고 계셨던 생각을 좀 정리해주시죠.
“간단히 말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역할은 그 차이를 줄이는 작업이 아닐까 하구요. 돈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장애우와 비장애우, 머리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이런 관계의 차이가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격차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정도까지는 줄여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람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잘 사는 사회가 되는 것은 별로 바라지 않아요. 저는 경제발전에 있어서 비교적 소극적인 편입니다. 지금 있는 부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공정하게 배분하느냐가 오히려 저의 관심사이지요. 존 롤스가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이라고 말한 것처럼,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장 이득을 많이 볼 수 있도록 사회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특히 존엄성이라고 할까요.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조건은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기본적인 욕구는 갖춰주고, 즐겁게 살라고 해야지, 지금 병이 들어 굉장히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자꾸 웃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인 것 같아요.
미국에 유명한 조니 타다다카라는 장애우가 있습니다. 체조선수였는데, 이 사람이 집회에서 “존엄성을 가지고 장애를 극복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우도 존엄성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사회에서도 그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 교수님께서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복지법인밀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저희가 아는 것만 해도 꽤 많은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시간적 여유부족, 가정이나 가까운 사람에 대한 소홀함 때문에 고민이 있으실텐데요.
“가정에 대한 충실도는 매우 낮은 편입니다(웃음). 집사람에게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엔 갈등도 있었는데, 그때 집사람에게 이야길 했죠.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한다고 생각하자”라구요. 그리고 지금은 집사람이 교회계통 장애단체나 병원, 복지관 등에서 무의탁 장애어린이와 노인을 비롯해 장애우, 불우이웃 등을 위해 오히려 저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도 지금은 대학원까지 다 졸업하고 다 커버렸지만, 어렸을 때는 장애우덕을 많이 본 케이스입니다. 해마다 밀알복지재단에서 ‘밀알의 밤‘ 행사를 하는데, 한번은 뇌성마비 중증장애우가 저희 집에서 얼마간 생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겁을 내다가 하루 지나니까 넘어지면 일으켜 주려고 하고, 세수를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항상 신경을 써 주더준요.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는 아이들이 특권에 대한 죄의식 같은 걸 느끼더라구요. 우리가 너무 잘 산다는 거죠. 그래서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겠다 해도 절대 싫다고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큰 애는 중학교 가서 장애우 친구를 사귀었는데, 아직도 오고 가는 절친한 사이죠. 그 경험 후에 “장애우와 자녀교육”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장애우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 장애운동은 자녀교육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통합교육도 점차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거라 믿고 있고요.”
─ 저희 함께걸음은 많은 장애우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우를 비롯한 사회의 소외 계층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장애우들도 자존심과 존엄성을 가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자괴감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존엄성은 생활태도를 비롯해 사고방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도움받아야 할 경우 동정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권리라고 생각하십시오. 한 기독교 신학자가 "부자로부터 도움받을 경우 부자에게 고맙다고 할 필요가 없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비굴하게 생각히지 말라는 것이죠.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권리다, 라는 생각을 항상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사진 김학리/정리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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