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복지마을 만들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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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시에서 열렸던 제5회 한일장애우국제교류대회에 참가한 장애우들의 신상명세를 보면 직업이나 생활방식, 교육수준 등이 그들의 장애유형과 정도만큼이나 무척 다양하다. 그 중에는 지난 4월 일본 시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도 있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장애를 가진 시의원과 국회의원은 여럿 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비례대표제로 당선이 된 것과 달리 도요나카시 시의원으로 당선된 이루베 카요코(49) 씨는 투표를 통해 의원 40명 중 4등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당선됐다. 그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1991년부터 이번까지 3번 연속해서 당선됐다고 하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이는 가난한 가정형편과 24시간 개호를 받아야 하는 중증 장애로 인해 어려서 5년 동안이나 시설에서 생활을 해야만 했고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도 시의원에 당선된 사람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울 덧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복지마을 만들기를 공약으로 당선
김 정 열 먼저 늦었지만 지난 4월 시의원에 다시 당선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3회 한일장애우 교류대회 때 한국에 오셨었죠? 그 때 이루베 씨가 발표하신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의정활동으로 바쁘실텐데 이렇게 한일장애교류대회에 매번 참가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 루 베 오히려 바쁘기 때문에 한일 장애우 교류 대회같은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겁니다. 바쁘니까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없어요. 그런데 이런 데 오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공부가 되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참가합니다.
김 정 열 한국에서는 뇌성마비를 가진 분이, 공식적으로 선거에 나가 당선된 기억이 없어 서 저희에게는 이루베 씨를 만나는 것이 매우 특별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먼저 시의원에 출마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시죠.
이 루 베 25년 전부터 장애우단체에서 운동을 해 왔는데 풀뿌리 운동만 가지고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정치활동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김 정 열 선거운동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루 베 제가 활동하던 장애우 운동 단체의 협력을 받았습니다. "장애우 차별과 싸우는 공동체전국연합"은 전국 규모의 장애우 조직인데 장애우 회원들이 선거기간에 도요나카시에 와서 함게 운동을 해줬습니다.
김 정 열 일본 사회에도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 있는 만큼 장애우를 대표로 내세우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가도 있었을텐데요. 그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이 루 베 9년 전 제가 시의원에 처음 출마했을 때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여성장애우가 선거에 나오기는 처음이었어요. 그 점이 오히려 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알려진 사람들은 작 이름만 가지고 활동을 한 반면에 저는 정책전이 대안을 가지고 시민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또 도요나카 시민들의 의식이 일본의 다른 시에 비해 높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도요나카 시는 옛 부터 동경으로부터 차별을 받아 온 지역으로 중앙정부에 대한 반항심이 높고 재일교포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과 장애우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도 저항의식이 비교적 높은 도시입니다.
김 정 열 정책적인 대안을 가지고 다가갔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인지 소개해 주시죠.
이 루 베 제 캐치프레이즈가 복지마을 만들기입니다. 장애우가 편히 살수 있는 도시는 비장애우도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거죠. 이게 잘 들어 맞았습니다. 그리고 개호시스템 구축을 위한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것은 전부터 있던 제도지만 개호인이 주 2, 3회 오는 것으로는 생활하는데 실직적인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실효성 있게 개정하자는 것이죠. 그런 요구는 장애우 뿐 아니라 고령자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김 정 열 지난 8년 동안 의정활동을 하시면서 개인적으로 잘했다고 평가하시는 부분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이 루 베 제가 당선되고 의정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 다른 의원들이 제가 손을 제대로 들 수 있을까,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을까 또는 자기들이 한 말을 제가 제대로 알아들을까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무도 의회에서 장애우에 대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장애우 관련 정책에 대해 질문을 하니까 다른 의원들이 방해를 놓기도 했습니다. 또 정책을 결정할 때 찬성하는 입장이면 찬성쪽에 반대하면 반대쪽에 서야 되는데 저는 설수가 없으니까 말로서 "찬성" "반대"를 외치는데 다수결로 결정을 할 때는 무소속인 제가 항상 졌습니다.
그렇지만 찬성과 반대를 거듭하면서 제 의견을 자주 밝혔더니 이제는 제가 뭘 얘기하려고 하는지 이해합니다.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의회안에서 깬 것이죠. 지금은 의회안에서 장애우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장애우와 관련된 행정기관 관리들이 제게 자문을 하기 위해 찾아옵니다. 장애우와 관련이 없는 문제들도 찾아와 의견을 물어보게 됐습니다.
장애우가 의정활동을 하고 안하고 하는 차이가 행정관료들 사이에 굉장히 크게 나타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김 정 열 방금 장애우로서 의정활동 하는 것이 장애우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장애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 하셨는데 한국의 경우 장애운동을 하던 사람이 정치를 하게 되면 다시 장애운동을 하기 위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또 처음에 장애문제를 풀 뿌리운동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어서 정치를 하려고 결심하셨다고 했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 성과가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죠.
이 루 베 일본에서도 의원이 되면 정치가가 됐다고 생각을 하는지 태도가 완전히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는 전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항상 저를 낮추고 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죠. 또 장기간 의원활동을 하면 관성에 젖어 자기가 처음 갖고 있던 생각이 퇴색될 수 있기 때문에 저를 이어받아 의회활동을 할 후계자를 찾는 중입니다.
김 정 열 지역주민들이 이루베 씨를 3번이나 연속해서 뽑아 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루 베 처음 당선됐을 때 득표수가 전체 의원 40명 중 16등이었고 두 번째 선거 때는 5위, 세 번째는 4위로 당선됐습니다. 점점 제게 투표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분석을 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일본 사회에는 의회라든지 행정관료들에 대해서 나쁜 인상이 있는데 자기들보다 연약한 사람이 의원이 되면 약한 사람의 입장을 조금 더 잘 대변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저를 뽑아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막상 일을 시켜 보니 저에 대한 신뢰가 생겼는지 제가 길에 나가면 시민들이 저를 알아보고 "이루베 가요코 씨 힘내세요."라고 성만 부르지 않고 이름을 다 부르면서 응원해 줍니다. 그런 응원하는 마음들이 에너지로 작용해 임기동안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어디든 가서 배워 의정활동에 연결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장애우 스스로 말하지 않는 게 장애문제의 가장 큰 원인
김 정 열 장애문제를 어떻게 규정하십니까? 겉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장애가 장애인지 그로 인해서 차별을 당하는 게 장애문젠지 아니면 그걸 넘어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는 편견이 장애인지 아니면 이 모든 문제가 엉켜서 나타난 것이 장애문제인지, 원인을 알면 해결방법도 찾기 쉬운데 무엇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루 베 소장님이 말씀하신 부분 모두가 장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와 소장님이 가진 장애가 다르다고 해서 생활마저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경우 24시간 개호가 필요하고 그것이 없으면 전혀 생활을 할 수가 없지만 저는 이런 것이 장애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 정 열 장애의 상태에 따라 요구하는 것도 다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하고 접근해야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십 몇 년 동안 활동을 해 오고 있지만 아직도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해서 늘 고민입니다. 장애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다. 자본주의체제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단정하면 그것만 바꾸면 되는데 그렇게만 얘기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 루 베 우리는 장애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차별 받고 있는 인권을 침해받고 있고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고 싶지만 가능하지 않고 개호시스템도 충실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모든 장애우들이 그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오랫동안 분리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성이 부족할 수도 있고 가족이라든지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강제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 장애우들이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장애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무한경쟁 속에서 과속현상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장애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 정 열 너무 무거운 얘기만 한 것 같은데 화제를 바꿔보겠습니다. 의원 활동하면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죠.
이 루 베 제가 당선이 되기도 전에 행정관료들이 시의회 건물에 경사로를 만들어 놓고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도록 리프트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놓았더라구요. 제가 않을 자리를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의자를 치워놓고 제가 질문을 할 때 단상이 높아서 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까봐 않아서도 상하로 움직일 수 있는 장치도 해 놨구요.
김 정 열 아, 상상이 됩니다. 우리 나라에는 그 정도로 해놓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 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 보면 우주회의를 하는 장면이 그랬습니다.(웃음) 그런데 일본에서 시의원은 보수를 얼마나 받나요?
이 루 베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많이 받는 편입니다. 시민이 많은 시는 보수도 많아서 시의원 중에 부자도 있죠, 그렇지만 저는 그 비용으로 제 개호인에게 개호비를 지불해야 하고 활동비용으로도 쓰기 때문에 그리 많은 편은 아닙니다. 중증장애우에게 대부분 개호비가 나오지만 소득이 연 7백만엔 이상일 경우는 개호비가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김 정 열 한국은 지방의원이 보수를 받는 게 아니라 회의수당을 받는데 약 70만원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직업이 있어야 의원활동이 가능하죠. 지방의원들은 명예직 비슷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 점이 한국의 지방의회가 잘 되고 있지 않은 원인이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의원에게 보수를 많이 주면 지역주민이 그만큼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명예직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도 있는데 후자가 더 강해서 지방의원들은 비서관도 없이 사무실도 개인적으로 마련해야 하죠.
이 루 베 일본에서도 시민단체들이 의원들이 돈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의원들의 보수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썼는지 명세서를 보여달라는 시민단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원들이 보수를 줄이거나 공개하지는 않을 겁니다. 들어보니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처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김 정 열 자기 문제를 목소리 놓여 이야기해야 한다. 자기의 문제를 소리내 밝히지 못하고 숨기는 게 바로 장애 문제다. 이루베씨가 나와서 선명한 목소리를 내니까 주변 사람들이 동의를 했고 그래서 선거에서 이루베 씨에게 투표를 해서 당선됐다고 정리가 되네요. 한국의 장애우들, 장애우가 아니더라도 자기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나 하고픈 말이 있으면 부탁합니다.
이 루 베 장애우든 비장애우든 사람이라면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주위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건 일본에서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장애우들이 자기가 결정한 것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정리 및 사진/ 노윤미 기자
통역/ 정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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