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길고도 짧은 이야기] “우리 재찬이는 어떻게 해요” > 함께 사는 세상


[가족, 그 길고도 짧은 이야기] “우리 재찬이는 어떻게 해요”

근이양증 장애우 재찬이네

본문

 재찬이네는 요즘 큰 근심거리가 생겼다. 다름 아니라 재찬이(21·수원대 전산학과)와 그 휠체어를 밀던 재찬이 어머니 조부용(43)씨가 지난 7월 8일 밤 수원대학교 내에서 오토바이에 치여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미 텔레비전 방송에도 두 차례 나가고 다른 언론에도 보도돼 이들 두 사람은 세상에 어느 정도 알려진 사건의 주인공이 됐지만 아직까지 가해자측과 원만히 합의가 안돼 수원의 신병원에 현재 거의 네 달째 입원해 있다. 재찬이 보다 재찬이어머니가 더 큰 부상을 당한 상태인데 의사말로는 무릎인대 4개 중에 2개가 파열되고 다른 인대부위도 골절과 찰과상을 입어고, 현재 상태로는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재찬이도 머리를 많이 다쳐 4주 진단을 받았다.

  어머니의 무릎이 완치가 안돼 예전만큼 다리에 힘을 쓸 수 없다는 그 말은 곧 재찬이가 당장 학업에도 위협을 받게 됐다는 의미도 된다. 어머니는 재찬이가 살아가는데 실질적인 두 다리였기 때문l다. 그래서 이들 가족은 어머니 대신 재찬이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뒷수발을 들어줄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까지 가해자측에게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해자측은 재찬이네의 이런 요구를, 사고를 빌미로 적당히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으로만 보고 있다. 그래서 치료비조차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채 공탁금 1천3백만원만을 걸어놓고 이제는 대화조차 피하며 험악하게 나오고 있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그렇게 허황된 것일까.

 


무면허 음주운전 중이던 가해자

 

―사고가 나던 때의 상황을 좀 들려주세요.

  "올 여름방학이 시작해서 일주일정도 됐을 때였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 한 명이 찾아와서 하루 종일 같이 지내다간 간다고 그래서 버스타는 데까지 바래다주고 재찬이가 며칠동안 갑갑하게 방에만 있다가 나온 거니까 바람 좀 쐬게 학교 안에 좀 돌아보고 가자고 그랬어요. 방에 있을 때는 책만 들여다 보고 있으니까 말붙일 새도 없고 말도 안하고 그러는데 밖에 나오면 얘가 그래도 자기 속 얘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그러자, 하고 그날 밤 10시 20분쯤에 학교 정문쪽에서 올라와서 체육관 근처까지 왔는데 뒤에서 오토바이소리가 굉장히 크게 나더라구요. 그래서 안되겠다, 더 인도쪽에 바짝 붙어야지, 하고 움직이는데 그러자 마자 오토바이가 우리를 뒤에서 친 거예요."
  이 사건의 가해자 최 아무개군은 18세로 당시 친구들 2명과 함께 타고 있었다. 어머니 조부용 씨는 사고 직전 "야, ××야, 술 마셨으니까 천천히 가"라고 말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고 한다. 가해자 아버지도 "처음 이틀동안 (가해자)입원실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고 실토를 할 정도였단다. 그러나 최 군은 재찬이네와 함께 아주대병원에 옮겨진 후 4시간 후에야 음주측정을 했고 이 결과0.001이 나왔을 뿐이다. (0.05가 구속기준치) 더구나 최 씨는 현재 폭행사건으로 불구속 상태인데 사건 당시 운전자였던 최 군이 연습면허만을 소지한, 사실상 무면허 상태라는 사실 등 가해자에게 불리한 정황이 유야무야 그냥 넘겨지고 있다. 경찰은 사고현장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않은 상태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갈 결정적인 증거들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가해자 아버지 최 씨가 지난 선거 때 모 정당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점과,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골프장에서 일했었고 지역 토박이로서 각계의 연고를 십분 이용하고 있는 듯해 재찬이네는 더욱 힘이 빠져 있다.
처음에 가해자 아버지는"나 나쁜 놈 아니다. 내가 알아서 다 좋게 처리하겠다"고 위로하고 설득하며 매일같이 찾아오다시퍼 해서 재찬이네 부모님은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잘 해결해주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놓고 그는 뒤로 공탁을, 그것도 처음에는 6백50만원에 불과한 액수로 공탁을 걸어 놓고는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로 나오고 있어 재찬이네를 기막히게 했다.(4주 이상 상해진단이 나오면 곧 바로 구속이지만 공탁을 걸어놓으면 구속이 안되는 실정이다) 재찬이네와 가해자측은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은 가해자 최씨네가 시가 6억6천만원의 땅이 있고,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재산이 많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다행히 재찬이의 한 선배가 이러한 사정이야기와 재찬이가 쓴 진정서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올린 후 연구소와 한국청년연합회등이 관심을 갖고 이 문제의 대응하기 시작했다. 재찬이가 다녔던 수원대 학생들뿐만 아니라 각 장애·시민단체 회원들도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전에 돌입해 현재 오백명 이상이 서명에 참여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자 검찰에서도 10월 초부터 우선 피해자측과 면접을 시작으로 재검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그리고 박재찬 군의 아버지 박기창(55) 씨의 회사에서 성금도 걷어주고 수원대 교수들도 월급의 1%를 떼서 재찬이를 돕기로 하는 등 온정이 이어지고 있어 그나마 이들의 얼굴에 웃음을 주고 있다.

 


온 가족이 학교 앞으로 이사

 

―재찬이가 장애가 있긴 하지만 공부를 잘 해서 집안의 희망이었던 것 같은데요.

  "지가 힘을 못쓰고 아픈데 굳이 공부를 하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대학도 가고 공부도 그럭저럭 잘 해내니까 그냥 그 재미로 가르쳤죠. 사실 이제까지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10여년 동안 업고 다니다시피 했으니까, 지금까지 저야 직장다닌다고 재찬이한테 별 도움을 못줬죠."

 

―재찬이 어렸을 때 얘기 좀 해주세요.

  "유치원 다닐 때는 괜찮았어요. 애들하고 잘 어울리고 어려서는 순해서 남달리 편하게 키웠죠.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는 하나도 이상없이 걸어다녔어요. 그러다가 걸음을 못 걷더라구요. 다행히 학교가 집에서 얼마 멀지 않았거든요. 빨리 걸으면 15분 정도 걸리는데 얘는 자기가 걸음이 늦으니까 천천히 걸어갈려고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서 갔어요. 그런데 갈수록 아무래도 이상해서 4학년 때 병원에 갔죠. 수원시내 큰 병원은 다 다녔는데 처음엔 병원서도 잘 모르겠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다가 한 의사선생님이 (재찬이가) 살면 18살 정도밖에 못사는 병이라고 그러면서 살 때까지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있으면 그냥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고 그래요. 그 때부터 한약같은 거 지어 먹이고 침도 많이 맞았죠. 운동을 시키라고 그래서 집에다가도 운동할 수 있게 뭘 매달아 놓고 그러긴 했는데 힘이 없어서 운동을 할 수가 없어요. 그저 의학이 발달돼서 좋은 약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죠."
  "이 병은 걸리면 진행이 빠르다던데 쟤는 진행 속도가 아주 느려요. 단지 않으면 일어서지를 못하고 걸음만 못 걷는다는 거지, 그리고 팔힘이 또래 애들만큼 세지는 못하지는 공부하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재찬이가 말이 참 없는 것 같은데 원래 그런가요?

  "쟤가 원래 말을 잘 안하는 편이죠. 그래도 어려서는 안그랬는데 몸이 저러고 나서 더 성격이 내성적이 됐어요."
  "저희들끼리 어울려야 친구도 있고 그러는데 지가 어울릴 수가 없으니까요. 대학 들어와서 동기들하고 좀 어울리는 거는 같지만."

 

―사실 다른 장애학생들 보면 강의실 다니는 일이나 화장실 신변처리도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기도 하던데 재찬이는 어땠나요?

  "얘가 내성적이어서 아무리 친구여도 도움을 잘 받으려고 그러질 않아요. 지 엄마만 그냥 편하니까 찾지. 화장실은 일단 물을 잘 안먹는 걸로 자기 스스로 애를 쓰는 것 같애요. 국도 그렇고, 밥도 많이 안먹어요."
   "말이 없어서 어릴 때서부터 맨날 저하고만 같이 있었어요. 재찬이는 옆에서 늘 챙겨줘야 하는데 친구들이라도 그렇게 혹사를 못 하니까 내가 친구들 먹을 거라도 해다 놓고 친구들을 부르면 먹을 때만, 그리고 자기가 갖고 놀고 싶은 장난감이 있을 때만 상대를 해주지 놀다가는 그냥 가 버리는 거예요. 항상 저 혼자 놀고 저 혼자 공부하고 맨날 저 혼자예요. 엄마 없으면."

 

―재찬이가 일반 고등학교 다닌 걸로 아는데, 그럼 학교를 어떻게 다녔나요?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냥 저냥 서서 다녔어요. 그런데 중학교부터 갑자기 점점 더 심해지니까 일부러 차를 사 가지고 시간이 되면 데려다 주고 가고 사정이 안되면 제가 업고 가고 그랬죠. 그러는 게 저나 나나 창피해서 남들 안보게 새벽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옆집에서도 몰랐어요. 이렇게 아픈 애가 있는 줄, 고등학교는 배정된 학교가 집하고 멀어서 버스를 타야 되는데 애를 업고 내가 버스까지 타야 되니까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예 학교 앞에 방을 얻어서 밥을 해서 먹이고 학교 데려다놓고 몇 시간마다 화장실 갈 때 챙겨주고 그랬어요. 대학교 와서는 몸상태도 더 안좋아지기도 해서 휠체어를 사가지고 학교 후문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방을 얻었어요. 원래 수원대 말고 또 다른 학교에도 합격을 했었는데 학교 정할 때 방까지 미리 다 보고 통학 조건같은 것도 다 보고 그런 다음에 학교를 결정했어요. 그렇게 일 년 반을 살았죠."
  "제가 다니는 회사가 3교대인데 제가 3시에 (작업)들어갈 때는 11시에 퇴근을 하거든요. 그래서 중학교 때도 여름같은 E는 11시까지 학교에 남아 있다가 지랑 같이 오고 제가 아침근무 때는 새벽에 나가야 되는데 그러면 같이 아침 5시반에 나가서 데려다주고 회사로 갔어요. 그렇게 저랑 움직이느라 힘들어 하면 하루 이틀은 지 엄마가 가서 업고 버스 태워서 데려오고 그랬죠. 그런데 고등학교 때는 버스도 타기가 어렵더라구요. 학생들 통학할 때는 버스에 사람이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그 때부터 학교 근처에 방을 얻었어요. 비오고 겨울에 눈오고, 또 제가 야근이어서 데려올 수가 없을 때는 그냥 얻은 방에서 자고 집은 비워놓고 그렇게 생활해왔어요."

 

―학교 안에서 계단 때문에 휠체어 타고 다니기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휠체어 없이 고등학교때까지도 괜찮았나요?

   "2층 이상의 계단은 어차피 업고 올라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의자에 앉혀놓고 화장실로 옮기기 전까지는 그대로 앉아 있는 거죠.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화장실 정도는 몸을 구부린 채로 천천히 걸어서 다니기도 했어요. 아니면 제가 가서 재찬이를 화장실로 옮겨주곤 했죠."

 

 

화장실 안가려 물도 안먹었던 재찬이

 

―두 분은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75년도에 동네사람들 소개로 했어요. 원래 고향도 평택이고 집사람은 수원이고 그래요. 결혼한 해에 큰애 낳고 79년도에 재찬이 낳을 때까지는 시골서 살다가 79년도에 의왕시로 의사를 왔죠. 그 때 지금 다니는 고합섬유공장에 정식사원이 아니라 노무자 생활을 하다가 82년도부터 정식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집사람도 저 다니는 공장에 다녔었는데 한 번은 재찬이가 어렸을 때 철봉대에 매달려 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의왕시의 병원에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었어요. 그래서 한 일 년 다니다 직장을 그만 둔거죠. 이후로는 쟤만 돌보고 그랬죠."


―그렇게 다른 가족들이 재찬이만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걸 보고 재찬이형은 좀 섭섭할 때가 있었겠네요.

   "어려서는 못느꼈는데 요즘에 와서 좀 그런 눈치가 보이더라구요. 우리 큰애는 대학교를 안갔어요. 지가 하기 싫다고 해서 상업고등학교 나왔는데 졸업하고 나서 취직한 다음에는 회사 기숙사에 있고 그랬어요. 그래도 이번 사고 겪으면서 다니던 정비공장도 그만 두고 병간호도 하고 경찰서같은 데도 뛰어다녔는데 가해자측하고는 너무나 다르게 어딜 가나 무시당하고 그러니까  지금은 힘이 많이 빠져있죠."


―지금 가해자측에서 두 분의 요구를 잘 들어주지 않는다면서요.

    "가해자 아버지한테 그런 저희 사정 얘기를 다 했어요. 재찬이는 지 엄마 아니면 꼼짝을 못하는 애다, 앞으로 2년 반을 대학을 더 다녀야 하는데 엄마가 아니면 공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하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그만둘 수도 없고, 지 형이, 젊은 애가 일 그만두고 쟤한테 따라붙을 수도 없는 거고, 엄마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엄마가 했던 역할을 해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병원에서 간병인일 하는 분들 얘기 들어봤더니 하루 오만원 받는데요. 그래서 그렇게 인건비를 쳐서 졸업할 때까지의 2년 반 정도의 날짜를 따져 봤더니 오천만원 정도 나오더라구요. 우리 집사람도 재수술 받아야 된다고 그러고, 그래도 완치가 안되서 장애진단 나올 거라고 그러는데 그거는 생각도 안했어요. 그냥 우리애 공부시키는 거만 생각해서 그 비용만 요구했죠. 병원비는 석달 되니까 벌써 천오백만원 정도가 넘어서는데 그럼 병원비 2천 잡고 7천만원만 다오, 그랬어요.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는 아무 소리도 안하고 나가더니 계속 험악하게 나오는 거예요. 지금 병원비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병원 입원할 때도 재찬이 형 이름으로 수속을 해서 병원에서도 사정을 다 알면서도 저희한테 병원비 닥달을 해오기 시작하는데 정말 어째야 할 지 모르겠어요."

 

― 재찬이 가르치는 학비 때문에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제가 월급이 1백만원 정도 되는데 등록금은 회사에서 IMF이전에는 70%를 지원해줬고 지금은 좀 깎여서 50%씩 지원해주니까 가르칠 만은 해요. 이번에 재찬아학교엣도 특별장학금도 주고 그랬거든요. 그래도 저희가 남들처럼 어디 놀러도 못가봤어요. 돈이 있어야 한약이라도 한 재 지어 먹일 것 같은데 좀 넉넉하게 쓰고 살질 못했죠."

 

― 어머니도 왜소해 보이시는 데 재찬이 업고 다니느라 그동안 힘드셨겠어요.

   "재찬이가 45kg 나가고 엄마는 55kg정도 나가는데 대학 강의실이 어떤 때는 4.5층에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긴 하겠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뭐 아프다는 데는 없었어요. 근데 저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재찬이 업기가 좀 힘들더라구요."

 

―사실 학교에 편의시설이 잘 돼있고 전동휠체어를 탄다면 어머니 도움 안받고 혼자 힘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아쉽네요. 그런데 가해자한테 요구 하는 게 재찬이 졸업할 때까지의 간병인 비용 뿐이던데 졸업한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려구요.

   "일단 공부마칠 때까지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졸업한다고 해도 재찬이같은 장애우를 누가 쓰겠어요. 전공이 컴퓨터니까 나중에 가게나 하나 얻어서 컴퓨터관련 일을 할 수 있을 것도 같긴 한데..."

 


다시 예전과 같아지기만 바랄 뿐

 

  이들 부모는 재찬이 어머니가 예전과 같이 나아서 재찬이를 다시 예전처럼 공부시킬 수만 있기만을 바랄 뿐이지 그 이상의 돈 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나 야속하게 사태를 끌어가는 가해자측에 대해 이제 분노가 인다고 털어놓았다.
  수원대에 처음으로 입학한 장애학생으로서 매일 등하교시키는 어머니의 정성에 감동하여 학교측은 장한 어머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찬이 어머니에게 절실한 것은 장한어머니상이 아니라 학교측이 좀 더 관심을 갖고 편의시설을 조금이라도 더 설치한다거나 장애학생지원센터 같은 것이 만들어져 당당히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찬이어머니 조부용 씨는 그저 계속 장한 어머니이기만을 요구받아 온 것이 현실이다.
  재찬이는 지금 학교도 휴학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입원해 갑갑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당장 동기들보다 졸업이 뒤처지게 됐다는 사실 보다 엄마의 다리가 불편하게 된 지금 자신의 앞날에 대한 막막함이 재찬이를 답답하게 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완전히 낫지 않으면 재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재찬이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을런지

 

글/한혜영   사진/김학리 기자

작성자한혜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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