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걸음이 만난사람] “장애우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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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12월 13일 마침 기자는 국회에 있었다. 의원회관 이성재 의원실에서 잠시 이 의원을 기다리면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고 있는, 국회 법사위가 법안을 심사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날 법사위는 그동안 논란속에 갈등과 진통을 겪었던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을 통과시키기로 예정돼 있었다. 화면에 법사위 위원장이 노동부장관을 출석시킨 다음 동법을 상정하는 과정이 중계됐다.
위원장이 장관에게 복지부와 노동부가 합의를 했냐고 물어 보자, 장관이 합의를 보았고 통과시키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위원장이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을 원안대로 통과시킨다고 말한 다음 의사봉을 두드렸다. 시계를 봤다. 정확하게 12시 30분 이었다.
그 자리에 이성재 의원은 없었다. 국회에서 직업재활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홀로 고독한 싸움을 벌였던 이 의원은 조금 늦게 의원실에 도착했다. 애초 고집했던 직업재활법이 원안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수정안 형태로 통과됐기 때문일까, 이성재 의원은 법안 통과 소식을 듣고도 무덤덤했다. 언젠가 이 의원은 장애우 생활 향상과 복지에 중점을 둔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이동권을 구현한 편의증진법에 이어 장애우의 먹고 사는 문제 즉 생존할 권리를 직업을 통해 보장받도록 하기 위해 직업재활법 제정으로 장애우 관련 법 제개정을 완결시키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동안 이성재 의원은 숱한 억측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내내 장애인직업재활법 통과에 매달렸다. 그랬지만 결과적으로 이 의원은 자신의 의지대로 직업재활법 원안을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날 통과된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은 현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비해서는 장족의 발전을 이룬,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장애우 직업정책을 가능하게 해줄 내용을 담고 있는 법이라는 게 기자가 전해들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기자는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만약 이 의원이 국회에 없었어도 장애우 직업정책의 변화가 가능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대답은 ‘아니다’였다. 이성재 의원이 15대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한 일은 하기 쉬운 말로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건 장애우 당사자인 이성재 의원이 국회에 있었기 때문에 장애우 관련 제도와 법이 비로소 골격을 갖출 수 있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15대 국회 유일한 장애우 국회의원인 이성재 의원, 그를 만났다.
손쉽게 법안 제개정한 적 거의 없어
─ 이제 20세기라는 한 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먼저 지난 세기에 대한 평가나 감회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지난 20세기는 상당히 숨가쁜 세기였던 것 같습니다. 우선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는데 사회정책 쪽만 보면 첫 번째 IMF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나라에 큰 손해를 끼쳤지만 사회보장을 생각하는 면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복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시기였다고 봅니다. 이 공감대를 업고서 제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밀어 부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국회에 있으면서 제가 느낀 것은 이해당사자가 행정부나 국회에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의정활동을 잘했다는 말이 아니라 우선 저는 장애를 가진 이해당사자니까 국회에서 장애우 문제를 가지고 동료 의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장애우 관련 여러 가지 법안을 제개정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그 동안 의정활동을 하면서 어떤 각오로 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국회 보건복지위 상임위에서 활동하면서 한 말이 앞으로 복지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다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한 말대로 저는 장애우 문제는 나 스스로가 장애우니까 장애우 눈높이에서 생각을 하고 주장을 했고, 아동 문제를 다룰 때는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말썽 많았던 의약분업 문제도 의사나 약사 입장에서 판단을 하면 한없이 꼬이니까 국민 편에서 판단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문제를 눈높이에서 판단하면 명쾌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 돌이켜보면 지난 세기는 경쟁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쟁에서 뒤떨어진 계층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죠. 이러한 경쟁 시스템이 만약 21세기에도 지속이 된다면 의원님의 주된 관심사인 빈민 계층과 장애우나 노인 등이 극단적으로 말해 살아남을 수가 있겠는가, 라는 의심을 어쩔 수 없이 해보게 됩니다.
“우리 나라는 박정희 씨 이후로 경제성장 제일 정책을 펴면서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면만을 받아 들였습니다. 선진국인 유럽을 보면 같은 자본주의 체제지만 우리처럼 이렇게까지 비인간적 발전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쪽은 배분적 정의 실천을 위한 국가와 사회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있었죠. 그 반면에 우리 나라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왜곡되고 천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몇 나라들이 있는데 그 중에 우리가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어쨌든 한 세기가 마감되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됐는데 앞으로 분배정의를 비롯해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당사자들은 막막해 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 걸 고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21세기가 왔다고 하지만 감각적인 얘기일 뿐이고 달력이 바뀌었을 뿐이지 실제로는 변한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새 세기를 향한 국민적 반성 또는 통합적 사고가 선행이 되어야 할텐데,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나쁜 것 같습니다. 지역 이기주의가 이렇게 팽배한 나라가 과연 몇 나라가 있는가, 또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반으로 갈라져서 전쟁비용에다가 이렇게 많은 비용을 쏟아 붓는 나라가 또 어디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답답할 수밖에 없죠. 저는 이 상황이 상당기간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는데 문제는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사회정책 시행에도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경부 고속철도를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계속 건설하기로 결정했는데 거기에는 과연 지역감정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가 없었겠느냐, 저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은 대단히 비효율적인 공사인데, 공사비의 이자만 가지고도 모든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남은 돈을 복지에 사용하면 빈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게 눈에 보이지만 지역감정 때문에 공사가 강행되고 있습니다. 참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죠.”
─ 의원님의 말속에서 받은 느낌인데, 국회에서 소외계층 지원 문제를 다루면서 현실의 벽에 부딪쳐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제가 아동난치성질환자지원에관한법률을 행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사위에 제출했습니다. 법사위에서 하는 말이 기획예산처와 협의한 법안이냐고 묻더군요. 제가 협의 안 했다고 그러자 왜 안 했냐고 묻길래 아니 언제 기획예산처에서 애들 죽어나가는 거 신경 쓴 적 있습니까, 그리고 기획예산처에서 안 된다고 하면 법을 제정 못하느냐고 따졌죠. 그러면서 제가 예를 들었는데 한 달에 난치성 질환 때문에 150만원 짜리 분유를 먹어야 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 아버지가 2백만원을 법니다. 그런데 그 분유는 보험도 안 되는 분유예요. 이런 어려운 현실을 한 건 봤을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여러 건을 접하다 보니 하도 화가 나서 제가 이 법안을 제출했다고 그랬습니다. 결국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넘겨주면 내가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하고 말을 마쳤지만 제가 보기에 예산 문제 때문에 이 법은 제정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늘 이런 식이죠."
─ 그런 반면에 기초생활보장법 같은 법은 현실의 벽을 넘지 않았습니까.
“그 법은 대통령 결단까지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아동과 장애우 관련된 법은 대통령 결단을 얻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현실의 벽이 지난 4년 동안 내내 있었어요. 손쉽게 법안을 제개정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복지라는 게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이게 너무 힘든 거죠”
─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정치가 소외계층을 우선적으로 챙기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쪽으로 가는 게 정의라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현실은 왜 거꾸로 간다고 보십니까?
“기득권층이 문제죠. 현재 기득권층이 정치를 하고 기득권층이 행정부에 있습니다. 이건 사람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번에 느낀 게 하나 있는데 노동조합과 경영자는 싸움 방식이 틀립니다. 노조는 빨간 머리띠를 매고 숫자로 밀어부치지만 경총이나 전경련은 말만 한 마디합니다. ‘우리에게 대드는 정치인은 돈 안 대주겠다.’ 이 말 한 마디만으로 싸움을 승리로 이끌죠. 한 마디로 싸움의 방식에서 게임이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단 말이죠. 우리 시민들의 숫자는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시민은 여론 조작에 의해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측면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제가 장애인직업재활법을 들고 나왔을 때 서른 살 이상 된, 오랫동안 구직 활동을 해본 장애우는 무조건 이 법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외부에는 지체장애인협회는 반대한다, 이렇게 알려졌어요. 그러나 실제로 제가 지장협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면 직업재활법 시스템으로 가서 자영업이라든가 보호고용으로 직장을 갖는 게 좋다는 장애우들이 대다수였어요. 그런데 이런 진실이 왜곡돼 왔다는 거죠. 그래서 혼돈스러웠습니다. 불과 몇 사람이 반대한 거지만 알려질 때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정확히 반영이 안 되기 때문에 다수가 반대한 걸로 비쳐졌던 겁니다. 분명히 제 양심을 걸고 말하는데 수정안이 아닌 직업재활법 원안대로 갔다면 장애우들은 훨씬 더 효율적인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생존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어느 제도든 망가질 수가 있겠죠. 도둑놈이 생길 수 있고, 비효율적일 수도 있고, 그러나 이론만 가지고 본다면 직업재활법은 장애우 입장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만든 최선의 법입니다. 만약 회기가 좀 더 남았다면 저는 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키기 위해 더 강력하게 싸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 회기내에 통과가 안 되면 법률이 자동폐기 되기 때문에 저도 어쩔 수 없이 막판에 수정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큰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우 직업재활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거 보람 느껴
─ 말이 나온 김에 직업재활법 얘기를 계속 해보죠.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이라는 명칭으로 법이 통과됐는데요. 편의상 직업재활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먼저 이번에 통과된 직재법의 핵심을 꼽는다면 어떤 부분입니까.
“장애우 직업재활은 결국 노동이 아니라 복지라는 점에 저는 주목해 왔습니다. 기존 고용촉진법은 복지적 요소가 하나도 없었던 법인데 그나마 이번에 직재법이 만들어지면서 복지적 요소를 취업 전후 단계로 해서 집어넣고 노동부와 복지부장관이 공히 다 장애우 직업 관련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게 직업재활법의 핵심으로 볼 수 있겠죠."
─ 그 동안 직재법 제정 작업을 하면서 상당히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우선 노동부가 고용촉진공단을 뺏긴다는 것에 거의 발작적 증세를 보이면서 이론이고 뭐고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과정이 제일 힘들었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의원들이 있었죠. 결국 직재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부처이기주의가 극에 달했는데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 제일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 제 기억에 따르면 직재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꼬박 1년여가 걸렸습니다. 의원님이 처음 직재법을 국회에 제출한 날이 98년 12월 16일 이었으니까 그로부터 1년 동안 개인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직재법을 반대하는 장애우들이 집단화되어 있다는 데에는 동의를 할 수 없습니다. 몇 사람의 장애우가 반대를 한 거죠. 그들이 순수하게 정말 장애우 취업 문제를 노동적 측면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집요하게 반대를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반대를 했는지 아직도 궁금합니다. 중요한 건 어쨌든 개인적으로 이 점이 제일 힘들었다는 겁니다. 적어도 내가 장애우 대표로 국회에 있는데 장애우 의견이 반으로 갈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절대 반이 될 수 없다, 기존의 고용촉진법 구조는 장애우의 극소수만 취업이 가능한 법인데 나머지 취업 못한 장애우들이 직재법을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장애우들의 반은 반대하는 법이라고 정치권에 자꾸 부풀려져서 선전이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한 얘기가 우리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비장애우도 서른 살 이상이면 취업이 안되는 게 대한민국 구조인데 어떤 사업자가 마흔살 오십살 육십살 먹은 장애우들을 고용시키겠다고 하겠느냐 말이 안되지 않느냐, 그랬지만 그래도 노동부는 끝까지 우리가 취업시킬 수 있다고 나오고 일부 집요한 세력은 끝까지 반대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공단 이사장이 되려고 직재법을 만들려고 한다는 오해도 받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의원님의 노력으로 장애우 직업 현실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해줄 법이 이번에 만들어졌습니다.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험난했던 만큼 보람도 느끼실텐데 이 법이 시행되면 어떤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저는 이 법을 만들면서 중증장애우일수록 취업이 안 되는 구조에 쐐기를 박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중증장애우가 이 법 제정으로 해서 취업이나 직업재활 가시권에 들어 왔다는 것을 제일 큰 보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통과된 법은 미흡하지만 복지부가 기금의 삼분의 일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법이 시행되면 복지부와 노동부가 장애우 취업에 있어 경쟁체제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게 가장 큰 변화죠. 장애우 직업정책은 이제부터 출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론이 아니라 행정상 중증장애우와 고령장애우를 중심으로 직업정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노동부와 복지부의 의지가 관건이 되겠지만… 저는 어쨌든 장애계가 이 법을 가지고 정말 사심을 버리고 직업재활에 관심을 가지면 이삼년 내에 장애우 고용 수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자신하고 있습니다.
─ 의원님은 15대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편의증진법 제정, 그리고 이번에 직업재활법 제정까지 장애우에게 큰 영향을 미칠 세 개 법안 통과에 관여하신거네요. 장애우 문제 해결에 전력하면서 그래도 혹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아쉬움이 많이 남죠. 사실은 장애우 관련 법이라고 명시는 되지 않았지만 정말 엄청난 법이 기초생활보장법과 사회복지사업법입니다. 먼저 기초생활보장법은 장애우들의 기초생활을 이 법에서 보장을 해주게 되니까 대단히 획기적인 법이 아닐 수 없죠. 실제로 현재 생활보호대상자를 보면 대다수가 장애우나 노인층이기 때문에 이 법 제정으로 장애우가 최대 수혜자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법 제정은 장애우 관련 법을 제개정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직업재활법은 노동부와 싸우는 것으로 그쳤지만 이 법은 노동부 재경원 기획예산처와 이렇게 세 부처와 싸워야 했습니다. 대신 제 편도 있었죠. 제가 속한 당에서도 많은 의원들이나 전문위원들이 같이 싸워줬고, 시민단체들도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래서 법이 제정될 수 있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법을 장애우 관련 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생존권 문제 해결 여전히 중요하다
─ 법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해 보죠. 바로 에바다 문제입니다. 현재 의원님은 에바다재단 이사장으로 있는데 에바다 문제는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고 계속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사장으로서 에바다 문제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얘기해 주시죠.
“에바다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은 제가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문제 해결을 거의 다 했다는 겁니다. 모든 해고됐던 직원들을 전원 복직시켰고 인사에서 불이익 받았던 사람들을 전원 원상 복귀시켜놨습니다. 더 이상 제가 뭘 해야되는지 얘길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에바다 공대위 사람들은 무조건 구재단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던 사람들을 내쫓으라고 그러는데 내가 법률가로서 판단을 할 때 이사 해임 문제만 해도 이사회는 이사를 해임시킬 권한이 없습니다. 일이라는 게 합리적으로 처리를 해야죠. 우리가 몇 사람이 싸워서 이겼다고 무조건 구재단측에 의해 임명된 사람을 다 쫓아내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에바다를 점령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잣대는 부정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부정을 저지른 사람은 에바다에 접근을 못 하게 해야 하는거죠. 그렇지 않고 단순히 구재단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내야 한다면 현재 직원의 반을 해고시켜야 하고 교사 전원을 쫓아내야 하는데 이건 저 보고 노동법을 무시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라는 요구에 다름 아닙니다. 원장 문제도 그렇습니다. 저는 현재 원장이 뭘 잘못했는지 알려달라는 겁니다.
원장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해고시켜야죠. 그렇지 않고 구재단과 관련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해고시켜야 한다면 이게 바로 연좌제입니다. 말로는 연좌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연좌제를 적용시켜 구재단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 원장을 쫓아내라고 그러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에바다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됐고 아이 한명만 원에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해아래집에 20명의 아이들이 있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그 중에 9명은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고 또 9명은 통학을 하는 아이들입니다.
통학하는 애들은 원하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한 명이 남아 있는데 그 한 명을 내가 권오일 교사에게 빨리 들여보내라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계속 거절하면서 명분은 아이가 무서워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에다 절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해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냐면 공대위 말대로라면 해결책은 지금 원에 있는 아이들 삼십명을 다 쫓아내고 대신 해아래집에 있는 아이 한 명을 원에다 데려다 놓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제가 그 동안 해아래집이 우려하는 일들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수 없이 많이 약속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은 자기네들이 하겠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제가 이사장으로 있을 필요가 없는거죠."
─ 다른 얘기인데 의원님은 앞으로 장애우 복지분야에서 정치권과 복지부가 중점을 둬서 시행할 정책을 무엇으로 꼽고 있습니까?
“장애우들의 생존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거죠. 역사와 함께 빈곤의 문제는 늘 있어 왔습니다. 장애우 문제만 해도 장애를 가졌어도 떳떳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 사실은 정말로 육체적 장애 하나 만으로 남아 버립니다. 자기가 불편한 선에서 거의 장애 문제가 종결이 되는거죠. 그렇지만 장애우가 자기 능력이나 적성에 맞는 직업을 못 가졌을 때에는 장애 문제가 중첩이 되면서 어려워지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장애우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정치권이나 복지부가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고 또 하나는 편의시설인데 장애우의 이동권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 의원님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과 국회의원이 되고 난 후에는 문제를 보는 눈이 다를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밖에서 보던 행정부와 국회에서 보는 행정부의 차이점은 뭡니까.
“현재 행정을 시행하는 부처는 과감하게 낭비적인 요소가 있으면 걷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혁하려면 살벌하게 기득권 세력이 난리를 치죠. 대표적인 게 제가 이번에 기생충박멸협회라는 단체를 없애 버렸어요. 그 협회에 서울대 출신 유명한 의사 20명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 양반들이 전국적으로 악을 딱 쓰니까 의원 40여명이 움직였습니다. 의원들이 제게 왜 그렇게 훌륭한 단체를 죽이려고 그러느냐고 항의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는 이 단체는 필요 없는 단체였습니다. 그래서 없앴는데 이렇게 저항에 부딪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해 주시죠.
“열심히 사는 게 제 계획입니다. 나머지는 제 몫이 아니죠.”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정리 이태곤 편집장
사진 김학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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