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건강한 아이만 찾아요” > 함께 사는 세상


“다들 건강한 아이만 찾아요”

성가정입양원 이정자 원장

본문

우리나라는 ‘해외 입양아 수출1위 국가’라는 오명을 아직도 씻지 못한 채 지금도 해외입양이 국내입양의 두 배에 가깝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국내입양만을 고집하고 있는 성가정입양원이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현재 장애아 국내입양에서도 모범을 보이고 있는 성가정입양원의 이정자 원장 수녀를 만나 우리 나라 입양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성북동에 있는 성가정입양원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얗게 빨아 널어 넣은 아기들의 강보였다. 태어날 지 사흘만에 엄마 품에서 떨어진 갓난아기들을 감싸 아아 줄 강보가 따뜻한 가을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소독되고 있었다. 바로 아래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어우러져 성가정입양원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라는 첫인상을 남겼다. 조금 후 앞치마를 두른 이정자 수녀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원장실로 들어왔다. “이틀 전 성가정 입양원 설립 10주년 행사를 치르느라 많이 바빴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 이정자 원장 수녀에게 성가정입양원을 설립하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봤다.
  “6.25 이후 우리 나라에는 전쟁 고아가 많았어요. 나라 형편이 어려워서 이 아이들을 국가에서 책임질 수 없게 되자 어쩔수 없이 해외로 입양을 보냈죠. 이 때부터 우리 나라는 해외입양아 수출 1위 국가가 된 거예요. 70,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도 어느 정도 경제성장을 했으니 이제 우리 아이를 우리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국내입양이 쉽지 않아 대부분의 입양기관들은 계속 해외입양을 해 오고 있었죠.
  그러다가 1989년 5월 17일 여의도에서 세계성체가 열린 것을 계기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는 신앙인들이 먼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하자는 차원에서 보건복지부에 국내 입양기관 설립신청을 냈고 허가를 받아서 성가정입양원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가톨릭사회복지회는 국내입양뿐 아니라 낙태반대운동과 같은 생명운동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IMF 이후 아이가 너무 많이 들어와요”


 - 성가정입양원에서는 주로 미혼모들의 아이를 받는다고 들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전에는 저희 입양원에 아이들이 한 10, 20명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80, 90명이나 있어요. IMF 이후에는 갑자기 너무 많은 아이들이 들어오니까 아이를 다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죠. 심지어 기혼모들까지도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아이를 데려 오기도 하고 그래서 아이들 받는 데에도 우선순위를 정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우리 나라에 한 해에만 약 40만 명의 미혼모가 발생하는데 이들 중 출산을 결심하는 경우는 불과 2%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난 오빠라든지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순간적인 감정에 이끌려 아기를 갖게 된 것인데 나이도 어리고 돈도 없고, 임신이라는 사실에 불안해져서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 아기를 낙태 안하고 낳는 것만도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저희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갸륵한 마음을 보는 거죠.
  다행히 요즘은 나라에서 청소년쉼터를 지역마다 만들어서 어린 미혼모들이 연락만 하면 도움을 주고 잇죠. 저희도 서울에 부설 미혼모의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혼모의 집에 들어와 생활을 하면서 미혼모들은 산전산후 조리도 하고 교육도 받습니다. 아기를 낳은 후에는 아기를 본인이 키울 것인지 입양원에 맡길 것인지 결정을 하고, 본인이 국내입양을 원하면 국내입양을 시키고 해외입양을 원하면 해외입양을 하는 다른 기관으로 보내죠.”

 

 - 미혼모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그렇고 국내가정에 입양을 시키는 것도 모두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1천3백여 명이라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좋은 가정을 맺어주셨으니 10주년 행사 때 그간의 공적을 외부에 대대적으로 알릴 법도 한데 행사를 참 소박하게 치르셨더군요.
 “제가 올 2월에 여기에 처음 발령을 받아 왔습니다. 와서 인수인계를 하면서 10주년 행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료가 참 부족했어요. 현재 저희가 발행하고 있는 ‘성가정’ 이라는 소식지가 거의 전부였죠. 저희도 양부모 교육이라든지 여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꽤 있는데 잘 알리지 않은 것은 양부모들이 꺼려하시기 때문이죠. 그 분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고, 아기를 위해서도 함부로 밝힐 수가 없는 부분이 있어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국내입양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10주년 행사도 소박하게 치렀습니다.”

 

 

입양관련 국가지원 거의 없어

 

 - 10년 동안 1천3백여 명을 국내 입양시켰으면 1년에 1백30명, 한 달에 10여명이 입양된 셈이군요. 아직 우리 사회에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 사회에 유교사상이 아직도 짙게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생명 그 자체보다는 혈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물론 뿌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달라져야 될 부분도 있는데 계속 정체돼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또 인간적인 약점을 밝히기보다는 애써 감추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불임일 경우, 그 원인 규명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대로 현실을 인정하고 드러내면 되는데 굳이 혈액형이 같은 아이를 찾는다든지 자구 조건을 맞추려고 하니까 입양이 더욱 쉽지 않습니다.
  또 국가에서 입양기관이나 입양가정에 지원하는 것이 너무 미약한 것도 한 원인입니다. 저희 성가정입양원의 경우 국가로부터 지원받는 건 전체 예산의 2%인 직원 1명의 인건비뿐이죠. 입양가정에는 아무런 지원이 없습니다. 다만 장애아를 입양하는 가정에 한해서만 매달 20만원씩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입양기관에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국가가 이 일을 다 떠안아서 해결해야 될 일인데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입양원의 전체 예산 중 2%밖에 지원을 않하고 있다는 건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너무 민간에 떠넘기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 입양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국가의 지원인 것 같고요. 그 다음으로 또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말씀해 주시죠.

  “다른 것 보다 국민들 대상으로 어려서부터 입양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아이들을 우리 나라 국민 모두가 한 명씩 공개 입양하는 k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합니다.”

 

 - 제가 얼마 전에 ‘사랑이 머무는 곳’ 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2살 된 아이를 길에서 잃어버렸다고 9년만에 아이를 다시 찾아서 친부모의 집에 데려와서 함께 생활을 하는데 아이는 잘 사는 친부모 보다 양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더 좋은 거예요. 그래서 양부모에게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하죠. 처음에 친어머니는 돌려보낼 수 없다고 하지만 아이가 정말 원한다면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남편에게 아이를 양부모에게 다시 보내자는 말을 꺼내요.
  하지만 남편은 내 아들인데 왜 보내느냐며 두 부부가 크게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면서 미국 사회에서도 자기 아이나 뿌리에 대한 집착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입양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람은 양심이란 게 있기 때문에 뭔가를 숨기면 마음이 불편하죠. 특히 이건 생명에 관한 것이잖아요.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저희 집에 상담하러 오는 부부들은 저는 존경합니다. 여기 오기 전가지 굉장히 오랫동안 심사숙고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앞으로 겪어야 할 힘든 일이 더 많아요. 공개입양을 하지 않을 경우가 더욱 그렇죠. 아이가 점차 커 가면서 친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이 나타날텐데 양부모 입장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 수도 있어요. 그런 이유로 갈등을 겪는 부부들이 있죠. 아이를 입양했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매순간 긴장해야 하는 것도 힘들고 아이와 겪는 갈등, 부부간에 겪는 갈등으로 갈수록 힘들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궁극적으로 봤을 대 공개 입양하는 것이 부부의 마음의 평안함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어떤 쪽이 좋을까요, 입양된 사실을 알고 혼란을 겪지 않을까요?

  “아이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양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먼저 듣게 되면, 오히려 양부모와 입양아 사이의 신뢰에 금이 갈 수도 있습니다. 또 자녀가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입양에 대해 낯설고 부정적인 생각을 해오다가 갑자기 자기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당혹감을 느끼겠죠. 그래서 양부모는 아이를 입양한 순간부터 아이에게 조금씩 준비를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결혼식장에 갔을 대 결혼하는 남녀를 보여주면서 ”저 두 사람은 원래 다른 엄마, 아빠에게서 낳은 사람들인데 저렇게 결혼해서 둘이 한 가족이 되는 거란다“라고 설명을 한다든지, 아이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영화를 볼 대 비행기 사고나 교통사고가 나서 부모를 잃고 아이들만 남게 되는 장면이 나올 때 그 비극을 잘 설명해 주고 누군가 이 남은 어린이를 사랑해서 데려다가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면, 그래서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가족이란 꼭 피가 섞인 사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개념을 심어준다면, 아이는 입양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언젠가는 친부모를 찾을 거예요. 인간은 누구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때는 반대하지 말고 아이를 데려 온 기관을 찾아가서 친부모가 누군지 알게 하는 게 좋죠. 그럴 때 입양 자녀는 양부모가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장애아동을 위한 집을 만들터

 

 - 장애아를 국내 가정에서 입양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장애아를 입양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죠.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건강한 아이만 찾으니까요. 장애아를 입양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공개입양을 합니다. 그래야 장애아를 키우는 동안 드는 추가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입양된 아이 중에는 구개가 파열된 아이가 있었고 손이 붙은 아이, 한족 팔이 없는 아이, 심장병에 걸린 아이, 요도하혈이 있는 아이 등이 있었어요. 심장병을 앓는 아이는 수술이 가능하지만 아직 어려서 수술을 못 시키고 입양을 보냈어요.
  또 요도하혈이 있는 아이를 입양한 가정은 유자녀 가정이에요. 어머니 되는 분이 일부러 건강이 안 좋은 아이를 데려가셨죠. 대단한 분이에요. 제일 안타까운 건 경직성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아이에요. 뇌성마비 장애아를 그냥 두면 장애가 심해지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토요일가지는 뇌성마비복지관에 나가고 오후에는 고대 안암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요. 조기치료실도 다니느라 애 하루가 많이 바빠요. 저희가 장애아동만을 위한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아이만을 위해 직원을 따로 채용할 수도 없으니 어서 좋은 가정에 입양돼서 안정된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다 잘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들은 장애아들의 입양이 다른 아이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니까 그 전까지 있을 집을 하나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양부모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조건인가요,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습니까?

  “우선 건강해야 되고 결혼을 한 부부여야 되고 직장이 있어야 합니다. 입양특례법을 보면 나이는 55세 이하까지 허용하고 있는데 저희 아이들은 대부분 신생아이기 때문에 저희는 45세까지로 정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기독교든 불교든 상관없지만 사이비 종교도 안됩니다.”

 

 - 미국의 경우는 미혼한 사람들도 입양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외국과 우리 나라 사이에 문화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인권이라는 부분을 놓고 봤을 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양부모가 될 수 없다는 건 토론해봐야 할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부부가 다 건강해야만 입양이 가능한데 얼마 전에 아이를 입양하러온 부부 중에 남편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목발을 짚게 된 사람이었어요. 그 부부의 경우 부인은 유치원 선생님이고 남편 역시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다른 조건은 아주 좋아서 입양을 시켜드렸죠.”


 - 어려운 환경에서 국내입양을 10년 동안 해오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20주년 때는 친부모, 양부모, 아이 모두가 대동하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때가지 성가정을 지혜롭게 잘 운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가정입양원에서 설립 10주년을 맞아 낸 책자에 한 입양인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나는 많은 재미있는 일들을 하면서 살아왔는데도 언제나 내가 태어난 나라,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왜 유럽에 와서 살고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내 친구들은 자주 자기들의 조상에 대해, 또 대로는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엑스포가 열리는 세빌(Seville)에 갔다가 그곳의 한 한국 가게에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이라고 하셨다. 나도 서울에서 태어났다고 말했고, 우리는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금방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분에게 내 한국이름, "Park Kim Mee"를 한글로 써달라고 부탁했고, 그분은 나의 가방에 ‘박김미’ 라고 써 주셨다. 난생 처음 내 이름 석자를 한글로 보는 순간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다. 한글로 쓰여진 내 이름 석자는 예뻐 보였다.  나는 내 이름을 한국말로 정확하게 발음할 줄도 몰랐는데, 그분은 나의 한국어 발음을 고쳐주셨다. 이렇게 그분과의 짧은 만남 이후 나는 한국에 가보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되었다.”
  이 대목을 인용한 김영화 수녀는 이정자 원장의 전임자인데 그는 “성가정입양원을 통해 국내가정에 입양된 1천3백여 명의 아이들은 이런 아픈 체험은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니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보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안타까운 의문을 품게 됐다고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러나 사랑은 피보다 훨씬 진하다”는 어느 입양인의 단정이 사실일지라도 우리 국민들이 그 사랑이란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할 때다.

 

대담/ 김정열, 편집주간 정리/ 노윤미, 사진/ 김학리 기자

작성자노윤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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