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사랑이나마 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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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고 굶주리고 병에 걸려 신음하는 자가 있다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그’ 를··· 구해야 한다. ‘그’ 의 불운과 나태에 이유를 물어 ‘그’ 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게 공동선이다”라고 어느 민중미술가는 말했다.
특히 앞서 말한 ‘그’ 가 아무런 삶의 무기도 버리지 못한 어린 영혼이라면, 더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어린 영혼은 무언가를 선택할 힘도, 분별력도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이를 버리는 것은 그 아이에게 평생을 지고 갈 마음의 상처와 궁핍을 지우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 대해 갖고 있는 대안이랑 사회로부터 유배된 집단 수용시설일 고아원 뿐.
그에 비해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공보관 생활을 18년째하고 있는 박영숙 씨는 "내 아이‘ 가 아닌 ’우리 아이‘ 잘 기르기가 핵심인 수양부모라는 새로운 제도를 우리 사회에 이식중이다.
그이는 분명 성공한 캐리어 우먼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부러워할 영어를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계간 <라쁠륨>편집위원이자 <더블크로스>, 장편소설 <거문도>를 펴낸 소설가이기도 하고 <영어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등의 책자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세상에 알린 건 엉뚱하게도 훌륭한 ‘엄마’ 로서다. 그것도 남의 아이를 잘 키워서 말이다. ‘남에게 보탬이 되려는 사람들의 연대(남보사연)’, ‘수양부모협회’ 를 이끌고 있는 박영숙 씨를 만났다.
남의 아이 11명
- 아직은 수양부모협회라는 곳이 우리 사회에 조금 생소한데요. 간단히 소개를 좀 해주시지요.
“IMF가 터지고 난 뒤 아이들이 많이 맡겨지면서 98년 4월4일에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지금까지 1백명을 받아 키워서 50명은 친부모에게 돌아갔고 50여명은 전국 각지의 50여 수양부모들이 돌보고 있지요."
- 수양아동 중 장애아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엄격하게 말하면 모든 아이들이 장애아라고 말할 수 있겠죠. 외국은 정서적인 장애라는 말을 하거든요. 학대받은 아동이라는 건데, 즉 버림받았다는 것도 일종의 학대니까요. 그래도 굳이 구분짓자면 현재 50여명의 수양아동 중 장애아는 3명입니다. 한 명은 염색체 이상으로 다운증후군 증세가 있어요. 4살 됐는데, 변을 못 눠요. 관장을 시키죠. 고령국제재활원에 있던 아이인데 지금은 청주에 있는 수양부모가 맡아서 키우고 있습니다. 1차 수술이 한달 전쯤 있었고, 10월 19일날 2차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도 한 아이도 팔에 화상을 입었는데 손가락이 붙었어요. 붙은 손가락을 다 떼어내는 수술을 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 약간의 정신지체 증세를 보이는 아이가 3명 더 있어요. 중증장애가 아니라 시설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공부는 못따라가죠.”
- 장애아를 대하는 수양부모들의 태도는 어떤가요?
“처음엔 모두 마찬가지죠. 이왕이면 예쁘고 똑똑하고 공부잘하는 아이로··· ‘이왕이면’ 그러거든요. 그렇지만 장애아가 아니라고 해서 아무런 걱정이나 노력없이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특성에 맞는 교육방식이 필요하죠. 그래서 오히려 오래 키워본 사람은 ‘이왕이면’ 이라고 그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자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달라서 그러는 거죠. 지금까지 우리 나라는 사회보장제도가 미약해서 자녀의 출세 여부가 행복한 노후와 직결되기 때문에 아이 교육시키는 일에 전력 투자를 해왔잖아요. 그렇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어요. 앞으로 10년 안에 선진국과 같은 사회보장 제도가 갖추어집니다. 자녀에게 기댈 필요가 없죠. 18세까지만 능력껏 일할 수 있게 키워만 주면 됩니다.
수양 부모들은 수양자녀들에게 기대하거나 바라는 게 없어요. 아이에게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 이것이 수양부모 교육의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얘기하면 똑똑하고 예쁜 아이만 찾는 사람들이 없어요. 자기 친자식한테도 바라지 못할 것을 수양자녀한테까지 바라겠어요? 자식은 더 이상 소유가 아니죠. 그런 개념부터 바뀌어야 해요.”
- 수양부모협회 창립 이전부터 수양자녀를 키우셨다고 들었는데 현재 댁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있나요?
“95년부터 개인적으로 수양아동을 키우기 시작해 11명째인데 요즘은 8세, 13세된 자매하고 9세된 남자 아이가 있습니다. 9세된 남자 아이는 4년이 됐는데 친엄마 집과 저희 집을 왕래하면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친아들 한 명이 있구요.”
- 친부모와 왕래를요? 버렸다는 개념을 어떻게 봐야 할 지 좀 혼란스러워지는데요.
“우리 나라에 엄격하게 고아는 1백명 안쪽이라더군요. 부모 모두 없는 경우는 그중에서 10명 안팎이래요. 물론 드라마 같은데서 보는 것처럼 업동이, 그러니가 문앞에 두고 간다거나 하는 경우는 부모가 있어도 부모를 찾을 수 없겠죠. 아무튼 부모가 버리는 겁니다.
수양부모 제도는 그런 경우는 받을 수가 없어요. 친부모로부터 양육권 포기 각서가 있어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친부모가 버립니다. 서류를 다 해서 동사무소에 동거자로 전입 신고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거든요. 옛날의 수양부모는 학교에 안보내고 일만 시킨다. 하는 얘기가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학교에 보내 교육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친부모가 양육권을 포기하고 모든 서류를 다 갖추어주면 그 아이를 수양부모가 교육시키고 잘 키워서 부모에게 돌려주는 겁니다.”
- 아이가 많이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그래서 친부모에게 돌아가기 전에 다양한 작업이 진행됩니다. 버려진 아이라 해도 가장 행복한 상황은 친부모와 사는 거거든요. 아이를 그냥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항상 친부모 얘기를 들려주죠. 친부모의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지 엄마, 아빠에게 돌아가야 된다는 것과 돌아가면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독립심을 강하게 키워줍니다. 친부모에게는 일주일이나 한 달에 몇 번씩 전화를 해서 그 아이의 상황을 알려주기도 해요. 아이가 산수를 100점 맞았다거나 미술대회에서 1등을 했다거나 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얘기해 줘서 그 부모가 아이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만 합니다. 자신이 자식을 버렸다는 사실을 계속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서 될 수 있으면 빨리 자신의 아이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이것을 ‘친부모 결합 운동’ 이라고 합니다.”
“마음은 영원한 부모로 생각하죠”
- 어떤 경우 주로 아이를 버리나요?
“대부분 이혼했거나 결별한 커플이죠. 미혼모인 경우도 많구요. 수양부모 제도는 그들이 재결합해서, 또는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사회 불만층을 다독거려서 그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주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아직 50%는 부모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경우는 18세까지 키워줍니다. 교육시키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 인성교육에서부터 여러 가지 삶의 개념을 정립시키고, 사회진출까지를 돕는 겁니다. 법적으로 19세까지니까요. 그렇지만 그것도 상황이 될 때까지겠죠. 마음은 영원한 부모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저희에게 온 아이들이 7,8세 경에 와서 18세까지 간 아이들은 없어요.”
- 수용부모협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우선 협회 구성은, 흔히 볼 수 있듯이 고문단과 이사진이 있는데 현재 제가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정회원이 백여명 있고, 예비수양부모 즉 대기자들이 오륙십명, 자원활동자가 백명, 후원회원이 칠팔십명, 그리고 베이비시터 회원이 있어요. 운영은 주로 이사들이 월급을 털어 하고 있죠. 정회원도 회비를 내긴 하지만 아이 양육비조로 의료비 정도를 지원받습니다. 그리고 오픈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오픈하우스는 갑자기 버려진 아이들을 수양가정하고 중매하는 일시 수용가정이죠.”
- 운영자금 조달이 힘들겠습니다.
“저희 단체도 여느 민간단체와 마찬가지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익사업을 다방면으로 모색중입니다. 수익사업의 하나로 이번 10월부터 두 달 과정으로 소비자연맹 강남 일하는 여성의 집에서 시작된 ‘베이비시터 교육’을 들 수 있겠군요. 이 교육은 잠시 아이들을 맡겨야 하는 상황(맞벌이 부부나 엄마가 수술을 하는 경우, 외국에 가자기 6개월 출장을 가거나 유학을 떠나게 되는 부부들의 경우 등등)이 발생할 때 일일 위탁보모, 즉 베이비 시터가 아이를 맡아 유료로 돌보는 겁니다. 그런 부모들은 돈을 주고라도 진짜로 미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원하거든요. 현재 저희 협회에는 우수한 베이비시터 회원 50여명이 수료증을 받고 대기하고 있지요.”
- 이 과정의 특징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이 교육이 여느 베이비시터 과정과 다른 점은 각 시간마다 교사가 8~9명으로 다 다르고 치과의사, 간호사 등 전문적인 강사진이 강의를 한다는 겁니다. 이론적인 것보다 실제로 아동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르칩니다. 일반 적인 아동교육 외에 IQ·EQ 높이기, 창의력교실, 간식교실, 아동 체형교실 등 독특한 교육 과정이 있습니다. 그 외에 일반 상식 교육도 하기 때문에 일반 문화교실에 다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 장점이 있습죠. 호응이 좋아요. 저희 협회의 베이비시터 교육은 파출부 개념이 아니라 가정교사 개념의 베이비시터 배출을 목표로 합니다. 실직 여성가장을 최우선으로 해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유휴 여성인력 활용에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특히 저희 협회가 공짜로도 아이들을 키우니까 돈을 받고 해주면 더 잘해주겠구나, 하는 기대가 의뢰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생들도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들을 하지요. 또한 교육 주최측인 우리 협회만이 노하우가 있잖습니까. 저만 해도 남의 아이를 키운 지 5년인데, 그 5년의 노하우는 제가 만든 게 아니에요. 영국에는 수양부모 1백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노하우를 책자로 발간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제가 실제로 검증한 거지요.”
“우리아이 때문에 키웁니다”
- 영국의 수양부모 제도를 말씀하셨는데 국내 고아원 제도와 간단히 비교를 해서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미 193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의 사회 적응력이나 행복 여부에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시키는대로 하고 누군가 뭐든지 해줄 것만 바라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었지요. 특히 비장애 아동을 대규모 시설에 수용해 격리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여론이 형성됐는데 이게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그러면서 차차 각 가정에서 아이를 데려다 키우기 시작하는 수양부모제도(Foster Care)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2차 대전 후에는 장애우를 위한 시설이나 특수한 목적을 가진 의료 및 예방 활동을 위한 시설 외에 고아원은 없어졌습니다. 전 세계 70개국에 고아원이 없어요. 유학하던 80년대 초에 저는 이런 제도는 우리 나라에 더욱 필요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외국의 사례만 봐도 고아원을 없애고 각 가정에서 아이들을 데려감으로써 국가 예산의 90%가 절감됐어요. 그야말로 숟가락 하나만 놓으면 되니까요. 시설, 땅, 유지비 필요없죠, 인력 낭비 없죠,. 다양한 아이들을 다양한 가정에서 수용하니까 아이들이 나누는 삶을 배우게 되고, 지는 법도 알게 되고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고 이해하게 되거든요. 그런 어울림 가운데 아이들은 리더쉽을 배웁니다. 이런 제도가 바로 우리 나라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왜냐하면 우리 나라는 단일 민족이기 때문에 더 유리할 수 있죠.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도 까만아이, 노랑머리 아이들을 한꺼번에 키우는데, 우리 나라야 따지고 보면 다들 친척관계 아닙니까?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 오히려 그래서 우리 나라는 반발이 더 심한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 나라 사람들의 핏줄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잖아요.
“요즘 인터넷으로 전세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많이 접해서인지 우리 나라의 뒤떨어진 복지 수준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실제로 수양부모제도에 대해 ‘우리 나라만 이런 걸 안하고 있었다’ 라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자원활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사회 분위기덕에 우리 협회가 알려지고 호응도가 높아진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영국만 해도 전 국민의 51%가 자원활동에 참여하는데, 우리 나라는 아직도 10% 미만이죠. 그에 비해 일주일에 세 번 이상하는 사람을 자원활동자라고 하니까 실질적으로는 1% 미만이래요. 저희 협회 소속 자원활동자들은 24시간 자원활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돈 과 노력을 들여 아이 키워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24시간 자원활동대’, 또는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 ‘남에게 보탬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 뭐 이런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습니다.”
- 수양부모의 자격요건은 어떻게 되나요?
“외국의 경우는 그 자격 요건이 완전히 완호됐어요. 미혼도 키울 수 있고 나이가 많아도 자기 능력이 닿는 한 키울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부모가 다 있고 내 아이의 나이가 가장 많아야 하고, 방이 세 개여야 하고, 범죄 전과가 없어야 합니다. 특별한 것보다 어머니의 성품이 온화하고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을 선호하죠.”
- 사실 입양하는 것과 수양부모의 개념이 좀 헷갈리는데요.
“아동의 친부모가 친권을 포기하는 경우에 하는 것이 입양(Adoption)이고, 친부모가 양육권을 포기하는 경우 수양제도(Foster Care)가 적용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공짜로 키워준다니까 친권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친권만 포기하면 저희는 입양합니다. 친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입양하면 불법이구요. 저희도 입양한 경우가 셋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수양부모 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말씀하신다면요.
“단점은 항상 있죠. 그렇지만 나쁜 점이란 것은 대부분 고칠 수 있는 게 더 많습니다. 버려진 아이들을 태어날 때부터 무관심 속에 내버려져 지내온 경우가 많아서 주변을 치울 줄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왜 깨끗해야 하죠? 왜 목욕을 해야 하죠? 왜 치워야 하죠? 라고 끊임없이 물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사회적응력을 키워주기 위해 ‘사회에 나가면 규칙이 있다. 사람들은 다 왼쪽으로 걸어야 하고, 차는 오른쪽으로 몰아야 하고 정리정돈을 해서 살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혼란한 사회가 되기 때문에 규율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거야’ 하고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시기가 너무 늦어 그 아이의 나쁜 습성이 도저히 고쳐지질 않는다거나 수양부모의 형편과 인내심이 감당키 너무 어려워 실패한 케이스도 한 둘이습니다. 아직은 시행 초기니까요.
그렇지만 수양부모 제도는 대규모 수용시설인 고아원 제도에 비해 더 많은 장점과 희망이 있습니다. 외동 아동이나 수줍음을 많이 타는 아이나, 밥을 잘 안먹는 아이일 경우, 다른 아이와 함께 생활하게 함으로써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절로 밥을 잘 먹게 된다거나 수줍음을 잘 타는 아이는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표현력이 생기죠. 의사를 표현하다 보면 창의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자기 혼자만 알고 자기 중심적이었던 아이는 나누는 것을 배우게 되고, 남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저 아이와 내가 좋아하는 놀이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겠죠. 저절로 지도력이 생기는 거예요. 수양부모 아래 사는 아이들은 지도력을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융화, 화합, 이해, 양보할 줄 아는 아이가 될 수 있지요. 그런 아이가 훨씬 좋지 않나요?
저는 솔직히 우리 아이 때문에 키웁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버림받은 저 아이를 우리가 돌보고 키우지 않으면 저 아이가 거칠어 지고 범죄집단에 들어가서 바로 우리 아이를 헤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아이만 온실속에 키우면 과연 행복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했었어요. 사회를 하나씩 정화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엄청나게 위험한 세상이 될 겁니다. 그리고 수양부모제도는 아이에게 직접적인 다양한 도움이 됩니다. 24시간 자원활동을 자연스레 경험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살았던 경험이 분명히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될 거예요.”
‘지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박영숙 씨가 쏟아내는 속사포같은 말들 중에는 별로 버릴 게 없었다. 내 아이를 위해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 말도 결코 이기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박 씨는 올 1월에 자신의 수양부모 경험과 인생, 교육관을 담은 책 <나는 늘 새엄마이고 싶다>(책섬출판사)를 펴낸바 있다. 그 책에서 박 씨는 “이제, ‘이기는 아이’가 아니라 ‘지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1퍼센트의 사랑이라도 아예 받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주장한다. 그녀만이 낼 수 있는 논리 정연한 낮은 목소리로 세상의 편협한 시각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또한 박 씨는 “시간은 쪼갤수록 많아지고, 일은 할수록 더 많이 할 수 있다. 사랑은 나눌수록 풍요로워진다.”라고도 말한다. 박씨 스스로 실천으로 증명해 내는 사람이기에 고어하게 들리지 않는다.
공동선과 정의의 실천을 누구나의 일상처럼, 누구나 지고 가는 통과의례처럼 가볍게 치르는 박영숙 씨.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의 가정은 더욱 더 많은 미소를 찾게 될 것이다.
글/ 박윤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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