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 모두를 키우는 건 ‘배움’입니다 > 함께 사는 세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인권과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행정조치만으로 해결될 때도 있고, 지속적인 요구가 필요할 사안도 있다. 싸움이나 투쟁이라는 표현을 붙여야 할 물리적 행동이 수반돼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모든 것의 결론은 ‘함께 살자’로 귀결된다. 따로 지내지 말자는 것, 구분하지 말자는 것, 동등하게 서로를 대우하자는 것, 그건 결국 지역사회 안에서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세상을 실현시키자는 의미가 된다. 이동권의 편의는 모두의 편의가 되고, 한 걸음의 양보는 두 걸음의 동행을 이끌어낸다. ‘함께 살자’는 것, 거창한 구호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편견을 걷어내고 똑같은 인격을 서로 인정하면 해결된다. 장애를 가진 이들의 교육권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주민으로, 시민으로, 이웃으로의 삶을 이끌어내는 모범사례라는 추천이 많이 들어왔다. 그 공간을 찾았다. 장애인 배움터 너른마당이다.

 

역발상으로 공간을 찾기

‘장애’와 관련된 지역의 단체들을 방문하다 보면, 공통의 특징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우선 중심지에서 벗어나 있는 게 대부분이다. 지하철이나 전철, 기차역 등의 역세권에서는 일단 멀리 떨어져 있다. 또한 해당 단체가 입주한 건물 주변엔 문화생활시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각종 생활용품 매장들과 다양한 음식점들이 밀집한 지역을 벗어난 다음, 인적이 드물어지는 좁은 길에 접어들어야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일반사회의 ‘생활권 밖’에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너른마당은 독특하다. 서울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역에서 나오면 금방 찾을 수 있다. 눈에 띄는 건 번화한 ‘먹자골목’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로 가득한 골목은 고기 굽는 냄새와 시끌벅적한 대화들로 늘 분주한 모습이다. 그 중간지점 건물 3층과 4층과 5층이 너른마당이다. 4층은 성북마을극장으로 운영된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먹자골목에 오가는 전동휠체어 사용자들의 움직임이 낯설지 않다. 지극히 당연한 풍경인데도, 굳이 ‘독특하다’고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장애인권과 권리확보의 과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사 올 공간을 찾을 때부터 생각했던 결정이었어요. 월세가 얼마만큼 비싸고 저렴하다는 차이, 지하철역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의 여부, 전동휠체어가 들어가기 편한 엘리베이터의 크기 상태, 이동편의시설이 얼마나 마련돼 있는지의 확인, 이런 모든 게 당연히 고려돼야 하지만, 저는 장애당사자들이 오가면서 일상을 생활하는 모습이 더 많이 노출되는 방향으로 공간을 선택했어요. 이 먹자골목에서 영업하시는 분들뿐 아니라, 불특정다수에게 우리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판단해서 여기로 결정하게 됐죠. 일종의 역발상을 한 거예요.”

장애인 배움터 너른마당의 배미영 대표는 언제 어디서 마주치든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게 천성의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뭐랄까, 기나긴 고행길을 거친 뒤에 얻게 된 심적인 안정이라고 할까? 직접 겪어보고 부딪쳐보고 해결해 봤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의 표출이라는 게 보다 정확할 것 같다. 물론 그는 손사래를 친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지금 제 속이 얼마나 복잡한데”라고 말이다.

“처음엔 안암동에서 시작했어요. 2007년 3월에 창립총회를 하고, 6월에 계약을 해서 7월에 공간을 갖게 됐죠.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그 지역에 있던 작은 공부방과 나눠 썼던 좁은 자리였어요. 공간이 좁다 보니까, 와서 공부할 당사자들의 숫자도 덩달아 적어지는 거예요. 3,4명이 들어서면 꽉 찼기 때문에, 넓고 새로운 공간을 꿈꾸는 게 일상의 간절한 기대가 됐죠.”

그는 눈이 내릴 때마다 당시가 떠오른다고 했다. 안암역과 보문역 사이의 딱 중간지점이었는데, 당시 보문역은 엘리베이터가 없을 때였단다. 장애당사자인 학생들이 안암역에서 내려 공부방까지 오려면, 몇 군데 언덕길을 오르내려야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배 대표가 해야 했던 일은 빗자루를 들고 나가, 쌓인 눈을 치우고 또 치우는 게 일상이었단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120(다산콜센터)에 연락했다고 한다. 여기 염화칼슘 좀 뿌려달라고.

“너른마당의 시작은 단순했어요. 당시에는 노들장애인야학이 아차산 인근에 있었고, 성북이나 강북지역엔 장애인들이 공부할 공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공부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하나둘씩 제시되곤 했죠. 그러다가 장애운동을 하던 선배들이 ‘그러면 해볼 수 있는지부터 알아볼까?’ 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던 게 너른마당의 출발점이었어요. 저는 처음엔 그냥 일반 상근활동가로 함께했어요. 그러다가 실무적인 일을 전담하고 있으니까, 아예 대표를 맡는 게 어떻겠냐는 운영위원회의 의견이 있어서 2011년부터 대표를 맡게 됐죠. 저를 부르는 호칭은 제각각이에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더라고요. 팀장이라고도 하고 선생님이라고도 하고, 그냥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웃음)”

 

최고의 교육은 자존감 확립이다

막상 대표를 맡고 나니, 정말로 모든 게 너무 힘들어 하소연만 쌓여갔다고 한다. 금전적으로도 힘들었고 혼자 책임지고 꾸려가는 게 현실적으로 힘에 부쳐서, 같이 준비하던 선배와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넋두리가 이어졌단다. 그러자 한 선배가 반문했다고 한다. “그렇게 네가 너무 힘들면 운영할 수 없으니까, 대표직을 그만 둘래?”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 배 대표는 ‘그만둘 수 없다’는 대답이 곧장 나왔단다.

“마흔일곱의 나이에 너른마당 학생으로 다니던 분이 계셨어요. 그 나이가 돼서 집 밖을 처음 나오셨다고 했죠. 집 이외의 첫 생활이 너른마당이었다는 거예요. 이름 세 글자만 쓸 줄 아는 여성분이었는데, 그 분이 여기에 오는 걸 너무 행복해 하셨거든요. 당시 활동지원이 시범사업으로 막 시작될 때라서, 그 분은 너른마당에서의 생활을 너무 기쁘게 받아들이셨어요. ‘대표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분의 얼굴이 딱 떠올랐죠. 문을 닫겠다는 말 자체를 할 수 없었고, 제가 해야할 일이 뭔지를 그 짧은 순간 분명하게 깨닫게 됐던 거예요.”

▲ 넓은 회의실은 교육의 장소로, 휴식의 자리로, 일정이 없는 빈 시간에는 지역사회 행사의 공간으로 활용된다.

그렇게 2,3년을 더 버텼단다. 악착같이 매달리다 보니, 주변에서 조금씩 알아주는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전상의 후원이 아닌 심리적인 지지를 받게 되면서 배움터 운영에 큰 힘을 얻게 됐다는데, ‘심리적인 지지’는 다름 아닌 제도와 환경의 개선이 가능해짐을 직접 확인하게 된 걸 의미한다고 했다.

“예전에 동사무소였던 건물이 개방돼서 지역공동체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강당도 좋고 교육공간도 넓어서 같이 사용하면 참 좋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 4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아쉬움을 늘 되씹으면서, ‘엘리베이터만 생기면 참 좋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을 매번 얘기하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주민참여예산이 처음 생기고, 저의 아쉬움을 반복해서 듣던 지역의 여러 분들이 엘리베이터의 필요성을 적극 제기해 주신 거예요. ‘우리 지역에 장애인 교육단체가 있고, 휠체어를 타시는 분들도 이 공간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셔서, 서울시참여예산에 선정돼 결국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어요. 이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장애인단체끼리만 활동하는 게 아닌, 지역사회 안 여러 단체들과의 매개체로서 너른마당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깨닫게 됐죠.”

너른마당은 평생교육을 지향한다. 초등·중등·고등과정이 진행되고, 고등과정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데 전념한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마친 졸업생까지 배출했다니, 배움터로서의 존재감은 이미 갖췄고 완수한 셈이 된다. 초중고 과정 외에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직은 여력이 안 돼서 한 달에 한번만 토요일에 진행하고 있는데, 청소년 프로그램의 효과가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며 배 대표는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기’를 표방하며 교육권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러려면 성인이 돼서 만나는 것보다는 좀 더 어릴 때 서로를 아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판단했어요. 더 일찍 만나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성인이 된 이후에 굳어질 차별적 시선이 크게 완화되리라 기대했거든요. 장애와 비장애 청소년들이 만나 짝을 이뤄, 말 그대로 그냥 노는 거예요. 아무런 제한이 없어야 서로를 알게 되는 범위도 넓어지잖아요. 그 효과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어떤 특성’의 언행을 보일 때가 있죠. 그 친구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익숙해진다는 건, 그 친구 이외의 장애당사자들을 사회에서 마주칠 때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만들어줘요. 그런 행동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 저럴 수 있어. 저 사람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우리가 못 알아듣고 있는 거야’라고 인식하게 된다는 거죠.”

고등학교 1학년 때 참여한 비장애학생들은 고3이 될 때까지 계속 함께한단다.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친구들이 있고, 심지어 군 복무 중휴가를 나와서도 찾아오는 이들까지 있다고 한다. 인식의 개선은 빠를수록, 직접적일수록, 지속적일수록 큰 성과를 거둔다는 확실한 증거이자 성공사례로 받아들일만한 프로그램 진행이다.

“어떤 문장으로 표현하든 간에, 장애인자립생활운동과 탈시설운동의 기본개념은 장애인이 동네에서 함께 살자는 거잖아요. 너른마당이 교육의 필요성을 앞세우며 시작했던 이유도 글자 몇 개 더 배우는 문제가 아닌, 장애당사자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높이기 위함이었어요. 자존감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친구랑 만나는데, 최소한 ‘주민센터’라는 글자는 읽을 줄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저는 검정고시보다는 한글교육에 집중했어요. 하지만 이젠 활동보조지원이 어느 정도 가능하니까, ‘주민센터’라는 글자를 몰라도 친구를 만날 수 있어요. 보다 중요한 건 ‘주민센터’를 스스로 이용한다는 자부심, 지역 안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모든 걸 실행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키우는 거죠. 지식의 양보다는 자존감의 정립이 저는 훨씬 중요한 교육의 목표라고 확신합니다.”

▲ 성북마을극장의 내부모습. 다양한 공간으로 지역사회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평생교육은 살아가는 의미 그 자체입니다

너른마당에서 배우는 학생들의 반응도 무척 긍정적이다. 23살에 시설에서 나왔다는 정진희 씨는 10년 넘게 너른마당에서 공부하고 있다며, 아주 밝은 얼굴로 자신의 의견과 희망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 나와요. 지금은 장애인 인권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요.”

시설에서의 생활이 너무 싫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며, 진희 씨는 유치원부터 고교 과정까지 시설에서 공부했던 것과 너른마당을 비교했다. 시설은 일단 모든 게 강요였단다. 정해진 식사시간은 물론 웃고 싶을 때 마음대로 웃지도 못하게 한, 전화통화까지 모든 걸 허락받아야만 하는 환경에선 아무런 꿈도 간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당연한 결론은 탈시설이었고,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며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단다. 너른마당에서 사회과목을 담당하는 한 선생님(활동가)은 작년에 혼자 자립한 진희 씨의 자립생활 과정을 되돌아봤다.

“탈시설을 하면, 처음부터 무조건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시설 안에서 탈시설을 주저하시는 분들이 ‘혼자됨’부터 두려워하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중간에 적응기간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드릴 필요가 있다고 봐요. 진희 씨는 시설에서 나와 가족과 함께 지냈고, 그 기간 동안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차근차근 독립을 준비했어요. 그 과정을 거친 뒤, 비로소 혼자서 생활하는 자립을 실천하신 거죠. 곁에서 봐도 정말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계세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 또한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도 좋아지는 경험을 계속 갖게 된 것 같아요.”

자리에 함께한 허종 씨도 너른마당의 교육에 만족한다며, 집이 제법 먼 곳인데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이유를 밝혔다.

“원래는 노들야학에 있다가 몸이 아파서 쉰 뒤 너른마당으로 옮기게 됐어요. 모르던 걸 하나씩 하나씩 알게 되는 게 정말 좋아요. 저도 장애인 인권에 관심이 많고,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너른마당 수업이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같은 기본과목만 있는 건 아니다. 공통과정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별도로 있는데, 이 수업은 지역사회의 전문가들이 교육강사로 초빙돼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수업, 요가수업, 공동체 놀이 프로그램인 심리운동수업, 사자성어수업 등 다양한 관심사로 장애당사자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있단다. 처음엔 가장 힘들어하는 게 요가였는데,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끝까지 빠지지 않고 열중하는 인기과정이 됐다고 한다.

“대표로서 제가 현재 집중하는 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수업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나가 직접 생활현장에서 배우고 익히는 방법론을 연구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손님이 뜸한 시간대의 카페에서 직접 바리스타 교육을 진행할 수 있잖아요. 그런 다양한 가능성을 실제로 지역 안에서 넓혀가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다만 아직까지도 맹점으로 남은 건, 이 많은 매장들 중에서 장애당사자들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없다는 거예요. 이동의 편의를 위한 경사로 설치 같은 행정조치가 신속히 이뤄질 것 같으면서도 진행이 안 되고 있거든요. 일상의 변화는 경사로 설치 같은 작은 부분부터 가시화되는 법인데, 그런 소통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는 점은 행정기관들이 먼저 개선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배미영 대표는 ‘학교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의 의미를, 너른마당이 가진 철학으로 재정립하며 상기시켰다. 교육부와 교육청이 고등학교 교육수료로 교육의 기간과 기능을 한정시키면 안 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사실 우리는 모두 다 평생교육을 하며 살아가잖아요. 꼭 어디에 가서 강의를 듣지 않더라도,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걸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죠. 마찬가지로 평생교육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건 장애당사자들이에요. 장애 자체로 인한 필요성도 있지만, 사회성의 확립과 대인관계의 설정을 위해선 끊임없이 교육의 장으로 나와서 참여해야 한다는 거죠. 비장애인과의 만남, 지역사회의 적응, 새로운 인간관계의 확대 같은 건 머릿속 지식의 양과는 비교되지 않을 커다란 의미를 남기고, 각자의 자존감을 키우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혼자 움직이기 주저되면 친구와 함께 나오세요. 그리고 더 많은 활동가들이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너른마당은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