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는 개인의 문제도, 편견의 대상도 아닙니다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본문
사고로 인한 외상이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불안해지거나 심한 감정적 동요를 겪는 경우가 있다. 이를 ‘트라우마(trauma)’라고 한다. ‘상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유래된 트라우마는, 사전적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듯 어떤 ‘사고’를 전제로 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도 분명히 알고 있듯이, 특정한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적어도 한 가지의 트라우마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을 트라우마, 그리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트라우마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맞서 인권 활동을 하는 의미있는 곳이 있다. 바로 트라우마 치유센터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이다.
트라우마는 개인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다
앞서 정의한 트라우마에 대한 개념을 예로 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교통사고를 경험한 후 자동차 운전이 두려워진 경우, 평소 산책하던 코스에서 사나운 개를 만나 더 이상 그 코스로 가지 못하는 경우, 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경우, 심지어 코로나19 확진으로 자가격리 및 치료를 받고 완치되었음에도 ‘확진자’였다는 주변의 시선으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이렇게 트라우마는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그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개인마다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와 가치를 파괴하며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이 지속된다.
트라우마 치유센터인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아래 사람마음)’은 한 사람과의 온전한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며, 트라우마와 관련한 전문적인 심리지원과 인권 옹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트라우마 치유 공동체다. 이곳에서는 트라우마를 생존자 개인의 책임이나 의지 혹은 병리의 문제로 보지 않으며, 공동체가 함께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고통으로 여긴다. 또한 인권 존중·평화·여성주의 세 가지를 큰 지향점으로 하고, 치유와 회복의 주체로서 생존자의 내적 힘과 자율성을 존중한다.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활동가들
이렇게 생존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심리지원을 통해 행복한 치유 공동체를 희망하는 사람마음의 탄생 배경에 대해 조이수현 사무국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희 사람마음의 대표이신 최현정 선생님이 대학원을 다니실 때 사회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어요. 특히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는 사회 구성원들에게요. 예를 들어 성매매피해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이 있습니다. 이분들과 교류와 협력을 많이 하셨는데, 심리적인 부분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지속하셨죠. 그런데 사람마음을 개소하기 전만 해도,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트라우마가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나 어려움이기 때문에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어요. 하지만 성매매피해라는 예를 보더라도 어떤 한 사람의 문제나 잘못이라기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회구성원의 인식 부족도 있고 그런 복합적인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고통을 더 가중시키게 되고,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 필요성도 그만큼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공동체적 문제의식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관점을 가지고 치유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야겠다는 필요성으로 2012년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이 사무국장이 예를 든 ‘성매매’로 인한 트라우마를 전제로 하는 사건이 어떻게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면 그 범위가 협소해지게 되고, 그럴 경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조그마한 부분밖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속해 있는 환경·문화·산업구조 등을 폭넓게 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성매매를 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에만 더욱 주목하고 ‘성매매 여성’이라는 낙인으로만 접근하여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지금도 우리 사회는 분명히 트라우마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고,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저희가 중요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요. 아동기부터 폭력이나 학대 같은 경험이 있지만 그 경험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주로 많이 경험하시는 것이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문제라서, 그런 부분에서 그분들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을 가치있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페미니즘과 여성주의적인 관점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성과 약자에 대한 폭력이 사회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이는 트라우마를 개인의, 그러니까 1대1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요인들을 고려한다는 저희의 지향점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사람마음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라는 전제는 분명히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이기에 신선하게 와닿는다. 그런데 트라우마에는 결국 심리적인 부분이 포함될 텐데, 그런 부분에서는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이 많이 있지 않을까. 장애계에만 봐도 미술이나 음악 등 예술을 통한 ‘심리치료’를 하는 곳을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심리지원센터’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기관도 검색을 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기관들과 비교해 본다면, 사람마음만의 차별성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여러 기관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와 협력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기관에서 심리치료를 담당할 수 있더라도 생존자가 트라우마로 인한 후유증이 심각한 경우에는 그만큼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춘 치료가 필요한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 경우에 저희 쪽으로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것처럼, 사람마음에서는 트라우마에 초점이 맞춰진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희는 처음 시작을 할 때부터 구성을 한 사람들이 임상심리학이나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서, 트라우마 심리치료 부분에서 좀 더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부분과 비교하여 특화된 방법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할 수 있는 심리치료 기법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법들을 잘 훈련 받고 또 실제로 현장에서도 잘 활용하고있는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사회적인 요소들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그로부터 트라우마에 대한 통합적인 치료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습니다.”
띵동 활동가와 함께하는 변증법행동치료학교 수업 모습
사람마음 심리치료
사람마음에서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 효능이 검증된 심리치료(evidence-based thrapy)를 수행한다. 트라우마 초점 개입을 통해 심리치료의 효과를 높이고, 생존자가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하고 건강한 삶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동행한다. 여기서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 보통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는 경우 대상자를 내담자·클라이언트·환자 등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마음에서는 이를 ‘생존자’라고 한다. 그 반대말이 ‘사망자’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지적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 그러니까 사고를 당하거나 한 사람들을 ‘피해자’로 무언의 규정된 게 있습니다. 그분들이 어떤 상황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 당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이렇게 구체적인 입장에서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주체적인 분들이라는 것을 고려한 겁니다. 실제 저희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아동기부터 폭력과 학대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거든요. 오랜 기간 반복되는 폭력의 상황에서 견뎌냈고, 본인의 힘 즉 성인으로서의 힘이 생겨서 그 이전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서 치료를 하고 애쓰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생존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 그분들도 조금 더 이해를 받고 힘을 낼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해 주세요.”
사람마음 심리치료의 기법은 총 네 가지가 있다. 각 기법마다 특징을 갖고 있어서 생존자에 따라 또는 다양한 요인에 맞게 기법을 정해서 치료를 한다.
사람마음 활동가 소진예방 및 역량강화 워크샵 모습
이 네 가지의 기법 중에 ‘안구 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이 있는데, 안구의 운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전맹인 시각장애인 생존자의 경우에는 안구의 운동이 어려울 수도 있을 텐데,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트라우마 치료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처음에 안구를 움직이는 것으로 시작을 하긴 하는데, 이것은 ‘눈을 이용한다’는 방법적인 측면 중의 하나에 해당되고요. 여기서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몸의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면서 그 움직임을 통해 뇌의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가면서 자극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만약 생존자가 시각을 활용하기 어렵다면 청각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양쪽에 소리가 나는 것을 번갈아가면서 할 수 있죠. 또는 양쪽 다리를 살짝 터치해 주는 등의 방법으로도 이 기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구의 움직임’을 전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생존자의 신체적인 상황에 맞춰서 치료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인식개선 꼭 필요
현재 법정의무화된 교육 중 성희롱 예방이나 직장 내 괴롭힘, 장애인식개선교육 등은 트라우마 인식개선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력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 직장에서의 괴롭힘이나 장애에 대한 차별로 인한 트라우마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적으로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그런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차원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 그만큼 그런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이 가진 트라우마는 절대 부정적으로 바라볼 대상이 아닌 것이다.
어쩌면 트라우마 하면 지금 시점에서 가장 관련지을 수 있는 이슈가 있다.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바로 코로나19 사태가 아닐까? 확진 판정을 받았다가 자가격리와 치료를 받고 완치되었지만, ‘확진자’라는 낙인과 장기간의 자가격리와 치료로 인해 생기는 것도 역시 트라우마일 것이다. ‘코로나블루’라는 용어가 있는 것처럼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트라우마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지금 대두되고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코로나블루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질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즉 부정적인 인식과 그에 대한 배제와 차별, 공격 같은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방역에 초점을 두는 상황에서는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든 규정하고 그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고립이나 차별의 모습이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 됩니다. 그만큼 이젠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고통도 우리가 잘 이해해 주고 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질환이 그 사람만의 잘못으로만 여겨지지 않고, 잘 회복해서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하는 시선들이 현재 많이 필요합니다.”
실제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람에 대한 각종 언론의 기사를 보면, 공격적이고 상처를 줄 수 있는 댓글들을 금방 찾을 수 있다. 그 댓글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큰 정신적 피해와 트라우마를 겪는지, 극단적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미 여러 차례 과거가 증명했다. 그만큼 국민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그리고 트라우마가 생겼을 때의 대처 방법과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은 비대면이 활성화된 시점에서 사람마음을 통한 직접적인(대면) 트라우마 치료가 어려울 텐데,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서 트라우마 극복이나 치료에 대한 팁을 구했다.
“먼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이 혼자이고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수록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단절이나 부정적인 요소들이 트라우마 치료를 방해하는데, ‘연결감’을 회복하는 게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앞서 설명해드린 트라우마 치료와 관련한 여러 기법들도 연결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추상적일 수 있지만 연결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연결이라는 것이 꼭 남과의 연결만이 아니라 자신과의 연결도 포함할 수 있어요. 집에서 혼자 생활하더라도 리듬을 잃지 않도록 하고, 자신만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만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이 시기를 우리 모두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작성자글. 박관찬 기자 ◎사진 제공. 사회적협동조합 사람마음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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