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진정한 작은 예수가 되고자 이 몸 바칩니다.
본문
“나 윤석인 예수다윗보나 수녀는 정결, 청빈, 순명의 삶을 종신토록 살 것을 서약합니다. 고통받고 소외된 모든 이들을 위해 작은 예수가 되고자 합니다.”
지난 이월 십일일,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리에 위치한 작은예수수도회·수녀회의 성소에서 진행된 종신 서원식을 함께걸음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서 이 천년 세계 교회 역사상 최초로 지체장애 일급의 종신서원 수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지난 구십 오 년 사월호 함께걸음 지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윤석인(50) 수녀.
"예수님과 결혼한 거죠"
작은예수회가 창립 준비단계에 있을 팔십육년부터 작은 예수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해 팔십칠년 예수회 창립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여러 가지 제반 규정과 규율이 정립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해왔기 때문에 지원·청원기,수련기가 다른 수녀회 수녀들에 비해 조금 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지난 구십사년 서원식을 마치고 또 다시 부단한 수련을 거친 오년 후에 이제 진정한 주의 종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윤 수녀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었다.
종신서원식 순서 중 다른 두 명의 수녀들처럼 온 몸을 땅에 붙여 엎드려 세상의 가장 낮은 주의 종으로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겠다는 의미의 "부복"행위를 그대로 따라하지는 못했지만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종신서원을 서약하고 서원축성 반지를 받아 끼는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경건했다. 늘 누워있어야 하는 그의 자세는 언제나 더 낮은 곳으로 자신을 낮추겠다는 마음을 그대로 갖게 하는지 모른다. 작은 예수회 모든 종신서원 수녀·수사들의 새로운 이름에 들어가 있는 바로 그 "예수"라는 말대로,
이날 서원식에는 보나 수녀 외에 봉하령(예수마리아요셉) 수사와 맹문례(예수니콜라우스), 김성숙(예수그라시아) 수녀도 함께 종신서원을 했다. 이 가운데 봉하령 수사도 한 쪽 팔에 장애를 갖고 있다. 작은 예수회는 현재 삼분의 일 정도의 회원이 장애를 갖고 있으니 앞으로도 장애를 가진 수녀수사들의 종신서원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서원식을 함께 한 아홉 명의 수사, 수녀 가운데 이 날 네 명만이 종신서원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그 길이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자기수행의 과정임을 헤아리게도 된다. 그래서 이날 종신 서원식에 참석한 이백여명의 예수회 회원과 하객들도 이들에게 아낌없는 축복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그의 어머니 안재순 씨는 "항상(박성구) 신부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삽니다. (윤석인) 수녀님은 집에서도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하고 늘 최선을 다하면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오늘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신부님 덕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오랜 동안 불교신앙을 간직해 온 집안이지만 이제 수녀가 된 딸을 감사함으로 세상에 내어놓게 된 가족들의 남다른 감회를 엿 볼 수 있었다.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성직자가 되기 어렵다는 기존 가톨릭 교단의 터부를 거부하고 장애우의 모습이 진정한 예수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설파하여 새로운 수도회를 창립한 박성구 신부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윤 수녀와 같은 장애우들에게 오늘의 영광이 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워싱턴서 열린 여성장애우리더쉽포럼 참가도
지난 구십사년 함께걸음 취재 이후 윤 수녀님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산하 여성장애우모인인 "빗장을 여는 사람들"의 정기모임에 초청되어 만남을 가진 후부터 여성장애우 운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그 일원으로 맹렬하게 활동해오고 있다. 지난 구십칠년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여성장애우리더쉽포럼"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일급 전신마비장애우를 처음 태우는 항공사측이나 워싱턴 포럼장에서도 그이는 단연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항공사에서는 그를 환자취급하며 불의의 사고가 있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한 경험은 "종신서원 후 투쟁거리"라는 숙제를 남겨주기도 했다. 자신과 같이 누워서 생활하는 장애우들이 비행기를 이용해야 할 경우는 분명 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해 한일장애교류대회에 참가할 때는 새마을호 식당칸의 탁자 위에 꽁꽁 동여매진 아슬아슬한 포즈로 대회지인 경주로 갔던 경험도 있다. 이날 종신서원식에는 지난 교류대회를 통해 친분을 갖게 된 척수장애우 백학현 신부 뿐만 아니라 혜진 스님도 자리를 함께 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는데, 이들과는 그곳에서 처음 만난 뒤 여전히 친분을 나누고 있다. 누워서 다니는, 그것도 수녀복을 입은 사람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낯선 시선은 이제 면역이 됐을 정도다. 사람들한테 이 사회에 장애우가 있고 이들이 보다 더 쉽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자꾸 알리고 보여주지 않으면 장애우에 대한 사회 인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바깥 외출을 하곤 한다.
"외출할 때 제 긴 휠체어째 그대로 탈 수 있어서 저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이제 리프트도 생겨서 이용할 수 있고 지나던 주위 청년들이 아주 잘 도와줘서 너무너무 편해요,"
종신서원한 이후 그의 일상이 겉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늘 그래 왔듯이 예수회가 발행하고 있는 월간 "함께 사는 세상 이야기"에 일러스트를 맡아 그리고, 요청이 있을 때 유인물이나 팜플렛 등에 삽화나 그림으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희 예수회는 활동하는 수녀회인데, 제 능력으로 어떤 사도직을 행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장애우나 노인 등 소외된 이들을 돕는 직접적인 활동은 신체가 건강한 다른 수녀님들이 담당한다면 저는 다른 사람들 보다 그림이나 글을 통해 문화선교일을 하려고 합니다. 컴퓨터통신(www.littlejesus.co.kr)에서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해요. 그렇게 저를 만남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서남이 일어난다면 저는 만족해요."
예전에 그림을 배울 때는 "집안에만 있는 내가 과연 그림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 때문에 괴로워했었다는 윤 수녀님. 그러나 이제 자신의 작은 능력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다는 사실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소녀처럼 웃는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당신의 것으로 하나되어, 성령으로 작은 예수 되게 하여 주소서." 그 행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간절한 그이의 기도는 오늘도 계속된다.
글/ 한혜영 기자 사진/ 김학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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