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길고도 짧은 이야기] 우리가 다른 점이 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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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형제종선종일씨 |
가족, 피를 나눈 다 같은 가족이지만 그 가운데 쌍둥이형제, 자매, 남매만큼 가까운 관계가 또 있을까 싶다. 쌍둥이는 아파도 두 사람이 같이 아프다던데, 어느 쌍둥이는 몇십 년 동안 떨어져 있다가 나중에 만나봤더니 자녀수, 직업, 배우자의 스타일 등등이 놀랄 정도로 일치했다던데... 이런 저런 쌍둥이에 대한 속설도 참으로 여러 가지다.
여기 최종선, 종일 형제의 이야기도 그러한 쌍둥이들의 작은 역사에 함께 소개 될만 하다. 두 사람은 얼굴이 비슷하고, 비슷한 키라는 것도 주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는데 거기다 소아마비에 걸려 그 후유증으로 같은 다리에 같은 정도의 장애를 갖고 있다는 특징까지 똑같은 것이다.
형인 최종선 씨는 (주)한양에 근무하고 있고, 동생인 종일 씨는 경기도청에 근무고 있는 공무원이다. 이들은 주중에는 각기 다른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근무시간 후나 주말이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내의 소모임 "함께걸음 좌식배구단" 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강해 자동 가입된 장애우대학 동문회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주 멤버들이다. 그래서 이 모임에서 이들을 처음 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웃을 수밖에 없는 해프닝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곤 한다. 이 쌍둥이형제는 과연 서로가 얼마나 같고 또 다를까.
- 두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면 되나요?
"(종일)그냥 보면 알지 않나요(?). 종선이는 얼굴이 좀 더 갸름하고 제가 더 둥근 편이죠. 내가 좀 더 잘생겼고(?). 아, 가름마는 종선이는 오른쪽, 나는 왼쪽, 한 두 번 보면 모르고 몇 번 보면 금방 구별해요. 나중엔 목소리만 들어도 아는데."
- 가름마는 일부러 서로 구별하자 해서 그렇게 하신 건가요?
"(종선)아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오른쪽이었어요"
- 성격도 비슷하신가요?
"(종일)성격은 좀 달라요. 내가 좀 과묵하고, 조용하고, 종선이는 좀 더 활달한 편이죠."
- 그런데 소아마비 걸린 시기도 똑같았대요?
"어머니가 잘 기억을 못하세요. 아주 어렸을 때 걷지 못하는 나이여서 그랬는지 암튼 어렸을 때 다른 애들보다 잘 걷지를 못하더니 그 후에 커가면서 걸을 때 보니까 이렇더래요. 우리 고향이 전북 임실군인데 그곳이 워낙 시골이라 소아마비가 뭔지도 몰랐고, 그래서 그 때 예방접종이니 하는 거 아는 사람이 있었겠어요? 우리 식구들 아무도 (예방접종주사를)안 맞었어요."
- 어머니가 임신하셨을 때부터 쌍둥인줄 아셨대요?
"몰랐죠, 낳다 보니 또 하나가 나오더래요."
- 얼마 차이나는 형, 동생이세요?
"잘 몰라요. 그래서 그냥 물어보는 사람들에 맞춰서 30초 차이라고 그러기도 하고 30분이라고 그러기도 하고, 그때 그때 대답해요. 그 때 유일하게 시간을 알 수 잇는 방법이 12시가 되면 마을 에 사이렌을 울려줬는데, 암튼 그 사이렌 소리 들리자 마자 태어났다고 하니까 12시에서 1시사이다 그거만 알고 있어요."
- 그래도 형인데 형이라고 안 부른다고 뭐라고 그러지는 않나요?
"(종선)부르라고 하면 얘가 부를 것 같아요?(웃음)"
- 학교 다닐 댄 어땠어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거기 시골에서 살았는데 초등학교땐 특히 반이 하나였어요. 중학교 때도 반이 3개밖에 없었는데 선생님들이 처음에만 조금 헷갈려 하시지 금방 구별하기 시작해요. 중학교 때까지는 정말 내 세상이다 그러면서 살았는데_ 그리고 전주로 나가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같이 재수할 때 서울로 올라왔죠."
- 어떻게 재수까지 같이 하셨어요?
"전주에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 성적으로는 사실 서울에 있는 대학 바라보기가 어려웠는데 재수할 대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 많이 올렸어요. 재수할 때는 나름대로 참 좋았어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다른 면에서도 고등학교 3년 산 것 보다 더 의미있게 보낸 것 같아요."
- 실례지만 성적도 비슷하셨나요?
"(종일)성적은 얘가 나를 따라오지를 못했죠." "(종선)그래도 내가 너 보다 더 좋은 과(?) 갔잖아." "(종일)얘가 전산과 간다고 해서 "야, 나도 거기 갈까" 했더니 얘가 "오지마" 하더라구요.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 화학을 참 재밌게 공부했어요 그래서 화학공학과 갔고."
- 혹시 장애 때문에 다른 친구들한테 놀림받고 그랬으면 같이 싸우고 그러셨겠어요.
"자랄 때는 전혀 그런 것 없었구요. 전쟁 놀이 같은 거 할 때나 싸울 때 한쪽이 싸우고 있으면 나도 가서 패주고 그랬죠."
"(종선)싸움이야, 내가 더 잘하죠. 얘는 공부만 잘 했어요."
"(종일)지는게 이기는 거라고 전 아예 상대를 안한 거예요."
- 두 분끼리도 가끔 다투시지는 않으세요?
"지금도 가끔 다투기도 하죠. 그래도 금방 도 풀리고, 고등학교 때 한 번 싸우는 걸 큰 형한테 들켰을 땐 둘이 엎드려 뻗쳐 해가지고 되게 혼났어요.(웃음) 지금까지 33년 동안 같이 살아왔는데 일주일 가야 한 번도 얼굴 못볼 때도 있어요. 그래도 또 어떤 때는 자려고 같이 누웠는데 얘기를 하다보면 두 시간, 세 시간이 훌쩍 가버릴 때도 있어요. 물론 며칠 동안 얘기 안하고, 그냥 TV보고 건너와서 그냥 자고 그러는 날도 있고."
- 암튼 두 사람을 주위엣 구별하지 못해서 에피소드도 많으셨을텐데.
"많이 있었죠. 고등학교 때 학교가 달랐는데 버스타고 가다 보면 한 동안 방향이 같다가 갈라졌거든요. 어느 날은 제가 기다렸다가 버스를 탔어요.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는데 누구 다른 애가 타더라구요. 알고 보니까 그 애는 급하게 타면서 버스번호는 확인 안하고 제가 타는 것만 보고 자기가 아는 애가 타니까 따라 탄 거였어요. 그런데 도착해보니 학교는 딴 데고, 암튼 저는 학교에 다 와서 내리는데 걔가 오더니 자기 학교 갈 회수권이 없다고 하나만 빌려달라고 그러더라구요.
그 때는 교복 안입고 사복 입고 다녀서 그랬겠죠. 암튼 그래서 친구들한테 제가 쌍둥이라는 게 알려졌어요."
"(종일)대학교 때는 종선이 학교인 건대쪽, 자양동에 살았는데 저는 단대 다녔고, 그래서 학교 갔다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서 가다 보면 와서 꾸벅 인사하는 사람도 있고 뒤에 와서 "왜 보고도 인사 안하냐"고 탁치고 가는 나도 모르는 선배 같은 사람이 있어요.(웃음) 그래서 그런 일이 있으면 누구냐고 물어봐서 기억을 해놨다가 너 이런 얘 있느냐 해서 알려주고 했는데 처음에만 그랬고, 다음부터는 "안녕"하고 지나가면 나도 무르는 애라도 "안녕"하고 나도 인사해주고 그랬어요."
"(종선)그리고 또 믿어야 되는 건지 안 믿어야 되는건지 모르겠지만 재수할 때 몸이 좀 아퍼가지고 병원에 갔더니 장티푸스라고 입원하라고 그러더라구요. 그리고 몇 시간쯤 지났는데 종일이도 아프다고 또 와요. 똑같이 장티푸스 걸린 거예요. 전염된 게 아니냐구요? 그것도 아니었어요. 암튼 그래서 같은 병실에서 한 이틀인가 같이 있다가 퇴원했죠."
- 사춘기때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나 그런 고민을 겪은 것 같으세요? 그러면 그 당시에 나랑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래도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해서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같은 건 모르고 살았어요. 사실 주위의 다른 동성들하고는 어울릴 때 장애가 아무런 걸림돌이 된지 않아요. 물론 그런 건 있었죠. 대학교 때 친구들이 미팅을 나가면 나는 알아서 빠졌어요."
"전 그래도 한 번은 나가봤어요. 어떻게 됐냐구요? 그냥 그 때만 재밌게 놀았죠. 그런데 그 때 우리 친구들이 한 방 먹은 것 같애. 다 끝나고 그 여자얘들이 "얘. 우리2층에서 또 있지" 하면서 일어서더라구요."
"사실 우린 참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 아니, 장애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다 싶었던 때가 한 번 도 없으셨어요?
"(종일)아니죠. 처음에 대학교 갔을 때부터 대기업 입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4학년 10월부터 시험 많이 봤어요. 보통 필기는 다 패스해요. 그런데 마지막 면접에서 다 떨어지는 거예요. 제 기억으로 열세네 번 본 것 같아요. 덕분에 면접비는 많이 벌었죠. 두둑히 주더라구요. 그러다 우연히 경기도 공무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래서 시험봐서 합격하고 공무원으로 있는 형한테 전화를 했더니 다니지 말고 때려치우라고 그러더라고요. 대학교까지 나와 사지고 왜 9급으로 시작할려고 그러느냐고, 좀 더 공부해서 7급 시험을 보든지 하라고 그랬는데 제가 다니면서 공부하겠다고 우겼어요, 그런데 책이랑 잔뜩 사놓고 시험도 한 번 못봤네요. 직장 생활하면서 무슨 시험 준비하고 그러기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말았죠."
- 공부를 잘 하셔서 주위에서 정말 기대를 많이 하셨을텐데.
"(종선)그래서 대학원 가라고 주위에서 그러기도 했어요. 종일이한테. 나한테는 안그러고, 저도 시험 본 게 한 열 번은 넘는 것 같아요. 계속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랬는데 한 번은 우연히 신문광고를 보고 원서 넣어봤는데 됐어요. 전산과가 그 대 당시에 잘 나가는 과였기 때문에 그래도 비교적 쉽게 됐겠죠. 암튼 그래서 졸업하기 전부터 출근을 했어요."
- 그러다 이번에 IMF 맞으면서는 두 분의 상황이 약간 바뀌진 않았나요?
"(종일)경기도내 공무원이 6천명 정도 되는데 그 10%인 6백명 정도를 감원했어요. 작년에 그렇게 된 게 아니고 2000년 12월말까지니까 명예퇴직한 사람도 들어가는 거죠. 그리고 이번에도 또 2백명인가 정리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연구소에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죠. 정부기관에서 장애우의무고용 지키지 않는다고 고발장 접수하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도지사님이 그 법 조항을 반드시 지키도록 지사를 하고 그렇게 이행하지 않은 시군은 어떤 제재를 주겠다는 방침이거든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부러워하죠. 넌 아무리 구조조정돼도 잘릴 위험은 없겠다고."
"(종선)우리 회사도 구조조정을 상당히 많이 했는데 그래도 전 잘릴 위험은 없어요. 굉장히 유능하거든요.(웃음)"
- 다른 가족 얘기 좀 해주세요.
"(종선)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머니랑 형, 누나들이 고생많이 하셨죠. 대학교 때 저희 등록금도 번갈아 가면서 다 대주셨으니까 물론 종일이야 한두 번 빼고는 장학금 받으면서 다녔지만."
"(종일)큰형은 서울 올라와서 쌀장사 하시고, 둘째 형은 김제시청에 주택과장으로 계세요. 셋째 형이랑 누나 둘, 여동생도 잘 살고 있어요. 조카만 벌써 8명이에요."
- 다른 형제들이 어렸을 때 장애가 있다고 두 분은 좀 봐주고 그랬나요?
"그런 거 없었어요. 꼴베기, 모내기... 뭐, 시골에 있을 때는 못살아 가지고 일손이 아쉬우니까 우리들도 일할 때 다 똑같이 일했어요.
- 어머니가 두 분 보고 좀 안타까워 하시겠어요?
"어쨌든 다른 다섯남매는 다 시집장가 가서 자리 잘 잡고 사는데 못난 우리 두 놈만 아직 결혼을 못 하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제일 걱정거리가 그거시죠, 뭐. 그래도 그걸 밖으로 내보이신 적은 없어요. 저희한테는 계속 말씀하시는 게 따지지 말고 아무데나 가라 그러세요."
"다들 우리보고 따진다 그러고, 눈이 높다고 그러는데 정말 우리는 따지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한테 여자를 소개 시켜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서로 자기가 급하니까. 우리는 그래서 안되나?(웃음)"
- 다른 친구분들도 많으시겠지만 가장 잘 통하고 절친하고 그러시죠, 두 분이?
"친구가 아무리 걱정해저고 챙겨준다고 하겠지만 가족만큼 생각해주겠어요? 내가 얘말고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걔네들하고 얘하고도 친하고 그러죠. 대학교 1학년때 우리 과 친구들하고 설악산 동해안에 놀러 갔는데 얘도 끼어서 같이 놀러갔잖아요."
- 옷 같은 것도 같이 입으시나요?
"와이셔츠나 속옷도 같이 입고 그래요. 뭐 속옷에 이름 써놓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필요할 때 사면서 맘에 든다 그러면 하나 더 사고 그래요. 참, 내가 이번에 와이셔츠 샀으니까 니가 다음에 속옷 사."
"그래서 걱정이라니까요. 따로 나가 살게 되면 이제까지 살림 분배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우리는 지금까지 오랜 동안 떨어져 자 본 적이 없어요. 방도 없어서 그랬지만, 아, 내년이면 같이 있을래야 같이 있을 수 없겠다. 내년 5월에 아파트 입주하거든요. 안산에 각자 분양 받은 게 있어서 지금 생각에는 그 전에 결혼을 했으면 싶고 그 때 되면 따로 따로 있어야 되겠다 싶죠. 물론 그 때까지 결혼 못하면 하나 전세주고 또 같이 사는 거고."
"그 아파트도 같은 단지에 동만 달라요."
두 사람은 모두 운동도 좋아한다. 종선 씨가 먼저 동네 수영장에서 배웠는데 다음 달부터는 종일 씨도 수영을 배우 거라고 했다. 탁구도 두 사람 다 선수급으로 잘 한다. 다른 운동은 종선 씨가 더 잘한다고 하지만 탁구는 그래도 종일 씨가 조금 더 나은 실력이라고 주위에서 평한다. 그리고 종선 씨가 함께걸음 좌식배구단 주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이 참 밝아 보인다는 사진기자의 말에 종이 씨는 "밝은 척 하는 거"라고 말을 받는다. 종선 씨는 "밝은 거지"했지만,
"나름대로 아픔도 있고 그렇죠."
"가끔 "장애우라 LPG 달 수 있어서 좋겠다", "학교 때 교련 안해서 좋겠다", "군대 안가서 좋겠다" 이런 얘길 주위에서 하는데 그런 말 하는 사람 어떨 땐 쥐어박고 싶어요. 장애로 인해서 일생을 걸쳐 당해야 되는 아픈 일들은 생각도 안하고 단순히 그런 혜택 하나만 보고 부러워하는 게 귀에 거슬려서..."
입사시험 때 빼고는 장애로 인한 큰 걸림없이 살아왔다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연애와 결혼문제를 놓고는 적지 않은 상처에 단련돼 가는 중이다.
"(종일)저는 소개팅을 몇 번 해봤는데 한 번은 중간에 소개해 주신 분이 제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얘기 안해줬나 봐요. 그냥 나이가 몇이고, 직장은 어디고 그런 것만 얘기하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가서 앉아 있어서 제 장애를 잘 모르다가 나중에 같이 걸어 나갈 때 내색은 못하면서도 놀라고 당황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해요. 내 장애를 알기 전에 얘기하는 것하고 알고나서 얘기하는 자세나 표정 달라지는게 얼굴에 감추려고 해도 그대로 드러나더라구요. 알기 전에는 그래도 대화를 서로 주고받고 그러기도 하는데 알고 나서는 (얘기가) 가는 건 있어도 오는 게 없으니까. 그러면 얘기할 맛도 안나죠. 그렇게 해서 상황이 끝나 버리는 경우가 몇 번 있었죠. 그래서 저는 여자 소개시켜 준다는 분들한테 저한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달라고 그래요. 그래도 "OK"하면 하겠다고 말하죠"
- 그래도 그렇게 여자한테 장애 때문에 딱지 맞았다 하는 얘기는 서로 잘 못하시죠?
"다 해요."
- 그럼 뭐라고 말해주나요. 서로.
"그냥 죽으라 그러죠(웃음)"
굳이 말로 확인은 안했지만 이 쌍둥이 형제는 결혼도 같은 시기에, 더 욕심을 내자면 한날 한시에 하기를 서로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 남아 있는 다른 한 사람을 바라보기란 다른 누구보다 서로에게 너무 "짠한" 일일 테니까.
그런데 사실,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다. 장티푸스에 걸린 다른 한쪽을 따라 똑같이 장티푸스에 걸려 같은 병실에 들어갔던 것처럼 그렇게 식장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들어서는 두 쌍둥이 형제, 상상만해도 즐겁다.
정리/ 한혜영 사진/ 김학리 기자
사람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사회가 바로 가정이라고들 한다. 그 구성원의 가족들은 그래서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마지막까지 가깝게 때로는 멀게 나와 함께 한다. 한 가정에 장애우가 한 명 있으면 온 가족이 장애우가 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렇게 장애우인 가족이 겪는 슬픔과 아픔을 지켜보며 같이 아파하기도 한지만 그러는 동안 온 가족이 새삼 발견하게 되는 적은 기쁨과 사랑도 있다. 이번 호부터 연재되는 장애우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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