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동안 장애우시설 다니면서 몸으로 체득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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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 나가던 사업도 포기하고 영광의 집 식구 50여평과 새 삶을 시작한 김석규 목사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김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갑부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그는 결혼 후 부인과 함께 교회봉사를 나가기 시작하던 어느 날 구걸하는 장애우 한 명을 보았다.
"며칠째 씻지 않았는지 얼굴에서는 땟 국물이 흐르고 옷도 찢어져서 추위를 막을 수 없었고, 거기다 손 하나는 뒤틀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더라구요.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죠. 그런데 교회갈 때마다 그 사람이 눈에 띄고, 기도할 때마다 그가 눈에 어른거리는 거에요."
먹는 것, 입는 것만 준다고 해서 그 장애우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에 휩싸인 김 목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김 목사는 버려진 장애우들과 함께 할 결심을 하게 됐다.
그 당시 김 목사는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그 역시 사업이 성공해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장애우와 함께 살기 위해 사업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그의 아내와 가족들의 반대를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김 목사는 가장 먼저 가족이라는 큰 산부터 넘어야 했다.
자신의 굳은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 김 목사는 사업을 정리하고 3년 동안 전국에 있는 장애우 수용시설을 찾아 나섰다. 시설에 들어가 살면서 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직접 몸으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장애우시설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도 접하게 됐고 그들의 시행착오는 김 목사에게 좋은 교과서가 됐다.
그 결실로 맺어진 영광의 집, 김 목사는 식구들이 남부럽지 않게 먹고 입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거기에 주위의 후원의 손길이 큰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은 후원을 마치 거지에게 동냥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기는 안 먹고 안 입는 것을 장애우들은 입고 먹어도 된다는 생각 대문에 오히려 모범시설에는 후원자가 더 적죠. 정부차원의 지원이 부족한 현실에서 시설들이 후원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사람들은 못 먹고 못사는 허술한 시설만 후원을 하려 하니, 소쩍새마을처럼 후원을 계속 받기 위해 일부러 있는 것도 당에 묻고 못입는 것처럼 위장하는 시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 목사는 영광의 집이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는 시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집 식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최고인 것만 제공한다. 김 목사는 장애우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글/ 함께걸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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