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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버려진 장애아들 사랑으로 안아야죠"

서울시립아동병원 김인숙 원장 vs 이일영 아주대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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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이 만난 사람]

 

서울시립아동병원 김인숙 원장 VS 이일영 아주대 재활의학과 교수


"버려진 장애아들 사랑으로 안아야죠"

 

 

 

  서울 양재동을 지나 신도시 분당으로 접어들어가는 길목에 허름하게 자리잡은 서울시립아동병원은 부모들에게조차 버려진 중증의 장애를 가진 기아들이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장이다.
  이곳 서울시립아동병원이 1948년 문을 연 이래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야 최초의 여성원장을 맞아들였다.
  지난 4월 1일부터 서울시립아동병원의 원장으로 2백 50여명의 호적도 주민등록도 없는 기아들을 돌보고 있는 김인숙 원장을 아주대재활의학과의 이일영 교수가 만나 우리 사회의 버려진 기아들이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1948년 개원 이래 최초의 여성원장
 

▲김인숙원장-서울시립아동병원
이일영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서울시립아동병원이 사직공원근방에 있다가 이곳으로 이사온 지도 20여년 정도 되었고, 처음과는 성격이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아는데 병원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인숙   - 저희 병원은 기아나 미아의 진료와 재활치료를 주로 하고 있으며, 1948년 12월에 경성산부인과를 인수해서 보건병원으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9년 4월에 시립아동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1978년 5월에 현재의 주소로 옮겨왔습니다. 이 교수님이 기억하시는 사직공원시절은 경성산부인과를 인수해서 보건병원을 시작한 이후의 일입니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 당시에는 진료와 수용을 겸했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진료를 받는 아동만 이곳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일영   - 병원이 시작된 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김 원장님이 최초의 여성원장이시고 개인적으로 그동안 20여년 정도 보건소에서 의사생활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시면서 남다른 개인적인 동기나 소감 같은 것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인숙   - 네, 말씀하신 대로 제가 공직에 와서 주로 한 일이 보건소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4월에 이곳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생각지 않은 뜻밖의 일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나이에 장애우들을 위해 무료로 자원봉사도 해야 할텐데 하물며 직업으로 하는 바에는 마지막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이일영   - 환자들이 아주 심한 중증의 장애아동인데 이분들이 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곳으로 오는지와 어떤 기준에 의해 치료를 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인숙   - 저희 병원에 오는 환자 대부분은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버려진 아동들 중에 심한 기형과 병 등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인데, 아이들이 발견된 구청에서 저희 병원으로 보내옵니다. 이 아동들에 대한 입원치료는 전액 무료로 이루어집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후에 약간의 변화가 있어서 전액 국비와 시비로 운영되던 것이 96년 11월부터는 아동이 발견된 구에서 해당 아동을 의료보호대상자로 책정하여 진료비를 부담해주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부모가 데리고 와서 재활치료를 받는 아동도 있는데 그 경우 치료비는 의료보험수가로 산정합니다. 생활보호대상자인 경우는 의료보호수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중증의 장애아동이 단시일내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부모들이 저희 병원 앞에 아이를 버리는 경우도 사실 적지 않습니다. 전화로 어디에 버려진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이 전화를 했을리는 만무한데,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나서 먼 발치로나마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확인하려고 일러주는 경우인 것이죠.

이일영   - 이 사회가 중증장애아동이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이용시설을 늘리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면 이런 큰 시설이 필요 없이 가정과 사회 속에서 중증 장애아동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 수 있을텐데, 이 점에 대해 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인숙   - 저 역시 국가에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증장애아동을 둔 가정도 생활보호대상자로 책정해서 의료보호수가나 부모의 보호 하에 아동이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건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버려지고 있는 거겠죠. 그나마 올해 들어 정부에서 그동안 모성실에 등록된 아기만을 대상으로 해왔던 무료 선천성대사이상검사를 전국의 모든 신생아로 확대하고 금연법제정이나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공개강좌 등을 통해 기형아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점차적으로 개선되지 않겠어요.

 

 

주민등록번호도 호적도 없이 평생을 살아가는 아이들

 

이일영   - 지적하신 대로 임산부뿐만 아니라 예비산모들까지 출산 전부터 교육을 실시하여 선천적인 장애가 줄어들도록 예방을 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장애아동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고, 의술의 발달로 예전에는 도저히 살릴 수 없었던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고는 있지만 장애아동은 오히려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떻게 뒷바라지해서 이 아이들이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을텐데요. 다른 이야기지만 버려진 아동들 중에는 호적이 없거나 호적이 이중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여기 오는 아이들에게 병원 측에서는 호적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와 전반적인 현실이 어떤지가 궁금합니다.

김인숙   - 우리 병원에 있는 환자의 100%가 주민등록도 없고 호적도 없어요. 이 사람들의 호적을 만들기 위해 구청에 협조를 요청해 보았으나 한 군데에서만 회신이 있었을 뿐 협조가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의료보호카드에 적힌 번호와 원장의 성을 따서 지은 이름 석 자만으로 평생을 사는 거지요. 그러다 사망하면 이름 석 자만 들고 처음 발견된 구청에 사망신고를 하는 것으로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이일영   - 장애아동의 경우 국내입양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혹시 우리 사회에서 입양이 된 예가 있습니까?

김인숙   - 간혹 해외 입양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국내입양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나마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는 일반아동도 입양을 하지 않는 상황이잖아요. 자신의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아직까지 장애아동의 입양은 엄두를 내지 않는 것이 아이들을 해외에서 입양한다는 사실이 참 부끄러운 일인데, 다른 나라의 기아나 아이들을 돕기 이전에 우리의 버려지는 중증장애아동을 우리 손으로 돌보는 것이 우선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일영   - 지난해 12월에 내한했던 보드만 부부에게 딸로 입양된 수잔 양은 심한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런 상태에서도 27살이 되도록 사랑을 받으면서 천사같은 웃음을 지으며 지내는 것을 보고 몹시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보드만 씨가 "사회가 뒷바라지를 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도저히 수잔을 기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미국에서의 중증장애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잠깐 소개한 적이 있었어요. 미국사회에서는 프로그램과 사회적 지원이 잘되어 있어 낮 시간에는 주간보호소 등의 이용시설에서 수잔을 돌보면서 그녀에게 맞는 프로그램과 물리치료나 작업치료 등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큰 어려움 없이 수잔을 돌볼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경우는 부모가 중증 장애아동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국민의 인식문제에만 모든 책임을 미루고 있는데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99년까지 이용시설로 변화시킬 계획도

 

김인숙   - 저희도 그러한 차원에서 시정개발 3개년 계획에 의해 예산 102억을 들여 현재의 병원을 증축하고 개보수하여 이용시설화할 계획입니다. 현재 병원건물 뒤쪽에 50병동을 신축하고 기존 건물은 개보수하여 집에 있는 장애아동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린벨트지역이라 건설교통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 아직은 계획단계입니다만 시의회에서 예산승인이 나면 곧 실현될 전망입니다. 계획이 실현되면 부모님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셔틀버스도 운행할 계획입니다.

이일영   - 정부에서 장애아동을 위해 예산을 들여 이용시설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으니 모처럼 반가운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쪽에는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염려가 됩니다. 원장님께서는 인원이나 예산지원 등 병원을 운영하면서 특히 어려웠던 점이나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김인숙   - 무엇보다 어려운 점이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와서 보니 아이들이 상의만 입고 바지를 입지 않고 있었어요. 일손이 많이 모자라다 보니 일일이 아이들에게 바지를 입히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죠. 우선은 바지를 입히도록 하거나 목욕용 매트를 지급하면서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직원들의 업무부담이 지나치게 많아서 아이들에게 일일이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일손부족 외에 또 크게 어려운 점은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뇌수종이 있는 아동들도 소리나는 장난감 등에 반응을 보여서 음악치료를 시도하려고 했지만 예산이 없으니 있는 기구에다 자원활동하는 음악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해야 할 실정입니다.

이일영   - 저 역시 이곳을 돌아보면서 아이들이 서로 자신을 쳐다봐주길 바라면서 사람을 그리워하는 눈빛을 보고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일이 과중하고 예산이 없으면 잘 할 수 없는 법인데, 종사자들이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으려면 인원이 얼마나 늘어나야 합니까.

김인숙   - 현재 250여명의 아동이 저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간호사는 80명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으니까, 평균적으로 간호사 한 명이 열 명의 아동을 돌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모두 1대1로 돌봐야 할 중증장애아동들입니다. 교수님이 보신대로 아이들은 자극을 통해 호전을 보이는데도 자극을 줄 손조차 부족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산절감을 위해 일괄적으로 인건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당국을 상대로 저희만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자구책으로 자원활동자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자원활동자도 한 번 다녀가면 그만

 

이일영   - 자원활동자 활용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 점과 관련해서 외국에서는 많은 교회들이 수익차원이 아니라 봉사차원에서 병원을 지어 일반병원에서 돌보기 어려운 환자를 돌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장로교병원, 감리교병원, 여집사들의 병원 같은 곳에서 중증장애우를 돌보고 그분들에게 꼭 필요한 재활프로그램 등을 이미 자원봉사를 넘어선 수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교회와 종교단체들이 많이 있잖아요. 이러한 교회의 자본과 일손을 끌어들이는 일도 과제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인숙   - 사실 대부분의 자원활동자가 한 번 다녀가면 다시는 좀처럼 발길을 하지 않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모두 중증이라 고정적으로 와서 훈련이 되신 분들이라야 목욕봉사 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한번쯤 오신 분들에게는 그러한 도움을 요청 할 수 없거든요. 그나마 남서울교회와 외국인 한 분이 고정적으로 오시고 있습니다만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에요. 사실 직원들도 일이 과중해서 신체적인 고통을 많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일영   - 최근 선진국에서는 중증장애우를 돌보는 사람들을 다시 사회에서 지원하는 것을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삼고 이러한 사람들을 지치지 않도록 돌보아 주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일을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사자들이 지치면 사명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밀쳐버리는 분위기입니다. 이래서는 안되지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제 경우 미국에서 재활의학전문의가 되는 과정을 마치고 국립척수장애우 재활병원에 연구강사로 있었는데 보수가 일반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보다 1만불 정도 높았습니다. 저 뿐 아니라 거기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일반병원보다 급여도 높고 보수교육의 기회도 더 많았고요. 중증장애우를 돌보는 직업이니 스트레스도 많고 어려움도 클 것이라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배려였던 것이죠. 물론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여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죠. 우리 정부도 이런 의지를 보인다면 열정과 의지를 가진 보다 훌륭한 이재들이 투입이 되어 발전이 될 것이고, 그러면 자연적으로 장애우에 대한 사회인식도 바뀌어 이러한 대규모 중증장애우수용시설이 필요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시립병원의 경우 종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김인숙   - 간호사나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이 돌보는 환자가 낫는 것을 보는 겁니다. 우리 병원 환자들의 경우 호전되는 상태가 눈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 그 점을 가장 힘들어하십니다. 또 모든 환자가 누워있는 환자들이니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에 괴로워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같은 공무원이어도 보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일반공무원과 같이 오전에 오셔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하시는데 저희 간호사들은 3부 교대제로 운영되어 생활의 리듬이 깨지는데다 육체적으로도 중증장애아동을 목욕시키는 일 등 힘이 드는 일이 많아요.
  가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퇴근 후 집안 일까지 해야하고 이곳이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어서 출퇴근하는데 어려움도 크지요.
  그래서 이곳을 저희 식구들은 "울고 와서 울고 가는 곳"이라고 해요. 처음 이곳에 발령을 받으면 힘들어서 울고, 떠날 때는 아이들과 정이 들어서 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희 병원에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 치료할 시기를 놓쳐서 온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에 비해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이제 여기 오는 분들의 사망률은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일년에 약 네 명의 아동들이 어쩔 수 없는 가운데 사망하고 있습니다.

이일영   - 제가 보기에도 어려서부터 치료를 했더라면 앉고 걸어다니는 정도는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치료시기를 놓쳐서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더군요, 마지막으로 이곳에 오신 동안 우리 사회가 모르는 미담이나 알려졌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시지요.

김인숙 - 미담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지난번 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받고 여기 와서 자원활동을 하고 가신 분들 중에 목발을 짚은 장애우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고 부모님에 대해 자신을 치료해 주지 못하고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여기 와서 중증장애아동을 보고는 자신은 이 아이들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앞으로 부모님한테 잘해 드려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 다녀가시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사람인지를 느끼고 가시더군요.

 

 

사진/ 이정률기자  

정리/ 박숙경 기자

 
 

 

김인숙 원장 약력
 

 서울시립아동병원이 문을 연 이래로 50여 년만에 최초의 여성원장이 된 김인숙 원장은 1956년 진명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63년 이화여자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김 원장은 1년간 중부시립병원 소아과의사를 거쳐 1965년 자혜의원을 개업했다. 1975년까지 김 원장은 개업의로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동대문·도봉구 보건소 의사, 마포·중구·성북구 보건소 보건지도과장과 영등포구 보건소 의약과장을 거쳐 1991년 8월부터 올해 4월 1일자로 서울아동시립병원장으로 발령을 받기까지 양천구 보건소장으로 재직했다.

 


  이일영 교수 약력
 

  1945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한 이일영 교수는 경기 중고등학교를 거쳐, 1963년 연세대 재활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병원에서 일반의로 재직하던 중 재활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94년까지 21년간 뉴욕 세인트 메어리병원 인턴과정, 뉴욕대학 메디칼센터 전문의, 브록턴 서부 락스버리 VA병원의 재활의학과장 등을 거쳐 재활전문의로 일해왔다. 현재는 아주대 재활의학과 주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작성자박숙경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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