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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과 햇살] "제가 세상을 잘못 살았나요?"

행상하다 의경에 폭행당한 이동원씨

본문

[그늘과 햇살]

 

"제가 세상을 잘못 살았나요?"

행상하다 의경에 폭행당한 이동원씨

 

 

 

그가 가졌던 꿈, 그러나...

 

  지하철을 타면 빠짐없이 만나게 되는 이웃들이 있다. 갇힌 공간에서 일정시간 동안 거의 정지된 동작으로 있어야 하는 지하철 승객들을 대상으로 행상이나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올해 29살이 된 뇌성마비장애우 이동원씨 역시 이렇게 지하철에서 행상을 했었다. 사람들의 동정으로 볼펜 한 자루를 팔고, 사람들의 무언의 격려를 받으며 열쇠고리를 팔았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나이가 좀 많다는 것과 남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랄까.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병원, 무료학교, 고아원, 양로원 그리고 미혼모를 위한 모자원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다. 한마디로 갈 곳 없고 의지할 데가 필요한 사람들의 안식처를 만드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런 가난을 자신이 모두 구제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그런 자신만의 꿈을 꾸고 그것이 실현될 날을 꿈꾸며 사는 동안 어렵고 힘들어도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물건도 팔고, 매일 한 끼씩 굶기 운동도 하고, 가족들이 본인 몫으로 나누어준 돈도 합해서 어느덧 3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모았다.
  "이 돈은 내 돈이 아니에요. 가난하고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사업을 하는데 쓸 돈이니 십 원짜리 하나라도 손대면 안돼요."
  이동원씨는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경기도에 땅도 사 놓았다. 그 땅은 그의 꿈의 씨앗이었다. 그리고 틈틈이 공부도 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95년에는 방송통신대학 농학과에도 입학했다. 힘들고 외로운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그에겐 앞을 바라보고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보다.

 

 

행상 단속 의경에 소화기로 구타당해

 

  작년 1월 11일, 이동원씨에게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됐다. 오후 1시,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볼펜이 담긴 가방을 매고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볼펜을 팔려고 내려간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은 손님들이 아니라 잡상인 단속 중인 한 의경이었다. 아무것도 못팔게 돼있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았기 때문에 이동원씨는 아무 말 없이 의경이 지시하는 대로 역무실로 따라 갔다. 하지 말라는 행상을 하다 걸리거라 뭐라고 용서를 구하나 고민하며 따라 가는 이동원씨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역무실에 도착해서 이동원씨에게 쏟아진 건 따끔한 충고나 신원 조사가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였다.
  의경은 다짜고짜 소화기를 들어 이동원씨를 때리기 시작했고 욕설과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다. 이동원씨는 왜 때리냐는 말 한마디 못하고 실컷 두들겨 맞기만 했다. 의경 김준태(23)는 때릴 만큼 때리고 나서 이동원씨를 세면장으로 데려가 씻으라고 했다. 9시가 다 돼서야 이동원씨는 그 의경이 쥐어주는 3천원을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이동원씨는 갈비뼈 2개가 부러지고 뇌를 다쳤다. 외상도 문제였지만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그가 가해자에게 원했던 것은 보상금이나 위로금이 아니었다. 있었던 일을 솔직히 말해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김준태와 그의 아버지, 지하철의 담당소장이 왔을 때도 이동원씨는 "솔직하게"라는 말만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김준태도 처음에는 용서를 빌었고 이 일로 자신도 장애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되자 가해자인 김 씨는 "때린 적 없다"고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오히려"내가 피해자다. 단속하는 나에게 그가 반항을 하고 내 옷을 찢고 때려 내 안경도 깨졌다"는 등의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동원씨의 위태해 보이는 걸음걸이는 지나가는 아이가 밀어도 넘어질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20대의 건장한 청년을 때려 옷을 찢고 안경도 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집에 돌아온 이동원씨는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소화기"라는 헛소리만 했다. 보다못한 누나가 이동원씨를 한양대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병원에는 입원실이 없어서 그 날은 머리만 몇 바늘 꼬매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날 이후로 이동원씨는 지금까지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후유증으로 인한 두통으로 학업도 중단하게 되고 1년을 넘기고 진행중인 김준태와의 싸움은 몸도 마음도 다 탈진시켰다. 이동원씨는 지금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가해자 김준태는 공탁금으로 5백만원을 내놓았고, 혐의 사실도 인정했었다. 그러나 수사과정에서는 때린 사실을 부인했고 다시 벌금 1백 50만원의 약식기소로 피해자측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죄값을 치르는 건 놔두더라도 자신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데 모든 일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니. 다행히 김준태가 집에 찾아와 사과한 내용을 녹음기에 담아 놓았기 때문에 녹취록을 만들고 진단서도 함께 첨부해 정식재판을 신청했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노력으로 작년 10월 18일 1차 공판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가해자측의 재판연기신청으로 재판은 연기됐고, 이동원씨 측은 언제 열릴지 모르는 재판일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잘못 살았나 봐요"

 

  이동원씨는 8살이 될 때까지만 해도 "엄마"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혼자는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그 해를 넘기면서 상태가 많이 좋아져 일반 초등학교에도 다니게 되었다. 휘경동에서 신림동에 있는 삼육학교까지 다닐 때는 차를 6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독학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대학생이 되기까지 그에게는 주위의 모든 환경들이 극복해야 할 숙제들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번 일도 그가 극복해야 할 인생과제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상을 잘못 살았나 봐요"라며 좌절하는 이동원씨를 보면 이 문제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숙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위태로운 날들이었지만 이동원씨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힘겨운 걸음을 걷는 아들을 지켜봐 주시는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그가 꿈을 가지고 다시 한 번 힘찬 날개짓을 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해 본다.


 

글/ 서현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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