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바깥 외출을 하는데는 장애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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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바깥 외출을 하는데는 장애가 없어요"
- 뇌성마비 장애우 정치우·김미선 부부 -
"우리가 사회속에서 느끼는 벽은 결코 비장애우가 만든 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높이 쌓아간 거죠. 그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나오는 건 장애우 개개인에 따라서는 아주 쉽고 또한 아주 어렵겠죠.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 벽은 종이장 보다 약해서 부수려고 덤비면 금방 부실 수 있다는 거예요."
올해 스물아홉 살인 정치우 씨는 중증의 뇌성마비 장애우다. 그는 혼자 힘으로는 앉을 수도 없고 식사도 할 수 없다. 그는 누워서만 지내야 했다. 누워서 세상을 사는 그에게 세상은 한 올 만큼의 희망도 주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희망 없이 세상을 살아야 했다. 그에게 흘러가는 시간은 말 그대로 무의미한 시간에 지나지 않았고, 그가 눈을 떠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은 천정 벽지의 꽃무늬 뿐이었다. 그러기를 무려 이십여년, 그 잔인한 세월동안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방안에서 거세당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어야 했다.
내가 걸을 수만 있었다면, 아니 혼자 힘으로 앉을 수만 있었어도 나는 바깥 외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간절한 소망을 품어보기를 몇 해던가. 그는 한 올 꿈에 지쳐서 탈진해야 했다. 바깥세상을 보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은 이제 생전에는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낙심을 거듭하던 그. 그러던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이건 기적이 틀림없다. 그가 꿈에도 바라던 바깥외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삼년 전인 스물여섯 살 때까지만 해도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했다. 그즈음 그의 하루 일과를 보면 그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상에 진저리를 쳤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아침 아홉시에 어머니가 먹여주는 밥을 먹고, 부모님이 일을 나가고 나면 스포츠 신문을 훑어보는 데 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 유선 텔레비전이나 책을 보며 지내다가 저녁때 식구들이 들어오면 늦은 점심 겸 저녁밥을 먹었다. 그런 다음 다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나는 내 장애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포기했어요. 스무 살 때부터 내가 내 인생을 생각해봤는데, 앞으로 내가 뭘 하면서 살아가나. 이런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 해봐도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럴바에는 차라리 죽자. 그래서 한 번 자살을 시도해 봤어요. 면도칼로 팔목을 그을려고 시도했는데 손이 떨리면서 말을 안 들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죽는 것도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더군요. 그때 내린 결론이 그래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만 살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나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 거고. 그때 죽어도 늦지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냈어요. 결론적으로 그때 내 처지는 집 지키는 개만도 못한 신세였어요. 오로지 세월만 빨리 빨리 가라고 재촉만 했으니까요."
희망이 없다보니 그는 자연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분만 아니라 다른 장애우도 부정했다. 텔레비전에 장애우 모습이 비쳐지면 그는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꼬이고 뒤틀린 모습이 자신의 모습 같아서 그는 채널을 돌리라고 고함을 쳤다. 그런 아들 곁에서 어머니는 "내 아들이 저 장애우만 같아도..."라고 탄식을 토해내며 우시고, 그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이렇게 절망에 몸부림치던 그, 93년 12월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장애우에게 책을 무료로 빌려주는 단체가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바로 새날도서방을 알게 된 것이었다. 새날도서방을 알게 된 건 그에게 있어서 엄청난 행운이었다. 새날도서방을 알게 되면서 그는 바깥 외출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행운은 직접적인 연관은 아니지만 새날도서방이 매개가 되어서 그는 지금의 아내 김미선 씨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미선 씨와 그 사이에 있었던 사랑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 지금은 그의 이십여년만의 외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시급하다. 그는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돈이 없어 책도 못 사보는 처지에 책을 무료로 빌려 준다니까 그 기사를 보자마자 새날도서방에 전화를 했죠. 회원 가입을 하고. 책을 빌려봤어요. 그러다가 새날도서방을 통해 차량봉사단체 한벗회를 알게 되고, 상록수회도 알게 됐죠. 그때는 남에게 폐 끼치면 안 되는 줄 알고 있었고. 남에게 어려운 일을 시키지 말라는 부모님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차를 불러서 외출하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얼떨결에 장애우 단체 회원이 되니까 자꾸 모임이 있다고 나오라고 성화가 빗발치고. 비록 전화로지만 뇌성마비 복지관도 알게 돼서 같은 처지의 친구도 사귀게 되니까 한번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선뜻 휠체어를 사줬어요. 그 휠체어를 타고 나간 내 첫 번째 외출은 94년 4월 2일 상록수회 정기모임이었어요. 생애 처음 외출을 앞두고 그 전날 떨려서 잠 못 이룬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의 첫 번째 외출 장소는 서울 불광동에 있는 성민장애우교회였다. 우려했던 서먹서먹함은 전혀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이 첫 번째 외출은 그에게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큰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는 첫 번째 외출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실감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외출은 그해 4월 내내 이어진다. 마침 장애우의 날이 있는 달이어서 그는 여기저기 행사에 불려 다니고, 미선씨와 둘이서 놀러 다니기도 하면서 외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러한 외출을 통해 형성된 그의 의식의 변화는 가히 혁명적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다. "5월 달에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 하고 생전 처음으로 극장이란델 가봤어요. 장애우가 이용하기 편한 극장이 있고 편하지 않은 극장이 있더라구요. 장애우들도 문화생활을 누릴 수도 있는건데 왜 이런 걸 못 누릴까 생각하다가 못 누리는 게 아니라 안 누리는 거다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장애우 스스로가 문 닫고 안 나와 버리는 거다." 그런 생각 끝에 아는 친구들을 모아 가지고 정기적으로 극장 다니는 모임을 만들어 보자. 그렇게 해서 만든 모임이 그림상자라는 모임이에요."
말하자면 이제 그는 외출을 꺼리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같은 처지의 장애우들을 불러내 외출을 선도하는 적극적인 입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불과 한 달 만에 이루어진 변화였고 보면 가히 놀랄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외출에 늘 즐거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특히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 시선에서 큰 당혹감을 맛보아야 했다.
"바깥에 나가보니까 의외로 사회의 벽이 크더라구요. 특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을 견딜 수 없었어요. 이건 그냥 슬쩍 보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뚫어지게 쳐다보고 가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덜한데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끝까지 쳐다봐요. 그 시선들에서 어절 수 없이 심한 모멸감을 맛보아야 했어요. 다시 한번 내 처지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나가야하나?"
그러면 그는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 했을까?
"두 가지 길 밖에 없었죠. 시선을 받고서라도 나갈 것인가, 아니면 예전처럼 다시 집에만 있으면서 방귀신 될 것인가, 그런데 방귀신은 못 될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나가서 그 시선들을 맞받아 눈싸움을 하자는 거였어요. 실제로 나가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들을 맞받아 나도 뚫어지게 쳐다보니까 사람들이 무안해서 먼저 시선을 거두더라구요. 지금은 사람들이 쳐다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그 문제가 정말 절실했어요."
그는 요즘 외출의 기쁨에 푹 빠져 있다. 그는 한 달에 평균 네 번의 바깥나들이를 한다. 두 번은 모임에 나가고 두 번은 아내 김미선 씨와 함께 나간다. 그리고 중요한 건 외출의 성격이 변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한벗회 차량 봉사가 없으면 외출은 꿈도 못 꿨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이제 대중교통을 이용해 외출을 한다.
"하루는 아내가 우리 복지관에 가재요. 그래서 내가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가냐고 반문했죠. 그랬더니 아내가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된다는 거였어요. 모처럼 만의 아내 부탁이니까 할 수 없이 승낙은 했는데 과연 도와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라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죠. 그런데 직접 해보니 의외로 쉽더라구요. 역 입구에 가서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못했어요. 그런데 밑에서 올라오던 젊은 사람이 "내려갈래요?" 라고 먼저 묻는 거예요. 그래서 "좀 도와 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지하철을 탈 수 있게 되자 다음부터는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내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했죠. 그러면 사람들이 다 도와주더라구요. 얼마 전에는 그렇게 도움을 받아 인천 월미도에도 갔다 왔어요. 오전 열시에 집을 나서서 인천역까지 지하철를 타고 가서 거기서 택시를 타고 월미도엘 갔어요. 생전 처음 바다를 보는 기쁨도 컸지만 그것 보다는 비장애우들이 가는 유원지를 비장애우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크더라구요."
그는 외출을 통해 얻은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느끼는 벽은 결코 비장애우가 만든 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가 높이 쌓아간 거죠. 그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나오는 건 장애우 개개인에 따라서는 아주 쉽고 또한 아주 어렵겠죠.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 벽은 종이장 보다 약해서 부수려고 덤비면 금방 부실 수 있다는 거예요."
이제 그와 김미선 씨가 만나 같이 살게 되기까지 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자신의 결혼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 같은 중증장애우는 결혼을 꿈도 못 꾸지만 보세요. 나 같은 중증장애우도 얼마든지 결혼을 할 수 있어요."라고 강조한다.
그의 아내가 대 손 발이 되어주고 있는 김미선씨, 올해 스물다섯 살인 그녀 역시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장애는 그에 비하면 매우 경한편이다. 장애는 심하지 않지만 그녀 역시 장애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기는 그와 별반 차이가 없다.
여상을 졸업한 김미선 씨는 한동안 취업을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렇지만 그녀를 받아주겠다는 회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국립재활원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배웠다. 그녀는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기능을 습득했지만 역시 취업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분노했다. 그래서 취업을 포기하고 같은 처지의 장애우들 모임인 바롬회에 들어갔다. 바롬회는 뇌성마비 장애우 모임인데 그곳에서 간사로 일하면서 그녀는 한동안 뇌성마비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그 바롬회 사무실이 바로 새날도서방과 같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어느 날 우연히 받게 된 정치우 씨의 전화가 그와의 만남의 시작이었다. 만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아마 그때가 94년 1월 어느 날이었을 거예요. 책을 빌리기 위해 새날도서방에 전화 했는데 낮선 여자가 전화를 받더라구요. 그날 따라 우울하고 심심하던 참이어서 대뜸 심심한데 같이 얘기 좀 해요. 라고 말을 붙였죠. 서로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며 한 이십분 정도 통화했을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 날은 다시 전화해도 되냐고 물어서 승낙을 받고 전화를 끊었죠. 그 다음부터 한 달에 한 두 번씩 통화를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일요일 미선씨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왔어요. 갑자기 사적인 전화가 오니까 당황할 수밖에요. 옆에 어머니가 있어서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대답하고 우선 전화를 끊었어요. 하지만 나도 눈치가 있잖아요. 그 전화를 계기로 미선 씨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 앍게 됐죠.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는 하루에 한 번씩 꼭 꼭 내가 전화를 했어요. 내가 전화를 걸지 않으면 미선 씨가 전화를 걸어오고, 그때 나는 결혼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외로운 처지에 타인과 하루에 한 번씩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죠."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았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사는 얘기 했어요. 텔레비전 연속극 얘기도 하고 스포츠 얘기도 하고 그냥 얘기하는 게 좋았으니까요." 라고 말한다.
그와 미선 씨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은 전화통화를 시작한지 한 달 후였다. 마침 그도 집에 혼자 있고 미선씨도 집에 혼자 남겨지게 된 어느 날 밤 밤새 내내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는 "미선 씨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 미선 씨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해 달라."고 수줍은 고백을 했다. 그날 미선씨도 "치우 씨도 나에게 특별한 존재다."라고 고백을 했다.
이렇게 해서 어렴풋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긴 했지만 그는 여간 불안하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미선 씨가 지신이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을 떠날 것이 분명하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는 못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괜히 심각한 관계 만들어 봐야 나중에 가슴 아픈 사람은 나다 라는 생각이 들어 미선 씨에게 자신의 장애 상태를 숨김없이 고백했다. 그리고 사진도 보내줬다.
그런 다음 그는 초조하게 미선 씨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미선 씨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전화도 계속 오고, 그의 장애에 대해서 일언반구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미선 씨의 반응에서 자신을 얻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한 번 만나자는 제의를 했다.
그 해 4월 20일 장애우의 날 행사장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가 바깥나들이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바로 그 시기였다. 그날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사만 한 후 헤어졌다. 그날로부터 한 달여의 시간의 지난 후 그는 미선 씨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미선 씨가 마침 집에 놀러 왔길래 나는 너를 좋아한다. 나는 나의 손 발이 되어 줄 사람보다는 내 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몸을 당신 몸 처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미선 씨가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는데, 내 예상에는 펄쩍 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겠다구 그러더라구요. 그러면서 자기는 부족하다.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을텐데 그래도 괜찮겠냐고 그러더라구요. 아 이제 됐구나 싶었죠."
그런데 된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 했지만 결혼은 두 사람이 좋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집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미선 씨 집이었다.
미선 씨 얘기를 들어보자
"부모님께 치우 씨 얘기를 하고 결혼 하겠다고 했더니 절대 안 된다는 거였어요. 엄마는 내가 반대한다고 되니, 본인들 의사에 따라야지 하면서 양해를 했는데 아버지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아버지는 숫제 말도 못 꺼내게 하셨어요. 침묵시위를 하신거죠. 그러니 방법이 없었죠."
그러기를 3개월. 고통스런 날들이 이어졌다. 이제 어떤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됐다고 그는 판단했다. 더 이상 미선 씨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는 볼 수 없었다.
"안되겠다. 싶었어요. 우리가 이렇게 가만있으면 세상이 우리를 갈라놓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미선 씨한테 너 집 나올래. 아니면 여기서 끝낼래 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한 십분여 생각하더니 집을 나오겠다고 하더라구요. 그해 12월 30날 미선이가 집을 나왔어요. 나오기 전 며칠 전부터 옷을 가방에 넣어서 조금씩 옮기고, 마지막 날 친구와 여행간다고 얘기하고 집에서 나온거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미선 씨와 그가 같이 산 것은 올해로 2년째이다. 비록 가슴 아프게 시작한 결혼 생활이지만 후회는 없다. 내년 봄에는 미뤘던 결혼식도 올릴 예정이란다.
두 사람의 결혼이 가능했던 것은 아무래도 미선 씨의 결단이 큰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어쨌거나 그의 심한 장애는 여성으로 하여금 결혼을 주저하게 만들 중요한 걸림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중 생각은 안 했어요.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으니까 온 거죠. 내 눈에 뭐가 씌었나봐요. 그냥 치우 씨가 좋더라구요."
그녀는 수줍은 표정으로 웃는다. 활짝 웃는다.
옆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그.
"미선 씨와 같이 살게 되면서 여유가 생겼어요. 세끼 밥도 다 먹고 어머니가 안 계셔도 어디 가는데 어려움 없고. 이게 행복이란 건가봐요."라고 거든다.
두 사람에게 걱정이 있다면 그건 하루속히 경제적인 여건을 갖춰야 한다는 조바심이다. 그러기위해 치우 씨는 요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이제 저는 사회인이 됐어요. 예를 들어보면 친구가 밖에서 나올래 라고 전화가 오면 그거 전 같으면 차량 때문에 일주일 있어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지금은 그래 기다려. 그러고 그냥 가 나가요. 그런면에서 나는 장애가 없어요."
그는 다음 외출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퍼들었다.
글/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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