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사람] "그룹홈은 장애우들의 독립심을 키워주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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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은 장애우들의 독립심을 키워주는 공간입니다"
광주 엠마우스복지관 관장 천노엘신부
대담-박영식(광주 임마누엘 교회 목자, 전 장애인선교단체 연합회 회장)
"광주 엠마우스복지관 관장 천노엘 신부는 우리나라 정신지체 장애우 복지에 있어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천 신부는 전국에서 최초로 그룹홈을 만들었고, 그밖에 여러 곳의 시설과 프로그램을 통해 정신지체인 복지에 헌신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도 정신지체인과 함께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어 존경을 받고 있는 천노엘 신부를 광주에서 역시 장애우 복지에 매진하고 있는 박영식 목사가 만나 보았다"
81년 그룹홈 처음시작
박영식: 평소 천 신부님이 하고 계신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직접 천 신부님을 만나 뵙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올해로 신부님이 한국에 오신지 38년째가 된다고 하는데 어떤 동기로 한국에 오시게 됐는지요?
천노엘: 저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64세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장차 선교사로 일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져 제가 195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그 후 24년간은 성당 신부로 교회 울타리 내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광주 농성동 성당에 있었을 때, 그때가 70년대인데, 그 당시에 제가 몸담고 있는 지역 안에 버려진 사람들을 수용하는 갱생원이 있었습니다. 그 갱생원에는 6백명 정도를 수용하고 있었죠. 그 6백 여명 중에는 알콜 중독자도 있고, 결핵환자도 있고, 고아들과 장애우들도 있었습니다.
박영식: 70년대라면 시설이 굉장히 열악했겠군요.
천노엘: 그렇죠. 목욕탕도 없었으니까요. 그 갱생원은 제가 신도들하고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갱생원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 중에서 특히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제 마음을 끌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원생들은, 말하자면 자기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남이 시킨 대로만 하고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관심을 많이 갖게 되기 시작했고, 관심이 발전해서 그분들과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주임신부직을 그만두고 정신지체 장애우 그룹홈을 시작할 때는 광주 지역에는 그분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박영식: 신부님이 광주지역에서 그룹홈을 시작한 시기를 1981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그룹홈은 생소한 복지시설이었죠.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처음 정신지체장애우 그룹홈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노엘: 그랬죠. 제가 처음 그룹홈을 시작할 때, 갱생원에서 정신지체 장애우 여성 한분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 다음 자원봉사자,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광주 주월동 일반 주택에서 그룹홈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룹홈을 시작하면서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위해 말하고 관심을 표명한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이분들과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나름대로는 정신지체인의 옹호자로서 사회에다 질문을 던진 것이죠. 그렇게 제가 그룹홈을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부모님들이 찾아 와서 "우리 집에도 정신지체장애우가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어서 그냥 감춰놓고만 있다"며 그룹홈을 확대해 줄 것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 둘씩 그룹홈이 늘어나게 된 거죠.
그 후 그룹홈을 바탕으로 85년 지금, 여기 광주시 북구 운암동에서 정신지체 장애우를 위한 엠마우스 복지관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독립 여건 마련해 주는게 중요하다
박영식: 그 당시 언론을 통해 신부님이 하시는 일을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는 그룹홈이 초기였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특히 요즘도 문제되고 있는 장애우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반응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시지는 않았는지요?
천노엘: 다행스럽게도 거부반응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그룹홈에는 소수의 장애우들만 기거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설의 대규모화는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룹홈은 봉사자까지 합쳐서 6명 이상은 받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6명의 그룹홈이 우리 그룹홈 중에서 제일 큰 그룹홈입니다.
박영식: 몇 군데의 그룹홈이 있고, 지금 그룹홈에서 살고 있는 장애우들은 몇 명입니까?
천노엘: 지금 여섯 군데의 그룹홈이 있는데 저희 집은 장애우 세분과 봉사자 두명 나, 이렇게 여섯명이 살고 있고, 하남 아파트에 있는 그룹홈은 네 명이 삽니다. 그 부근 그룹홈에는 직장에 나가는 두 분의 장애우가 있는데 그 분들은 자취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한군데 그룹홈은 여성 한 분이 장애우이고 나머지 두 명은 비장애우 여대생입니다. 이렇게 세명이서 한 아파트에 같이 살고 있죠. 나머지 그룹홈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장애우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룹홈을 운영하면서 갖고 있는 원칙은 장애우들이 다양한 삶을 접하고 나중에는 자립할 수 있게 단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박영식: 서울에서 운영되는 그룹홈들을 보면 서울시의 지원으로 직원 한 명이 상주해 있으면서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룹홈과 신부님이 운영하는 그룹홈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천노엘: 그룹홈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가 운영하는 그룹홈 중 하나는 정신지체인 두 분만 사는 곳이 있습니다. 그 그룹홈에는 직원도 봉사자도 없습니다. 또 다른 곳은 자원봉사자 대학생 두 명이 장애우와 같이 그냥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태는 다르지만 한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반드시 그룹홈은 거기서 장애우들이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 자립하는 중간단계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장애우들이 자기들끼리 살도록 하고 대신 그룹홈을 담당하는 사회사업가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그룹홈을 둘러보고 혹시 문제가 없는가를 파악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장애우들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예산이 있어도 그룹홈에는 잘 쓰지 않습니다. 무조건 지원을 하면 융통성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룹홈에서 살고 있는 장애우들은 지원이 덜 필요한 사람도 있고 많이 필요한 사람도 있는데 그게 융통성 없이 사람 수만 파악해서 지원을 하다보면 그룹홈은 절대 발전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될 수 있는 한 장애우들의 독립심을 키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들이 하는 일은 그것입니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데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라, 그 나머지 부분은 우리가 조금 도와주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그룹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영식: 실제로 그룹홈에 살다가 자립해서 나간 정신지체 장애우도 있나요?
천노엘: 있습니다. 그룹홈을 거쳐 보호작업장에 있다가 독립해 나간 장애우들이 약 20여명 정도 됩니다. 우리는 장애우들이 독립해 나가면 반드시 사후지도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반드시 모임을 가지고 장애우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는 않나, 귀를 기울입니다. 제가 한마디 덧붙이자면 국가에서 장애우들을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 것보다 훈련 시설을 많이 만들어 독립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경제적으로 훨씬 이익입니다. 이걸 정책 당국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조기교육과 개별화 교육
박영식: 다시 그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며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그룹홈에서는 성당에서 사용하는 양초를 만들어서 납품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룹홈 외에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시설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천노엘: 그룹홈 외에 레스파익트홈(쉼터, 일종의 정신지체 탁아시설)이 있고, 보호작업작도 있고, 교육관도 따로 있습니다.
박영식: 레스파익트홈에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천노엘: 레스파익트홈은 지역사회에서 정신지체인 부모들을 지원하는 곳입니다. 부모님들이 정신지체 장애우를 양육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이나 결혼식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잠시 맡길 곳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모들을 위해 며칠 간 부모들을 대신해 정신지체인을 맡아주기 위해 설립한 시설입니다. 우리가 이 시설을 세운 게 2년 전인데, 부모님들의 호응이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서비스를 해주는 시설이 없다면 부모들이 몸이 불편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정신지체인을 그냥 수용시설로 보내버릴 마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박영식: 말이 나온 김에 현재 신부님이 운영하시는 엠마우스 복지관에서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십시오.
천노엘: 먼저 조기교육센터가 있습니다. 조기교육센터에서는 정신지체인의 조기교육뿐만 아니라 부모님 교육에도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조기교육 센터에서는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매일 부모님이 오게 만들고 있습니다. 와서 거울 안쪽에서 교사들이 자기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장면을 보게 하는 거죠. 그걸 보고 집에 돌아가서 부모들이 똑같이 아이들을 교육시키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정신지체인 교육에 큰 효과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첫째가는 교사인 거죠. 이런 교육시설이 복지관 말고 담양에 또 한군데 있습니다. 또 우리 복지관은 정신지체인을 대상으로 개별화 프로그램을 실시합니다. 특수학교나 일반학교 특수학급을 졸업하고 갈 곳이 없는 장애우들이 우리 복지관에 오는데 장애우들이 복지관에서 3년간 개별화교육을 받고 나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먼저 부모님들이 놀라는데 자기 자식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 갖고 있다가 교육 결과로 장애우들이 스스로 시내버스도 타고, 식사도 하고, 신변처리도 하면, 깜짝 놀라는 거죠.
박영식: 현재 조기교육 센터와 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우들은 몇 명입니까?
천노엘: 조기교육센터 30명이 이용하고 있고, 복지관은 35명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집중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기 때문에 무조건 많은 수의 장애우는 받지 않습니다.
박영식: 그러니까 엠마우스 복지관에서 하는 일이 그룹홈, 쉼터, 교육시설 운영이군요. 그밖에 하남공단에서 보호작업장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보호작업장 운영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천노엘: 그룹홈이나 복지관에 있는 장애우들이 일반회사에 취업을 하면 좋은데 사실 어렵습니다. 그래서 복지관에서 교육을 받고 난 장애우들은 보호작업장에 갑니다. 지금 보호작업장에는 30여명의 장애우들이 있는데, 우선 보호작업장이 공단 안에 있어서 장애우들이 비장애우들하고 똑같이 출퇴근을 하니까 자신감을 갖게돼 좋아합니다. 지금 보호작업장에서는 양초를 만들고 있습니다. 단순작업이죠. 그리고 시내 큰 제과점의 하청을 받아 생일 케이크에 쓰이는 꽃과 리본도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직종을 개발하는 것인데 사실 직종 개발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모색은 하고 있습니다.
대형시설 절대 반대한다
박영식: 화제를 바꿔 전반적인 정신지체 장애우 복지에 관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합니다. 정신지체 복지에 있어서 외국에서는 초기에는 따로 타운 같은 대규모 시설을 만들어서 정신지체인을 격리 수용했지만 지금은 탈 시설화가 주류를 이루면서 시설이 그룹홈 같이 소 규모화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외국에서 실패한 대규모 시설을 건립하려는 시도가 있어 우려를 감출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정신지체인애호협회에서는 부모들의 돈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도시가 아닌 외곽지역에 대규모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만약 그 계획대로 대규모 시설이 생기면 장애우들이 사실상 격리된다는 것입니다.
천노엘: 저도 그 계획을 들었습니다. 저도 아까도 말했지만 대규모 시설은 절대 반대합니다. 지금 현실에서 부모님들은 자식 사랑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사실상 부모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죠. 심한 말로 표현하면 그런 계획을 추진하는 부모들은 말뿐이지 자기 궁리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정신지체인들은 단순히 먹고 자는 것 밖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사회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백화점도 못 가고 노래방도 못 가고 그렇게 될 때 정신지체인들의 삶의 질은 형편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정신지체인들은 그냥 놔두면 괜찮을 텐데 다른 사람들의 엉터리 행위 때문에 더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박영식: 그러니까 신부님 얘기는 정신지체인의 입장에서 시설의 대형화는 안 된다는 거죠?
천노엘: 그렇죠. 시설의 대형화를 추진하지 않더라도 이 사회에서 얼마든지 정신진(지)체인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네에 그룹홈 하나나 두 개 정도 생기는 것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대형시설을 설립하니까 말이 많은 거죠. 대형시설은 외곽지역이 아니라 도시 속에 있어도 문제가 많습니다. 대형시설은 일반사람들과의 접촉이 어려운데 그렇게 되면 마찬가지로 정신지체인을 격리시키는 행위입니다.
박영식: 그런데 부모들은 나름대로 절실하기 때문에 시설건립을 추진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내가 죽고 나면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장래 문제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천노엘: 그러니까 그룹홈이 많이 생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아이들의 장래 문제가 심각하니까 우리가 하나 둘씩 그룹홈을 만들겠다, 대신 국가는 장애우들의 생활비를 지원해 달라. 이렇게 부모들이 운동을 해서 외국에는 전부 다 정신지체인의 장래문제는 그룹홈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나라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있으니까 지방정부에서 그 지역의 장애우들을 돌보도록 부모들이 촉구를 해야 합니다.
박영식: 그 연장선상에서 부모님들에게 그동안 정신지체인들과 함께 해오신 경험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천노엘: 자기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아이가 독립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라는 것입니다.
정부와 지역정부 상대로 압력 행사해야 한다
박영식: 신부님이 지방자치 얘기를 하시니까 생각이 나는데, 우리 광주시는 예산 자립도가 전국 광역시 중에서 제일 낮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책 입안자들이 장애우복지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관심도 없을 뿐 더러 예산 지원도 적고, 그래서 광주 지역의 장애우복지가 점점 낙후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천노엘: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말 광주시는 예산이 없습니다. 지역에 큰 기업체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예산 문제보다도 심각한 것은 정책입안자들의 의지 문제입니다. 정책입안자들이 수시로 바뀌고, 장애우복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까 장애우복지가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애우복지는 늘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박영식: 어떻습니까? 그 동안 정신지체인과 함께 생활해 오시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천노엘: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정신지체인들과 같이 살면서 밤에는 맥주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같이 가고, 그렇게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굳이 어려움이 있다면 제가 워낙 바쁘다보니 식구들과 노래방을 자주 가지 못해 그것이 안타깝습니다(웃음)
박영식: 신부님으로서 교회 일은 안 하십니까?
천노엘: 여기서 우리식구들하고 노래방 가는 시간도 없는데 언제 활동합니까?
박영식: 그렇군요. 신부님 말씀을 듣다보니 아쉬움이 남는 게 신부님이 그렇게 일찍 정신지체인을 위한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룹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바람직한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대가 돼서 정신지체인데 대한 복지정책을 수립할 때 하나의 지침이나 방향으로 받아 들여졌으면 지금보다 훨씬 정신지체인 복지가 나아졌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장애우 문제 중에 제일 심한 게 바로 정신지체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장애문제를 얘기하면서 정신지체장애 문제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라는 반성을 해봅니다. 신부님이 보시기에 정신지체인 복지를 위해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천노엘: 목소리가 통일이 안되고 있는 게 문제지만 이 나라에는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 친척들, 형제들, 또 옹호자들 이렇게 계산해보면 정신지체인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목소리를 모아서 정부와 지역 정부를 상대로 장애우 복지정책을 수립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영식: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정신지체인 복지를 위해서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천노엘: 고맙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정리/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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