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하늘 뜻" 꿈꾸는 가죽공예가 이우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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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뜻" 꿈꾸는 가죽공예가 이우기씨
편집부
비록 반반한 작업실이 없다고 해도, 이름 거창한 대회의 수상 경력이 없다 해도 10여년 동안 가죽공예를 업으로 삼아 살고 있는 이우기(37)씨의 얼굴은 큰 시련을 이겨온 위엄과 밝은 빛이 느껴지는 진정한 "가죽공예가"라 부를 수 있다.
"15년 전에 전기 감전 사고로 다쳤거든요. 경기도 평택서 전기일 했어요. 양쪽 하체를 다 절단해야 한다고 했는데 하나는 절단이 됐고 한쪽은 의족이에요. 그 후로 이것저것 다 했어요. 장사도 해보고 몇 년간 집밖에 나가지 않고 방 생활도 하고 방황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서울에는 83년에 올라왔어요."
전기 기술자였던 그가 사고로 장애인이 되자 장사도 돈만 날린 뒤 실패로 끝났고 고향인 충남 온양에는 먹고 살만한 일거리가 없었다. 마침 텔레비전에 가죽공예가 소개되는 것을 듣고 어머니 금반지를 얻어 서울로 올라왔다. 도곡동의 한 학원에 다니며 한 시간 가르치면 몇 시간을 더 하면서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학원이 문을 닫게 되는 바람에 이씨가 가죽공예를 정식으로 배운 기간은 한 달밖에 되지 못했다. 다행히 같은 학원에 다니던 아줌마가 같이 일해보자고 해서 잠실에 있던 아줌마 가게에 2년을 얹혀살며 기술을 배우면서 생활을 이었다. 가게 수익이 변변찮아 월급도 없고 먹질 못해 살이 쏙 빠졌지만 그래도 아줌마는 고마웠던 사람이라고 이씨는 기억하고 있다.
가게를 나온 뒤에는 혼자 일을 얻어다 했는데 집주인의 소개로 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그의 일생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같은 장애우를 보면서 위안도 얻고 힘든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들 둘과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이씨는 자신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86년에 상계동으로 왔다.
좁은 방을 빌어 "밀알의 집"이라 이름 붙이고 자기처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 가족도 없고 집이 없는 장애우들을 모아 가죽공예를 시작했는데 가죽공예품의 판로가 어려워 작년부터 꽃꽂이용 오아시스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름도 "재활의 집 하늘 뜻 회"로 바꿨고 상계3동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집 식구 여섯이 하루 종일 일하면 3만원 정도 벌어요. 하지만 이것도 꽃집이 불황을 타기 때문에 들어오는 일거리가 없어서 올해부터는 악세사리 조립을 할 생각이에요. 집도 올해 안으로 철거가 되는데 50평정도의 지하나 2층이나, 아니면 땅만 있더라도 하우스를 하나 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요. 일을 해보니 장애우들이 해서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노력에 딸린 거지, 비록 재활의 길이 어렵다 해도 이 속에서 인내를 배우고 일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또 고통도 나누게 되고, 도울 수도 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니까 장애우들은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집을 거쳐 가는 장애인들은 1년 평균 20여명, 그 중에는 신용카드 몰래 쓰고 도망가 버리거나 이런 저런 피해를 입히고 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우기씨는 그가 어려운 만큼 서로가 돕지 않고는 살수도 없고 장애우끼리는 먼저 돕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비록 하루종일 여섯 사람이 3만원 벌이를 하더라도 직접 일해서 정당한 돈을 번다는 것이 중요하기에 당분간 그의 본업인 가죽공예에 매달리지 못한다 해도 조금도 아쉽지 않다.
그는 도봉구의 장애우만이라도 서로 돕고 살자고 작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하늘 뜻 회"가 안정된 기반을 잡을 때까지는 자신의 가죽공예를 미룰 생각이다. 그 뒤에 그는 먹고살기 위해 팔리는 상품보다 진짜 장인의 혼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가질 것이다. 이것이 그의 소중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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