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현대판 인신매매(?) 용역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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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인신매매(?) 용역노동자
정규사원 오십명에 용역사원 오백명. 저임금의 산업구조 속에 노동시장의 판도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근로자파건법"을 통해 국제적인 용역업까지 인정하려는 정부의 힘겨루기에 나선 노동계의 속사정 그리고 오늘도 용역회사를 통해 일자리를 찾는 우리 이웃들의 불안하고 고단한 삶을 만나본다.
오숙민 (함께걸음 기자)
<애사심이요?>
만일 당신이 급히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특별히 부탁할 만한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학력이 높거나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어 "어서 옵쇼."라고 환영하는 곳도 없다고 치자.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 딱히 마음에 드는 일자리는 나타나지 않고 시간만 자꾸 지날수록 마음은 점점 초초해지고 거기다 딸린 식구라도 있으면 월급이나 근로조건을 따질 겨를도 없이 우선 써주겠다는 데만 있으면 달려갈 판이다. 그런데 갈 만한 직장에선 당최 뽑아주질 않는다.
이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혹시 울며 겨자 먹기로 직업소개소를 찾아 골라주는 아무 회사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선 손에 잡히는 직장엘 들어갔는데 막상 알고 보니 정사원이 아니라 용역업체 직원이었던 적은 없었는가?
국민, 외환, 비씨 이름만 들어도 번듯한 카드 3사 중의 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김지은(23)씨는 요즘 들어 부쩍 일손을 놓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 지금 일하고 있는 카드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총무과에서 정해주는 대로 용역회사인 한국산업안전회사 직원으로 계속 일을 하게 됐으나 용역회사 직원으로 남아 있는 한 늘 따라 다니는 어두운 전망과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지은씨가 일하는 회사는 전체 정규직원 1백여명 중 여직원이 50여명인데 용역회사에서 파견된 여직원은 2백여명이나 된다. 그나마 다른 카드회사 용역사원과는 달리 정규직과 같은옷을 입고 성희롱을 당하거나 반말을 듣지 않는 게 좀 낫다고 한다.
"구십 삼년 이월 오일부터 이 회사에 다니지만 소속은 한국산업안전회사 직원이에요. 사무직 보조로 이 회사 노조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월급은 회사에서 주는 게 아니라 용역회사에서 나옵니다. 사실 저희는 보너스도 없습니다. 정직원은 떡값이다. 경조사나 때가 될 때마다 돈이 나오는데 저희들은 하나도 없어요. 회사에 행사가 있을 때도 우리는 빠져야 하니 소속감도 없고 우리가 일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도 없고, 여기 있다가 개인회사를 가거나 다른 용역회사 다니는 방법 뿐 정규직으로 가긴 어렵고 어쩔 수 없이 용역사원으로 일할 수밖에 없어요."
그가 보여준 월급 명세서는 상여금, 교통비, 생리수당 등의 항목이 빠진 41만 2천 8백원으로 여기서 이것저것 뺀 실수령은 39만 6백 50원이었다. 이는 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정규 직원 월급의 60% 정도 밖에 안돼 입사 당시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앉아서 돈버는 용역회사>
관리부에서 일하는 서은희(23)씨도 처지가 같기는 마찬가지다. 올 5월이면 만 2년이 되는 서은희씨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당할 때라 막상 소개 받았을때 괜찮겠구나 하고 용역회사에 들어갔는데 요즘은 후회가 된다고 한다.
서은희씨가 속한 "태평양인력관리공단"이 회사와 해마다 재계약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서은희씨는 회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가 들어올 당시만 해도 "태평양인력관리공단" 직원 60여명이 같은 카드회사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같은 용역회사 직원이래도 우리 회사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문제가 있다 해도 대책이 없기 때문에 서로 나설려고 하지 않아요. 재작년에는 관리부 용역직원 40여명이 "정식직원도 아닌데 카드회사 옷을 왜 입어야 하느냐, 옷을 입힐려면 대우를 떳떳이 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다 잘리고 고등학교 졸업생을 받아들여 용역으로 돌린 것 같아요. 카드회사에서 용역회사로 나가는 임금은 개인당 정규직의 80%인 55만원에서 60만원인데 질제 우리가 받는 것은 42만원 정도예요. 결국 용역회사는 앉아서 돈벌어 먹는거죠."
이처럼 회사와 노동자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며 소개비를 챙기는 용역회사는 처음 경찰청이나 구청에서 허가한 청소와 경비 업무에 한해 제한되었는데 업무영역이 확대돼 지금은 사무직 근로자를 공급하는 용역회사만 서울 50여 곳이 넘을 정도로 성업을 거듭하고 있다.
은행, 보험, 카드 회사 여사원 중 상당수는 용역하원이고 큰 병원이나 대학 등에도 용역사원이 없는 데가 없을 정도며 심지어는 기아자동차, 대림건설 등 대기업 생산현장에도 용역회사가 들어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당연한 듯 넘겨버리지만 사실 용역회사 설립이 "불법"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70∼80년대 섬유업계가 호황을 누리면서 효성기업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던 동양나일론의 경우는 용역사원이 대부분을 차지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동양나일론은 그동안 자연 퇴사로 비는 바리를 용역사원으로 메꾸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데 노동조합도 별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다 올해 들어 "소사장제"가 도입된다는 위기감이 생기자 뒤늦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동양나일론 안양공장 노동조합 김동환 사무장이 89년 입사 당시 "카페트과" 직원이 1백 6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80명으로 줄고 나머지는 용역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사장은 빼킹과에서 손을 떼고 지금 빼킹과 반장님이 부서를 맡는 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러면 일하던 사원은 다른 파트로 가서 일하고 그 부서를 용역사원이 채우는 거지요. 지금 현장 작업조는 고용불안에 대한 위기심이 많죠. 자기 부서가 어떻게 될 것인지, 자기가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소사장제하면 상여금이 일단 안나가니까 회사입장에선 인건비가 줄어드는 거죠."
그러나 이처럼 회사 직원이 회사의 한 부서를 독립적으로 맡아 운영하는 "소사장제" 역시 변형된 불법용역이라 할 수 있다.
외부에서 시설라인을 갖고 들어오면 불법용역이 아닌 "도급"으로 합법화되지만 동양나일론은 시설라인 설치도 안하고 정식직원이 아닌 이가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어 명백한 불법에 해당한다.
물론 불법 용역을 쓰는 이유는 인건비 절감과 더 나가서는 노동조합을 통제할 수 있는 효과 때문이다. 자연감원이나 소사장제를 통해 줄어드는 인원을 용역사원으로 메우면 우선 조합원 수가 줄어들고 임금협상이나 단체행동을 할 때도 많은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단체행동을 하더라도 회사에서 용역사원으로 대치해서 중요한 라인을 돌려버릴 수도 있는 이런 처지까지 가버려요. 조합활동의 효과도 없고요. 우리가 제일 우려하는 것은 조합의 힘이 더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상당히 걱정이 돼요."
그의 말처럼 용역회사를 통한 근로자 파견제는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켜 예전보다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낮추기에 근로자파견법 제정은 결국 전제 노동자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 파견업은 부분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되는 특별한 영역에 제한되어야 하는데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똑같은 임금을 받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한 임금을 중간착취하는 불법용역은 더욱 성행하고 사용자의 노동통제는 교묘하게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은 요지경(?)>
용역회사 중 국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천개발"은 80년 자본금 2억으로 시작해 지금은 자본금 20억에 4천여명 직원을 거느린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신천개발은 구청과 경찰의 허가를 받아 청소, 경비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웬만한 국책은행, 법원, 경찰청 등의 건물 시설관리도 맡아서 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보통 용역회사에서는 노동조합을 만들기 상당히 어려운데 신천개발에는 시설관리노동조합이 있어 다른 용역직 시설관리인보다는 좋은 조건에 있다. 하지만 박명석(34) 노동조합 위원장은 일반 회사의 노동조합에 비해 어려운 점이 더 많다고 한다.
"이용기업과 용역회사의 계약서를 보면 일방적으로 이용기업이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자기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때나 노동조합이 결성된다거나 쟁의가 발생할 때는 계약을 해지한다는 식이에요. 이렇게 안 좋은 상태에서 노동조합이 용역회사와 협상을 할려니 한계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용역회사도 피해자일 수는 있지만 용역회사 사장은 손해 볼 게 없는 거지요. 노동조합이 고용주를 고발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결국은 용역회사가 없어져야 우리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직장이 언제 바뀔지도 모르는 불안감에서 해방돼서 직접 고용형태로 갈 수 있겠죠."
박위원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시설관리직종끼리 뭉쳐서 고용촉진법에 명시된 대로 "근로자파견업은 노동조합만이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실행 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 직접 관공서 등의 이용기업과 계약을 맺는 길밖에 없다고 밝혔다. 같은 용역업종 노동자들이 뭉쳐 불법용역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근로자파견업은 노동조합의 권한>
근로기준법 제8조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 한다"는 조항과 직업안정법 제 17조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는 근로자공급사업을 행하지 못한다."는 조항,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시행령 제 8조 2항 "국내의 근로자공급사업의 허가를 낼 수 있는 자는 노동조합으로 한정 한다"는 조항이 그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노동부의 방관 속에 불법 용역회사 전성시대가 찾아왔고 법으로 막을 수 없으리만큼 많아졌으니 합법화하자는 억지 주장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또한 87년 이후 저임금으로 더 이상 노동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여전히 기술 중심의 산업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는 사용자들의 주장에 무릎을 꿇고 마침내 93년 7월 "근로자파견법"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정부나 사용자는 "파견제도가 노동시장의 자연적 현상인데다 기업의 비정규적 자리를 메꾸고 노동자들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근거를 들며 이 법의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근로자 파견형태는 외국처럼 6개월 미만의 파견직이 아니라 1년 이상 상시고용형태가 85%이상을 차지할 뿐 아니라 "삼성제약"처럼 노동조합을 없애기 위해 일반 사원과 똑같은 임금을 주면서까지 일부러 파견직을 악용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단순히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 아닌 것만으로 분명하다.
작년 한 해 노동조합은 물론 노총까지도 국제적인 용역업을 인정하는 "근로자파견법"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가까스로 법 제정 여부는 올해 국회로 넘어오게 되었다.
결국 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밀려 근로자파견법 제정은 되지 않았지만 노동계에서는 올해를 그 고비로 보고 있다.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고용안정쟁취특별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전국시설관리노동 조합연합의 안중원(36) 위원장은 "원래 파견업은 갑자기 업무가 증가한다거나 급작스런 고용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장기적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을 때 단기간에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상시고용형태가 대부분"이라고 밝히고 "정규직 고용으로 늘어나는 인건비를 줄이는 것으로 경쟁력이 살아난다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위원장은 또 "한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그 회사의 식구가 아닌 객식구 형태로 일을 할 때 그 생산성이 얼마나 될 것이냐, 이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이냐를 볼 때, 상당히 위험하다"고 용역회사의 노동자 파견이 몰고 올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근로자파견업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영에도 득이 없어 선진국에선 70∼80년대를 고비로 사양사업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는 85년도에 도입된 일본의 근로자파견법의 예를 들며 법 제정을 서두르는 실정이다.
현재 전국의 용역업체는 약 4천 8백개 그리고 여기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는 1백만명이나 돼 전체 고용형태의 1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무직 파견의 경우는 60%가 20대 초반의 여성이고, 18%가 미성년자인 것으로 밝혀져 이들 여성과 미성년자의 취업구조가 심각한 지경에 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보험회사나 증권회사, 언론사에도 파견업으로 임금 등을 중간 착취당하고 있는 인원이 20%가 넘고 있어 이제 용역 노동자의 문제는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마저 바꾸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계에서는 아마도 올 해 정기국회에서 정부가 "근로자파견법"을 통과시키려 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하고 있어 가을께쯤 근로자파견법의 법제정을 앞두고 노동계와 정부가 한바탕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이를 위해 지난해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전노대)가 출범하면서 각 노동조합에 근로자 파견제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전노대 안에 고용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법제정 반대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자파견법을 둘러싼 노동계와 정부의 힘겨루기는 저임금 구조로 유지되는 산업구조와 용역회사를 통한 중간착취가 성행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역할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인지 향후 노동시장의 판도를 가르는 한판 승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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