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생활탐험]잃어버린 빛,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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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빛,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이환주씨가 겪은 의사와 병원-
아이를 낳으러 들어갔다 또는 간단한 귀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영영 세상을 떠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한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 "의료사고"와 이를 둘러싼 "의료분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밀실에서 이뤄지는 고도의 전문행위"인 의료사고에 도전해 스스로의 권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본다.
<수술하고 눈이 더 안보여>
"…저는 만 35세의 미혼남성으로 눈이 나빠 1992년 13일에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4월 15일에 퇴원을 하였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는 수술하기 전의 눈보다 눈이 더 나빠졌기에 의사에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수술하기 전의 눈이 틀림없이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시일이 지나면 눈이 좋아진다고 하기에 집으로 왔습니다만 집에서 일도 못하고 계속 요양중입니다. 그래도 회복할 기미가 없기에 감히 억울하여 곽형우 박사와 이은경 의사를 고발합니다."
지난해 6월 25일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환주씨는 보사부 장관 앞으로 자신의 눈 수술을 담당했던 경희의료원 곽형우 박사와 이은경 의사의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보냈다.
충청남도 서산 다솜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이환주씨는 어릴 때 "삼눈"을 앓은 것 외에는 안경 한번 써본 적이 없었으나 90년경부터 낮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지만 밤만 되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눈이 나빠져 91년 10월 요리사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단순히 시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집근처 의정부 성심안과를 찾은 이환주씨에게 의사는 "여기서는 잘 모르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으나 특별한 이상을 못느껴 이듬해 2월 12일 경희의료원을 찾았다.
시력검사, 망막전위도검사(초음파를 이용하여 눈의 뒷부분을 찍는 것)등 한 달간에 걸친 검사 결과 이환주씨는 양쪽 눈의 각막과 초자체 혼탁(눈 속에 들어있는 동자와 액체가 혼탁해진 것) 그리고 망막박리(암력이나 당료, 합병증 등으로 망막이 떠 있는 상태)라는 판정을 받고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1차로 망막박리수술을 하고 2차로 각막이식수술을 하면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외국인이 가장 싫어한다는 "13일의 금요일"인 3월 13일 오후 1시 안전지수 30센티미터로 왼쪽 눈보다 조금(?) 더 좋은 오른쪽 눈 수술에 들어갔다.
이환주씨가 오른쪽 눈을 택한 것은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눈을 수술해 좀더 잘 봐야겠다는 나름대로의 생각 때문이었다.
4월 15일 경희의료원을 나온 이환주씨는 통원치료를 받았으며 그 당시만 해도 지팡이 없이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술 받은 오른쪽 눈의 상태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수술을 했는데 왜 잘 안보이냐"는 이환주씨의 물음에 의사들은 "수술은 성공했는데 우리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기다려보라"고 할 뿐이었다.
불안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좋아지겠지" 하면서 약을 먹고 기다렸으나 점차 상태가 악화되자 마침내 이환주씨는 의사들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수술성공 오리려 기뻐해야>
8월부터 두어 달 동안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고발한다 어쩐다"싸우기 시작했지만 의사들은 눈 하나 까딱 않고 "수술 후유증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소리와 함께 "고발하려면 하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칠 분이었다.
날마다 병원에 찾아가서 환자를 못 받게 방해하는 등 나름대로 싸움을 했지만 병원 측에서 들은 척도 하지 않자 이환주씨는 지난해 7월 23일 청량리 경찰서에 "업무상 과실상해에 관해 철저히 조사해 의법처리 해 달라"는 진정고소를 냈다.
그러나 두 달이 넘도록 경찰서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 궁금해진 이환주씨가 담당자에게 처리 결과를 물어보자 "대한의학협회에 기록 카드를 보냈는데 잘못이 없는 것으로 나와 벌써 무혐의 처리됐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경찰의 무성의한 처리에 실망한 이환주씨는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싶어 10월 14일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에 "업무상과실치상"으로 고소장을 내고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것을 선언했다.
수술을 담당했던 경희의료원의 곽형우, 이은경 의사와 함께 소환된 이환주씨는 담당검사에게 "의사들이 망막박리 수술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건 믿는다. 하지만 수술 전에는 보였던 눈이 왜 안 보이는지 이것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담당의사인 곽형우씨는 "이환주씨는 수술 전 안전지수가 30센티미터로 거의 실명상태였으나 망막전위도 감사수치가 0으로 나타났으나 수술 후 떠 있던 망막이 다시 붙어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이환주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같이 수술에 참여했던 이은경씨는 "수술 후에 보이던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이환주씨가 말하는 시력의 의미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지 모르겠다"며 "주관적으로 말하는 눈의 시력은 어떤지 모르나 병원에서 객관적으로 측정한 시력의 결과는 수술 전보다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이환주씨가 성공적인 수술에 대해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의사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수술 전에는 보이던 눈이 수술 후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환주씨의 막연한 주장(?)은 "객관적인 검사결과 오히려 좋아졌다"는 의사들의 논리적인 반박에 밀리기 시작했다.
"의료사고는 다른 사건보다 배나 어렵다"는 푸념과 함께 "증거가 될만한 다른 결과"를 가져오라는 검사의 요구에 백병원에서 또다시 전위도 검사를 해 촬영기록과 소견서를 제출했으나 결과는 역시 "혐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검사면 검사지 정식재판 요구했는데 마음대로 이렇게 무혐의 처리할 수 있느냐"고 따지자 담당검사는 "이런 사건은 검사 임의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억울하면 항고하라"고 말했다.
<잇따른 무혐의 처리>
북부지청의 무혐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환주씨는 93년 2월 18일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를 제기하고 "재수사와 공소제기"를 요구했다.
항고장을 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어 물어물어 담당 검사를 찾아간 이환주씨는 사건이 이미 무혐의 처리됐다는 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흥분했다.
"정식재판을 요구했는데 왜 무혐의 처리했느냐"는 이환주씨의 말에 담당검사는 "이미 북부에서 무혐의 처리된 거라 더 이상 조사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억울한 사람을 이렇게 할 수 있느냐, 언론에 공개해 고발하겠다"고 검사에게 대들었지만 이미 마무리된 자신의 눈 수술에 관한 법적인 시비의 처리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법적으로는 끝난 상태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겁니다. 지금까지 손해 본 것 모두 보상받아야지 억울해서 못 살아요."
의정부시 가능동 집에서 만난 이환주씨는 검찰의 처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수술해서 보이면 어떻게 하든지 내가 벌어먹고 살수 있을 것 같아 이백만원이나 들여 수술했는데 아예 안 보인다면 수술은 뭐하러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환주씨는 의사들이 수술하기 전 이미 "실명상태"였다는 말에 대해 "수술하기 전에는 조그만 티 같은 것은 못 봤지만 큰 것은 다 봤다"고 주장(?)하면서 "그때는 아무 도움 없이 강원도 충청도 다 잘 다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도 환하게 밝은 날 바깥에서는 어렴풋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는 이환주씨의 하루일과는 매주 토요일 대치동 나눔교회에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찬양의 꽃다발" "내일은 푸른 하늘" 그리고 "교통방송"과 "뉴스"로 하루종일 라디오 옆에 붙어 앉아 이리저리 다이얼을 돌리는 것과 어머니로부터 "이리저리" 핑계를 대서 담배 값을 뜯어내는 것이 고작이다.
한가지 희망을 걸어보는 것은 얼마 전 동회 사회복지전문요원으로부터 국가에서 영세장애우들에게 무료로 백내장, 녹내장 수술을 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마감 이틀전인 5월 29일 가까스로 등록을 마쳤는데 각막이식수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을 수도 있을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국에서 4백명도 채 안 되는 숫자를 수술해 주는 것에 비해 신청자는 몇 배가 넘어 까다로운 절차를 거처야 되기 때문에 꼭 된다고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환주씨는 "백내장 수술 등 모든 것이 결정되면 대한의학협회부터 찾아다니면서 차근차근 다시 싸울 생각"이라고 말해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의료사고가족연합회 결성돼>
1991년 말 현재 보사부가 집계한 총 의료기관 수는 23,373개소로 매년 8퍼센트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처럼 의료기관이 늘어남에 따라 "의료행위에 의해 일어난 예상하지 못했던 나쁜 결과인 의료사고"와 "의료사고를 전제로 의료인과 환자 측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일컫는 의료분쟁" 역시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행위일 뿐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대부분 수술실이나 진료실 등 공개되지 않은 장소에서 행해지고 있어 의료사고의 피해 당사자조차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으며 이 때문에 많은 경우 자신이 의료사고의 피해자인 줄도 모르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알고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보통 3-4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게 걸리는 재판기간을 거치면서 대부분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고 보상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파탄나기 일쑤인 것이 현실이다.
미국식 자유방임제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우리의 보건의료는 시장 경제의 원리에 의한 민간의료체계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따라서 의료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아닌 "상품"으로 존재해 왔으며 의사 한 사람이 하루에 2백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열악한 병원의 인적구성 그리고 지식을 독점하는 의료인과 수용자인 환자간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근본적으로 의료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사고와 분쟁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의료계의 기피와 당국의 무관심 때문에 의료사고와 의료분쟁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으로 대략 한 해에 약 2천여 건 정도의 의료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될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의료분쟁의 올바른 조정을 위해 정부에서 1981년부터 "의료심사조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나 10년이 넘도록 단 한 건의 분쟁조정 실적이 없는 등 유명무실한 기구가 돼버려 의료사고와 분쟁에 대해 피해자인 환자와 가족들의 불신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현행 의료제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자구책으로 91년 8월 피해당사자들의 모임인 "의료사고가족연합회"(회장 이진열)가 결성돼 실질적인 피해구제기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12일 "의가협" 사무실을 찾은 세 살 박이 고아람 사건은 의료사고가 얼마나 "뜻박의" 상황에서 일어나는지를 말해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에 살던 아람이가 교통봉사대의 주선으로 심장수술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것은 지난해 12월. 93년 2월 백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고 심장벽에 구멍이 뚫리는 병인 "할로씨 증"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중환자실로 딸을 보러갔던 아람이 아버지는 딸의 다리가 약간 불그스름해진 것을 보고 "열이 나서 그런가" 하고 덮고 있는 수건을 벗기려고 했으나 간호원이 못 보게 막아 "아마 수술 뒤끝이라 아직 회복이 안돼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술 다음날부터 아람이의 양쪽 볼 복숭아 뼈 위 종아리부터 발끝까지 부분이 마치 나뭇가지로 마르듯이 타 들어갔으며 한사코 아람이의 발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던 병원에서는 갑자기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술의 후유증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 줄만 알았던 아람이네 식구는 병원 측의 지시대로 수술을 받기 위해 아이를 안고 가던 중 썩어 들어간 발목이 그대로 툭 떨어지는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된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양쪽 발목이 썩어 들어가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설명 한마디 없이 그저 "목숨만 건진 것도 다행"이라며 항의하는 가족들을 오히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라고 밀어 부쳤다.
<의료사고의 심각성>
이처럼 의료사고는 의료행위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이 그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의료사고의 책임문제를 명확하게 가려 의료 측과 피해당사자의 이해를 조정해 줄 수 있는 기구와 함께 피해구제기금의 설립이 필요한 실정이다.
서울대 병원은 의료분쟁을 줄이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으로 지난 84년 "의료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진료기록을 공개해 정보의 독점으로 인한 분쟁의 소지를 줄여나가고 있으나 아직까지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진료기록 등의 공개를 꺼리고 있어 의료행위를 둘러싼 의료인과 환자간의 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의료분쟁의 신속한 해결과 적절한 보상을 위해 73년 일본의사회가 주체가 된 "의사배상책임보험제도"를 설치·운영하고 있는데 의학·법률 등 10명의 각계 권위자가 참석하는 배상심의위원회는 의사의 과실이 인정될 경우 최고 연간 1억엔까지 배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역시 배상책임보험제도가 의료과실에 대한 배상제도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최근 보험수지의 악화 등으로 의사들 스스로 손해배상청구에 대비해 자기보험체제를 갖추는 등 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는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치며,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으며, 환자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며 …위협 앞에서도 의료지식을 인도에 어긋나지 않게 사용하겠다"는 히포크라데스의 선서와 어두컴컴한 방에서 담배연기와 라디오로 인생을 태워버리고 있는 이환주씨의 암담한 현실이 만나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글/전홍윤
환자의 알 권리 위해 의료기록 공개해야
-의료사고가족연합회 이진열 회장-
"사고를 당한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현행 제도에서 구제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없는 점이 무엇보다도 아쉽습니다. 분쟁해결을 위해 보사부 내에 의료심사조정위원회가 각 시도에 구성돼 있는데 유감입니다만 82년부터 10년이 넘도록 이 기구의 도움을 받았다든가 구제를 받았다는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의료인들로부터 일방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을 수 없다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91년 8월 10일 "의료사고가족연합회"를 결성한지 어느덧 3년. 의가협은 7백30여명의 회원을 가진 의료사고와 분쟁의 실질적인 피해구제자로서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왔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주사 맞을 때 보고하고 맞는 것도 아니고 치료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알아가면서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치료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일어나는 장애발생은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애석한 통계자료지만 한 해에 2천여 건의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우리가 발간한 "의료사고 실태보고서"에도 나와 있지만 한 해에 접수한 사고가 1천 건이 넘으며 이중 의료사고로 밝혀진 것이 5백32건에 이르는 실정입니다."
87년 아들의 뇌종양을 잘못 진단한 의사를 상대로 3년이 넘는 법정투쟁을 벌여 승소하면서 우리 의료의 모순된 체계를 깨달았다는 이진열 회장은 "당시만 해도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에 의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다"고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아들의 사고를 겪으면서 자신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병원의 잘못된 행위로 고통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됐으며 현행 의료제도에서 피해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이러한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이 문제를 제도화하는 데 앞장서야겠다는 심정으로 피해자와 가족들의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법 자체에 있습니다 환자가 자신의 치료과정에 대해 알 권리가 있음에도 현행 법률은 병원 측의 진료기록을 환자에게 공개하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현재 유일하게 서울대학 병원만 진료기록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를 모든 병원에 확대하는 것이 분쟁을 막는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또한 "의료분쟁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법학과 의학을 겸비한 법의학자를 많이 배출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자동차사고를 보험으로 처리하듯 의료사고 역시 보험제도를 통해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구제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진열 회장은 "앞으로 정부기관에서 우리 같은 민간단체의 이런 요구를 과감히 수용해 환자의 권리의식확보와 신뢰받는 의료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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