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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빼앗아 간 인창상가를 돌려주십시오"

부친 대신해 법정싸움에 나선 옥경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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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아간 인창상가를 돌려주십시오"
                    -부친 대신해 법정싸움에 나선 옥경국씨-

 "우리 집은 전경환씨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우리를 망하게 했는지 아직도 불가사의입니다."
 5공당시 대표적인 권력형 부정행위의 하나로 꼽히는 인창상가 강탈 사건 피해자 옥창호씨(67·예비역 준장)의 아들 옥경국씨(41)는 아직도 그 날의 악몽을 잊지 못한 듯 몸서리를 쳤다. 옥경국씨가 말하는 인창상가는 서울 고속터미널 호남선 옆에 있는 8층짜리 상가빌딩을 가리킨다.

▲옥경국씨

 옥경국씨에 따르면 인창상가를 빼앗긴 후 가족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인창상가만을 생각하다 이제는 노이로제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9식구가 월세 방을 얻어 살고 있다"고 현재 상태를 밝힌 그는 "생활의 곤란도 곤란이지만 아버님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6살 때 관절염을 앓아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그는 그래서 인창상가를 되찾기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옥경국씨가 밝힌 그의 부친 옥창호씨가 전경환씨에게 인창상가를 빼앗기게 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성동화학이라는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던 옥창호씨는 1976년 서울시로부터 터미널 주변 체비지 1천여평짜리 2필지를 불하받았다. 그 땅에다 건물을 짓기 시작한 옥씨는 1979년 1월, 공사 시작 1년 6개월만에 지하 1층 지상 8층의 복합상가건물을 완공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터미널이 들어서지 않아 상권이 채 형성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분양한 상가를 임대 계약한 상인들이 점포문을 열지 않아 상가운영이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침체까지 겹치면서 적자가 누적되고 입주한 일부 상인들의 예약해약 요구가 계속되자 옥씨는 결국 81년 8월 현재 주유소가 있는 상가 주변 땅을 21억원에 매각해 부채를 갚으려 했다. 그러나 부채 액이 커 그 돈으로 미처 채무변제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건물이 넘어가게 되자 다급한 옥씨는 그 해 12월 서울신탁은행에 건물을 담보로 20억원을 융자받아 채무를 정리했다.
 이 시점에 등장한 사람이 재미교포를 위장한 김용진, 김호진 형제였다. 옥씨에 따르면 전경환씨 사주를 받아 상가를 빼앗기 위해 상가 내에 가든상사라는 유령회사를 차린 이들은 상인들을 선동해서 "장사가 안 되는데 건물을 경매라도 시켜서 보상금을 받아야 할 것 아니냐"며 관리비 불납운동을 벌였다.
 건물이 단전 단수될 경우 상인들에 의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옥씨는 어떻게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빚을 얻으려 했지만 이미 배후에 전경환씨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아 빚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어디 가서 법률자문을 얻으려 해도 전경환씨 얘기만 나오면 모두들 몸을 사렸다.
 은행은 은행대로 사유재산을 보호해줘야 함에도 은행이 앞장서 입주하려는 상인들에게 "여기는 경매될 물건이니 들어오지 마라"고 공문을 띄어 상가 운영의 정상화를 막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건물은 87년 3월 경매에 붙여졌다. 옥씨가 더욱 억울해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경매에 붙여질 당시 은행에 진 빚 20억원 중 13억원은 갚고 7억원만 남았으며 7억원은 상가 건물 한 층만이라도 분양이 이루어지면 충분히 갚을 수 있고 수시로 상가 활성화방안을 만들어 은행에 제출했는데도 이 7억원을 빌미로 은행이 옥씨의 진정을 무시하고 건물을 경매에 붙였다는 것이다. "은행이 전경환씨 압력을 받지 않고는 그렇게 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옥경국씨는 말하고 있다.
 당시 시가 2백5십억원에 달하는 상가는 경매에서 가든상사에서 삼륭농산이라고 상호를 바꿔 응찰한 전경환씨 대리인 김용진씨에게 80억5천5백만원에 낙찰된다. 검찰 수사는 당시 전경환씨가 인창상가를 매입하기 위해 새마을 국민기금을 담보로 대출 받은 20억원, 재단법인 지역개발조사연구단 명의 예금을 담보로 대출 받은 9억4천만원, 무단 인출한 새마을 조기 체육회 기금 3억5천만원 등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건물을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옥창호씨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법원이 일차적으로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한 직원 임금 1억3천여만원을 약속을 어기고 해결해 주지 않아 이 해 5월 21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구속돼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다.
 돈 한푼 건지지 못한 상황에서 옥씨 구속은 가족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시련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용산 세무서에서 건물이 경매됐음에도 불구하고 양도했다며 양도소득세 32억원을 내라고 통고장을 보내온 것이었다. 옥씨 가족이 그 돈을 내지 못하자 세무서에서는 옥경국씨 할아버지가 사는 이태원 집을 차압했다. 이 차압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전경환씨에 의해 집안이 풍지박산난 옥경국씨는 88년 4월 11일 6공화국이 들어서자 김씨 형제와 전경환씨를 걸어 대검찰청에 고소했다. 그런데 이 고소건은 아무 연락이 없다가 통고도 하지 않은 채 90년 4월 26일 무협의 처리됐다. 그리고 권력형 부정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던 전경환씨는 91년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 나왔다.  
 억울함을 감출 수 없었던 옥경국씨는 올해 3월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청와대에 진정서를 냈다. 5월 3일 사건을 동부지원에 넘겼다는 통보를 받은 옥씨는 좋은 결과를 기다렸지만 통보가 오지 않아 6월 1일 동부지원을 찾아가 봤다. 그러자 동부지원에서는 92년 3월 16일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며 발뺌하는 것이었다.
 옥경국씨는 지금 이렇듯 법원은 외면하지만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용산 세무서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는 상태이며 법원과 전경환씨를 상대로 시비를 갈리 준비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현재 인창상가는 서울 시내 아무개 호텔 사장 어머니 박아무개 노파 앞으로 명의 이전돼 있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소유자는 여전히 전경환씨라는 것이 옥경국씨 말이다.
 "장남으로서 집안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나서고 있는 겁니다. 전경환씨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하루속히 상가를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옥경국씨 경우는 부도덕한 권력이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생생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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