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 사람]사회복지의 주체라는 자부심으로 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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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과 조화" 주제로 열리는 "제11차 아시아 정신지체인 복지대회">
"제11차 아시아 정신지체인 복지대회"가 서울에서 열린다. 오는 8월 22일부터 27일까지 열리는 이 대회는 "평등과 조화"를 주제로 30여 개국의 정신지체관련 교수와 교사, 사회복지사, 의사, 공무원, 관련기관 종사자, 부모 등 1천여명이 참가하게 된다.
대한정신박약자애호협회(이하 애호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정신지체인 복지에 관한 프로그램을 주제로 한 논문발표와 세미나 등의 학술대회가 열리고, 전시회와 음악회 등의 각종 문화행사도 다채롭게 펼쳐진다.
애호협회에서 위탁운영을 하고 있는 서울특별시정신박약자복지관(이하 정박자복지관) 홍보부에서 일하고 있는 박태규씨(36). 이번 대화의 홍보책으로 요즘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유치하게 된 대회의 의미와 바람을 이렇게 말한다.
"아시아지역 정신지체 복지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고 새로운 학술이 창출되는 장이 될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 정신지체인 복지의 큰 전환점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지체인의 교육과 의료, 고용에 관한 연구발표와 정책건의가 이루어지는 만큼 정신지체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우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도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어우러지는 장애우 문화의 기반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스포츠·음악·미술·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는 장애우 문화, 복지문화가 확충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봅니다만‥‥‥"
박태규씨는 "장애우 부모와 재활관련기관들과의 구체적인 접근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에 전문가와 부모가 직접 참여하여 보다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번 대회는 새로운 재활이론과 기술, 제도와 정책이 보급되는 것 이외에도 정신지체인 복지에 관한 이론적 바탕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덧붙인다.
<지역주민과 더불어 사는 "그룹 홈">
8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정신지체 장애우를 "정신박약자"란 이름으로 불렀다. "지능이 지체되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이 용어의 뜻 너머에 "왠지 나와는 다른 사람" "우리 사회 속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사람" "수용시설에 보내져야 할 사람"으로 인식되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차별과 편견이 정신지체 장애우의 의료와 교육, 고용의 기회를 박탈했던 일차적인 요인이 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정신지체 발생률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산업이 발달되고 문화가 발달될수록 정신지체로 분류되는 장애유형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정신지체인의 복지서비스는 매우 낙후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정신지체인의 재활이 어렵고, 이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죠. 앞으로 의료, 교육, 고용 등에 있어서의 재활을 목적으로 한 정신지체인의 복지가 장애우 복지의 주류가 될 것입니다. 즉 미래의 복지사업 분야이니 만큼 복지제도의 초점이 모아져야 된다는 것이죠."
정박자복지관은 1986년 12월에 개관, 정신지체 장애우들이 복지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이용시설로 서울에서 유일무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신지체 장애우도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하며 각각의 장애정도에 따른 복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가치를 내걸고 6년 동안 정신지체 장애우 복지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것이다.
서울시의 지원으로 작년 10월에 개설한 "그룹 홈"(장애우 공동생활 가정)운영은 정박자복지관이 정신지체인의 사회적 자립과 탈시설화를 통한 사회통합에 목적을 두고 실시한 야심 있는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중계동과 가양동 시영아파트 4가구에서 실시 중인 그룹 홈에는 생활보조원 1명과 18세 이상의 신변처리 가능한 정신지체인 4명이 함께 산다. 저소득층 자녀에게 우선 입주권이 있으며 모두 취업을 하여서 일정한 소득을 갖고 있다. 또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구적으로 입주해 있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신지체 장애우들은 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가족구성원의 개인 생활을 존중해주는 법을 배우며, 지역주민들은 장애우를 이웃으로 인식하여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어 장애우와 지역주민이 상호 적응하여 지역공동체를 일구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하는 박태규씨는 "그룹 홈이 장애우의 사회통합에 실효를 거두어 그 필요성이 널리 파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현장 종사자>
복지관 개관 직후인 87년 1월에 입사한 박태규씨의 직업관은 남다르다. 영남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박태규씨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권유로 전공과는 무관한 조금은 낯설은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리고 6년, 그는 정신지체 장애에 대해서 또 정신지체 장애우에 대해서 차별과 편견이 가득 찼던 지난 몇 년을 현장에서 부딪치며 생활해 왔다.
사실 박태규씨에 있어서 "정박자복지관의 직원"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뜻을 세우고 한 길을 올곧게 가야 하는 삼십대 청년의 가슴에 새로운 불을 당긴 계기가 된 것이다.
"복지관으로의 진입"은 그가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면서 "사회를 올바르게 움직여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하는 고민과도 맥을 같이 하게 되는 그의 또 다른 선택이었다.
"어떤 형태의 직업이든 우리 사회를 올바로 이끌어 가는 영향력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고 굳이 장애판에 발을 들여놓게 된 동기를 밝히는 그는 타 분야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정신지체 장애우 복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정신지체 장애우가 우리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자리 매김 하게끔 정신지체 장애우의 자립을 위한 대책 마련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의료, 교육재활 프로그램이나 상담활동, 또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직업재활과 관련된 자립작업장 운영, 그룹 홈에 이르기까지 정박자복지관을 통해 펼치고 있는 사업들은 아직 작은 움직임이지만 점차로 우리 사회에서 정신지체 장애우 복지의 중심이 되는 사업들로 정착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 곧 "사회 사업은 인간을 위한 사업"이라는 철학을 품고 있다. "인간을 위주로 하는 미래산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 속에서 사회 사업에 종사하는 종사자들의 처우는 열악한 편이고, 그것은 넓게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사회복지 예산의 문제와도 결부가 된다.
"우리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위상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동안 사회복지 현장에서 종사하는 종사자들은 사실 막연한 소명의식이나 사명감, 또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봉사정신으로 일해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의 주체로서 현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고,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다른 분야로 옮기는 사람도 있었던 분위기였죠. 묵묵히 일하는 우리 종사자들에게 정부가 알아서 배려해주어야 하는데 "울지 않으면 젖을 주지 않는 행정"이었다고나 할까요. 이제 복지행정이 바뀌어야 합니다."
아울러 "종사자의 질도 높아져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 일로서 사회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기관들이 운영의 효율성을 제대로 찾아 그 묘를 잘 살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름만 걸어 놓는 복지관이 아니라 이용자인 장애우들이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장애우의 자립대책 방안을 강구하는 등 책임 있고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물론 복지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산 확충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전문성과 행정력 겸비한 전문가로>
일을 떠나 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다는 그는 정신지체 장애우 복지의 핵심부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가 맡고 있는 "기획 홍보계장"일은 외부와의 접촉을 필수로 하는 일이다 보니 유독 정신지체 장애우를 우리 사회속의 구성원으로 알려내는 일에 더 열을 올린다.
그는 지난 해 복지관 개관 5주년 때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정신지체 장애우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담은 사진 100여점을 전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8월에 열리는 "제 11차 아시아 정신지체인 복지대회"때도 전시회를 할 계획을 세우고는 있지만 복지관의 예산 문제로 결재가 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올해 36살의 노총각 박태규씨.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행정을 공부하여 전문성과 행정력을 겸비한 전문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는 박태규씨. 그는 그가 관계하고 있는 작은 일에도 성실과 책임을 다하는 장애판의 일꾼이다.
글/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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