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호주 에디스코웬대학 사회정책학 교수 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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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중앙대 호주학 방문교수로 국내에 들어와 4개월 일정으로 중앙대에서 사회정책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형식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1945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났으며 육이오동란 중 부모를 잃고 한 쪽 팔이 절단되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고아원과 재활원에서 생활하면서 선교사들과 외국 원조단체의 도움으로 학업에 전념, 1969년 중앙대 초청 장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런던경제정치학 학교에서 사회행정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어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사회정책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호주 모나쉬 대학에서 역시 사회정책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런던에서 사회사업가로 근무한 경력도 있는 김 교수는 그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1년간 비스마르크 사회정책을 연구한 후 1975년 호주 퀸즈랜드대학 사회정책학 교수로 부임했으며 모나쉬 대학과 웨스턴트레일리아 대학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호주 에디스코웬대학 사회정책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 교수는 비교사회정책학의 권위자이기도 한데 북한의 사회복지 실정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올바른 사회복지는 혜택을 받는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게서 선진국의 장애우복지정책과 북한의 장애우 복지 실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먼저 교수님이 전공하신 사회정책학의 개념부터 정리해 주시죠. 보통 사회복지라고 얘기하고 정책학이라는 말은 생경한 것 같은데 알기 쉽게 사회정책학은 어떤 학문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에 나와보니 사회복지라는 개념을 많이 쓰고 있더군요. 사회복지 속에는 사회정책과 사회사업이 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사회정책은 말 그대로 정책적인, 즉 미시적인 거고 사회사업은 치료적인 면이 많은 방법론적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문제가 발생하면 치료만 하려고 했습니다. 정책이 없었다는 거죠. 복지국가의 목적이라든지 복지가 담당해야 할 과제들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서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사회복지 하면 사회사업이거든요. 지나치게 치료적인 면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사회정책을 전공하게 된 것도 그런 경향 때문인데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미국으로 공부를 많이 하러 갔습니다. 미국의 사회복지는 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또는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회사업적인 측면이 강하죠. 저는 국가가 주도하고 사회가 책임을 지는 보다 포괄적인 분야에서의 사회복지와 사회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영국과 독일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결론 삼아 사회정책과 사회사업을 반드시 구별지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 둘은 사회복지의 양면성으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 병행돼야 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 국내에도 사회정책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많습니까?
= 최근에 들어와서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새는 그전과 달라서 사회정책이 너무 인기가 좋아서 문제입니다. 80년대 중반부터 이런 경향이 나타났는데 특히 젊은 학자들에게는 정책학이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다가가는가 봅니다. 일반 사회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등 모든 것을 포괄해서 사회복지를 고민하는 거죠.
- 선진국의 사회복지는 어디까지 다다라 있습니까?
= 우선 한국보다는 정치적인 영향이라든지 정치적인 변덕스러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문제해결의 의지를 가지고 상당히 제도적으로 성실하게 사회복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호주 독일은 자기 나라의 문제는 자기들의 실정에 맞게, 나아가 능력에 맞게 정책을 개발시켜 나가는 것이 특징이죠. 한국 같은 경우 다른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을 빌려오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의 정책이 과학적이지 못한데 비해 서구는 과학적으로 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 나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 아무래도 사회복지에 관한 사회적 관심도나 국가의 예산편성이 우리나라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 호주 같은 경우는 전체 정부예산의 48%정도가 사회복지비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를 비교 연구할 때 어느 나라는 지엔피(GNP)의 몇 프로가 사회복지비로 들어간다고 물량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복지의 전달이라던지 운영이 더욱 문제지요. 운영이 잘못되면 돈이 다른 데로 흘러간다고 볼 때 국가예산만 가지고 비교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뭘 잣대로 비교해야 되겠습니까?
= 돈이 얼마 들었냐는 것보다도 사회복지 대상계층이 자기들이 받은 복지혜택에 대해서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느냐, 즉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평가기준에 따라 판별되는 게 아니고 사회복지 제도로서 혜택을 받는 당사자들이 자기들이 받는 복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게 잣대가 되어야 합니다. 영국, 독일, 호주는 이런 게 잘돼 있으며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장애우 복지정책만 보더라도 사회복지 전문가가 규범적으로 이게 좋습니다 라고 일방적으로 정책을 내놓지 않습니다.
장애우들이 직접 정책개발에 참여하도록 하고 장애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줘서 장애우들이 생각할 때 제일 타당하고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정책을 보장해 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해서 될지 몰라도 지금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장애우 체육대회가 진정 장애우들이 원해서 여는 것인가, 저는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우 체육행사에 쓸 비용이 만일에 5천만원이 있다면 이 5천만원을 장애우 복지를 위해서 가장 잘 쓸데가 뭐냐 하는 것을 장애우들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장애우 스스로가 웃을 수 있는 차원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그들의 욕구에 직결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돈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쪽에서 하려고 하는 과정이고 우리나라와의 차이죠.
그리고 요새 선진국의 장애우 복지에서 가장 크게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이 뭐냐면 시설보호에서 비시설보호 위주로 정책이 수립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우의 사회적응이 말과 이론적일 뿐이 아니라 실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 장애우들이 사회에서 적응하려면 사회에서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장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예컨대 기본적인 생계를 정부가 책임져 준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 생계보장은 연금과 사회보장으로 기본적으로 되어있는 거고, 그러나 사람이 돈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사람대접을 받아야 하고, 매일 직장에 나가야 되고, 친구도 사귀어야 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어야 되고, 이러한 문제가 사실은 장애우들의 재정적인 복지구조보다 더 시급한 겁니다. 즉 인식을 말하는 거죠. 영국과 독일은 이런게 잘돼 있고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진국에 가면 여기가 장애우들의 천국이 아니냐고 말을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장애우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엇비슷하다고 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근본적인 문제는, 즉 사회적 편견이나 장애우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든지, 또는 소외시 당한다든지, 동등한 대우를 못 받는다든지 이런 문제는 선진국도 다 잘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 저희들이 생각하기엔 선진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우들의 취업문제가 그 중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느냐는 판단이 듭니다. 일반기업체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과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보호작업장 중 어떤 형태가 더 좋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 장애우들을 기본적으로 세 가지 부류로 나눠야 겠지요. 저같이 아무 제약 없이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제약이 있기 때문에 보호작업장에 취직해야 할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도저히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사람이 있겠지요. 한국에 오니까 고용촉진법과 보호작업장이 있던데 이런 제도가 좋은 점은 장애우가 공개경쟁을 해서 노동시장에서 직장을 얻지 못할 경우에 직장을 보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제도가 잘못되면 장애우들은 항상 그런 특별한 제도를 통해서 취직할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비장우에게 줘요. 능력이 있어도 장애우들은 보호작업장에서 일해야지 어떻게 사회에서 일하려고 하느냐는 편견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영국 같은 경우 장애우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마련해주기 위해서 엘리베이터 운전이나 주차장 관리인 같은 특정 직업을 배려해 줬어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장애우들은 으레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것 아니면 수위, 주차장 관리인, 그것도 아니면 지하철에서 신문을 파는 사람 정도로 고정시켜 본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제도들이 선의의 목적을 벗어나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유도해 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더 강화시키지 않느냐고 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장애우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강화시키는 제도는 시행하지 않는 게 좋은 것입니다.
-화제를 바꿔서 한때 영국에서 직접 사회사업가로 일한 경험도 가지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정책을 개발하시다가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시니까 어떠셨습니까?
= 한마디로 이론과 실제의 차이가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치가들이 만들어 놓은 입법을 시행할 때 생기는 시행착오가 많다는 거죠. 제가 미국에 6개월 간 교환교수로 가 있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보면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정치가들이 실현 불가능한 걸 너무 많이 요구하고 있다는 거죠. 하나의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그 정책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 그걸 봐야 하는데 아이디어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그런 정책을 수립하는 걸 많이 봤어요. 너무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법입니다.
- 들은 바로는 북한에도 다녀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 북한에 다녀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전공이 비교사회정책학이다 보니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의 사회복지제도를 비교하고 싶었고 또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복지 쪽에서 통일된 장래를 생각하면서 연구를 하기 위해 상당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료를 모으기 위해 갔습니다.
- 장애우 복지 쪽 일각에서 열악한 지금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모델로 사회주의를 상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동구권이 무너지고 나서 그런 방향에 대해 혼란을 많이 겪고 있는데 어떻습니까. 교수님은 사회주의 국가의 사회복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 우리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너무 모릅니다. 저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확실히 구별하는데 공산주의는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사회주의만 있는데 사회주의는 우리가 얘기할 때는 인간의 욕구에 따라서 사회의 자원을 분배한다, 즉 장애우가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의 재정적인 능력이라든지 사회적인 위치 라든지를 따지지 않고 장애우가 가지고 있는 욕구에 국가가 응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어떤 면에서 보면 자본주의 못지 않게 생산능력 위주의 사회입니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개념인데 만일에 장애우들이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당연히 푸대접을 받습니다.
생산능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국가에서 받는 혜택이 많고 생산능력이 적은 사람일수록 국가에서 받는 혜택이 적은 것이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하루 쌀을 7백그램 배급받으면 노인네들은 하루 4백그램만 받거든요. 일을 안 하면 쌀 배급이 적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은 상당히 장우애들에 대한 대접이 좋지 않다고 봐야죠. 하나의 예를 들자면 폴란드 공산정권이 붕괴하고 났을 때 서방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아낸 것은 정신지체장애우를 비롯한 장애우들을 시설에 집단적으로 한데 모아서 짐승처럼 처절하게 가둬놨던 것이 탄로 나기도 했습니다.
- 교수님의 눈에 비친 북한의 장애우 복지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 주시죠.
= 북한에 가서 장애우들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시설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특수한 지역에 있다고 하는데 제가 돌아다닐 수 있는 지역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북한 사회라고 장애우가 없을 리가 없죠. 공장이 있고 전상자가 있는데 당연히 장애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리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장애우들 중에서도 군대 가서 다친 사람은 때에 따라서는 영웅대접을 받지만 생산이 중요시되고 노동력이 딸리는 사회이기 때문에 장애우들에 대해서는 별 대책이 없지 않느냐,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리고 북한이라고 해서 남한보다 나은 게 없다고 보는 게 뭐냐면 남북한을 볼 때우리 역사 속에는 장애우를 천시하는 기본적인 가치관이 있어요. 사십년 공산주의를 했다고 해서 인식이 왜곡돼 있는데 장애우에 대한 자세가 얼마나 많이 변했겠느냐, 이런 점에서 회의적입니다. 실제로 제가 연구 때문에 1947년부터 85년에 이르는 김일성의 정책 발표문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장앵우에 대한 언급은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노동자와 인민의 복지는 거의 다 언급이 되고 있지만 장애우 복지에 대한 부분은 없었어요.
- 그렇다면 교수님은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여건이나 실정에서 가장 바람직한 장애우 복지모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장애우들 중에서 제일 열악한 집단이 누구냐, 정말로 도움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장애우들이 누구냐, 그쪽에 초점을 둬야 할 것 같아요. 장애우 사업도 일종의 인기사업입니다. 장애우 사업 중에서 제일 보기 싫은 게 뭐냐, 제일 인기 없는 게 뭐냐, 사람들이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뭐냐, 제 생각에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왕에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이나 재정을 이런 쪽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금 서울에 장애우 체육관이 세워지고 있다는데 먹고살기도 힘든데 장애우 중 몇 사람이 체육관에 드나들겠습니까. 다 낭비지요.
- 정부에서 복지정책을 얘기하면서 민간복지를 많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반대로 바람직한 복지모델로 정부에서 전적으로 복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게 낫다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두 가지 복지모델에 대한 교수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국가주동형이 민간주도형보다 낫다는 가치관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저는 봅니다.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의 가장 큰 문제는 복지제도의 관료화입니다. 복지가 사무화되고 필요이상으로 관료화되면 본래 목적을 못 이루게 되죠. 민간주도는 너무 재정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반반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에서는 국가는 재정적인 지원은 많이 하지만 감독 정도만 할 뿐이지 직접 운영은 하지 않아요. 그런데 누가 사회복지의 주체가 되느냐하는 이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가 없는데 무엇보다도 사회복지도 상당히 창의성이 있어야 돼요. 구태의연하게 보수적이면 되지 않습니다.
장애우 복지만 보더라도 지금 시설 위주에서 지역사회 위주로 가고 있습니다. 어떡하든 지역사회로 하여금 장애우들을 받아들이게 설득해야 합니다. 자원은 지역사회에 있어요. 복지관을 짓는다든가 스포츠센터를 짓는다든가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 자체가 지역사회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게 급선무죠.
- 교수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 사회복지는 궁극적으로 국가가 자원재분배를 실시하기 위해서 펴는 정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당사자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참여할 기회가 없다보니 결국은 돈 안들이고 선전만 할 수 있는 정책만 정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지하철 무임승차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 정책이 진정한 복지적 목적이냐, 아니면 정책적 목적이냐, 이게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정책이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즉흥적이고 인기위주로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고 정말로 이 정책을 통해 가장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냐, 이게 가장 필요한 거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데 자꾸 돈을 쓰니까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거죠.
-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논리를 얘기합니다. 지금 장애우 복지에 돈이 들어가서 어떤 효과가 나오겠느냐, 거기에 돈이 들어가서 건지는 게 없다면 돈을 넣을 수가 없다, 다른데 투입을 해서 더 나은 효과를 거둬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국가가 장애우 복지에 투자를 하는 것이 소비성이 아니냐는 말을 하는 걸로 이해되는데 그렇다면 이런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나라 재벌들 어떻게 돈을 벌었습니까? 국가가 개입해서 특혜를 줘서, 즉 국가가 시장의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키지 않고 몇몇 사람 선택해서 특혜를 줘서 경쟁의 어려움을 없애줬기 때문에 돈번거 아니에요? 사회복지란 시장경제의 한계성에서 나온 겁니다. 경제가 부흥돼서 부가 남아돌면 그게 장애우복지로 갈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가령 최근 문제가 됐던 재산공개 파문을 보세요. 박아무개 같은 사람이 혼자서 부를 독점하고 있는데, 이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국가의 개입이 있어야 되고 복지정책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 말은 복지정책이 국가자원과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 마지막으로 아까 교수님은 선진국의 경우 복지 수혜 당사자가 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참여는 어떻게 합니까. 투표권으로 정치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합니까?
= 호주 같은 경우 위원회 같은 조직이 있으면 의무적으로 장애우들이 몇 명씩 들어가게 제도적인 장치가 보장돼 있습니다. 또는 장애우들이 전문가로서 정책 입안할 때 참여하기도 하지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정책입안 하는 사람이든지 기관장들이 문을 닫지 말고 장애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합니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들로 하여금 자기들 문제는 자기가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켜야 합니다.
글/이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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