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1]정보문화대상 받은 고원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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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정보를 전하며 보람을 느낍니다"
-정보문화대상 받은 고원석씨
생각보다 훨씬 장애가 심한 분이셨다. 12년 동안 한번도 몸을 일으켜 보지 못한 채 자리에만 누워지내고 있었다. 공기 맑고 한적한 시골에 바쁜 여름이 기세를 몰고 오는 6월 초순, 전라북도 정읍군 소성면 고교리에 살고 계시는 고원석씨를 만나 보았다.
대문을 들어서자 시원한 푸른색 지붕과 한눈에 보기에도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정갈한 앞뜰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루 한 켠에도 난초 화분이 단정히 놓여 있었다. 방을 들어서자 딱딱하고 두꺼운 메트리스에 누운 고원석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때마침 일요일이라 기자들의 방문에 시달리지 않아서 한가하니 다행이란다. 지난 6월 1일 제5회 정부문화대상을 받은 이후 수십 번의 인터뷰와 방송출현에 무척 시달렸다고 한다.
고원석씨가 정보문화대상을 받은 이유는 지난 8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지만 그 불행을 딛고 컴퓨터를 익혀 "샘골BBS"란 사설게시판을 운영하면서 정보화를 통한 지역사회의 발전과 영농의 과학화에 힘쓴 공로 때문이었다.
"컴퓨터와의 인연 때문에 새 인생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다치고 난 3∼4년 후, 84년도가 될 거예요. 굉장한 희망을 가지고 유명한 스님 한 분을 따라가서 침을 맞은 적이 있어요. 꼭 나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실패로 돌아가자 완전히 삶을 포기했죠."
이때만큼 힘든 적이 없었다. 장애우가 장애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회에서 한 몫을 하는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고원석씨는 그때가 바로 그 시기였다고 한다. 죽음을 결심한 마당에 애절하게 호소하는 아내를 따라 경기도 포천 할렐루야 기도원에 들어갔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 속에서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며 차츰 죽음이 두렵게 느껴졌고 기도원 환자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들으며 죽을 수도 있다는 게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도원에 들어온 지 열흠쯤 되던 날, 척추장애로 손발을 못 쓰는 동료와 나란히 휠체어에 누워 "한 번만이라도 내 손으로 밥을 해먹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신세타령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서 "아저씨"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건축자재 야적장 스티로폴 위에 한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아저씨들은 제가 듣기에 너무나 행복한 고민을 하고 계시네요. 저는 병원에서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왔어요. 아저씨들은 누가 옆에서 밥만 먹여주면 돌아가실 염려는 없잖아요"라는 것이 아닌가.
충격이었다. 순간 그동안 삶을 포기하려던 부끄러운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기도원을 나와 고원석씨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첫 시도로 동네 아이들을 모아 무료로 주산과 부기를 가르쳤다.
힘에 부쳐 6개월 후 그만둔 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다 전화버튼을 누를 수 있는 정도면 되겠다 싶어 89년부터 시작한 것이 컴퓨터 공부다. 보건직 공무원인 아내의 박한 월급을 털어서 산 XT급 컴퓨터에 밤낮으로 매달렸다. 자신이 붙자 천성적으로 봉사정신이 강한 그는 사고 전에 오랫동안 해오던 농업에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컴퓨터로 고향농민들에게 농사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고원석씨를 만나본 그 날도 광주에서 어느 한 분이 농사정보를 얻고자 문의해 왔다.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떠듬떠듬 팔을 뻗어 손가락 사이에 끼운 기다란 나뭇대로 컴퓨터 자판을 누른다.
정보문화대상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명감을 느낀다. 그의 꿈은 전국 농촌의 군 단위에서 한 사람씩의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농촌의 정보화를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장애우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장애우도 누구나 하느님이 자신에게 주신 능력을 개발할 수가 있다는 것, 이는 비장애우와 똑같이 인정받고 능력을 나타내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그만큼의 결과를 받아들일 때 가능하단다. 그것이 바로 장애우답게 사는 것이다.
덧붙여 비장애우들에게는 비장애우답게 사는 것, 즉 장애우를 동정의 대상이 아닌 주변에 "같이 살아가는 이웃"으로 대하며 장애우들이 뭔가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개인의 장애를 딛고 사회봉사의 삶을 살고 있는 고원석씨. 그동안 무심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러웠다. 밝게 자라고 있는 고원석씨의 막내딸이 정거장까지 바래다주었다.
녹음 속에 살랑 이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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