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비장애 모두 자기 내부의 벽을 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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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송인애 대표(왼쪽)와 김영민 팀장 |
차별과 모멸, 시혜와 동정의 일그러진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수많은 장애인권활동가들이 벌여온 지난한 투쟁이 수십 년의 성과로 쌓이고 있다. 그 결과로 세상을 절반으로 갈랐던 장벽의 벽돌들은 하나둘씩 걷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먼저 깨졌어야 할 내부의 장벽은 공고한 상태 그대로 균열될 줄을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자기모순은 현실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단순한 상담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불화와 불협화음을 어떻게 근본부터 재정립할 수 있을까? 새로운 방법론으로 문제해결에 접근하며 활동한다는 기관이 있어 만나보았다. 특이하게도 비영리단체가 아닌 주식회사의 형태로 출범했다. (주)한국장애인심리지원센터를 소개한다.
반드시 필요한데도 아무데도 없다는 현실
(주)한국장애인심리지원센터(약칭 에이블센터)는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직장사회 정착을 위해 활동하는 재직장애인 통합전문심리지원기관이다. 재직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함께 근무하는 비장애인의 입장도 살피며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 내의 심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과 조직과 사회에서의 관계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보다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재직자 심리지원 프로그램)’를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한 ‘A-EAP(Able-Employee Assistance Program, 장애인 재직자 심리지원 프로그램)’를 활용하며 심도 있고 완성도 높은 해결책을 제공한다. 센터의 핵심사업은 심리지원(A-EAP, 동료, 가족), 교육 및 워크숍 그리고 동료심리지원가 양성, 이렇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단체가 아닌 주식회사로 시작하게 된 건,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게 됐던 이유가 절대적이었어요. 그래서 ‘영리법인의 형태로 제대로 활동하며 제대로 수익을 얻고 제대로 사용하자’는 기치를 앞세우게 됐던 거죠. 비영리단체가 아니다 보니, 국가사업에 직접 응모할 방법 자체가 없게 된 거잖아요. 그래서 더욱 차별화된 활동으로 센터를 자리매김하고자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에이블센터의 송인애 대표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재무와 인사 담당자로 사회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학의 학부로 돌아가서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평생교육 분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고 한다. 기존의 인생도 남 보기엔 안정적이었고 요즘 표현으로 ‘워라밸(일과 생활의 조화와 균형)’이 가능했을 텐데, 자신의 인생을 전혀 다른 분야로 재도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적인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 편이라서 꺼낸 적은 없는데..., 외국계 기업에 근무할 당시에 어느 날 동료가 저한테 ‘걸어 다니는 상담사’라는 별명을 지어줬어요. 그런데 살아오면서 그렇게 가슴이 뛰었던 적은 정말 처음이었어요. 그 별명에 왜 그렇게 매료가 됐는지 그때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그 이후로 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려서 새로운 인생으로 갈아타게 됐던 거예요.”
장애계가 주식회사로서 승부를 걸 만큼의 수익성을 가진 세상은 아니다. 최소한 현재까지의 실제 현실은 그렇다. 게다가 송 대표는 비장애의 입장과 여성이라는, 보이지 않게 주어지는 현장의 경계선을 매번 느끼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사회에 비어 있는 한 지점이 크게 눈에 띄게 됐다고 했다. 바로 재직장애인들이 처한 상황이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제가 원래 대기업 출신이었기 때문에, 일반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상담을 수주하고 맡는 데는 수월했어요. 그런데 대표이사인 CEO부터 중소기업 사장, 중간 간부, 일반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계속해서 만나다 보니까 각각의 이슈가 전부 다 다른 거예요.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아도, 스트레스의 원인과 상태가 직위와 직무에 따라 너무나도 달랐다는 거죠. 그래서 모든 상황마다의 그 ‘다름’을 구조화시키는 게 가능해졌고, 심리지원의 성과도 확실하게 높일 수가 있게 됐어요.”
▲ 사진제공. ◎(주)한국장애인심리지원센터 |
그런데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같이 근무하는 장애당사자들과 마주치게 되면서, ‘이 분들의 상담은 누가 전문으로 하고 있지?’ 하는 궁금증이 생겨나게 됐단다. 꼭 필요한 상담분야라고 확신해서 나름대로 찾아봤는데, 그걸 담당하는 전문가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송 대표는 확인하게 됐단다.
“그 이전에 근로복지공단에 상담사로 등재돼서 장애관련기관의 상담을 진행했던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재직장애인들의 상담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그건 동료상담 차원과는 다른, 차별화된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는 게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전례가 없던 ‘재직’이라는 용어를 앞세우게 됐어요. 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대로 안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죠.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는 기업이 드물고, 솔직히 말씀드려서 담당자를 만나는 일조차 힘들고 어려워요. 그만큼 방치된 부분이라는 거죠. 반드시 필요한데도 무관심에 덮여 있는 영역이 바로 재직장애인 심리지원이라는 겁니다.”
‘장애인한테 돈을 받는다고?’의 문제점
재직장애인의 심리지원이 필요한 이유를 ‘고민상담’ 수준으로 연상해선 안 된다. 사회활동의 주체이고 똑같은 의무와 권리행사를 담당하기 때문에 전체 사회, 전체 산업계, 전체 조직의 틀이라는 구체적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에이블센터는 앞서 언급했던 A-EAP를 통해, 각 재직장애인의 상황과 상태를 체계적으로 검증한다. 개인의 일상과 업무의 연결성, 경력, 그 이외의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며 문제점을 먼저 찾는다. 무슨 질병이 있는지, 스트레스는 무엇인지, 어떤 성장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그런 사항마다 어떤 증상들이 실제 존재하는지를 세분화시킨다. 집중력 저하와 초조감, 우울감, 불안장애 등의 정신적 신체적 증상이 있는지, 고독감과 고립감, 대인관계 기피 등의 인간관계가 상존하는지, 발전과 성장의 욕구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무엇인지도 꼼꼼하게 검토를 한다.
“해결방안은 문제점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돼요. 요인을 분석하고 목표를 설정한 다음,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게 되죠. 올바른 심리지원이 체계화되면, 얻게 되는 효과 또한 확실하게 드러나게 돼요. 근무태도가 향상되면서 이직의 확률이 감소하게 되죠. 의료비가 절감되고 노동재해의 위험성도 줄일 수가 있어요. 관리자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고, 재직장애인은 자기개발을 위한 목표치를 재설정할 수가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이 조직 안에서 진행되는 동안, 얻게 되는 가장 큰 성과는 장애의 이해와 수용 그리고 소통의 원활화입니다. 같은 데서 일하는 장애당사자가 아닌, 동료 중 하나로 인식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죠.”센터의 심리지원 성과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여전히 어려운 점은 심리지원이 아닌 다른 부분에 있다며 송 대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혜와 동정을 타파한다고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게 장애계이지만, 정작 공식적인 사회관계에서는 ‘무상의 지원’을 앞세우는 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감한 내용이지만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장애인한테 돈을 받는다고요?’라는 반응부터 앞선다는 점이다. 주식회사로서 영리법인에 맞게 구체적인 사업을 펼쳐가고 있는데도, 전문가인 상담사들의 업무와 노동을 ‘재능기부’로만 기대하고 치부하는 건 고쳐져야 할 ‘일부’장애계의 과제임은 분명한 일이다.
▲ 사진제공. ◎(주)한국장애인심리지원센터 |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나 국립정신건강센터 같은 곳에선 훨씬 체계화된 심리지원이 가능해져요. 알코올중독 또는 회복자 단계에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대상과 주제가 명확하고, 특강의 내용도 깊이 있게 들어갈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일반 자립생활센터에 가면, 지역 내의 모든 장애유형이 한 자리에 다 모이는 게 보통이에요. 받아들이는 상황과 정도가 다 다른데, 똑같은 주제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하긴 어렵거든요. 그래서 제안 드리고 싶은 건 몇몇 센터가 연대하는 방식으로, 장애유형별로 별도의 강의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게 훨씬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의미전달이 되니까요.”
에이블센터의 실무를 담당하는 김영민 팀장의 의견 또한 빼놓아선 안 될 것 같다. 기존의 기준으로는 지체장애 3급의 당사자인 그는 모든 강의에서 느끼는 문제점부터 풀어가는 게 급선무임을 강조했다.
“저는 비장애인 여러 분들께 장애당사자로서의 입장을 서슴없이 직설적으로 말씀드려요. 모든 차별의 시작은 ‘시선폭력’이거든요. 또한 장애당사자의 의견을 묻지 않는 무조건적인 양보는 배려가 아니라 폭력이 될 수가 있다는거예요.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물으면, 아직까지는 많은 비장애인들이 엇비슷하게 반응합니다. ‘관심 없는데요?’, ‘왜요?’, ‘아무 생각 없는데요?’, ‘장애인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되나요?’. 그렇게 무관심하다고 발언하면서도, 꼭 남겨지는 건 시선폭력이에요. 재직장애인뿐 아니라 일상의 거리에서도, 장애당사자들을 가장 힘겹게 만드는 건 바로 시선폭력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서도 꼭 부탁드리고 싶은 건, ‘나 자신’이 세상 속 일인이듯이 ‘그들’ 또한 세상 속 일인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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