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와 직업] 조류사육 김종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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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너무 자주 주면 새가 목욕을 해서 지저분해져요"
소비도시로 유명한 의정부 중앙시장을 들어서자마자 확 뚫린 사거리의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오색찬란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금화조, 십자매, 잉꼬들의 주인인 김종선씨가 어느 할머니 고객에게 십자매 한 쌍을 팔면서 이르는 말이다.
시장거리가 한창 북적거릴 때인 오후 다섯시 경, 많은 꼬마들을 비롯해 할머니, 할아버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약 200여 쌍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지켜본다. 어느새 8년이나 이 자리를 지키고 있건만 늘 그렇게 많은 구경꾼들로 붐빈 다. 200마리가 넘는 다양한 새들에게 일일이 먹이를 챙겨주고 보살피며 같이 생활하며 장사를 하는 분이 바로 척추장애 하반신 장애를 가지고 계신 김종선씨이다.
김종선씨가 직접적으로 새와 함께 생활한 것은 8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약 20년 전부터 새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또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불운과 자기 비하 적인 성격이 사람들과 쉬이 어울리게 하지 못했고 대신 자연에 친숙 하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 주었다. 매일을 거의 산이나 들에서 새와 함께 말하고, 웃고, 울면서 보낼 때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학문적으로 새에 대해서 배우지 못했더라도 실질적인 경험과 관심이 지금이 직업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열아홉 살까지 한글을 모를 정도로 폐쇄적이며 불우한 생활을 했지만, 웬만한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로 세상과 고립된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았다고 한다. 삼육재활원 시절 그 누구도 그에게 기대나 희망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까운 밥만 축내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김종선씨는 마침내 일어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한글을 배우고 새로운 생활에 몰입하면서 나름대로 평소에 표현하고 싶었던 대상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많은 감상적인 생각들이 그를 글 쓰는 행위로 쉽게 이끌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그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고맙다고 회상한다.
그러다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결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 때문에 직업이 필요했다. 더욱이 장애가 심했기 때문에 장사나 사육 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김종선씨는 처음 많은 빚을 져가면서 도사견 사육을 시작했는데 마침 시작된 국제행사인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으로 인해 개 값이 하락함으로써 빚만 산더미처럼 지고 끝내야 했다. 이 시절이 가장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아내가 출산한 뒤 쌀이 없어 미역국에 라면을 끊여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나마 아내의 생활력으로 끼니를 근근히 이어갔지만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모 여성잡지에서 휴먼스토리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게되었다. 김종선씨는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글을 써서 보내기까지는 많은 망설임이 필요했다. 자신과 아내를 판다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원고마감 날 아침까지도 주저해야했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욕구가 더 강해 아침에 신문사로 직접 가서 원고를 접수시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던가! 김종선씨의 글이 우수 작으로 뽑혀 김종선씨는 그 당시의 돈 30만원이라는 거금을 쥐게 되었다.
이번에는 서슴없이 새 장사를 하기로 했다. 30만원의 밑천으로 20쌍의 새를 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인 새들과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의정부였는데 그 이유는 의정부가 소비도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새 장사를 할 때 좋은 장소는 소비도시이거나, 이동인구가 많은 곳, 아파트 입구 단지 등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새는 직접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집에 분양을 해주어 그 곳에서 번식을 시켜 이 번식시킨 것을 김종선씨가 도매나 소매로 장사를 한다. 계절을 구애받지 않고 거의 매일을 오전 10시 30분 경에 나와 오후 9시 30분까지 장사를 하는 이곳에는 200여 마리의 가지각색의 새들이 팔딱거리며 지저귀고 있는데 가격은 4천 5백 원에서 25만 원까지 다양하다.
한 달에 먹이 값은 약 30만원정도 들고 이 먹이 값을 제외한 순수이익이 백 팔십만 원에서 이백만 원 정도라고 한다. 덕분에 빚진 것도 모두 갚고 이번에 고가의 집을 장만했다고 은근히 자랑도 하신다.
새 장사를 하려면, 일단 새에 대해서 흥미가 있거나 관심이 있으면 누구 나가 할 수 있으며 특별한 지식은 필요 없다. 누구나 기후나 습도만 잘 조절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특히, 새의 천적은 쥐와 고양이기 때문에 이것들로부터 멀리 해야한다고 한다. 시각 장애우만 제외하고는 웬만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우는 모두 다 가능하다고 하시며 이 직업은 자본이 적게들고 특별히 기술적인 까다로움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앞으로의 전망은 대단히 밝다고 김종선씨는 단정한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복잡한 사회생활에 염증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의 사육으로나마 간접적으로 자연을 접하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설명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김종선씨는 특히 이 직업을 장애를 가진 분들께 강력하게 권유하고 싶으시단다
어떤 직장생활보다 수익이 많고 장애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으며 자립의 전망이 밝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주의 할 점은 분양을 시킬 때 번식을 시키는 곳이 반드시 믿을만한 곳이라야 한다.
지금은 거의 안정된 생활을 영유하는 상태인 김종선씨는 하루에 보통 7∼8가지의 신문을 보면서 사회 전반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 또한 의정부에 그나마 있는 몇 개의 장애인 단체가 형식적으로 있는 것이 안타까워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단체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신다. 장애를 가진 사람과 비장애우를 결코 따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김종선씨의 말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일을 마치고 난 뒤 글을 조금씩 쓰신다는 김종선씨는 앞으로의 희망을 물어보자 자신의 글로써 장애우의 인권문제를 파헤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새와의 생활이 우선이고 부차적인 삶이 글을 쓰시는 것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 이곳 의정부 시장에는 차 소리, 가끔씩 들리는 비행기 소리, 많은 사람들의 소리가 새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더 한층 생동감 있는 거리를 만들고 있다.
그 속에서 김종선씨는 매일매일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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