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난 장애우] 천상에 노래를 부르리라 > 함께 사는 세상


[이달에 만난 장애우] 천상에 노래를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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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다. 수마와 태풍이 지나갔던 자리라, 더욱 그리 느껴지는 모양이다.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음으로 인해, 이제 시간은 또 우리를 새로운 계절로 밀어 넣는다.
이번 달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근래에「天上의 노래」라는 처녀시조 집을 내 놓은 김선국씨(28세)를 만나 보았다. 김선국씨는 2살 때 앓은 열병으로, 지금까지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뇌성마비 장애우 시인이다. 연필을 잡지 못하여 타자로 시조를 써 온지 수년만에, 그는 「天上의 노래」를 펴냈다 한다. 문을 열면 보이는 것들. 백합, 채송화, 라디오, 행주치마, 소나기..... 등만이 그의 시상에 도움을 줄뿐이었다. 거의가 직관과 객관적 관찰에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남다른 지속적인 노력에서 얻어진 작품이라 그런지 그 장래가 촉망된다고 시조평론가들은 지적한다.

- 먼저 시조를 쓰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려서부터 시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땐 고작해야 읽는 정도였죠.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입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고개를 쳐들더군요. 몸이 불편해서 학교는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막연하게 책이나 읽고 강의록이나 사서 엉터리 공부를 했습니다. 혼자서 하는 작업이라 시간도 꽤 걸렸습니다만 그러한 시간의 축적이 그나마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일단 시를 썼으면 잘 쓰나 못쓰나 발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일반 시는 아마추어 상태에서는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길이 좁아요. 여성지에서는 여성만 상대하고... 그러나 시조는 시에 비해서 길이 넓은 편이죠. 샘터, 중앙일보 등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집니다. 86년 4월 중앙일보에 시조를 투고해서 발표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특별히 시조가 본인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힘이 있었습니까?
◎솔직하게 얘기해서 그런 것이 뭐 있겠습니까. 신체적 장애 때문에 기술을 배울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일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 시조를 쓰시면서 가장 제약을 받는 것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소재 부족이 문제입니다. 보는 게 있어야지요. 시인이 아니더라도, 모름지기 사람은 나가서 보고 익히며 직접 경험과 아울러 간접경험을 쌓아야 하는 건데, 그럴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시조는 구체적인 대상을 선명하게 가슴에 와 닿게 써야 합니다. 논리성과 정확한 표현, 그리고 진실한 자기 목소리로 사람 살아가는 따뜻한 냄새를 느끼도록 써야지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구체적인 대상의 선택에서 우선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 그러면 활동의 제약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는지요.
◎의지뿐이 없다고 봅니다.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제게 주어진 공간은 너무나 협소합니다. 그러나 그 공간만을 통해서라도 보이지 않는 내면의 소리를 발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저에게도 장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 듣는 자기 심성의 소리를 저는 듣습니다. 조금 허풍을 떤다면 영혼의 소리라고 할까요. 가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울려오는 존재 확인을 위한 울림, 그 울림이 제 창작행위의 근원입니다.

- 화제를 바꿔서 본인이 장애우이신데 장애우 시인으로서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갈등도 많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고 봅니다. 저 자신 주체로 서고 싶지만 그만한 식견이 있어야지요. 하지만 모순 투성이, 화해할 수 없는 대립 구조, 그 속에서 장애우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저의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입니다.

- 장애문제 쪽에는 관심을 갖고 있으십니까.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좋지 않으니까 이 문제가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단 한 수 아래로 보고 있으니, 대하는 것이 진실하지도 않고...인식 개선이 제일 우선이죠.

- 정부의 장애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좀 시작되는 단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미흡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리 저리 떠들기만 하지요.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장애우 아파트 분양 문제만도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그 정도 경제적 여건을 갖춘 장애우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런데 정부는 아파트 건을 가지고 얼마나 생색을 많이 냅니까. 발상의 전환이 하루속히 정부쪽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고민을 해줬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램입니다.

- 추상적인 질문인지 모르지만 본인에게 있어서 문학은 무엇입니까.
◎전부입니다. 전부예요. 문학이 아니면 제가 존재하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문학을 통해서 자아도, 이상도, 세속적인 꿈도 키워봅니다. 어느 시인은 생명을 걸고 문학을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되지는 못하더라도 저의 남은 생을 문학에 바치고 싶은 심정은 간절합니다.

- 문학이 전부라 하셨는데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사실 무엇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빵도 밥도,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게 아니죠. 인간만사가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지나친 목적의식은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되죠. 산다는 건 다 허무예요. 애정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해 나가다 보면 무엇인가 이루어내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 시어가 참 좋던데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실 계획이십니까?
◎오래 생각해서 신중하게 쓰니까요. 솔직히 차원이라는 건 없어요. 제가 보는 견해로는 아직 멀었지요. 책을 내놓고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한하운 선배님처럼 글을 쓰고 싶어요. 절망을 절망으로이기는 높은 차원을 그리고 싶습니다. 지금 구상중인 작품은 육체적인 상황과 사회문제와의 갈등을 남북분단의 문제와 혼합시켜서 작업중인데 그게 잘 안되네요.

-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해 주십시오.
◎다시 정부에 바라는 건데요. 한 가지를 하더라도 확실히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나팔만 불지 말고, 장애우들의 진짜 가려운 데를 긁어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장애우들도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건 너무 부당한 일이 아닐까요.

-오랜 시간 같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문경아(기자)

아래 시조 두 편은 김선국씨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대표작이다. 함께 음미해 보았으면 한다.

<황 혼 녁>

낮과 밤이 포옹하는
지평선 저 언덕너머

나부끼던 무명 깃,
옷을 벗은 뜬구름은

햇살에 헹군 몸뚱이
비친 속살 붉어라.

얼마를 기다렸기에
빛마저 사무쳤을까.

까치 울음 둥지 트는
느티나무 곁에서

길 잃은 길손이 가다
한 번쯤 돌아볼 정.


<수은 중독>

가난도 죄인지라
주경야독 북새통에

호구지책 마련하려
수은(水銀)공장 나가더니

열 다섯 빨간 눈금 같은
피 토하고 갔단다.

작성자문경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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