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재활의 꿈을 향한 의지의 손
본문
사람 누구에게나 먼저 부딪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고통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절박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신체적 결함에 의해 사회에로의 동참도 거부당한 채 그늘에서 소외된다는 건 더욱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장애인들 스스로의 아니, 그들만의 재활작업장은 사회 동참을 위한 출발 단계장이요, 크든 작든 무엇보다도 소중한 "삶의 일터" 이다.
바로 이러한 삶의 일터를 일궈내고 있는 "밀알의 집"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진리를 실현하는 재활의 집이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이라도 해야 합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뭐라도 하려고 할 때 희망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야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를 가졌어도 재활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공동체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입니다."
지난 78년 전기공으로 일하다 전기감전 사고로 인해 하반신 한쪽이 잘린 이 집의 가장 이우기(34)씨는 조심스럽게 말을 내비친다. 왜냐하면 자신의 장애에 비관을 느껴 고통과 좌절의 시간을 보냈던 나날들이 쉽게 잊혀지지 않고, 말만 앞선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그 고통을 극복하여 통가죽 기술을 익히면서 시작된 이 새로운 삶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밀알"이 되어 줄 것임을 이우기씨는 믿는다.
함께 일하며, 함께 생활하는 집
서울 성북구 상계 4동에 위치한 밀알의 집이 지금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지난해 9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장애인들에게 내가 배운 기술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진 이우기 씨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겨우 "함께 일할 수 있는 집"을 마련했다.
처음엔 전세 2백 50만원 월 10만원의 세를 낼 능력이 없어 망설이기도 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돈을 마련해 10여평의 장소에 뜻을 펴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이 집을 마련하기 전에는 혼자서 일하며 혼자서 제품을 내다 팔다가 기술을 익히려던 장애인들을 만나게 되어 한 가족을 이루었지만, 함께 생활하며 일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없어 뜻 가진 많은 장애인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땐 그저 "마음만 있었지 가진 것은 없었던" 날들이었단다.
지금도 밀알의 집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가죽을 구입하지 못해 일을 못할 때도 있고, 어렵게 손 작업을 해서 만든 제품에 비해 단가가 비싸 쉽게 팔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완성된 제품을 팔려고 해도 판로가 없어 불편한 몸들을 이끌고 뛰어다니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다. 그래서 밀알의 집 사람들의 가장 큰 소원은 "장애인들이 만드는 물건을 파는 큰 장소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재활의 꿈을 꾸는 사람들
핸드백, 열쇠고리, 벨트, 지갑 등 통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최상으로 만들어 내는 밀알의 집은, 가장인 이우기씨를 비롯해 일흔 한 살의 노모와 아들 영호(10), 영진(8), 이씨가 형제처럼 여기고 있는 이동철(34), 윤재수(28)씨 등 10명이 모여 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길가다 갑자기 쓰러진 뒤, 장애를 입게 된 이동철 씨. 밀알의 집 얘기가 그의 고향인 천안까지 전해지자 주위 사람의 고향인 천안까지 전해지자 주위 사람의 소개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지난 2월부터 일을 시작해 이제는 장애인종합복지관 기술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받는 기술자이다.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나의 장애가 일하는데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삶의 의욕을 느꼈습니다." 라는 윤재수 씨는 가죽에 물을 묻히고, 문양을 새겨 넣는 일이 적성에 맞아 하루종일 일을 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비록 지난 81년의 사고로 인해 왼쪽다리와 손을 못쓰게 되었지만, 집안에 함께 갇혀 우울하고 답답한 날을 보낸 걸 생각하면 이 밀알의 집은 삶의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한 곳이다. 이런 그들의 의욕과 성실은 좋은 아이디어를 내어 도안을 하고 어느 곳보다도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들을 아는 사람들은 바자회를 할 때나 단체 주문이 필요할 때 꼭 밀알의 집을 찾는다. 이는 곧 이우기 씨의 "하루에 하나를 만들더라도 제대로 만들어라"는 철칙(?)의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밀알의 집에서는 가죽공예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자며 함께 생활하기에 고작 먹고살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들의 가장 큰 꿈은 재활이기에 앞으로를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할 뿐이다.
"지금은 여건이 여의치 않아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들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소원은 휠체어 장애인도 맞아들일 수 있는 넓은 일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그들을 위한 화장실도 마련해야 하는 등 갖춰야 할 것이 많습니다" 며 이우기씨는 장애인 올림픽을 계기로 판로 뿐 아니라 그의 계획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신체장애란 제한된 삶에서 벗어나 헌신적인 희생을 해온 이우기 씨나 윤재수, 이동철 씨 등은 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면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그들의 신체장애는 그저 다만 좀 불편했을 뿐이라고 그들은 밝힌다.
이렇듯 서로 남인 이웃들이 만나 한 가정을 이뤄 그곳에서 일을 배우며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삶의 터 "밀알의 집".
이곳의 밀알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그들에게 재활의 기쁨을,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는 장애인 그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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