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고 직접 만들며 실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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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면 받을 것이고, 찾으면 얻을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성경의 표현과도 같이, 세상의 모든 건 필요에 의해 준비되고 만들어진다. 하지만 생각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직접 움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만, 그 결실이 비로소 ‘나의 것’으로 안겨지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조모임이 아닐까? 제각기 ‘외로운 1인’으로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함께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다양한 활동들은 곁에 있는 조력자들한테도 큰 힘을 남기게 된다. 자조모임의 틀을 확대하며 두드러진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는 이들의 소식을 듣게 돼 직접 확인해 봤다. 이번 호는 경기도 김포시의 제1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보건복지부의 설립인가를 받은 ‘파파스윌’과 함께한다.
직접 움직였다, 당사자의 절실함으로
파파스윌은 김포시 양촌읍 양곡리에 위치한 ‘민들레와 달팽이 카페공방’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카페가 아니라, 실내 분위기 자체가 작가의 작업실 같다. 글을 쓰는 작가한테도 어울리고, 목공예를 하는 기능인들한테도, 요리를 개발하는 전문가에게도, 세미나에 집중하는 연구자들한테도 딱 맞을 것 같은 열린 공간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런 자리에 하나둘씩 찾아들고 모여 앉는 이들에겐 생산적인 대화와 알찬 결론이 내려질 게 분명한 일이다.
“원래 시작은 2015년부터 진행했던 자조모임이었어요. 자조모임에 참가했던 모든 구성원들이 단회성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게 너무 아쉽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장을 밝혔죠. 그래서 성년기가 되는 당사자 청년들을 위해 시작했던 프로그램을 평생지원으로 계승하려면 어떤 방식을 도입하는 게 좋을지, 그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부모님들과 졸업자들, 특수학교 선생님들과 같이 의견을 모아봤어요. 사회적협동조합의 틀로 육성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죠. 그래서 2016년 4월에 공식 조합으로 인가를 받고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파파스윌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엄선덕 대표는 김포에서 장애인부모회 회장을 6년 역임했던 경력과 체험 모두를, 지역문화 전반의 저변확대로 확장시킨 산증인이다. 부모회를 결성할 당시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장애인복지관도 없었고, 장애인특수학교는 도시설계의 어디에도 포함돼 있지 않았었다고 회고한다.
“친(親)인간, 친환경, 친문화를 표방하고 생태환경 문화교류도시를 지향한다던 김포한강신도시의 려한 청사진 어디에도, 장애인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신도시를 기획한 누구도 관심이 없었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없었기에 거론조차 안 됐던 거죠. 그래서 부모회가 팔을 걷고 나섰던 거예요.”
지역에 특수학교 건립을 추진하면서 엄 대표와 부모회가 시도했던 건, 설계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관료적인 사무 처리와 건축업자들의 타성에 맡기는 게 아니라, 당사자의 눈높이에 정확히 맞는 학교설계를 위해 수없이 많은 발품을 팔았다는 것이다.
“특수학교의 전담 설계팀이 없잖아요. 턴키방식으로 건축업자를 선정한다 해도, 정해진 규정에 맞게만 지으면 그만인 거죠. 그러다 보니 기존 건축에 준하는 건축물을 만들어놓고 나서, 필요에 의해 다시 다 뜯어고치고 사사로운 하자를 보수하는 경우를 그동안 너무 많이 봐왔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학교설립이 결정된 이후부터, 다른 특수학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계속 벤치마킹을 했어요. 시행착오를 줄이고 착공 전 설계부터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했던 거죠. 부모회를 맡아 활동하면서, 우리가 원하던 특수학교를 마련했다는 데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겠다는 부모회의 도전 이면에는, 남모를 갈등요소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통합교육이 대세이던 당시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특수학교를 추진한다는 건 거꾸로 가는 오류가 아닌가 하는 물음표가 계속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탈시설을 주장하면서도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는 지역의 현실이 있었던 것처럼, 모두가 통합교육을 외쳤지만 현실은 통합의 부작용만 확인했잖아요. 당사자인 애들은 외딴섬처럼 따로 있어야 했고, 왕따의 표적일 뿐이었어요. 그래서 특수학급 선생님들과 깊은 논의를 계속한 결과, 지역에 거점학교가 있어야겠다는 답을 내리게 됐어요. 각각 개별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특수학급에 머무는 게 아니라, 특수교육의 중심을 잡아줄 거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던 거죠. 그래서 김포시장까지 직접 만나서, 부모회의 요구를 관철시켜 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됐습니다.”
원하는 사회 환경을 직접 설계한다
발달장애인지원네트워크인 사회적협동조합 파파스윌은 모두가 지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주체로서의 ‘당사자성’, 국가로부터 직접 감사를 받는 운영의 ‘투명성’, 다양한 구성원들과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성’, 또한 장기적으로 지속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가장 큰 핵심가치로 삼는다. 복지영역 내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회적경제를 공유할 수 있는 폭넓은 시선으로 조합을 운영한다. 그 결과로 2017년 9월에는 ‘2017 친환경분야 사회적경제지원 LG 소셜캠퍼스’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에 해당되는 ‘파이오니어(Pioneer)’로 선정돼, 5천만 원의 지원금과 컨설팅 등의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 뜻깊은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
당사자주의에 기반을 둔 자조모임 조력자 양성, 체계적인 인권교육을 위한 장애인권강사 양성, 발달장애인의 고용확대와 안정적인 고용유지를 지원하기 위한 직무지도사 양성 또한 파파스윌의 중점 활동이다. 가장 인상적인 움직임은 역시 조직의 기반이 되는 자조모임이다. 파파스윌의 자조모임은 크게 두 조직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하나는 ‘장조림’이고, 또 하나는 ‘슈퍼스타’다. 발달(장)애인자(조)모(임)의 약칭인 장조림과 슈퍼스타는 발달장애인 청년들이 능동적으로 운영하는 파파스윌의 중심이 된 지 오래가 됐다.
‘무얼 먹고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 마음껏 말하며 말을 한 대로 결정해 봤습니다. 결정은 어려웠고, 결정하고 나면 불안하기도 했고,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뭐 어떻겠습니까.’, ‘만나고, 모임의 이름을 짓고, 각자 불리고 싶은 닉네임을 정하고, 밥 먹다가 말없이 사라져 모임 멤버들의 마음을 철렁거리게 하고, 그 다음부터 서로를 챙기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면서 우리들만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아요.’, ‘자조모임 친구들하고 안산 세월호 분향소에 가서 예배드리고 분향하고 왔던 일이 슬프고 기억에 남는다.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말기를 기도했다.’
이런 참가자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자조모임에 참가하는 당사자들의 호응도를 반영한다. 엄선덕 대표는 당사자 중심의 활동, 특히 부모회의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가장 큰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며 당부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편성에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킨 ‘주민참여예산제’처럼, 당사자들의 권익과 편의를 위한 모든 활동은 당사자들의 직접 참여가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특수학교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특수학교를 짓고 있잖아요. 아주 불합리한 환경인 거죠. 그렇기에 주체가 될 사람들의 직접 참여가 가장 절실하고, 저는 그 중심 역할을 각 지역의 장애인부모회가 맡아 주시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합니다. 실제로 내 아이들이 다닐 학교잖아요. 내 아이들이 성장해서 살아갈 지역이고 세상이기 때문에, 부모회의 관심과 노력이 무엇보다 확실한 해답을 만들어낸다고 봐요. 파파스윌처럼 자조모임을 기반으로 지역사회 전반에 장애당사자들의 안착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움직임이 전국 각지로 확산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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