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당당하게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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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주택단지 안에 사는 의사와 교수 부모들이 자식을 명문대로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한 드라마가 큰 화제를 남기며 종영했다. 그 드라마를 안 본 사람들과는 대화가 안 될 정도였다고 하니, ‘명문대 진학’이라는 화두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큰 가치판단 기준이 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 서열화의 정해진 틀만이 세상의 전부일까? 정말 그 길밖에 없을까? 그 두터운 유리벽에 작은 균열이 아닌 커다란 구멍을 뚫어낸, 그래서 그 바깥의 공간으로 나온 뒤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하는 이들이 있어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자유와 함께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됐다는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입시거부마저도 성적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이하 투명가방끈)’은 청소년 활동가들의 대학입시거부 제안으로 연대가 이루어져서, 2011년 대학거부선언과 대학입시거부선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학 입시거부선언 활동의 주체는 해당연도 고3의 나이인 19 세가 중심이고, 대학거부선언은 대학에 진학했거나 진학 하지 않은 뒤 거부를 선택한 20대 초반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출범과 동시에 발표한 ‘투명가방끈 8대 요구안’은 이들의 지향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1.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한다.
2.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주입식교육에 반대한다.
3.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4.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5.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6.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7.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벌차별과 학벌사회에 반대한다.
8.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꼭 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대놓고 묻지는 않지만 공부를 잘했는지, 수능 치른 고3한테는 내신성적이 어땠는지를 넌지시 확인한다는 거죠. 그건 ‘거부선언을 할 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정해진 논리로 귀결이 돼요. 내신 1등급처럼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거부선언을 해야 취재할 만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될 만한 속칭 ‘그림이 된다’는 거죠. 개별적인 대학입시거부의 이유가 분명하고 확고한데도, 여전히 이 사회는 ‘공부를 못하니까, 공부하기 싫으니까, 열등생들의 열등감 폭발이니까, 자기합리화니까’라는 편견으로만 바라본다는 거예요.” (공현)
투명가방끈을 대표해서 인터뷰에 동참한 활동명 피아 씨와 공현 씨는 개개인의 선택과 의지마저도 편견의 잣대로 매몰시키는 사회적 시선부터 비판했다. 대학입시거부는 개인의 모든 인생을 걸고 내린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입시거부의 이유마저도 ‘개인의 서열화’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2018년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했던 참여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얼마나 큰 고민의 결론이었는지를 반증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대학이라는 보험을 들지 않기로 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입시에 빼앗겼던 무언가에 대한 박탈감을 해소하고, 내 삶의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다’, ‘더는 버리지 않기 위함이다.’
“재작년에는 대학입시거부의 ‘선언자’로 처음 동참했다가, 작년부터는 거부선언을 준비하는 팀의 일원으로 활동했거든요. 선언을 처음 함께하고 나서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의 활동취지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본격적으로 합류했는데, 다양한 지역에서 뜻을 같이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된 게 정말 인상 깊게 남겨지고 있어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고, 왜 진작 이런 단체를 일찍 알지 못했는지 아쉬웠다고, 속이 탁 트이는 것 같다고, 막연히 답답하기만 했던 학교생활이 왜 답답했는가를 시원하게 알려준 것 같다면서 다들 동참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거든요. 입시경쟁을 거부하고 대학을 가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훨씬 많은 이들이 있다는 데 대해서 안정감을 느끼는 거죠. 그 안정감 안에서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는 공감대를 함께 나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인 것 같아요.” (피아)
여러분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거부선언을 같이하지 않았다 해도, 많은 청소년과 청년 당사자들이 동참과 공감의 의견을 전해주고 계세요. 대학입시라는 정해진 길 말고도 다르게 사는 길이 있다는 거, 다르게 살아도 된다는 거,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거, 이건 직접 깨닫고 스스로 실감하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인생과 미래에 대학이라는 통로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인생의 진로와 삶을 다른 시선으로 생각 하면서 고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투명가방끈의 존재 이유가 될 거라고 판단합니다.” (공현)
타인의 뜻이 순수하다면 그 뜻을 존중하면 되고, ‘나 아닌 다른 이들’의 활동이라면 ‘그들의 활동’이라고 인정하며 한 걸음 물러나 관망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멈추지 않는 아주 이상한 현상은, 굳이 시비를 걸고 폄훼하며 인신공격으로 몰아간다는 점이다. 대학입시거부를 선언한, 선언해야 했던,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선언 자체가 대안이었던 이들의 선택 자체를 부정하고 비이성적인 존재들로 몰아대는 여론몰이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시비걸기를 위한 시비가 일상화된 세상의 자화상이 여기에서도 적나라하게 확인이 된다. ‘어차피 의무나 강제도 아닌데 안 가려면 혼자 안 가면 되지, 왜 거부선언씩이나 해?’, ‘배가 불러서 살 만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대학에 문제가 있다면 대학 안에서 바꿔야 하지 않냐?’, ‘그렇다면 대학에 간 사람들이 잘못 사는 거냐?’ ‘경쟁 없는 세상이 어디 있냐?’, ‘정치적인 배후가 있는 거 아니냐?’
“민감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시민사회단체 안에서도 대학의 서열과 학번에 따른 선후배 관계가 공고한 곳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대학시절의 학생운동 경력마저도 학연으로 연결된 상태라는 거죠. 그런 점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고 하면서도, 또한 대학서열과 학력차별의 문제점에 공감한다면서도, 논의의 결론은 결국 ‘대학’이라는 연결고리를 재확인하는 걸로 마무리가 된다는 거예요.” (공현)
“사실 각 지역마다 어느 학교가 공부 잘하는 학교이고 못하는 학교라는, 심지어 서울대부터 시작해서 각 대학의 서열표를 외우는 노래까지 있잖아요. 저는 ‘탈학교’를 했고, ‘탈가정’도 해서 저의 삶을 찾아가고 있어요. 개인적인 만족도 또한 높아지고 있죠. 투명가방끈의 취지에 동감하는 ‘예비 가방끈’님들이 계시다면, 당신의 고민을 듣고 받아주며 공감할 ‘누군가’가 이 땅 여기저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은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 ‘나’하고 같은 입장인 이들이 정말 많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여러분의 삶도 새로운 터닝 포인트를 만나게 될 거라고 확신해요.” (피아)
투명가방끈의 두 활동가는 자신들과 연결될 연락처의 공개를 원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 투명가방끈의 취지에 직접 공감하는, 아니면 공감을 할 주변의 지인이 있다면 적극 소개할 필요 또한 있을 것 같다. 대학진학은 인생에 있어 유일한 진입로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살아갈 방법은 아주 많다. 대학 진학은 수많은 노선 중의 하나이고, 나머지 빈 공간에 훨씬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하고 있다. 성공의 신화, 인생의 가치는 ‘스카이 캐슬’이라는 환상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투명가방끈의 활동과 연대 안에서 뚜렷하게 증명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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