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보호가 아닌, ‘복지’만 말할 수 있게 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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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제공.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
인터넷으로 ‘아동학대’를 검색해 봤다. 내용이 끝없이, 정말 끝도 없이 이어진다. 검색어를 ‘아동학대사망사건’으로 바꿔 엔터키를 눌렀다. 마찬가지다. 언젠가 들어봤음직한 제목들, 굳이 몇 가지만 나열한다면 고준O 양 사망사건, 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 이천 아동학대사망사건, 신원O 군 사망사건, 부천 초등학생 사망사건 등, 일일이 클릭하며 확인하기도 주저될 내용들뿐이다. 최근의 사건들이 이러한데, 십여 년과 이삼십 년 전은 어땠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밀려든다. ‘아동학대’라는 키워드는 왜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는 게 없을까?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문을 두드리며, 그 내면의 문제점들을 함께 들여다보기로 했다. 답은 분명히 있는데도 해결이 안 되는 이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 그 책임은 먼 곳이 아닌 바로 우리 개개인에게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일상 주변에 이미 존재하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중앙아보전)은 아동학대예방사업을 활성화하고 지역간 연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아동복지법 제45조에 의거해서 2001년 10월 설립됐다. 중앙아보전은 각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을 지원하고 아동학대예방사업 연구 및 자료 발간, 효율적인 아동학대예방관련 교육 및 홍보, 아동학대예방 프로그램 개발 및 평가, 상담원 직무교육 및 여러 아동보호기관의 전산시스템 구축 및 운영 등을 주된 업무로 수행하고 있다.
중앙아보전이 밝혀놓은 ‘사명선언’과 ‘우리의 다짐’ 같은 내용만 봐도, 그들이 아동의 보호와 학대예방을 위해 얼마나 광범위한 활동을 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예방으로 끝나지 않는 아동학대행위가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1년에 중앙아보전이 설립되기 전, 2000년 가을에 전국 각 지역마다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설립됐어요. 2000년 1월에 아동복지법이 전면 개정된 결과였죠.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아동보호와 복지를 바라보기 시작한 게 불과 20년도 안 됐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죠.”
전국에 천 명 이상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몸담은 조직의 총 책임을 맡은 이는 중앙아보전의 장화정 관장이다. 중앙아보전이 설립되면서 해당 부서의 팀장으로 부임했고, 5년여 동안 경기아보전 관장으로 활동하다가 2010년부터 중앙아보전의 관장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장기집권하고 있네요” 하며 웃는 그는 중앙아보전 이전부터 굿네이버스에서 아동인권을 위한 역할을 담당해 왔기에, 아동의 권익보호와 인권을 위한 인생을 20년 넘게 살아온 셈이 된다. 대한민국의 아동인권 현주소를 묻고 듣기에는 최적임자가 되는 셈이다.
“왜 이 길에 인생을 바쳤느냐고 물으신다면, 1998년에 있었던 한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현장 활동을 하면서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기에도 바쁘던 당시였는데, 한 방송사에 제보가 들어왔다고 해서 저희가 현장에 직접 동행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일곱 살이던 남자아이였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호적 자체도 정확하지 않더라고요. 누나는 이미 암매장돼 있었고, 동생인 그 아이는 거의 죽기 직전의 아사(餓死) 상태였어요. 정말로 미국의 해당 전문서적에서나 봤던 그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던 거죠. 그 아이를 극적으로 구출하게 됐고, 그 과정을 직접 담당하면서 ‘아, 내가 현장을 지켜야 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을 확신으로 떠올리게 됐던 거예요.”
아보전은 올해 추가 설립되는 두 곳을 포함해, 전국에 63개소가 개설돼 있다. 우리의 일상 주변에 이미 한 곳 이상의 아보전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동학대의 현장을 목격하거나 간접적으로 전해 듣게 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지난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아동학대처벌법, 2014. 9. 24 제정, 2014. 9. 29 시행)’이 발효됨에 따라, 모든 신고 번호는 112로 통일됐다고 한다. 막상 급하게 필요할 때 떠올리기 어려운 개별단체마다의 서너 자리 숫자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오래 전부터 익숙하게 기억해 왔던 ‘범죄신고 112’라는 거, 그건 아동학대신고의 신속성을 보장하는 최상의 방법임이 분명해진다.
“112로 신고가 들어오면, 곧장 ‘통보’라는 게 시스템 상으로 전파됩니다. ‘학대의심입니다’, ‘학대가 진행되고 있네요’라는 신고가 들어오면 곧장 현장으로 지시가 내려져요. 그 지시가 전국의 해당 지구대(파출소)로 전해지면, 그 지구대에선 5분 이내로 현장에 출동을 합니다. 출동하면서 지역의 아보전한테 연락을 하는데, 급한 경우엔 현장에 도착한 뒤에, 아니면 지구대 복귀 후에 연락을 전하기도 하죠.”
장 관장은 국가정책 상의 아쉬운 점을 먼저 짚었다. 가장 최상의 대응은 지구대의 경찰과 아보전의 활동가들이 동시에 현장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전국의 아보전은 63개소, 지구대는 총 2천5백 군데가 넘는다. 아무리 빠르게 대응한다 해도, 아보전이 경찰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맹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예요. 예전처럼 일정 시간 동안 곪아터지는 과정이라면 접수와 함께 방문해도 되는데, 지금은 신속성을 요구하는 급박한 상황들이 훨씬 더 많거든요. 그래서 아보전의 시스템이 시급히 확장돼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하는 거예요. 새로 들어선 현 정부가 공공성 강화를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저희는 63개소에서 100개소로 확대 설립하기로 했던 기존 계획이 미뤄진다면, 최소한 80개소 규모라도 당장 각 지역에 추가 설립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비명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국가가 다가서지 못하는 사각지대 안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으니까요.”
묻고 싶다. 이 심각함을 국가는 알고 있는지
그럼 아동학대라는 건 도대체 어떤 범주에 속하고, 일반대중이 어느 선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참고자료로 제시하는 ‘아동학대 체크리스트–체크항목’의 15가지 내용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게 가능해질 것 같다. ‘아동학대 체크리스트’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가 직무 중에 학대로 의심되는 아동을 조기발견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됐다. 15개 문항 중에서 단 1개 이상이라도 ‘맞다’고 판단되면, 아동학대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정황이 된다. 그리고 그 의심이 주관적인 확신으로 굳어진다면, 객관적인 검증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곧장 신고전화 112로 사실확인을 요청해야 한다. 이름 모를 ‘한 아이’가 마지막 SOS를 보내는 최후의 순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라는 대상은 누구이고 무슨 의미일까? ‘아동학대처벌법’ 제10조 제2항에 규정된 해당 업무의 관계자들인데, 그 다양한 구성을 살피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일단 다음과 같은 기관의 책임자와 종사자 모두가 포함된다.
가정위탁지원센터/아동복지시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건강가정지원센터/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부모가족복지시설/사회복지시설 성매매피해상담소/성폭력피해상담소 및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청소년단체/청소년 보호 및 재활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의료기관, 정신요양시설, 정신재활시설·입양기관 등의 책임자와 종사자 등
거기에 더해서 수많은 연관 단체들과 직책들 또한 신고의무자 당사자가 된다.
아동복지전담공무원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통합서비스지원 수행인력/가정폭력 관련 상담소 사회복지전담공무원/구급대의 대원 응급의료기관 등에 종사하는 응급구조사 어린이집의 원장 등 보육교직원 교직원 및 강사 전문상담교사 및 산학겸임교사 학원의 운영자, 강사, 직원 교습소의 교습자, 직원 의료기관의 장과 의료인/의료기사 청소년시설 장애인복지시설의 장과 종사자로서 시설에서 장애아동에 대한 상담, 치료, 훈련 또는 요양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아이돌보미 등
굳이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이유는 단하나, 절박함 때문이다. 앞에 밝혔던 바 그대로 우리 모두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더욱이 아동학대신고를 규정한 각종 법률의 규모까지 인용한다면, 대한민국은 진정 아동복지를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춘 나라라고 자부할 만하다. 현실은 따로 돌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동학대처벌법/아동복지법 가정폭력방지법/건강가정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한부모가족지원법 사회복지사업법/성매매피해자보호법 성폭력방지법/소방기본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영유아보육법 유아교육법/초·중등교육법 학원법/의료법/청소년기본법 청소년보호법/장애인복지법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아이돌봄 지원법 입양특례법 등
“저희는 위기상황의 아이들을 시급히 구출해서, 위기의 그 현장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일단 구출부터 해야 해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이것이 학대상황인지를 모르고, 그냥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판단한다는 거예요. 다른 집 아이들도 다들 자기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저희 아보전이 준비하고 있다고 해도, 인력의 부족과 교통편 같은 기반의 열악함 때문에 즉각 대응의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전국 각 지역의 아보전 확충과 인력 확대는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당연과제입니다.”
남의 일이 아닌, 이건 나의 일이다
그렇다면 20년 넘는 산증인인 장 관장의 지난 시절은 어땠을까? 이는 한 개인의 문제나 아보전 차원이 아니라,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국가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하게 만드는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미친 듯이 일을 했죠. 사실 저희들의 업무는 24시간 돌아가는 거예요. 신고전화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지금은 아동학대처벌법 시행으로 ‘112’라는 번호 하나에 일원화가 됐지만, 24시간 대기해야 하기기 때문에 잠을 잘 때도 가슴에 전화기를 안고 잤어요. 벨이 울리는데 활동가들이 못 받으면 안 되니까요. 샤워를 할 때도 전화기를 랩에 씌워서 들고 들어갔고, 추석이나 설 연휴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고요."
장 관장은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적했다. 한마디로 ‘내로남불’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하면 아동을 위한 훈육이고, 제3자가 하면 학대와 폭행으로 신고해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되짚는다.
더 까놓고 얘기한다면, ‘아동학대’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다고 한다. 부모는 자기 자녀들을 더 잘 키우기 위해서 때리기도 했고, 그건 집안의 문제이자 양육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밖에서 시비를 걸 사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기아보전 관장을 할 때, 그 기관에서 운영하던 쉼터가 있었어요. 그 쉼터에 와서 생활하던 한 꼬마아이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전 여기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뭐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니까 ‘여기는 일단 때리지도 않고요, 밥도 제때 주고요, 따뜻한 물도 나오잖아요.’ 하는 거예요. 쉼터라는 시설 자체는 솔직히 말해서 깨끗하고 안락한 환경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런 아이들은 너무나 행복한 공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왜냐, 최악의 상황을 경험했던 아이들이거든요. 밑바닥의 나락에서 탈출한 아이들한테는 따뜻한 잠자리와 밥 한 끼 그리고 몸을 씻을 따뜻한 물줄기가 최고의 행복이자 위안으로 간직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거기에 대해서 활동가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장 관장은 털어놓는다. 그 자세한 내용을 이 지면의 활자로 언급하기는 곤란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던 상상 이상의 일들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쉼터의 기준으로 말씀드리겠는데, 단적인 예로 저희가 만나고 대처해야 하는 아이들은 일단 안전한 환경에 있어야 해요. 그 애들은 저희들의 보호를 감옥이라고 생각하죠. 휴대전화도 수거당하고, 잠을 잘 때는 문까지 잠그는 상황을 맞이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최상의 보호라는 걸 아이들은 몰라요. 왜냐, 보호자라는 이름의 학대행위자들이 ‘내 아이 내놔라’ 하며 매번 찾아들기 때문이죠. 애들이 있을 장소를 바꿔도, 어떻게든 알아서 찾아옵니다. 더욱이 여자아이들의 극히 일부는 아버지의 성폭력 피해자인 경우가 드러나요. 그렇기에 휴대전화부터 회수하는 거예요.”
그건 무슨 의미일까? 철저하게 가족 내부의 문제로 치부하려 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 가족 간에 속칭 ‘입맞춤’이라는 사전조율이 진행되는 게 다반사라는 것이다. 아빠라는 사람이 딸한테 성폭행을 지속적으로 가했을 경우, 가족구성원들은 거의 대부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상황이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렇게 입막음을 시도하는 게 대부분이란다.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돼.’ ‘네가 여기서 이런 말을 하면 우리 집은 큰일 난다고!’ “제가 늘 강조하는 부분인데요. 우리가 옛날이야기라고 항상 언급하는 ‘콩쥐와 팥쥐’도 학대예요. ‘신데렐라’도 학대가 맞죠. ‘헨델과 그레텔’은 아이들을 갖다 버렸어요. 이건 명백한 유기에 해당되잖아요. 그런 심각한 상황의 이야기들인데도, 우리는 그걸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동안 어떻게 교육했는지는 다들 잘 아시잖아요. 권선징악이라고, 착하게 살라고, 그러다 보면 곧 행복해질 거라고 가르친 게 그동안의 우리 교육이었어요. 그렇듯이 이젠 학대가 아닌 걸로 포장됐던 모든 게 드러나고 있어요. 예전에는 학대가 아니라고 배웠는데, 이젠 그게 가장 큰 범죄행위라는 걸 우리 사회 전체가 깨닫게 됐다는 거죠.”
맞는 말이다. ‘흥부와 놀부’는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동물학대를 저질렀고, ‘선녀와 나무꾼’은 몸을 씻는 여성의 옷을 훔침으로써 ‘#미투운동의 효시’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세상의 시선이 바뀌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그렇죠. 세상은 이미 바뀌었으니까요. 이제는 ‘내 아이’도 나만의 존재가 아니라, 이 사회의 일원인 ‘모두의 아이’가 되는 거예요. 이젠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아이의 인권’, ‘아이의 권리’, ‘아이의 안전’을 가장 우선해야 하는 세상이 됐어요. 모든 아이들은 독자적인 자신의 인생과 인격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매를 들고 폭행을 일삼아도 ‘가족이니까’ 하는 세상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어른들의 소유가 아니에요. 제각기 소중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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