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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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나는 |
이젠 이 땅의 영원한 고유명사가 된 ‘단원고’라는 한 단어에 일단 한정지으며 이 글을 시작한다. 과연 가장 가슴 아픈 상처를 간직한 이들은 누구일까?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남기다가 별이 된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들의 처절한 절규만 떠올리며, 우리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의 얼굴에 집중하고 있었던 바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1년여 지난 후에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이들이 있었다. 바로 별이 된 아이들의 형제자매들이다.
‘가장 가슴 아픈 상처’에서 제외될 수 없는, 빠져선 안 될 ‘피붙이’ 당사자들인데도, 우리 모두는 그 존재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무심하게도 그들을 잊고 지냈던 것이다. ‘형제’라는, ‘자매’라는, ‘남매’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 그 의미에 담긴 답을 찾아가는 이들을 마주하기로 했다. 정신적 장애인의 비장애형제자매들의 자조모임과 만났다. ‘나는’을 소개한다.
아,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겨울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저희가 정신적 장애를 가진 형제가 있는 이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장애당사자들을 위한 봉사모임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하지만 저희는 그 당사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비장애형제자매들이 만나고 있는 거예요.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가슴속 응어리들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면면들끼리 함께하는 모임이니까요.”
가넷 “정신적 장애를 가진 남매와 함께 살아오면서도, 끝까지 제삼자로 치부돼야만 했던 형제자매들의 입장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잖아요. 그걸 저희들 스스로가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이 모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본명 대신 모임의 활동명으로 기록해 달라 했다. <함께걸음>과 직접 만나게 된 본인들은 괜찮지만, 공식적인 지면에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는 게 민감한 회원들이 아직도 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 의견 그대로 받아들이며, 모임의 씨앗을 처음 심었던 두 사람을 만났다. ‘OO 씨’나 ‘OO님’ 같은 호칭은 빼고, 활동명 그대로 기술하고자 한다. 그게 훨씬 자연스러운 문장 진행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둘 다 여성인 이십 대 후반의 가넷과 삼십 대 초반의 겨울이 ‘나는’의 시작점을 설명한다.
겨울 “2015년 말의 일인데요. 정말 처음으로 저 아닌 다른 비장애형제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족 안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될까?’ 하는 고민이 흘러넘치게 됐던 시기였죠. 당시 저는 대학원생이었는데도, 상담까지 받아야할 상황이었거든요. 삼십 대를 앞둔 입장에서 마주해야 할 진로에 대한 고민, 부모님이 저한테 거는 기대, 장애형제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하는 고민들을 억누르며 견디려 하다가, 그게 결국 외적으로 터져 나오게 됐던 거죠. 그런 입장인 다른 형제자매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서 갈등만 반복하다가, 아는 분의 소개로 가넷을 만나게 됐어요. 저 아닌, 저와 같은 입장의 누군가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됐던 거죠.”
가넷 “그 이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어요. 초면이었던 거죠. 그런데 그동안 살아온 과정이 거의 비슷한 입장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연결이 돼서 대화를 나누게 됐고, 그 인연이 더해져서 두 사람이 더 추가되며 넷이서 정말 소중한 만남을 이어가게 됐어요. 그 이전까지는 아무리 검색을 해도, 이런 내용의 모임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아,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구나!’,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얘기까지 나누는 게 가능하구나!’ 하는 그 실감은 정말 처음 경험하게 된 자기정화(카타르시스)라고 할까요? 움켜잡고만 있던 저 자신을 내려놓고, 타인과 가슴속 그대로를 얘기할 수 있었던 최초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겨울과 가넷은 자신들과 같은 상황에 있을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서울시에서 추진하던 청년허브 지원 사업에 신청을 했고, 그게 선정이 된 뒤 받게 된 일정한 지원금으로 시작했던 게 바로 ‘대나무숲 티타임’이었다고 한다. 정신적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와 함께 살아온 비장애형제자매들이 모여서, 2주에 한 번씩 주제별로 이야기하는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오랜 시간, 어쩌면 살아온 지난 인생 전체를 억누르고 있었을지 모를 가슴속 상처들을 나누고 위로받으며 격려할 수 있는 세상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만들어낸 셈이다.
겨울 “저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또한 주변의 시선 속에서 항상 프로그램이 입력되듯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들어야 했어요. ‘동생은 아프잖아. 네가 잘 해야지.’, ‘엄마아빠 힘든 거 알면서 너까지 이럴 거니?’, ‘앞으로도 네가 더 잘 돌봐 줘야지.’ 그런 말들을 듣게 될 때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지내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때마다 자문자답을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럼 나는?’ 어쩌면 저희들의 자조모임 이름은 이렇게 정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몰라요. ‘나는’ 뒤에 괄호에 묶어 It’s about me를 붙이는 건 바로 ‘우리 자신’, ‘나 자신’을 위한 만남임을 의미해요. 정말 서로서로가 자기 자신을 되찾는 게 가능해진 인연들이 됐으니까요.”
‘내 인생은 누구 것인가?’라는 질문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성격의 만남인데, 더군다나 구면이 아닌 초면들끼리 한데 모여 앉는 형식이기 때문에, 이런 모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 같은 게 생긴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겨울과 가넷은 동시에 대답했다. 전혀 아니라고 말이다.
가넷 “처음 만날 때부터 알았어요. ‘이건 정말 해야 한다, 정말 필요하다, 너무 좋다’는 걸 확신으로 느끼게 됐거든요.”
겨울 “맞아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런 만남의 필요성을 서로가 동의했고, 너무 강하게 그 느낌을 공유하게 됐으니까요.”
가넷 “자신에게 있는 장애형제에 대해서 이렇게 가식 없는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얘기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없었다 보니까, 더욱이 서로 형제들의 장애증상이 다 다르다 보니까, 각자의 경험이 개별적이고 생각도 다르다는 게 오히려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공통적으로 공유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위안으로 다가왔던 거죠. 그래서 더 만나고 싶고 더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강해졌던 거예요.”
‘나는’은 정신적 장애를 가진 형제들에 중점을 둔다.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가 모두 포함된다. 큰 틀에선 장애유형별로 거의 비슷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세부적으로는 똑같은 경우가 없을 만큼 개별적인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대화의 몰입도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너’의 경우가 ‘나’를 준비시킬 수 있고, ‘나’의 애로사항은 ‘너’의 체험 속에서 해답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겨울 “개인적인 의미라면, 일단 저는 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 사랑한다고 직접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그게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점인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다른 사람의 인정, 특히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싶었고 그런 것 때문에 고민들이 많았다면, 이젠 ‘나는’ 친구들과 만나면서 ‘아니야, 넌 괜찮아.’라는 얘기를 너무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됐어요. 고민 속에 파묻혀 지내는 게 아니라, 진짜 저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만나게 된 거죠.”
가넷 “사실 비장애형제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은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면이 굉장히 크고 강해요.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그래서 스스로 착한 아이가 돼야 하고 무엇이든 잘하는 아이가 돼야 한다는, 좋게 말하면 뚜렷한 목표의식이지만 강박관념일 수밖에 없는 심리적 상황에 늘 지배되거든요. 그러다가 다들 한 번씩은 아주 크게 터져버리고 말게 되죠. 그 폭발이 일어난 다음, 부모와 다시 관계 맺기에 힘겨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요.”
겨울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제공이 반드시 필요해요. 가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힘든 건 당연히 어머니겠죠. 그런데 장애판정을 받고 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뛰어다니면서 정보를 얻으려 애쓰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에요.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건 비장애형제들이 되는 거고요.”
가넷 “부모님이 멀리 떠나가시면, 그 순간부터 비장애형제가 장애형제의 보호자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이미 오래 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주변에 안 계실 때는 당연히 비장애형제가 보호자였고, 반(半)엄마아빠 역할을 담당하면서 자라왔잖아요. 부모님 사후부터 실질적인 보호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비장애형제자매들한테도 그 나이에 맞는 체계적인 지원과 정보가 제공돼야 해요. 현실은 그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거죠.”
‘나는’은 정신적 장애를 가진 아동기와 십대 자녀들의 부모를 위한 토론회도 적극 개최하고 있다. 참석한 부모들은 ‘나는’의 체험담을 들으면서, ‘설마’와 함께 ‘우리 집은 절대 안 그렇다’는 고정관념을 강하게 피력하신다고 한다. 또한 비장애형제자매들이 가정 아닌 외부생활에서 상처 받을 부분을 더 크게 염려하신단다. 하지만 ‘나는’은 대답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상처를 받았던 건, 외부가 아닌 바로 가족 안이었다고 말이다.
이젠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나는’이 구성원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쌓아가면서, 그 우애와 믿음이 더해지면서, 그동안 모으고 모았던 고백과 독백들이 한데 정리된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라는 책 한 권이 탄생했다. 저자는 ‘정신적 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청년들의 모임 나는’이다. 지난 3월에 출간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살피지 않았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를 영혼의 음성으로 증명하고 있다.
가넷 “책을 준비하면서, 사실은 저희가 걱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별 거 아닌 것같이 보일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도 될까?’ ‘정말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필요할까?’ 모든 게 주저되는 심정 그 자체였거든요. 그런데 책이 출간된 다음 대나무숲 티타임을 처음 하던 날, 이십 대부터 삼십 대인 ‘나는’의 친구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데 다들 표정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 밝은 얼굴들을 보면서 확신을 얻게 됐죠. ‘나는’이 우리 모두에게 긍정의 영향을 가져다 주는 자리였다는 것, 우리 모두에게 필요했던 만남이었다는 사실을 책 출간의 결실로 재확인하게 된 거예요.”
‘나는’은 서울을 중심으로 탄생했고, 작년부터 부산의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서울 부산뿐 아니라 전국화 같은 목표가 있는지 물으니까, 아직 구체적인 설계는 마련하지 않고 있단다.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이 만남에 동참하고 싶은 비장애형제자매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별적인 연락을 전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인연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그 연락처의 공개여부를 다시 물으니, 겨울과 가넷은 흔쾌히 동의했다.
구체적인 설계가 아직 없다 해도, 전국 각지에서 ‘나는?’이라는 물음표를 간직한 마음들이 하나둘씩 모이면, 자연스럽게 전국화가 이루어질 토양이 만들어질 게 아닌가. 전국의 각 지역마다 ‘나는’을 찾는 목소리들이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아래에 ‘나는’의 웹 주소와 이메일, 페이스북 계정을 새겨놓는다. 어딘가 있을 그들을 초대하고 환영하는 인사의 한마디를 지면 위에 직접 남기면 어떨까 싶어 제안했더니, 두 사람은 같은 마음으로 한 대목씩 답하며 ‘나는’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겨울과 가넷 “그동안 참 수고 많았습니다. 당신은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나’를 생각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참 소중한 존재니까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넌 정말 잘 하고 있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 하며 말해주는 이들이 이젠 곁에 있게 될 거예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저희들은 듣고 싶습니다. 모두 함께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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