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로부터의 대피소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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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은지 기자 (사진제공 - 띵동)
“나는 무서워서 조용히 숨기고 지내지만 어쩌다 들켜버린 아이들이 학교에서 매장 당하고 꿈을 잃고 가족에게 쫓겨나는 사례는 정말 많이 본다. 나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하나하나 너무 슬프다.” (여성, 레즈비언, 18세)
국가인권위원회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2014년 진행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에 응답한 한 여고생의 답변이다. 성소수자로 살아감에 있어 이와 같은 혐오에 대한 두려움은 레즈비언뿐 아니라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인구 전체를 아우른다. 특히 주변인들에게 큰 영향을 받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받는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 이들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전국 최초의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가 2014년 12월 문을 열었다.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을 만났다.
국내·외 응원으로 개소한 최초의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2013년 12월 24일, ‘키디다’라는 청소년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그는 교회에서 혐오발언을 들으며 날 것 그대로의 차별과 편견을 견뎌 온 남성 동성애자였다.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과 두루 친분이 있던 그의 소식은 충격으로 퍼져나갔고 이는 ‘청소년 성소수자 보호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이전에도 꾸준히 있어왔던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해, 자살 문제에 대한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청소년 성소수자 쉼터를 목표로 설립이 추진됐고 현재는 3명의 상근 활동가들이 20평 남짓의 자그마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에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상담공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들이 마련돼 있다. 아직 24시간 운영은 되지 않지만 엄연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휴식처다.
띵동 개소는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후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띵동이 2015년에 기대한 활동은 활동가 한 명이 거리에 나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상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4년 퀴어퍼레이드에서 만난 구글 코리아가 띵동을 구글 본사에 알리면서 예상치 못한 지원이 들어왔다. 구글 본사에서 띵동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고 3천만원을 지원한 것이다. 그 외에도 아름다운 재단 인큐베이팅 사업에 선정됐으며, 국내와 해외 모금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재정이 확보되자 띵동은 망설이지 않고 독자적인 공간을 계약했고 그 안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것들을 채워넣었다. 이인섭 상임활동가는 “키디다씨의 기일에 맞춰 개소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시대가 청소년 성소수자 보호 사업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 '띵동' 활동가들 |
‘더럽다’,‘역겹다’… 막다른 곳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
‘띵동’이라는 이름은 초인종을 떠올리게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 누구나 문 두드릴 수 있는 곳임을 의미한다. ‘무지개 청소년 세이프 스페이스’라는 처음의 이름을 버리고 ‘띵동’이라는 이름을 새로 정한 것도 친근감을 느끼고 쉽게 접근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띵동은 어렵게 초인종을 누른 성소수자들을 단순하게 규정해 이용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다. 청소년 위기지원센터지만 청소년을 단순히 10대로만 국한하지 않는 것이다. 이인섭 상임활동가는 띵동 내부에서 대상자 연령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띵동 사이트를 보면 이용대상자 연령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청소년 성소수자라고만 돼 있다. 내부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청소년의 범위를 우리가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19살의 12월 31일과 20살의 1월 1일의 차이가 무엇이며 21살이라고 해도 어느 19살보다 상황과 조건이 나쁠 수 있는데 단순히 나이만 가지고 가를 수 있느냐는 의문점이 있었다. 가끔 20살인데 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우리는 되묻는다. 본인이 청소년이라고 생각하시냐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지원해드린다고.”
띵동을 이용하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대략적인 나이는 14세에서 20세. 이들이 안고 오는 고민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한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이다. 커밍아웃(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 여부와 관계 없이 학교 내에서 일상적으로 오고가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견디기 힘들어하거나 커밍아웃 의사가 없음에도 강제로 정체성이 밝혀지는 일(아웃팅) 등의 문제가 주를 이룬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학교 내에서 얼마나 자주 혐오 표현들 속에 놓이느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에서 두드러진다. 조사 결과 청소년 성소수자 중 학교 내에서 교사로부터의 혐오 표현을 경험한 인원이 전체의 80%, 다른 학생으로부터의 혐오 표현을 경험한 인원은 92%에 달했다. 설문이 제시한 혐오 표현 예시 중 가장 많은 응답자가 경험한 표현으로는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동성애는 도덕적이지 않다’, ‘동성애자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등이 있었다. 예시된 표현 외 경험한 혐오 표현의 서술식 응답에서는 ‘더럽다’, ‘역겹다’ 등이 가장 많았다.
띵동을 방문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통해 활동가들이 듣는 혐오 표현들도 마찬가지다. 트렌스젠더와 게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서도 막연하게 성소수자 모두를 통 틀어 ‘더럽다’고 표현한다. 비성소수자 학생들의 혐오 표현도 문제지만 문제 해결에 나서줘야 할 교사들의 인식 수준이 더욱 문제다. 이인섭 활동가는 교사들이 성정체성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와 연락하는 교사분이 종종 교사 커뮤니티에서 드러나는 여론을 전달해주는데, 그 내용을 들으면서 교사들의 보수적인 마인드를 알 수 있었다. 성정체성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인데 성애로 보는 게 가장 큰 오류다. 성적인 문제로 여기기 때문에 학생과 논의하길 꺼려하고 오히려 성소수자 이슈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본인의 성정체성을 알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교사에게 혐오 문제의 해결을 바라기는 어렵다.”
한편, 교사들의 낮은 인식 수준을 단순히 교사들의 인성이나 역량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앞서 언급한 실태조사 결과, 설문조사에 참여한 교사들 중 79%가 성적 소수자 인권 및 평등 관련 교육 이수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환영 받으며 만나는 자리 ‘띵동’
띵동은 신변 노출에 예민한 청소년 청소수자들을 위해 다양한 상담 채널을 두고 있다. 전화 상담, 카카오톡 상담, 거리이동상담 등이다. 사무실 위치를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전화나 카카오톡 상담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통해 가장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파악한 뒤, 상황에 맞는 지원을 제공한다. 일상생활을 가능케 하는 생활물품 지원과 샤워실, 낮잠방 등 띵동 공간 이용, 쉼터 연계, 의료상담, 법률상담, 지속적인 심리상담 지원 등이 있으며 이후 지원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채널은 카카오톡이다. 학교와 학원 등으로 하루를 쪼개는 청소년들의 일정상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나 교사의 눈을 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틈틈이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는 편의성과 쉬운 접근성이 강점이지만 카카오톡 이용이 활발한 것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도 자신의 신변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용한 탓도 있다. 카카오톡을 통한 꾸준한 상담으로 마음을 열면 이후 방문 상담이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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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띵동은 위기상담의 단계로서의 프로그램뿐 아니라 청소년 성소수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 성공적으로 진행된 ‘토요일 토요일은 밥먹자’(이하 토토밥)가 대표적이다. 토토밥은 매번 바뀌는 오늘의 셰프가 직접 준비한 식사를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함께 먹고 다양한 놀이나 체험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여 가능한 인원은 10명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만이 신청할 수 있다. 초기에는 신청이 적었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하반기에는 신청 인원이 참여 가능 인원을 꽉 채웠다. 오늘의 셰프는 띵동 후원회원이나 운영위원 등 대부분 띵동 개소에 힘을 실어준 사람들이었다. 토토밥은 즐겁고 자유로운 분위기로 진행됐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 환영 받으며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자리로서 큰 의미를 가졌다.
낯선 이름인 ‘거리이동상담’은 활동가들이 사무실을 벗어나 일정 장소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나는 활동을 말한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와 함께 매주 목요일 서울 신림동 봉림교 부근에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신림동에서만 진행되는 거리이동상담은 2016년부터 독자적인 활동으로 넓혀진다. 이를 통해 띵동은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 성소수자를 발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외에도 띵동은 2015년 수많은 활동으로 바삐 움직였다. 위기 상황에 놓은 트렌스젠더 청소년을 위한 특별 모금, 각종 행사에서의 부스 캠페인, 데이 캠프, 띵동 드림 프로젝트까지 더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나고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의료생협, 심리상담 단체 등과 연계해 전문적인 지원을 확보했다. 토토밥 등 좋은 성과를 거둔 프로그램은 2016년에도 꾸준히 이어질 예정이다.
스스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도록
띵동을 찾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띵동이 없었다면, 또는 띵동을 모르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혐오와 편견 속에서 어떤 해결책을 찾을까. 이 질문에 이인섭 활동가는 “운이 좋으면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찾아내서 다른 성소수자들과 소통하며 방법을 찾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인터넷이나 비성소수자인 주변인들로부터 왜곡된 지식을 얻고 그걸 믿게 되면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정체성을 억누르는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고 답했다.
띵동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택하거나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함에도 비난받고 질책당한다. 성인 성소수자들은 그나마 문제에서 분리될 수 있다. 문제가 있는 직장을 그만두거나 가정에서부터 독립할 수 있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도망갈 곳이 없다. 스스로 커뮤니티를 찾아 다른 성소수자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으며 그들이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어 불안과 두려움이 팽창한다.
띵동은 그런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무조건적인 포용을 약속한다. 띵동 활동가들은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그들에게 공감해주고 그들을 지지해준다.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나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프로그램을 통해 무리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과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힘을 보탠다. 띵동은 한 해 동안 긍정적인 결과를 적지 않게 봤다. 이인섭 활동가는 그 중 한 사례로 한 게이 청소년을 들었다.
“가정에서 아예 방임하고 있는 A라는 친구였다. 학교나 집에 가지 않아도 가족들이 상관하질 않았다. 굉장히 방황하고 있었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방문 상담을 받으러 들어오자마자 쓰러져버리기도 했다. 그 친구와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지지해주는 관계를 유지했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변화하더니 지금은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을 다니면서 청소년 상담사를 꿈꾸고 있다. 일단 띵동을 만나 적극적으로 상담을 진행한 친구들을 보면 이런 긍정적인 사례가 많다.”
띵동의 활동이 가지는 목표는 ‘청소년 성소수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A군에게 그러했듯이, 띵동은 오늘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는 언제나 너와 너의 삶을 응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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