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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델·싱어송라이터 장윤주

세상을 위로하는 따뜻한 여성리더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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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위로하는 따뜻한 여성리더를 꿈꿉니다"

지난 12월말, 한창 바쁜 연말에 패션모델 겸 싱어송라이터인 '장윤주'씨를 만났다. 장애계 언론사, 시사지인 함께걸음에서 인터뷰한 주인공이 '장윤주'라서  매우 의외라고 생각하는 독자분들이 많을 것 같다(함께걸음 편집부 기획회의 초반에도 그랬다). 하지만 장윤주 씨는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성장애인연합 홍보대사로 활동할 정도로 그 어떤 연예인보다 장애인들과 멀리 있지 않다. 또 그녀는 장애인 중에서도 여성장애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진 그녀의 따뜻하고 진솔한, 소박함이 묻어났던 인터뷰를 소개한다.

  

   

 

 

바쁜 일정 가운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한국 최고의 모델의 인터뷰에 함께걸음 독자들도 무척 반가워할 것 같다
요즘 정말 정신없이 바빠요. 매일 밤 12시부터 새벽 2시까지 KBS 2FM에서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어요. 다른 라디오에 게스트로도 출연하고 있고요. 그리고 지난 11월 중순에 4년 만에 앨범이 나와서 홍보를 위해 잡지 인터뷰, 화보를 많이 찍었어요. 한 동안 전속광고모델로서 말고는 패션화보 촬영을 안했는데 이 앨범이 나오면서 많이 찍게 됐어요. 그러고 보니 저도 벌써 2집 가수네요.(웃음)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한 앨범이라고 하니 더 기대된다. 이번 앨범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나
1집도 그렇고, 이번 2집도 직접 작사하고 작곡까지 다 했어요. 그래서 앨범 나오는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 것 같아요. 2008년 11월에 1집이 나왔고, 공교롭게도 2집 앨범도 11월에 나오게 됐네요. 그런데 사실, 제가 추구하는 감성이나 음악적인 취향이 겨울과 잘 맞는 것 같아서 시기가 맞았던 것 같아요. 추구하는 감성이 ‘슬픈데 따뜻한’인데, 저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성이라고 할 수 있죠.

   
▲ 장윤주 2집 'I'm fine'

‘슬픈데 따뜻한’ 감성은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제 안에 슬픔, 상처도 있는 것 같은데, 어렸을 때가 아닌 성인이 돼서 만들어낸 슬픔일 수도 있고,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슬픔일 수도 있고... 누구나 다 슬픔이 있겠지만 저는 슬픔에 대해서 감추기보다는 뮤지션으로서든, 모델로서든 잘 표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제가 표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도 값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슬픔 감정과 더불어 제가 가지고 있는 성향 중에 하나가 따뜻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예인이기 전에 인간적인 부분이 있고 그 두 가지, 슬프면서 따뜻한 감성이 특히 음악에서 잘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도 불리우는데, 음악은 언제부터 하게 됐는지
음악은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3때까지 교회에서 성가대를 했었고, 집에 피아노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거죠. 특별히 큰언니가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이어서 큰언니를 따라서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게 됐어요. 

그리고 다른 과목은 잘하지 못했지만 음악은 특히 잘했어요.(웃음) 어릴 때 경연대회 나가서 상도 받아서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모델 활동을 막 시작했던 고등학교 때도 패션쇼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비롯해서 음악CD를 많이 사서 듣곤 했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도 전공은 영화과였는데, 실용음악과 수업을 들을 정도로 직업은 모델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꿈과 열정이 있었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아니까 모델로서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모델이 표현하는 직업이어서 음악에 따라 나의 분위기가 바뀌고 또 음악을 많이 알면 어떤 문화에 대해서 표현할 때 유익했어요. 패션 화보 작업 역시도 음악적인 아이콘들로 표현할 때가 많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윤주’는 화려한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는 ‘장윤주’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
저를 개인적으로 아는 친구들이 느끼는 저란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똑같은 한 사람으로서 세 끼 다 챙겨 먹고,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는 일이 특별하다기 보다는 좀 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화려하고 상이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또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거침없이 표현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이제 서른 중반인데 저의 인생에서 20대와 30대를 보면, 20대는 음악도 제가 좋아하는 것 외에도 모든 음악을 다 소화하려 했고, 한 마디로 욕심이 많았어요. 여행을 해도 ‘나는 방랑자, 집시처럼 될 거야’ 하면서 그때는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주변에서 만나지 말라는 사람들도 고집부리며 만났어요. 한 마디로 막무가내, 무개념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예술가로서 소울(soul)을 느끼기 위해 필요하다며 안 좋은 것도 많이 했고요. 그게 멋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0대 때부터 모델일을 했기 때문에 사회에서 상처도 있었고, 부담감도 있었고, 책임감도 많았어요. 그래서 20대에는 스스로 방황하도록 내버려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살다가 이게 진리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자연스레 변화하게 됐죠. 근데 지금 서른이 넘어서 생각해보니 20대는 그럴 수 있는 때구나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네요.(웃음)

 

바른생활, 소박한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대중에게 외적으로 잘 보여야 한다는 의식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고, 패션아이콘이기 때문에 많이 꾸며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을 텐데 의외다
감사한 것 중에 하나가 20대에 많은 것을 받아들이긴 했어도 사치를 부리지는 않았어요. 지금보다도 쇼핑을 20대에는 더 안했던 것 같아요. 불규칙한 수입으로 돈도 없었고.(웃음) 그리고 돈이 생겨도 음악 CD를 샀지 옷이나 가방 같은 것을 사는 사람은 아니었죠. 그 당시 모델들 중에서도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소하는 쇼핑중독자를 여럿 봤지만 저는 스트레스를 다른 방법으로 풀었어요.

   
 
물론 신인 때는 키가 작은 것을 감추려고 힐을 신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키가 작은 것에 대해서 역으로 자신감을 갖게 됐고 나만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 후로 더 굽 없는 신발을 신었어요. 일부러 메이크업도 안했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것도 하나의 반항심이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을 반항심으로 표현했던 거죠.

그리고 감사하게도, 저는 저렴하고 심플한 옷을 입었는데 그런 스타일이 저에게 가장 잘 맞고 잘 어울린다고 해서 그때서부터도, 개인적으로도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모델인데도 화려한 것을 입으면 약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요. 그러다보니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심플한 것을 입어도 제일 멋이 나는’, ‘힐을 신지 않아도 가능한’ 이런 수식어들이 계속 붙으면서 30대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의 신조 중에 하나가 자연스러움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일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스타일도 그렇고 너무 억지스러운 건 싫거든요.

 

지난해 10월, 앨범을 준비하는 바쁜 시점에도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왔을 정도로 매년 봉사활동을 간다고 알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나
7~8년전부터 중국, 인도, 아이티, 방글라데시 등으로 봉사를 다녀왔고, 국내도 여러 곳을 다녔어요. 얼마 전에는 북아메리카 있는 아이티에 가서 천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주고 왔어요. 아이들이 정말 기뻐하더라고요.(웃음) 1년에 적어도 1~2번은 봉사를 가야한다는 저만의 목표가 있거든요. 봉사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현장을 가보면 내가 뭔가 돕기보다 오히려 저 자신이 더 많이 섬김을 받고 오는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저라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뭔가를 도울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고,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저 스스로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 장윤주 씨는 인터뷰 현장에 오면서도 평상시 입는 수수한 옷차림 그대로,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사진들을 보며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다며, 여느 화보나 인터뷰처럼 보정이나 특수효과(?)를 요구하지 않았는데, 꾸미지 않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그 당당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성장애인과 인연이 닿은 것인지 궁금하다
5년전 한 포털 사이트에서 누군가를 후원해주고 기금 마련에 동참하는 프로젝트에 모델이 돼서 한 달간 홍보대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포털사이트측에서 저로 인해 돈이 모일 것인데 어디에 쓰고 싶냐고 해서, 어떤 연예인은 아프리카 우물 파주기 같은 것을 했는데, 저는 일단 여성이 생각났어요. 여성 중에서도 어떤 여성을 도울 것인가 고민하다가 관계자가 여성에 관한 자료를 줬고 여성장애인이 눈에 들어왔죠. 그때 모였던 돈이 대략 3천만원 가까이 모아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성장애인연합에서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고 있어요.

   
 
저는 특별히 여성들에 대한 마음이 애틋해요. 일단 저의 20대를 생각하면, 지금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지만 그때는 제가 여자인 것을 정말 싫어했었거든요. 여자라는 사실에 분노가 있었고, 심지어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을 때에도 제가 남자 역할을 할 정도로 굉장히 강한 캐릭터였어요. 남자가 되고 싶었고, 여자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원망한 적도 많았어요. 집에서도 여자인 것을 원치 않았고, 아들처럼 남자처럼 살기 원했거든요.

그래서 다른 여성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움과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여자임에도 여자인 것을 허락받지 못하고 항상 부모님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고통받는 여성들을 생각할 때...

또 다른 이유는 모델이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구해야 하는 직업이고, 높은 힐을 신고 메이크업을 예쁘게 해서 멋지게 변신하고 여자로서 즐거운 혜택이 많이 주어지는 직업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좋은 것들을 누리고 있을 때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 여성장애인들에게 마음이 가게 됐고, 돕기 시작한 거죠. 많은 여성장애인들이 여성으로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 희망을 드리고 싶었어요.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여장연 행사 중에 장애여성들은 비장애여성보다 아기를 낳을 때 10배는 더 힘들고, 돈도 많이 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복지를 더 허용해달라고 외치는 자리였는데, 너무 안타까웠죠. 그리고 누군가가 이렇게 외치더라고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두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는 장애인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입니다”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100프로는 아니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는 부분이어서 그런 분들의 안타까운 상황에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어떨까 해서 여성장애인연합에 기부를 하게 됐고 그 이후부터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된 거죠.

 

방송일도 하고 있지만 모델이라는 직업이 나이에 대한 제약이 있을 테고, 인생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또 다른 꿈이 있을 것 같다

   
 
모델을 안 하게 되더라도 계속 음악을 할 것 같고, 라디오나 방송에서 진행자로서 방송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계속해서 방송을 통해서나 무언가를 통해서 표현하는 직업을 하고 있을 거예요.

또 좋은 선생님으로 좋은 어른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요. 아마 제가 선생님을 한다면, 음악선생님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고, 함께 합창하고 싶어요. 최근에 아이티 갔을 때도 현지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너무 좋은 외국 선생님들을 봤는데 무척 고무적이었어요. 제가 가진 재능 중에 가르치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직업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따뜻한 사람으로서, 어른으로서 가르칠 수도 있겠구나, 전문성도 있으면 좋겠지만 따뜻한 마음과 성품이 좋은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인도하고 가르칠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2013년 계사년(癸巳年)이 밝았다. 올해 계획과 중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지, 끝으로 함께걸음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길 바란다

‘내가 장애인라면’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지금 제가 모델인데 후천적으로 못 걷는다고 한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지만 편견을 자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은 독인 것 같아요. 어쩌면 모두가 과거로 인해서, 삶으로 인해서 하나씩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은 당연히 있겠지만 특별히 장애인분들이 스스로에게 편견을 갖고 벽을 쌓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스스로의 벽이 있다면, 그것을 깨고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많은 비장애인들이 여전히 장애인분들을 무시하고 동정적인 시선으로 보는데 한 인간으로, 한 존재로 봐주신다면 오히려 더 배울 점도 많기 때문에 더불어 사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2013년에도 계속해서 방송 제안들이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계속 들어오는데, 선뜻 모든 방송을 수락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제 머릿속에는 아직 라디오와 2집 앨범 밖에 없어요. 얼마 전에 라디오를 시작했으니까 라디오를 통해서 많은 청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바르게 리드할 수 있는 그런 리더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있고 싶어요. 그리고 앨범이 나왔으니까 1월말 2월초부터는 공연을 다니려고 해요.

저는 어디서든 내적, 외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고, ‘위로자’가 되고 싶어요. 세상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제 비전이죠. 늘 밝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 때로는 힘든 부분도 표현할 수 있는 솔직한 삶과 내적, 외적인 아름다움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위로가 전해지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소박한 저의 삶을 통해, 그리고 패션, 음악, 방송 등 저의 전문적인 활동들을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랍니다.

 

 

작성자글·사진 이애리 기자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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