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서비스의 소비자는 자기결정권을 우선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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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장애연대(Korea Alliance On Mental Illness : KAMI) 대표회장이자, 나사렛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인 김정진 님이 이번 호 ‘만난사람’의 주인공으로 함께한다. 자신이 아는 지식만 타성적으로 나열하는 게 아닌, 정말로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께 꼭 필요한 지식과 조언을 전하고자 진지하게 의견을 펼쳐 주신 점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그 대화 내용을 이 지면에 옮겨 정리한다. 전체 대화 내용의 1/3도 담지 못한다는 게 정말 아쉬운 대목이다. 서문을 짧게 잡은 만큼, 본문의 내용을 더 주의 깊게 살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독자 여러분의 눈높이와 기대를 ‘정확히’ 이해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장애 분야 중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관심도가 낮은 정신장애에 관한 다양한 말씀을 듣고 싶어 교수님을 모시게 됐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정신장애와 정신질환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인식하려 한다. 정책이나 법률적인 면도 마찬가지인데, 이것이 정신장애의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양산한 주요원인이라고 본다. 지금은 거의 틀에 박힌 편견이 되어버린 상황인데, 교수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듣고 싶다
참 중요한 부분이다. 어차피 정신장애 특성상 질환의 요소를 가지고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지나치게 질환에만 초점을 두다 보니까, 정신질환으로 발생한 일상적 삶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던 거다. 질병으로써 치료해야 되는 대상으로만 봤기에, 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그 환우(患友)들의 복지나 삶이나 직업 등 삶의 전반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그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정신장애인이 정신질환을 항구적으로 가지고 지내는 부분은 있다. 마치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병들이 지속적으로 병을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정신장애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병의 특성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당뇨와 고혈압을 예로 든다면, 이런 만성질병들은 어떤 정신적 기능의 문제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사회적 편견이 적고 질병을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도 많아지며, 사회적 이해도가 높아서 예방과 치료관리에 자원이 많이 투입된다. 성인 질병이나 소위 10대 질병관리 등 보건영역에서도 지원을 많이 하는데, 당뇨나 고혈압을 앓는 분들은 사회적 기능이 제한되거나 직장 및 가족 안에서 편견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정신장애는 그 질병을 치료하여 기능이 회복되더라도, 사회에 통합되기 힘든 장벽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기회가 차단되어 있고, 사회적 편견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게 문제인 거다.
다른 장애보다 정신장애의 인식이 더 안 좋게 된 건, 그들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선입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신장애인들도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이 사회에 충분히 흡수가 될 수 있는데, 사회적 여론과 특히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로 인해 더 깊은 상처를 받는 것 같다. 무슨 범죄가 저질러지면 이 범죄의 정신적인 측면까지 과도하게 분석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잘못된 길로 이끈 주된 원인이라고 보게 된다
맞다. 중대범죄를 보면 소위 사회적 병질(病質 : 병의 성질)자(者)내지는 정신병질자, 사이코패스 이런 얘기가 항상 나오는데,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일단 무조건 ‘사이코패스다, 정신병질자가 맞다’고 분석부터 하면서 정신질환으로 오해 받게 만들고, ‘그렇기에 정신질환은 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치료와 회복 가능성이 높은데도, 정신질환을 치료 받지 않으려 하고 치료하게 이끌지도 않는다. 결국 방치가 되는 것이다. 정신질환의 범주는 굉장히 넓다. 17개 영역에 약 350가지 정도의 유형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만성화될 수 있는 건 ‘장애인복지법’에 들어가 있는 4가지 범주이다. 지속적인 정신분열병·분열형 정동장애(情動障碍 ; 여러 현실 상황에서 부적절한 정서반응을 보이는 장애)·양극성 정동장애 및 반복성 우울장애가 그것인데, 정신질환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보니까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과 치료하려는 기회 역시 대부분 놓친다. 이건 상당한 사회적 자원의 손실이다.
동감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정신질환과 정신장애가 효과적인 재활과 사회통합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정신보건법’은 1995년에 제정됐다. 제정된 중요한 이유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 문제, 사각지대에 무조건 감금되어 있는 것을 해결하고 양성화하며, 의료적인 상황도 보다 개선하면서 재활의 기회도 넓히자고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 이후 드러난 부작용은 무엇인가. 정신병원이 급속하게 늘어난 것이다. 병원이 대폭 늘어나고 입원실이 크게 증가하면서, 퇴원할 수 있는 분들마저 오히려 더 병원 안에 있게 되어버렸다. 또한 모든 부담을 일차적으로 가족한테 안겨놓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은 장애를 가진 가족원을 돌보지 않으려 하면서 가능하면 입원을 시키려 했고, 가족의 욕구와 병원 측 수익의 욕구가 계속 맞아 들어가면서 병상이 계속 채워졌던 게 아닌가. 모든 게 병원 중심으로 격리 보호되다 보니까 회복한 뒤 잘 계시는 분들, 또한 지역사회에 통합하고 정말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된 분들의 성공사례가 노출이 안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내게 정신병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회복했다. 지금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 이런 걸 커밍아웃하려고 하면 위험부담이 너무 높기만 하다. 실제로 저의 주변엔 회복되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그렇게 회복의 기회와 실제 예가 많은데도, 사람들은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회복의 이야기에는 귀를 안 기울인다. 질병의 문제와 치료 위험의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한다는 거다.
여러 의견들이 있다. 현재의 ‘정신보건법’ 24조 같은 일부 조항들을 손질하는 소폭개정을 얘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정신보건법’ 자체가 악용의 원인이기 때문에 완전폐기를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다. WNUSP(World Network of Users and Survivors of Psychiatry : 세계정신보건서비스이용자 및 피해자네트워크)라는, 세계적인 정신장애 소비자운동단체가 있다. 정신보건 서비스를 이용하는 유저들의 권리에 초점을 둔 단체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건 ‘정신보건법’의 완전폐지이다. 왜냐하면 ‘정신보건법’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고, 그 법 자체가 사회적 통제장치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보건 속에 정신보건이 있고 의료 속에 정신의료가 있으며 장애 속에 정신장애가 있는 건데, 이걸 일일이 분리하다 보니까 따로 돌아가면서 여러 사회적 문제가 생기게 됐기에 폐지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건강은 사실 국가적인 문제가 맞다. 그렇기에 국가 차원의 정신건강 정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자살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우울증의 경우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실제 치료이용률은 30%도 안 된다. 치료가 꼭 필요한데 치료를 안 받는다는 거다. 그만큼 점점 더 만성화되거나 심화될 게 아닌가. 그렇기에 ‘건강증진법’은 필요하다. 그런데 정신병원은 ‘정신보건법’의 통제를 받는 게 아니라, ‘의료법’의 통제를 받는 게 훨씬 더 낫다. 왜냐하면 정신병원이 특수한 병원등급체계를 갖다 보니까, ‘의료법’에 규정된 수준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아, 정신병원은 규정이 따로 되어 있다는 건가
그렇다. ‘정신보건법’에 정신병원의 등급을 판정하는 기준이 주어져 있는데, 말하자면 ‘정신과 의사가 얼마나 있느냐’ ‘인력이 어느 정도냐’ 같은 내용들이다. 그런데 그런 기준은 ‘의료법’의 기준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다. 그렇기에 ‘의료법’의 전체적인 틀에 따라 평가하는 게, 전반적인 수준을 올리는 데는 훨씬 수월하다. 단적인 예를 들겠다. 정신병원에 한번 입원하면 6개월은 기본이고, 1년이나 2년 이상 입원하게 된다. 그건 무슨 의미인가.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건 사실 의료의 질이 낮다는 의미일 뿐이다. ‘의료법’ 상에서는 그런 만성적인 입원이 전혀 바람직한 게 아니다. 그래서 자꾸 퇴원을 유도하고, 또 퇴원해서 관리할 수 있게끔 도움의 체계를 만드는 서비스 역시 강조하고 있는데, 정신병원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병원의 수준은 낮아지게 되고, 장기간 입원을 해도 통제할 기준이 별로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계속 정신병원에만 머물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기간은 얼마든지 의사들에 의해서 연장될 수 있다. 입원기간이 제한되어 있다 해도 바로 옆의 다른 병원으로 갔다가 다시 옮기는 등, 평생을 병원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역사회에 그들을 위한 자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또한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이런 침묵의 카르텔이 계속 유지되는 건가
아주 중요한 대목을 말씀드려야겠다. 가족들이 모르는 거다. 가족 중 하나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예를 들어 한 달 후 퇴원이라면 병원 측에서 미리 가족에게 정보 제공을 하고 그 가족은 여러 준비를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런데 정신병원에는 퇴원을 위한 준비라는 게 거의 없다. 입원하는 순간부터 병동에서의 생활은 시작된다. 하지만 언제 퇴원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까 안 가려고 하는 거다. 그게 학습이 되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내가 병원에 일단 가면 몇 년이야. 몇 개월이 더 될지 몰라. 내가 사회와 단절이 돼. 내가 원해서 입원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 그러다 보니까 환자는 어떻게든 안 가려고 하게 된다. 병원 역시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병원 안에서만 치료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족들한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 병원 안의 사회복지사들이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하려고 하면, 병원장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입원생활은 기약 없이 이어진다. 가족들은 그 내용이 뭔지도 모른다.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세한 내막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주 중요한, 정말 심각한 내용을 말씀해 주신 것 같다. 입원 시점은 누구나 아는데 퇴원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이건 정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현실 아닌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건, 치료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가족이 참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직접 봐야 한다. ‘아, 회복되고 있구나. 그리고 회복되면 퇴원을 시킨 뒤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라는 큰 틀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가족의 의미 자체로 가족 구성원한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이 함께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그래서 환자 혼자 격리되어 기약 없이 병실 안에 머물게 된다면, 그렇다면 가족도 돌보지 않는 이를 그 보호사들이 최소한이라도 존중하겠나? 폭행과 같은 인권 문제가 발생하는 주요원인이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병원을 장애인시설과 마찬가지로 보는 관점이 생겨난 것 같다. 가족도 없는 격리수용에다가 기약 없는 생활은 결국 같은 모습 아닌가
맞다. 제일 심각한 건 가족과의 단절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병원에 있다 보면 가족뿐 아니라 친구들과 친지들 같은 개인적인 사회적 관계망이 다 단절되고 만다. 단절·고립·격리·도태의 과정인데, 그렇게 오래 입원하다가 나오면 정말 연락처 하나 없는 입장이 된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든 가족 차원이든, 퇴원 이후의 준비를 하고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제가 미국에서 다양한 정신장애 영역에 관한 연수를 1년 받았을 때, 병원에서 퇴원 계획을 하는 장면을 실제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퇴원하기 보름 전부터 준비를 시킨다. 그리고 ‘당신은 퇴원을 할 거다. 퇴원하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집에 가고 싶나, 아니면 독립해 생활하고 싶은가. 독립해 생활한다면 어떤 형태가 좋겠는가.’ 등등, 정말 굉장히 넓은 선택권을 주며 퇴원을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니까 아주 안정된 마음으로 퇴원하는 게 가능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지역사회에는 그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데이케어센터가 사회복지로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정말 이상적이면서도 정말 부러운, 우리의 현실을 본다면 안타까움만 남는 사례인 것 같다.
사실은 퇴원한 뒤의 한 달이 가장 위험하다. 재발할 수 있는 위험이 가장 큰 기간이고, 개인적으로는 회복이 됐다 해도 사회적으로 본다면 굉장히 취약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스템이 그 한 달을 어떻게 집중 관리하느냐의 여부가, ‘사회로의 안착이냐 재발이냐’를 가르게 되는 잣대가 됨을 잊으면 안 되겠다.
궁금했던 사항을 하나 더 질문 드리고 싶다. 국가의 의료예산으로는 건강보험과 의료급여가 있는데, 이게 병원으로만 흘러들어간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병원만 더 키워주는 결과를 낳는 게 아닌가. 게다가 적잖은 정신병원에서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까지 입원시키는 케이스도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맞다. 일부 장애인 생활시설과 병원이 결탁해서, 문제가 되면 빨리 퇴원시키고 곧 다시 동의를 해서 입원시키는 예가 많이 있다고 들었다. 안타까운 문제인데…,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정신병원의 90%가 민간병원이라는 사실이다. 국공립병원이라면 국가가 정신보건정책을 탈원화(脫院化) 방향으로 집중해서, 얼마든지 보편적 가치로의 조정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민간의료체계가 이렇게 확대되다 보니까, 엄청난 이해관계가 얽혀지면서 정책전환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이런 민간의료체계에서 병실을 제한 없이 확대하다 보면, 병상을 채우려는 쪽으로 시장의 질서가 작동하게 된다. 그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결국 최대의 피해를 입는 건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훨씬 더 큰 거시적인 틀에서 개혁을 하고 탈원화를 하지 않으면, 극히 어려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정신병원의 전체적인 규모가 줄어들고, 치료의 기간도 갈수록 단축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우리의 현실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건지 궁금하다
이미 세계적인 추세는 병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보건 중심으로 그 흐름을 바꾼 상태이다. 세계적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보면, 우선적으로 병상의 숫자가 많을 필요가 없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왜냐, 치료약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는 빠르면 열흘, 오래 걸려도 한 달이면 충분히 완화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증상을 느끼는 자신이 빨리 생활로 돌아가야만 회복이 더 빨라지니까, 다시 말해서 일상생활의 사이클로 하루빨리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생활하던 자기 집을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친근한 자기 집 또는 집과 가까운 곳에 치료가 가능한 관리능력을 가진 시스템이 있다면, 당연히 일상생활이 손상되지 않도록 그런 시스템을 선호하지 않겠나. 개인적인 치료와 사회적인 비용 측면에서는 그게 훨씬 효율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해결책이 빠르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증상이 좀 안 좋아진다면, 그 즉시 짧은 입원을 해서 안정적인 상태로 되돌아오는 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일단 ‘단절’이다. 정신장애를 대처하는 방식의 첫 단추 자체가 다른 것이다.
좋은 말씀을 잘 들었다. 자신의 집이나 집 가까운 곳에서 모든 치료가 가능하다는 건, 사실 국가와 사회 구성원 자체가 완전히 개방된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나’를 중심으로 한 이웃과 지인들 모두의 배려와 관심이 함께해야 가능해질 일이기 때문이다
흔히 ‘미국 영화’라고 표현하는, 그런 외국의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들이 드물지 않게 나온다. ‘나 지금 상담 받으러 가야 돼.’ ‘나 오후에 상담 약속이 있어.’ 같은 표현의 장면들이 빠지지 않음을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정신과를 가 봐라.’ 하면 엄청나게 격한 반응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아동청소년을 양육하는 부모들한테 ‘미술치료·음악치료·상담치료’ 등을 권하면, 부모 스스로가 자원하는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된다. 모든 건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러한 상담서비스가 지역 안에서 활성화되고 이용할 기회가 늘어날수록 작은 문제라도 조기에 발견할, 훨씬 빠른 치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직장인과 성인, 주부와 어르신 모두 다 해당되는 부분이기에,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은 편견 없는 지속적인 관심을 늘 가져 주시기를 기대하고 싶다. 모든 치료는 결국 자기결정권 안에서, ‘의료서비스 소비자의 권리’를 스스로 행사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 점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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