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내,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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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_작년에 힐링캠프 나오셨을 때 아주 재밌게 봤었다. 지적이고 조용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화통하고 입담도 대단했다. 실제 성격도 그런가
낯을 가리고 초면에는 새침한데, 친해지고 마음을 열면 쾌활한 편이다.
Q_따님이 있으신데, 누구를 많이 닮았나. 엄마를 닮든지 아빠를 닮든지 예술적 끼는 타고났을 것 같다
남편과 저랑은 다른 것 같다. 아이가 몸도 정신세계도 훨씬 건강하다. 남편과 저는 어릴 적에 유약한 편이었고, 많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딸을 보면서 ‘이 아이가 누굴 닮았지?’ 할 때가 있다. 낯을 가리는 부분도 있지만, 굉장히 건강하고 단단한 느낌이다.
Q_한국에서는 부모들이 영유아 시기부터 이런저런 교육을 시키는데, 문소리 씨만의 육아법이 있나
국내외 육아관련 책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많이 읽어봤지만, 딱 이런 교육법이다 하는 게 없다. 그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것이었다. 5개월 반 정도 모유수유 하고 6개월부터 일을 하러 나갔는데, 엄마가 일을 나가도 불안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래서인지 일하러 나갈 때마다 아이가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무엇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비교육주의’다.
Q_초등학교 전까지 ‘비교육주의’라면 한국의 교육열풍 속에서 아이가 뒤처질 수도 있을 텐데 걱정이 안 되나
아이가 자라나는 것을 보니까 하루 종일 생활하는 속에서도 충분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생활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습득하는데 굳이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심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보통의 엄마들은 아이가 뒤쳐질까봐 너무 걱정하는데 심심한 시간들이 ‘뭐 하고 놀지?’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스스로 주변을 정리도 하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것 같다.
대신 식사는 꼭 하루에 한 번 같이 하려고 한다. 아무리 늦게 자는 날이어도 아빠가 있을 때는 무조건 아침 9시에는 같이 식사를 한다. 저녁식사도 다 같이 하면서 대화를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가 17개월에도 문장을 길게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오래 보내고, 가족 간에 대화가 많다보니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능력이 길러진 것 같다. 지금 30개월인데 할머니가 식사 중에 ‘(반찬이) 부실하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해할 정도다.(웃음)
Q_따님 얘기를 들으니 어린 시절의 문소리 씨는어땠는지 궁금하다. 창도 잘 하고 연기도 잘 해서 어렸을 때부터 끼가 많았을 것 같은데
딸을 키우면서 지난 어린 시절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어린 시절 저는 겁이 많았던 아이였다. 너무 내성적이어서 엄마가 힘들어 하실 정도였는데, 지금 제 딸도 낯을 가리긴 하는 편인데 ‘네가 더 심했다’고 엄마는 말씀하신다.
Q_2세 계획이 있나
여러 명 낳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키워줄 사람이 없다. 아이 키우는 일이 너무 힘든 일이니까 다시 낳기가 엄두가 안 나고, 엄마께 너무 죄송하고, 더 부탁한다는 게 염치가 없다.
Q_예술가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예술가들끼리는 결혼 안 한다고 하더라. 누구보다 예술가의 삶에 대해 잘 아니까 그런 것 같다. 같은 예술을 하는 남자를 만났다. 장준환 감독과 살면서 예술가로서 부딪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고, 반면 쿵짝이 잘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배우나 감독이 배우자 기피 1, 2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는 남편 직업이 감독이고, 제 직업이 배우다보니 관심사, 공통분모가 많고 대화가 잘 된다. 특히 나이가 좀 들고 성숙한 단계에서 만나서 다행이다. 사실 감독만은 싫다 했는데….(웃음) 평상시 많이 떨어져 있곤 한다. 저도 그렇고 남편이 영화 촬영을 하거나 시나리오 쓰러 몇 달 나가 있기도 해서 결혼생활 한지 7년 정도 됐어도 (그 시간이) 잘 실감이 안 난다.
Q_인생을 살다보면 새로운 시즌,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올 때가 있는 것 같다. 문소리 씨가 살면서 만났던 인생의 전환기를 크게 언제 언제로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는 아이를 낳은 2011년에 변화가 온 것 같다. 임신 중에 잘 먹고, 잘 자고, 몸도 가볍고, 건강했고,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때를 꼽으면 그때였다. 행복했다. 그런데 순산하고 나서 이틀 뒤부터 갑자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산후우울증을 크게 겪었다. 캐스팅이 안 되거나 캐릭터가 힘들다거나 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이 그냥 힘들었다. 호르몬의 변화이지 않았나 싶다. 마음이 병드니까 대책이 없었다.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차츰 좋아졌는데, 호르몬 밸런스를 찾는데 3주 걸린다고 하는데 그 대신 힘든 시간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시간 속에서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 같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매우 행복했다.
Q_건물마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비상구가 있듯이, 살면서 사람마다 스트레스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 비상구가 필요한 것 같다. 힘들 때 어떻게 출구를 만드는지, 아웃풋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스트레스 어떻게 푸는지, 예술가들은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던데 무조건 정면승부다. 힘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제 스스로는 약하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다른 것으로 힘으로 상황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무조건 돌파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헤쳐 나오면 여행이라도 갔다 온다.
작품이 그렇다. 영화라는 게 2~6개월이든 그 장면이 해결 안 되면 해결 봐야 한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인생도 그렇고. 정답이 있지는 않다. 최선을 다해 해결을 보고 넘어 가는 것이다. 결과는 모르고, 정답도 없지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
배우일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고, 남들이 말하는 정상적으로도 살기 힘들고 위험한 부분이 많은데, 가끔은 혈혈단신이면 좋겠다는 때도 있지만, 가족들이 옆에 딱 붙어 있는 게 정서적으로 큰 힘이 된다.
Q_많은 영화와 드라마 작품을 했는데 가장 매력적이었던 역할, 이 영화는 하길 참 잘했다 하는 작품이 있나
이창동 감독님 <박하사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따로 챙겨보지는 않지만, TV에서 우연히 그 영화가 나오면 그때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당시는 그렇게 살아왔던 삶의 느낌이 담겨 있어서 소중한 것 같다. 그 영화가 잃어버린 20년 전의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보니, 영화를 다시 보면 예전의 나 자신에 대한 아련한 느낌이 들곤 한다.
Q_반면에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찍고 싶다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있다면
모든 작품이 아쉬움에 남는다. 다시 해보고 싶지는 않다(웃음)
Q_오아시스에서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역할을 했었고, 또 역동적인 핸드볼 선수에, 스파이에서는 코믹 연기, 때로는 도발적인 섹시 연기까지. 매번 캐릭터가 강해서 연기가 각인되지만 이상하게도 문소리 씨는 딱히 굳어진 이미지가 없는 것 같다. 이전 작품을 잊을 만큼 연기를 잘 해서인가, 천의 얼굴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가. 또 여배우로서 외모를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최대한 마음을 많이 비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이렇게 보여야 된다, 라는 게 없다. 역할에 대해서 그 사람으로 살면 그 사람이 보이겠지, 라는 마음으로 연기한다.
여배우로서 왜 예쁘게 보이고 싶지 않겠나.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진 욕망인. 그런데 저는 욕망을 쓸 때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배우로 인정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더 다른 욕망이 없었다. ‘이런 이미지로 보이고 싶다’ 그런 게 없었다. 다른 것은 곁가지라고 생각한다. 예쁘게 보이려고 관리도 하고 운동도 하는데 하지만, 배우로 인정받는 게 대원칙이다.
Q_‘내 인생의 영화’, 독자들에게 이 영화는 꼭 보라고 추천할 만한 영화를 말씀해 달라
우디 앨런의 영화는 혼자 심심할 때 보기 좋은 것 같은데 최근 영화인 ‘블루 재스민’도 좋다.
그 다음 다큐멘터리 ‘서칭 포 슈가맨’도 매우 재밌게 봤는데,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전설적인 가수(남아공)의 이야기로, 음악도 좋다.
Q_노래도 잘 하시는데 음악도 많이 듣고 아이에게 노래를 직접 들려주는 편인가
Q_오는 2월에 <관능의 법칙>이라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알고 있다. 어떤 내용인가
40대의 세 여자가 나오는데, 40대의 성과 사랑, 일에 대해 보여주는 영화다. 제 역할은 남편이 있고, 아들 독일유학 보낸 청담동에 사는 40대 여성으로 나온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봤을 때 40대 여성의 이야기라는 기획이 신선했고, 재밌었다.
Q_40대 여성들이 보면 공감되고 재밌게 볼만한 영화일 것 같다
그렇다. 그런데 이 영화는 40대뿐만 아니라 20~30대까지 다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몸이 늙는 거지, 마음이 늙는 것은 아니니까.(웃음) 모두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현실, 여자들의 마음, 판타지와 현실이 교차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발랄한 영화다. 2월 13일 개봉한다.
Q_연기 외에 또 다른 꿈이 있나
20대 때 인터뷰를 하면 ‘40대 중반까지 20년 일하고 다른 일 해보고 싶어요’라고…. 세상으로 더 넓게 시야를 펼치고 싶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연기를 통해서 내 시야도 넓히고 세상으로 고민 중이다. 40대 와서 바뀐 게, 연기를 더 해야겠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연기가 많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연기를 더 하면 좋겠다.
Q_인생의 끝머리에서 사람들에 이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모습이 있다면
무엇보다 딸한테 부끄럽지 않은 괜찮은 엄마,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남편으로부터도 ‘내 아내가 괜찮은 사람이었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누구보다 가족이 내가 어떻게 사는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 별로야’ 라고 남기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좋은 작품들도 많이 남기고 싶다.
Q_개봉 외에 다른 계획 있나
현재 작품을 고르고 있는 중이고, 가을쯤에는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 한 작품이 개봉 예정이다. 연기뿐만 아니라 중앙대 영화연출제작 대학원에 재학 중이고, 건국대 영화과에서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 딸이 이제 곧 어린이 집을 가는데 아이 뒷바라지를 잘 해야지 않겠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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