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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이야기] “이제 우리의 새 이름은 희망가족”

노숙자들이 다시 서기 위한 보금자리 ‘희망의 집’

본문

  이번에 함께걸음이 찾은 공동체는 이름은 하나지만 서울 전역에 아흔 다섯 곳(11월 현재)이나 자리하고 있는, 희망의 집이란 곳이다. 지난 9월 21일 몇몇 복지관에 처음 들어서기 시작한 이래 두 달 만에 그렇게 늘어난 이유는 이 희망의 집이 바로 서울역과 용산역 등에 흩어져 살고 있던 노숙자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마련된 곳이기 때문이다.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공공근로사업 등에 나가며 착실히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희망의 집 희망가족들을 만나봤다.

 

  IMF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 노숙자, 말 그대로 따뜻한 자신의 방이 아닌 싸늘한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난 해 말 IMF 체제가 된 이후 영세 사업체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던 많은 대기업들도 쓰러지면서 일자리에서 내몰리고 그래서 월세를 내지 못하거나 혹은 빚에 쫓겨 바로 어제까지 성실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던 온 식구가 집을 잃고 한뎃잠을 자야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경우가 더 빈번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 숫자가 2천4백여 명까지 헤아려지면서 서울역과 용산역, 을지로역 등지에는 이부자리 대용의 라면박스와 신문조각, 담요가 늘 상 눈에 띄게 됐다. 종묘공원과 서소문공원 등에는 텐트도 세워지고 빨래줄도 어렵지 않게 발견돼왔다. 이와 함께 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가 생기고 무료 이미용 서비스가 제공되고 옷이 나누어지면서 이 모든 현상이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되고 있다.
 

“우리는 부랑인이 아니다”

  어느덧 IMF가 일주년을 맞은 이 때, 또다시 겨울이다. 전에 없이 매서운 추위는 노숙자들에게 두려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 추위와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되는 경우도 생겨날 터였다.

  그것은 그 개인들의 불운이라고 치부하기에 앞서 명백한 사회적 슬픔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에 서울시가 서둘러 마련한 것이 바로 이 ‘희망의 집’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공동체다. 올 연말까지 모두 1백13개소를 마련할 계획으로 일단 80개 지역사회복지관과 이와 비슷한 기존 시설을 중심으로 서둘러 마련된 것이 사실이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내에 마련된 희망의 집도 그 곳 중의 하나로, 다른 8개 지역의 사회복지관과 함께 9월 21일 1차로 문을 열었다.

  이 곳에는 현제 20명의 남성 희망가족들이 살고 있다. 18세부터 6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곳에서 모여든 가족들이 한솥밥을 먹고 살고 있는 것이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의 경우 1층에 장애우훈련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약간 손을 보고 사물함 등 집기를 마련해 이들이 생활할 수 있게 꾸몄다. 마침 그곳에 온돌이 깔려 있어 겨울 추위를 나기에 부족함이 없고 식당과도 가깝다. 급하게 희망의 집 공간을 마련한 어느 복지관은 컨테이너박스에 마련한 곳도 있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이 곳은 꽤 맞춤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희망의 집들이 서울 곳곳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노숙자의 이미지가 지저분한 행색의 술먹고 주정을 부리는 사람들로 굳어져 있어 그 사람들이 자기들 동네에 어슬렁거리는 것을 못봐주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에서 서울역과 가까운 청파동에 비교적 규모가 있는 별도의 노숙자 시설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주민들과 극심한 몸싸움 끝에 결국 설립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대방동으로 부지를 옮겨 주민들 몰래 11월 셋째주 밤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런 실정이라 공연히 주민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담당자는 언론에 새로운 게스트하우스가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 송파구청 담당자도 송파구내 위치한 모든 희망의 집의 어떠한 사항도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반대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방화2동의 한 희망가족에게 묻자 이렇게 딱 부러지게 말한다.

  “우리는 부랑인이 아닙니다.”

  그랬다. 이들은 흔히 생각하기 쉬운, 얼굴이 검고 냄새나는 행색의 노숙자들의 얼굴이 아니다. 매일 샤워를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는다. 복지관에서도 이들을 공식적으로 ‘희망가족’이라고 부른다. 더 이상 노숙자가 아니라 희망의 집에서 다시 일어설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희망가족들인 셈이다.
 

 돈 모으는 맛에 재미를 붙이고

  이들이 더 이상 부랑인도 노숙자도 아닌 이유는 정기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된다. 이곳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직후부터 나가기 시작한 공공근로사업에 아침 9시부터 6시 무렵까지 전원이 나가 일을 한다. 그들 가운데 대졸 학력을 가진 29세의 한 가족은 일반 사업체에 취업이 됐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사정이 나은 다른 한 명도 열심히 구직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외 18명은 복지관 인근 아파트 관리사무소, 김포공항, 방화기지 등지로 나가 일을 하는데 각자 일할 곳은 공정하게 제비뽑기를 해서 결정했단다. 하루 일당은 2만5천원. 그래서 일주일마다 한 번씩 입금되는 주급을 복지관 희망의 집 가족들은 전부 다 꼬박꼬박 저금을 한다.

  월세를 내지 못해 올해 2월 집주인에게 쫓겨난 후 침낭 하나만 달랑 사고 남은 돈을 훌랑 신세한탄하며 술 마시는데 써버리다가 이곳에 오게 됐다는 임 실장 아저씨를 비롯해 모든 가족들은 이제 차근차근 돈 모으는 재미를 붙이고 있다. 누구는 6주 동안 85만원을 모았고, 누구는 40만원 밖에 못 모았고 하는 얘기가 이어진다. 다들 그렇게 한 달 평균 50여만원을 차근차근 모아가고 있는데, 알토란 같은 돈이 각자 가지고 있는 저금통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망의 집에 들어왔다 적응하지 못하고 나간 사람들 가운데에는 희망의 집의 규율이 심해 자유가 없다는 악선전을 하고 다니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 얘기만 듣고 희망의 집 입소를 거부하는 노숙자들이 아직도 2백여 명이 넘게 역 근처에 남아있다. 자신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를 빼앗긴다는 것이 이유다. 당장 한 끼를 해결할 돈도 없으면서 공공근로사업을 하는 보수가 너무 싸다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노숙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까닭이다.

  그들을 위해 서울시는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세터를 운영하면서 또 노숙자들이 많이 있는 서울역과 용산역 등지에 간이 건물을 마련해 상시적인 의료나 취업 상담을 하고 있다. 또 원하면 어느 때든지 희망의 집에 입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평균적으로 주간에 30, 40명씩 그리고 야간에는 50여명씩 희망의 집 입소 희망자가 생겨 현재까지 아흔 네 곳의 희망의 집이 생겼다.

  그 동안 문제가 돼왔던 여성과 가족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도 각각 2개소와 5개소가 마련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집 퇴소자들의 악선전을 듣고 단순한 선입견과 오해 때문에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들어오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11월 초에는 희망의 집 입소자들이 직접 나서서 입소를 권유하기도 했다. 상담원들과 사회복지사들이 아무리 얘길 해도 듣지 않던 사람들도 바로 어제 자신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좋아진 낯빛이나 거기서 생활해보니 이런저런 점은 좋더라 하는 피부에 와 닿는 말들을 귀담아 듣고 이날 많은 노숙자들이 입소를 희망해왔다.

  이제 희망의 집이 생겨난 지 두 달여가 넘어가면서 노숙경험이 짧은 단순한 노숙자들은 대부분 희망의 집에 입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랜 동안 부랑인 생활을 해온 탓인지 단체생활을 몹시 불편해하거나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내켜하지 않아하며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복지관 김혜묵 과장은 “보현의집이나 구세군 오뚜기쉽터 같은 대형시설은 사실 입소자가 4~5백 명이나 되기 때문에 엄격한 규율이 있어야 하는 입장이고 그래서 규율과 간섭이 심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복지관에 2~30명 규모로 들어선 희망의 집은 소규모 단위로 분산돼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규율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별도의 노숙자 시설을 새롭게 지을 시간도 없고 그것도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더욱 늦어졌을 것이 지역사회 내에서 착실하게 자리 잡고 있는 복지관에 희망의 집이 마련돼 별다른 파문 없이 노숙자들이 대거 흡수될 수 있었다고도 평가했다.

  이 복지관은 저소득 임대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동안 복지관에서 실시한 많은 사업과 프로그램을 통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입장이라 이 곳에 희망의 집이 들어선 것에 대해 주민들이 이렇다 할 반대를 해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술 먹고 벤치에서 소일하는 주민들에게 열심히 규칙적으로 일을 하는 희망가족들의 일상생활이 신선한 자극이 되기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주 얼굴을 대하면서 친근한 정이 쌓이고 있다.

 
 “이삼백 만원이라도 들고 가족 품으로 가고 싶다”

  거의 모든 희망의 집에서 초기에는 인원 변동이 빈번했던 것이 사실이다. 방화2동의 경우도 현재의 가족 구성원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몇 명의 얼굴이 바뀌어 왔다. 일단 나간 후에 사흘 정도나 아무 연락이 없으면 그 사람은 자진퇴소를 한 것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충원이 가능하면 노숙자다시서시지원센터에 연락을 해서 다음 사람이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 없이 나간 사람들의 원인을 알고 보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거나 전염성이 강한 폐렴같은 질환을 알고 있다거나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입소하면 건강검진을 반드시 받아 질환별로 필요에 따라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지곤 해서 아예 지레 겁을 먹고 퇴소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원센터에서는 사실 여러 배려를 하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상담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밝히면 어떠한 확인절차도 밟지 않는다. 그야말로 과거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때로는 인근 경찰서 경찰관이 찾아와서 혹 그 노숙자들 가운데 있을지 모를 범죄자들을 찾아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하지만 절대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

  몇몇 복지관에서는 공간 부족 때문에 낮에는 경로시설로 사용하고 밤에는 희망의 집 공간으로 바꿔가며 활용하기도 하지만 방화2동복지관은 전용공간이 있어 몸이 아파 남아있기를 원할 때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했다.

  이곳 가족들은 희망의 집 내부 규율을 스스로 정했다. 생활공간 내부에서는 절대 술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것과 다툼을 하지 않는다는 것 같은 것들이다. 술을 먹든 무얼 하든 밖에 외출했다가 11시까지는 돌아와야 하고, 다툼이 일어났을 경우 자진퇴소 한다는 다짐도 서로 했다.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매섭게 질책을 하곤 하는데, 그것은 계속 같이 지내자는 의미에서 보내는 따뜻한 격려의 말이기도 하다는 것이 김혜묵 과장의 해석이다.

  그리고 실장과 총무를 다수결 투표로 뽑았다. 생활하면서 나타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일주일에 한 번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는데, 그 결과를 실장과 총무가 가족들을 대표해 복지관측과 이런 저런 협의를 하곤 한다. 상담원 이덕용 씨가 5시에 출근해 같이 잠을 자고 내부 관리 업무나 취업관련 정보를 수집, 제공하기도 한다.

  기자가 이곳을 찾아간 때는 가족들이 전부 모이는 저녁 무렵이었는데 6시가 되자 식사가 시작됐다. 준비된 식사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는데 식기보관이나 상 차릴 때 도와주는 당번과 설거지 당번은 따로 정해서 돌아가면서 담당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식기당번 차례 돌아오는 것이 너무 괴롭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자기의 할 일은 스스로 한다는 원칙은 변함없다. 혹 일 때문에 새벽에 일찍 나가야 하는 사람은 밑반찬을 꺼내고 국을 데워 스스로 찾아먹고 나가도록 냉장고를 실내에 마련해 놓기도 했다.

  식사를 하고는 자유롭게 바둑을 두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층층이 나이 많은 사람들만 있어 혹 보고 싶은 텔레비전 채널을 마음대로 볼 수 없지 않냐고 18살의 제일 막내에게 물었더니 다른 분들이 “번번이 저 아이 마음대로 한다” 며 웃는다.

  “좋은 신부감 어디 없어요?”하며 얼굴을 붉히며 묻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만 가족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족들에 대해 자세히 얘기를 하지 않아 서로의 사연에 대해서 속속들이 아는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러나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다시 가족들을 찾게 될 때는 다만 이삼백 만원이라도 손에 쥐고 가야 면목이 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돈을 모으고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

  복지관에서도 희망의 집 운영이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돼가는 만큼 퇴근 후에도 컴퓨터나 제과제빵, 이미용 기술 등의 재취업을 위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인근 지역복지관들과 연계해 강습을 실시할 계획이다.

  저축 액수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구두수선이나 붕어빵장사 같은 자영업에도 도전해 볼 수 있다는 꿈이 영글어가기도 한다. “입소 당시에 장래 계획을 물으면 아무 생각이 없다던 사람들이 이제 돈이 모이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수 있을까를 상담해오기도 한다” 는 귀띔이다.


 또 하나의 모델, 게스트하우스

  노숙자문제에 관한 한 선두자격인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은 희망의 집이 아닌 ‘게스트 하우스’라고 이름 지은 공간을 마련해 노숙자들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재단 본관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단독 건물을 새로 지어 실직노숙자문제연구소와 숙식시설이 갖춰진 게스트하우스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은 미리 설계된 공간답게 하나의 거실을 같이 사용하면서도 2~3명이 나름대로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곳의 장용석 사회복지사는 “이 게스트하우스는 경제난으로 실직한 이후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하게 된 분들이 교육을 받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개자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이 곳에서 37명이 생활하고 있는데 다른 복지관에서는 상담원들이 조금은 강력하게 저축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간섭도 없다. 귀가시간이나 주중의 음주도 다 자신이 알아서 한다.

  영어회화를 배운다거나 창업아이디어에 대한 강연을 듣고 또 일주일에 두 번은 컴퓨터를 배우는 저녁시간 프로그램도 원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참여한다. 또 주말이면 가수 김흥국 씨 등의 후원을 받아 결성된 축구단 일원으로서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공을 차기도 한다.

  이곳의 ‘자립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총무 일을 보고 있는 정수원 씨는 올해 3월 조그맣게 하던 사업이 실패해 가족들은 고향에 남기고 홀로 일단 서울로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리도 몰라 무척 고생을 했는데 우연히 사랑의 전화 복지재단을 알게 됐고 처음엔 그곳에서 발행하는 <BI세상사람들>이라는 잡지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자립자금으로 얻는 ‘홈리스자립단원’이 됐다. 한 권에 3천원하는 그 잡지를 팔면 그 돈이 그대로 자신의 호주머니로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집에 송금도 하면서 여기 저기 정보를 알아보다가 지금은 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총무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공공근로사업에 대해서는 그다지 탐탁치않다고 말한다. 여기에 평생 있을 것도 아닌데 실제적인 기술을 배워야 할 것 같아서다. 그리고 ‘술먹기 딱 좋은 돈이 일주일 마다 입금되니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사랑의 전화측은 취업정보센터를 만들어 되도록 공공근로사업 대신 일용직이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알성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희망의 집들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여력이 없어 당장은 공공근로사업에 참여시키는 데에 머물고 있지만 보다 실제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자리가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 동안 일반 사업체에 취업해 여기서 자립해 나간 사람도 6,7명이나 된다고 한다.


 “내가 사회에서 받은 것 봉사로 다시 사회에 돌려 주겠다”

  한편 서울 전역의 희망의 집 가족들이 또 봉사대로도 나섰다. 지난 11월 28일 출범한 희망봉사단 단원들은 바로 희망의 집 입소자들로 구성돼있다. 이들 희망봉사단은 무의탁노인, 고아, 장애우, 결손가정 등 어쩌면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 대해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그러면서 희망봉사단 구성원의 성취감을 높이고 노숙자 전반에 대해 좋지 않은 사회적 여론도 바꾸어낸다는 것이다.

  월 2~3회 정기적 모임을 개최하고 직접적인 자원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인데 서울시는 앞으로 그룹홈형식의 (가칭)자활의 집을 마련하거나 자립하는 희망봉사단에 대해서는 소정의 전세금도 지원해 줄 계획이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김혜묵 과장은 “희망가족들의 일상생활이 너무도 규칙적이고 단조롭기까지 해서 앞으로 이 생활이 반복 됐을 때 정체감으로 내면의 불만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동안 복지관에서 마련한 봉사활동이나 체육대회 프로그램에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지만 일회성으로 끝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따라서 정기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봉사단 활동은 안팎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애초 희망의 집 설립계획이 세워질 당시 운영시한은 내년 3월로 잡혀있었다. 그래서 많은 희망 가족들은 내년 3월 이후를 전망할 수 없다면 적지 않은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애초의 예산이 희망의 집 설립지운에 많이 사용됐고 계속적으로 공공근로사업을 진행하느라 내년 3월쯤이면 예산이 바닥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소문도 돌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모을 수 있는 돈의 액수 규모라는 것이 방을 얻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돈도 아닌데다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의 경우 공공근로 외에 다른 일자리도 여전히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활일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걱정은 피부에 와 닿았다.

  이에 대해 노숙자다시서시지원센터의 김영술 실장은 “사실 예산이 문제이긴 하지만 내년 서울시 예산에도 공공근로사업과 희망의 집 운영 지원 예산은 추가로 산정될 것”이라며 낙관했다.

  어찌 보면 희망의 집은 우리나라 복지 시설 역사에 없을 수도 있었던 공동체 모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사회복지안정망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우리 사회에 그려질 수밖에 없었던 자화상이기도 하다. “다시는 한 가정의 가장이 실직하나의 이유만으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지 않게끔 돼야한다”는 한 사회복지사의 외침이 복지병 운운하는 정부 관료의 귀에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작성자한혜영 기자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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