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할 국민, 우리는 외딴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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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장애가 완치된다? 지난 6월 25일 SBS방송은 <SBS 스페셜 ‘밥상 디톡스 –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프로그램에서, 유기농 식이요법으로 ‘자폐증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을 방송했다. 자폐증이 완치된다는 건 자폐를 병으로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장애가 비장애로 전환(치유)된다는 논리를, 과학적 검증이나 구체적인 사례도 없이 시청자들 앞에 내보냈다.
이에 대해 ‘자폐성장애가 완치 가능한 정신질환이라는 희박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보도한 SBS 스페셜 제작자 측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즉각 반박성명을 발표한 이들이 있었다.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방송심의에 대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와 시정을 요구한 그들을 만났다.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에스타스(Estas), 그들이 모여 나눴던 토론 현장의 기록 그리고 <함께걸음>과의 대화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실존한다
“자폐성장애를 잘못 알리고 자폐성장애를 차별할 소지가 굉장히 많다는 점에서, 해당 방송에 대해 방송심의위원회에 7월 14일 민원을 넣었습니다. 언론사들과의 접촉을 통해, 총 일곱 군데 언론에서 이 민원제기를 기사화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방송심의위원회 심의는 한 달 정도 소요된다고 했는데, 아직 민원 결과가 안 나와서 제가 전화로 확인했습니다. 심의위원 구성이 완료되지 않아서, 지금 심의가 지연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건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두 달 정도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서울 마포의 한 모임 공간에 모인 에스타스 회원들의 열띤 토론은 기대밖의 열기였다. 개인적인 고민을 풀어내는 방법론에 관한 대화가 얼마간 이어진 뒤, 그들의 주제는 시정을 요구했던 방송 관련 토론으로 곧장 연결됐다. 에스타스는 회장이나 대표 같은 직함 대신, ‘조정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현 조정자인 이원무 씨가 방송심의와 관련된 화두를 꺼내자, 회원들은 대화의 끊어짐도 없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계속 발표했다.
일정한 ‘서먹함’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었던 생각은 기우였다. 모임에 참관하는 외부인으로서 그런 선입견을 가졌던 이유는 자폐성장애당사자들과의 접촉은 그동안 많았지만, 그들만의 실제 토론 현장을 경험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기우’가 정답이었다. 표현 방식의 차이가 조금씩 있었을 뿐, 토론 내용의 깊이와 폭은 이들에게 ‘장애’라는 전제를 붙여놓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회원들의 현재 직업만 살펴봐도 이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들이지, ‘장애’는 법률과 의학 상의 분류에 불과했다. 아이티(IT) 분야 회사원, 연구소 근무자, 인터넷언론 칼럼니스트, 현직 기자, 대학원 준비생, 대학생 등 모두 다 이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었다. 특히 에스타스 초대 조정자였던 윤은호 씨는 대학원에서 문화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아, ‘국내 자폐인 1호 박사’라고 이미 알려진 바 있는 엘리트였다.
“‘에스타스’는 국제 공용어 중에서 가장 대표적 인공어(人工語)인 에스페란토어(語)인데, 영어 비(be)동사의 현재형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독일어의 자인(Sein)동사와도 같죠. 우리가 현재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 우리를 계속 외딴섬으로 취급하는 세상을 향해, 자폐성장애 성인들이 실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모임 이름입니다.”
이 사회의 성인임을 인정해야 한다
두 시간을 훌쩍 넘긴 토론이 끝나고, 에스타스의 중심을 잡아가는 4명의 회원과 마주앉았다. 최선엽, 이원무, 윤은호, 장지용 씨와 함께했는데, 토론시간 내내 회원들 간의 대화가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정하던 이들이었다. 핵심 구성원답게 그들은 에스타스의 존재의미와 지향점을 정확히 짚어주었다. 그런데 이들의 특이한 화법이 눈에 띄었다. 한 회원의 의견 중에 다른 회원이 부연설명을 덧붙이고, 그 의견과 관련된 제3의 견해가 곧바로 이어지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돋보였다. 그래서 하나의 의견으로 정리된다 해도, 그 의견은 한 개인의 발언이 아닌 여럿의 중지를 모으는 형식으로 마무리됐다. 이를 에스타스는 ‘총의(總意)’라고 표현한다 했다. 그래서 그들과의 문답을 여기서는 ‘에스타스’와 대화를 나눴다고 기술하고자 한다. 각 개인의 대답이 ‘총의’의 모양새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인의 자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해요. ‘자폐아(兒)’라는 표현같이, 아동한테만 존재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이번 방송의 문제점처럼 성인이 되면 자폐증세가 완화 또는 치유된다거나, 성인인데 자폐가 있으면 아동으로 취급하는 부작용이 발생하는 겁니다.”
“저희 넷이 모두 당사자인데요. 저희들만으로도 성인 자폐성장애인의 존재가 그대로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저희들끼리는 ‘우리가 살아있는 증거자료’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에스타스라는 이름도 그렇게 탄생이 된 것이고요.”
보통 자폐성장애를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고 비유하곤 한다. 각자의 개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공통점이나 교류의 접점을 찾기 힘들다는 의미인데, 자조모임으로 성장하기까지 그들만의 우애곡절이나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았다.
“에스타스 이전에는 저와 같은 증세를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었어요. 여기에서 공통점을 처음 발견하게 된 거죠.”
“저와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 데서 저는 보람이 느껴져요. 비슷한 연배의 회원들을 만나게 됐죠. 자폐성장애는 행동방식이 더 심한가 덜한가의 차이이지, 일정한 공통적인 행동방식이 있기 때문에 공감대를 찾는 건 특별히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자폐성장애 성인의 존재가 이 사회에서 일정부분 부정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폐를 가진 성인 자체를 특이한 존재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대중적인 인지가 안 되어 있죠. 저도 자폐성장애가 의심이 된 건 오래 전부터였지만, 공식적으로 확인이 된 건 대학교 4학년 때서야 법적으로 확정을 받았어요.”
“국가기관에서 판정을 내릴 때, 자폐증이 분명해도 아이큐(IQ)가 높으면 인증을 못 받아요. 그래서 자폐성장애가 확실한데도, 일반 시민사회 안에서 외딴섬 취급만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은 거죠.”
에스타스를 취재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일반적인 자조모임이 기존 단체의 산하조직 형태로 생겨나는 게 일반적인데, 에스타스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자발적인 교류와 함께 탄생했다는 점이었다.
“맞아요. 정말 광야에서 조직이 됐죠. 한 명 한 명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게 됐어요. 한 회원과는 처음 만나서 잠깐 대화를 하게 됐는데, 낮에 만나서 시작한 대화가 밤 열 시가 돼서야 끝났죠. 그렇게 의기투합이 돼서 합류하게 된 거예요. 무슨 모집광고를 내듯 공개적으로 한 게 아니거든요.”
방송심의를 요구한 바와 같이, 에스타스는 자신들만의 사적인 모임이 아닌, 사회를 향한 공개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에스타스가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는 무엇일까? 사적인 친목과 공적인 영역의 활동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성인들이 존재한다는 거, 그 사실을 세상에 먼저 분명히 알리는 걸 저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목표로 정해두고 있어요. 자기옹호 차원에서도 에스타스 같은 단체들이 더 많이 생기도록 만드는 게 긍정적인 큰 의미를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조모임의 발전방안도 분명하게 설정됐는데, 앞장서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자폐성장애 성인들이 극복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극히 민감한 문제이지만, 실제 현실이기 때문에 지적하겠습니다. 자폐성장애를 가진 성인들의 많은 수가 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그게 역으로 자폐성장애 성인들의 사회성 확립과 독립의 의지를 막고 있습니다. 교회는 약자에 대한 보호의 차원으로 관리하겠지만, 교회는 사회개혁의 목소리가 약하고 투쟁 같은 걸 싫어하잖아요. 자폐성장애 성인들이 장애인권운동에 동참하기 어려운 건, 종교성의 이해관계와 영향이 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로가 다름이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약자로만 취급하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열어줘야 하고, 그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자폐성장애 성인들은 보호받아야 할 자폐아동이 아닌,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하는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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