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마음을 가진다면 장애도 +α가 될 수 있다 > 사람 사는 이야기


긍정의 마음을 가진다면 장애도 +α가 될 수 있다

근육장애인 이진영 씨 이야기

본문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 중에는 생활고나 장애 등 어떤 원인으로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오히려 장애를 인생의 플러스알파(+α)로 여기고 더욱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근육장애를 가진 이진영 씨, 그리고 늘 옆에서 동행하는 이진영 씨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에너지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너 병신 맞아.”
이진영 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 씨가 강연했던 영상을 보게 됐다. 강연을 들으면서 딱 와닿았던 내용이 있다. 이 씨가 어릴 때 또래로부터 ‘병신’이라고 놀림을 받았는데, 이 씨 엄마가 이 씨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이 씨가 병신이 맞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진영 “사실 초등학교 1학년 때니까 아이들이 얼마나 철이 없겠어요. 제가 걷지도 못하는 아이였으니까 딱 놀리기 좋았겠죠. 그래서 한 학생이 저를 ‘야 이 병신 아!’라고 부르는데, 저는 그 병신이라는 단어가 되게 당 혹다웠어요. 당연히 그 학생과 싸웠죠. 집에 와서 씩씩거리며 ‘엄마, 나 병신 아니지?’라고 물었어요. 다른 부모님들 같았으면 ‘네가 왜 병신이야?’, ‘누구야? 엄마가 혼내줄게’, ‘뭐 그런 애가 다 있어? 놀지 마’라고 했을 텐데(웃음), 어머니께서는 제 눈을 빤히 바라보시면서 ‘너 병신 맞아’라고 그러셨어요.”
 
어머니가 거기까지만 말했으면 이 씨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지만, 어머니가 설명한 ‘병신(病身)’은 ‘몸에 병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 씨처럼 몸이 불편하거나 상대방을 놀리거나 비하하려는 의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나쁘게 느껴지는 단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이 씨처럼 몸에 불편함이 있는 게 ‘눈에 보이는 병신’이 있고, 이 씨를 병신이라고 부른 학생처럼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괴롭히려고 하는, 즉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에 병이 있는 병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진영 “어머니는 오히려 제가 그런 친구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고, 덕분에 내가 가진 장애가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눈에 보이는 장애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용서하고 넘어가게 되면서 제 장애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어요. 그때가 초등 1학년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도 사회성이나 인간관계라는 것에 대해 일찍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요.”
 
이 씨가 초등 1학년 때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기다. 그땐 지금처럼 장애인식개선 교육이나 장애이해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텐데, 많이 어린 나이에 벌써 장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또래들보다 철이 빨리 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 씨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들이나 어른들로부터 ‘애늙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단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어른아이’라고도 한다. 
 
제도는 있는데 반년 넘게 이용하지 못하는 현실
이 씨는 기자를 만나러 올 때 활동지원사가 아닌 어머니와 함께 왔다. 이 씨가 사회복지 분야 연구와 장애인식 개선 교육강사로도 활동하고 있기에 활동지원사로부터 사회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지금 6개월이 넘도록 활동지원사가 구해지지 않고 있단다. 장애인이 자립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무려 반년이 넘도록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활동지원사가 왜 구해지지 않는지 물어봤다.
 
이진영 “2011년부터 이 제도를 이용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지원사가 구해지지 않은 게 처음이라서 요즘은 상실감이나 회의감이 좀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활동지원사가 구해지지 않는 원인이 저 개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신체활동지원을 꺼리는 활동지원사들의 자질이나 전문성이 일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활동지원사가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을 제공하는 노동만큼 그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현 급여 체계도 문제죠. 그래서 같은 금액으로 일을 할 거면 덜 힘든 장애인을 만나서 활동지원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겠죠. 그런데 활동지원사가 구해지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니까 제도상의 문제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꾸 내가 문제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이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6개월 동안 활동지원사가 전혀 구해지지 않았던 건 아니란다. 활동지원서비스 사업을 하는 센터로부터 세 번 활동지원사를 소개받았다. 그런데 세 번 모두 면접을 볼 때는 일을 하겠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이 씨 본인에게가 아니라 센터 담당자에게 이 씨에 대한 활동지원을 못하겠다고 말했단다. 앞에서는 하겠다고 했다가 뒤에서는 못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진영 “아무래도 활동지원사 입장에서는 저한테 직접 말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또 활동지원사로서의 노동조건도 주장하고 싶은데 그런 부분이 좀 그러니까 우회적으로 센터에 이야기했겠죠. 그럴 때마다 저와 센터 담당자 둘 다 난처하고 미안해져요. 활동지원사가 구해지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면 새로운 사람을 구해야 하는 과정을 또 반복해야 하니까 담당자 입장에서는 저에게 공백이 생기는 부분에 미안해지고, 제 입장에서는 또 새로운 사람을 구해달라고 해야 하니까 유쾌하지 못한 전화가 반복되는 것 같아요.”
 
활동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이 씨의 옆에 서 듣고만 있던 이 씨의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이 씨에게 6개월 동안 활동지원사가 구해지지 않아 실질적으로 활동지원사의 역할을 모두 이 씨의 어머니가 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활동지원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이진영 母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입장에서는 참 어려워요. 집에 와서 상담을 하고 (활동지원사를)하겠다고 허락하고 갔어요. 그리고는 하루나 이틀 지나서 못 하겠다 했다고 센터로부터 연락이 올 때 느끼는 감정은, 활동지원사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거기에 대한 어떤 책임감에서 아쉬움이 커요.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제일 큰 원인은 제도적 결함이 분명하죠. 활동지원은 중증일수록 더 어려운 일이니까 시급을 더 줘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중증이나 경증 상관없이 동일한 시급을 받는 체계잖아요. 그래서 중증장애인일수록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데 애로가 큰 거죠.”
 
이진영 “그런데 또 자식 입장이 되다 보니까 어머니가 실제로 이 일(활동지원사)을 하게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일을 하고 집에 가면 가족끼리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게 되니까, 어떤 일이 유쾌하고 어떤 일이 유쾌하지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가족이 모르는 중증장애인의 신변처리와 같은 신체활동지원을 하게 되면 가족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진 않겠죠. 꼭 나쁘게 만은 볼 수 없다는 게 인간적인 마음이지만, 또 이 제도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에 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가치지향적으로 바라보면 좋겠어요.”
 
6개월 이전까지 이진영 씨의 활동지원사였던 분은 2년 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활동지원사의 급여 체계가 문제가 된 것은 오래전부터지만,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기 시작한 2019년 하반기부터 더욱 부각됐다. 장애등급제 폐지로 모든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게 되면서, 활동지원사가 같은 시급 체계에서 조금이라도 ‘덜 힘든’ 장애인의 활동지원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자연스럽게 중증장애일수록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 씨도 하루빨리 활동지원사를 구해야 할 텐데, 벌써 반년을 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다. 
 
 
장애는 인생의 +α일 수도 있다
이 씨는 앞서 언급했던 ‘병신 사건’을 비롯해서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강하게 교육받았다고 한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씨가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단다. 이 씨가 사람 속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건 어머니의 영향이 큰 것이다.
 
이진영 母 “병신 사건 외에도 애들이 얼마나 얘를 많이 놀렸겠어요. 그러면 엄마한테 이르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엄마가 너를 놀리는 아이를 알게 되면 시 선이 그 아이한테로 갈 테고, 그러면 걔는 겁을 먹게 되고 너랑 친해질 기회가 없어진다고 했어요. 그래서 엄마가 그 아이를 몰라야 되고 자연스럽게 네 선에서 잘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사람과의 관계성을 맺어갈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래서 이 씨의 어머니는 이 씨가 어릴 때부터 이 씨의 편을 들어준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 씨 선에서 해결하도록 하고 싸우더라도 집에 와서 누가 그랬는지 말하지 말라고 했단다. 어머니 표현으로는 ‘엄마가 모자란 편’이라고 했지만,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강하고 단단한 이 씨가 있는 게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그런 과정을 받아들이고 성장한 이 씨도 정말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이진영 “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을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학생에 대해 모범학생상을 주거나 영웅화하는 문화가 있죠. 그렇게 저를 도와주는 학생의 순수한 마음이 변질이 되어서 저랑 갈등이 생겼어요. 집에 와서 엄마한테 ‘엄마, 그 학생이 내가 자기 도움을 당연하게 받는대.’라고 말해서 싸웠다고 하니까, 엄마는 ‘네가 당연하게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지.’라고 말해서 엄마랑도 싸웠어요(웃음). 이렇게 친구들과 갈등이 있을 때 엄마는 제 편보다는 친구 편을 들어주셔서 그때 친구들은 지금도 저보다 어머니 안부를 먼저 물어봐 주고 있어요.”
 
이진영 母 “도움은 고마운 것이지 당연한 건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해야 될 의무는 없어요. 도움을 주면 고마운 것이지 그 사람이 안 한 것이 서운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죠. 그래서 그 사람이 도움을 줄 땐 감사하고 안 도와줬을 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렇게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훈육했어요.”
 
이 씨와 어머니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호의 주제인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생존권’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장애유형은 다르지만 이 씨 역시도 중증장애를 가지고 살아오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이번 호의 주제와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진영 母 “저는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자식은 내가 낳았지만 자식의 인생이나 목숨이 부모에게 있지는 않아요. 자식이 장애를 가졌더라도 자식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었던 것도, 부모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힘든 건 사실이에요. 저도 자식보다 하루만 길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거든요.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식의 목숨을 부모가 어찌해야 될 그건 아니라는 걸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어요.”
 
이진영 “저는 결혼도 안 해봤고 자녀도 없어서 부모의 마음을 깊이 있게 알 수는 없지만,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들은 잘 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마음에서 그런 결정을 했을지 생각하면 안타까운 게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남아 있는 우리들이 더 이상 그런 사례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가 바뀔 수 있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역할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족 구성원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은 힘들다. 장애가 중증일수록 힘들다. ‘죽을 만큼’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또는 장애인의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씨는 장애가 인생의 +α이기 때문에 다시 장애인으로 태어나도 우울하지 않을 것 같고, 만약 결혼해서 아이가 장애인이라도 자신 있게 이야기해 줄 거란다. 장애인으로의 삶이 우울한 게 아니라, 장애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 우울해질 수 있는 거라고. 그렇기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씨처럼 이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작성자글. 박관찬 기자 ⊙ 사진 제공. 이진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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