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이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시각장애인의 삶을 담아요”
사람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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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양주혜 씨
‘눈이 안 보이는데 공연을 어떻게 볼까?’
‘길은 어떻게 찾아가지?’
시각장애인을 생각하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게 되는 질문이다. 궁금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 망설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책이나 뉴스 등을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해 읽어도 보고 듣기도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알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궁금증을 영상으로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유튜브 채널 ‘시시각각’. 그가 직접 연출과 제작에 참여해 시각장애인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충을 진솔하게 보여주어 한 번쯤 우리 주위를 되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준다.
'시시각각'에 직접 출연해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소개하는 양주혜 씨는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행정직 공무원인 동시에 크리에이터 활동을 겸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다. 주혜 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건 어떤 창대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다. 작은 취미와 도전을 이어가다 보니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소소한 취미가 우연한 기회로 유튜브에 녹여지다
“필름 카메라를 평소에도 가지고 다녔을 만큼 어릴 때부터 사진 찍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그러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동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죠. 근데 사진이랑 영상은 데이터 차이가 엄청 나잖아요. 그리고 또 한도 끝도 없이 찍으니깐 어느 순간 이게 어수선하고 정신없게 느껴지더라고요”
주혜 씨는 여러 고민 속에서 획기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수많은 데이터를 카테고리별로 편집해 흩어진 영상을 하나로 묶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에게 영상을 보여주었고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것을 권유받았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유튜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고 설명한다.
우연한 기회를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기 사람은 많지 않다. 기회가 와도 기회인지 모르고 지나치거나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주혜 씨는 우연한 기회를 삶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만들어 내고 이를 묵묵히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파다.
책도 읽고 자전거도 탔지만, 서서히 잃어가는 시력
주혜 씨가 사진을 찍고, 영상을 편집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일반적인 시각장애인과는 다른 면이 있어서이다. 보통은 선천적으로 실명하거나 중도에 상해 또는 사건 등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데 주혜 씨는 어느 날 찾아온 시력 저하로 소소한 취미 생활인 필름 카메라 촬영마저 변화가 요구되었다.
시각장애를 진단받은 건 아주 어릴 적이지만 청소년기까지는 책을 볼 수 있고 익숙한 길은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20대를 넘어서고 백내장이 오며 급격하게 시력이 저하되었다.
완치 불가능한 망막색소변성증 진실을 알게 되다
주혜 씨가 현재 겪고 있는 시력 저하는 망막색소변성증(RP)이라는 증상에 기인한다. 정상시력이었던 사람이 점진적으로 시력을 잃어가다 나중에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는 병으로 현재 의학 기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다.
주혜 씨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어머니와 주혜 씨를 진료하는 의사는 이미 주혜 씨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모두 쉬쉬했었다. 성인이 되면 완치될 수 있다는 의사와 어머님의 설명에 주혜 씨는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주혜 씨가 본인의 상태를 알게 된 것은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급하게 장애 진단서를 받기 위해 새로운 병원을 찾아가면서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은 2~3개월 전에 예약해야 진료할 수 있어 장애 진단서 발급이 가능한 인근의 안과를 찾아가면서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저는 곧 성인이 되면 볼 수 있게 되니까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을 가는 게 마음에 쓰였어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에게 저 같은 사람이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가도 괜찮냐고 물어봤죠. 근데 의사 선생님이 되게 어이없어하시면서 이 병은 치료가 안 된다고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엄청 충격이었고 한동안은 회피하기도 하고 엄마한테도 모질게 했어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접한 사실에 원망과 배신감도 컸다. 그러나 오히려 주혜 씨는 막연한 희망보다 뒤늦게나마 진실을 알게 돼 장애가 있는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했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잠깐의 희망을 위해 진실을 감추는 것이 과연 장애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이에 주혜 씨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혼자가 아닌 주위 사람과 협업을 통해 영상을 제작하다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주혜 씨가 시청각 콘텐츠인 유튜브를 제작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혼자서 촬영하고 편집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조금은 의구심을 갖고 조심스럽게 주혜 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초창기 영상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다 했어요. 근데 자막 다는 데에만 7~8시간이 걸리고 어떤 건 영상 하나에 하루 이틀씩 붙잡고 있어야 하니까 어느 순간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제가 제 편집 퀄리티에 만족 못 하는 시기가 오기도 했고요”
모든 일을 혼자서 도맡던 방식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통해 작업을 진행한다. 현재는 PD, 편집자까지 총 세 명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주혜 씨는 전반적인 구도를 파악해 컷 편집을 맡고, 그 과정에서 세밀한 확인이 필요하다면 PD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편집자를 거친 영상은 최종적으로 주혜 씨의 확인을 받고 채널에 게시된다.
주혜 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지는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엔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고민도 생겼다. 유튜브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맞는 걸까 하는 고민도 있지만, 그 고민의 초점은 ‘유지 혹은 중단’이 아닌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있다.
“뭔가 하나를 꾸준히 해서 성공해 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걸음>처럼 제 소소한 유튜브 채널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주시는 그 몇몇 분들이 있으니까 이걸 또 놓을 수가 없어요. 유튜브를 운영하며 만나게 된 좋은 인연도 너무 많거든요”
최근에는 ‘양주혜’만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하며 시각장애에 국한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구상·실현하고 있다. 살아가며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 10대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많다고 한다.
시각장애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연령층에 영향을 주는 내용을 고민하는 주혜 씨의 멈추지 않는 생각과 진지함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출간’과 ‘후원’이라는 목표에 도전하다
주혜 씨의 목표이자 꿈은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 꿈을 위해 소소하게 친구들과 집필 모임을 하며 서로의 글에 피드백을 주고받기도 하고, 작가에 관한 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목표에 꾸준히 다가가고 있다. 친구가 책을 발간한 것을 보면서 어쩌면 나에게도 그리 먼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저는 예전부터 돈을 많이 벌어서 일대일 방식으로 후원을 하고 싶었어요. 만약에 한다고 하면.. 제 학창시절도 마냥 순탄치 않았어서 그런지 마음은 절실한데 여건이 안 돼서 시도를 망설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것 같아요. 그냥 애들을 보면 눈물이 나는 병이 있나 봐요”
익숙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구체화하는 주혜 씨의 모습은 진솔하면서도 세상을 무겁지 않게, 거짓 없는 모습으로 보여주려는 초심에 기반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주혜 씨가 더 넓은 세상으로 한층 밝게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작성자글. 동기욱 기자 / 사진제공. 양주혜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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