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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대도, 우리 모두 가능합니다

수어아티스트 최형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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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비장애 여부를 떠나,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규정짓는 한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안 된다고 미리 선을 긋게 되면, 충분히 될 수 있는 일조차도 미리 접고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안 되는 일’이 있는 반면에, ‘하지 않아서 안 되는 일’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안 된다는 생각부터 앞서는 탓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접었는지 떠올린다면, 성공과 불가능의 차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아주 단순해짐을 깨닫게 된다. 이 대목에서 ‘최형문’이라는 이름 석 자의 검색을 추천한다. 독자 여러분을 향해 손짓하는 환한 얼굴의 한 인물이 유튜브 안에서 등장할 것이다. 그의 얼굴엔 ‘나는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그 기운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수원역 인근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 만났다. 수어아티스트 최형문 씨를 소개한다.

 

스트레스, 함께 풀어가는 방법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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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다. 긍정적이다. 웃음이 맑다. 이건 일부러 ‘그런 척’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실제로 자신의 내면이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행동 속에서도 드러나는 첫인상이 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남모르는 어둠과 질곡 같은 시행착오의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힘겨운 시간이었는지는 제3자에겐 중요하지 않다. 철저하게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진정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의 실제 모습이다. ‘밝다, 긍정적이다, 웃음이 맑다.’ 최형문 씨는 집으로 찾아든 방문객에게 그런 첫인상을 깊게 심어놓았다.

“지금의 직장 아닌 이전 직장에 다닐 때, 원활한 의사소통이 안 돼서 개인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됐어요. 청각장애 당사자는 저를 비롯해 몇 분이 계셨지만, 서류 분류를 하던 그들과 떨어져서 저 혼자 다른 부서에 배치가 됐거든요. 그 스트레스를 풀기는 풀어야 하는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서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게임인데 그것으로도 해소가 되지 않아서, 노래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 큰 기대 없이 시도하게 됐던 거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단다.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으로도 해결이 안 되던 스트레스 해소가 노래를 통해 풀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분까지 상쾌해지다 보니, 스스로의 내면이 편안해짐을 실감하면서 예정에 없던 신세계를 마주대하게 됐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문을 두드린 건 유튜브의 세상이었고, 그는 검색어에 자신의 이름을 등장시키는 삶으로 들어서게 됐단다. 유튜브라는 무한대의 무대 앞에 선다는 게 처음엔 쑥스럽지 않았을까? 대답은 단번에 전해졌다. ‘전혀!’였다는 것이다.

“제가 무대를 너무 좋아해서, 실제로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 회장을 했을 때도 학생들 앞에서 발언하는 걸 좋아했었고, 대학 시절에도 앞에 나가 서서 얘기하는 걸 자연스럽게 즐겼거든요.”

그렇다면 수어로 노래한다는 걸, ‘누구를 위해’ 공개하기 시작했던 걸까? 물론 출발점은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가 주된 목적이었다 했지만, 그걸 지속적으로 공개하는 이유는 바라보고 관찰하는 제3자의 평가와 마주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무조건 올려서 공개한 뒤, ‘나 몰라라’ 하며 돌아설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죠. 핵심을 묻는 질문이네요. 처음엔 개인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시작됐지만, 이렇게 풀어내는 방식에 공감하는 청각장애 당사자 분들이 계실 거라는 기대 같은 걸 떠올리게 됐어요.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은 어떻게 노래를 들을까? 그 노래를 수어로 전해드리면, 그 분들도 훨씬 편하게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집중하며 작업을 하게 된 거예요. 저 개인의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제가 모르는 당사자 여러분들한테 무언가의 메시지가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진지한 기대감을 떠올리게 됐거든요.”

 

편견 없이 주인공이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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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한 만남이었기에, 기본 전제로 알아야 할 질문을 던졌다. 수어로 노래를 한다는 건, 그 대상이 음악이라는 세계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완전히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최소한의 소리는 받아들이고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그는 청력이 많이 떨어진 건 맞는데, 보청기를 착용한 상태에선 ‘소리’라는 존재는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구별이 안 된다고 한다. 소리 자체는 들리는데, 그 의미가 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제가 일곱 살 때부터 잘 안 들리기 시작했대요.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확실하게 깨닫고 의학적으로 확인했던 건 중학교 때였거든요. 그러니까 ‘들었다’는 과거의 기억은 분명하게 있어요. 그런데 아주 서서히 진행됐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언제부터 안 들리게 됐는지를 ‘언제부터다’ 하는 시점으로 말씀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난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진행됐던 촛불집회 기간 동안 가장 큰 수확을 얻은 게 있다면, 일반대중들이 수어를 아주 익숙한 소통의 방식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다. 촛불의 시작점 당시엔 광화문 무대화면에 등장도 못했던 수어통역이 한쪽 아래 자리를 잡게 됐고, 촛불이 횃불이 되어 마지막 성취를 이룰 때는 무대화면 전체를 수어통역이 가득 채우기도 했다. 그만큼 촛불시민들 가슴에 ‘또 다른 방식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심어놓았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서 저의 수어노래가 유튜브 상에서도 일정한 부담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아요. 늘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저는 저의 체험 자체로 말씀드릴 수 있어요. ‘청각장애 때문에 나는 안 돼!’ 이런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농아인들도 모든 게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농아인들 중에서도 정말 재능이 있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불가능이라던 편견을 실제 실천으로 실현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으세요.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건, 이런 분들의 실력과 능력이 언론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그래서 저는 제가 꿈꾸고 설계하는 미래를 하루빨리 이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겁니다.”

최형문 씨의 지향점은 따로 있었다. 농아인들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열린 무대의 기획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 드라마든, 콘서트든, 뮤지컬이든, 연극무대든, 어떤 예술분야든 간에, 재능 있는 농아인들이 마음껏 자신의 끼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시킬 기획사 설립이 가장 진지하게 준비하는 미래의 목표라고 했다.

“‘농아인이기 때문에 나는 안 돼.’ 모두가 이런 생각을 버리게 만들고 싶어요. 수어노래를 유튜브에 올리던 초기만 해도, 저는 청각장애 당사자 분들 중심으로만 생각하며 영상을 올렸었어요. 하지만 이젠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노래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모두가 똑같이 동등한 입장에서 노래와 음악을 공유하는 게 맞지, 굳이 나눌 필요가 없다는 거죠.”

 

안 돼? 아니야, 가능해!

수어노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노래 선정이란다. 물론 어느 장르나 다 부를 순 있지만, 수어로 의미전달이 가능한지 여부부터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 가사를 그냥 옮기기만 하면 다 되는 게 아니라, 가사 자체의 단어와 문장 나열은 결국 국어책을 읽는 식밖에 안 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최형문 씨는 수어표현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도록, 기존의 가사를 조금씩 수정하며 수어가사로 완성한다고 한다.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편집을 하는데, 처음에는 시작부분이 어딘지 알 수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거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뮤직비디오를 집중해서 관찰했어요. 가수들의 라이브 동영상도 유심히 살폈죠. 그래서 이젠 프로그램 화면의 음파를 보는 것만으로도 처음 반주부분과 노래가 시작되는 지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됐어요. 실제노래와 저의 수어노래가 정확하게 맞춰지면서 진행되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의 유튜브 활동에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장벽이 등장해서, 얼마간 마음고생을 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영상에 대해 저작권 문제가 제기됐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미생활 차원이라서 단순한 일인 줄 알았는데, 한 곡 한 곡 일일이 저작권 사용 허락과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게 그에겐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그가 설계하는 기획사 활동에서도 계속 부딪치게 될 문제이기 때문에,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많은 준비를 해야겠다며 그는 큰 경험으로 받아들인단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이젠 저의 수어노래를 통해서 이 사회에 ‘수어는 언어다’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겠다는 목적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더 많은 감정표현을 풍부하게 담으며 동영상 촬영에 임하게 됐죠. 스스로의 소개를 ‘수어아티스트’라고 정했는데 아직까진 생소한 표현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누구한테나 쉽고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용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입장에서 음악을 느끼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피커(앰프)의 소리진동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 것이다. 그 출력이 클수록 강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그 방법은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난감하다는 표정부터 지었다. 이미 실행을 해봤단다. 그런데 그가 작업하고 촬영하는 장소가 거주지인 아파트라서,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내 방음장비 구입을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그는 그동안 검토했던 음악 스튜디오 활용 등의 대안들을 설명했다.

“기획사를 설립한 다음에 활동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기획사의 틀을 만드는 게 훨씬 안정적일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짧은 드라마 형식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본은 이미 만들어서 보냈는데, 5월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통역사 선생님과 수어뮤직비디오를 촬영할 계획도 세워놓았습니다. 그런 계획들이 하나씩 성과를 얻게 되면, 제가 설계하는 목표에 훨씬 가깝게 다가가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최형문 씨가 꿈꾸는 미래의 설계가 모두 다 이루어질 거라는 응원을 보낸다. 이번 4월호 ‘사람 사는 이야기’ 원고 내용이 <함께걸음> 지면에 수록되고 발간된 뒤, 최형문 씨의 손 안에 도착하는 건 4월 10일 내외가 될 것이다. 이 4월호가 최고의 축하선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최형문 씨는 인생의 반려자 최은혜 씨와 4월 14일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4월 21일까지 체코와 스위스에서 허니문을 보낼 예정이다. 오래 전부터 가장 동경했다던, 스위스 멋진 산악지대에서 촬영하겠다는 새로운 ‘유럽판 수어노래’의 영상 공개를 반가운 마음으로 기대한다.

작성자글과 사진. 채지민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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