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만난 저의 새로운 인생,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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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기 전 만나기로 한 인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신체적 장애를 가진 유럽 출신의 여성인데 한국에서 의류사업을 한다는 게 전부였다. 사전정보가 이렇게 없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오히려 모든 궁금증은 ‘왜?’라는 한 글자에 집중됐다. ‘왜 한국일까? 왜 여기서 사업을 할까? 왜 머나먼 타국으로 오겠다는 결정을 했을까?’ 그렇듯 미리 메모를 한 질문들은 모두 ‘왜?’라는 언급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의류사업이 아니라 패션모델이 더 어울리겠다 싶은 밝은 인상의 그와 마주앉았다. 초면인데도 이만큼 솔직하고 도전의식이 강한 사람과 함께했다는 건 아주 특별하고 의미 깊은 기억으로 남겨질 만했다. 독자 여러분께 색다른 인연을 전한다. 노르웨이에서 온마리나 드렉(Marina Drec, 한국명 리해) 씨를 소개한다.
있는 그대로 만나 보기
그와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기 전에, 몇 가지만 전제로 미리 언급한다. 서문에는 ‘씨’라는 호칭을 썼지만, 본문에선 그의 이름 그대로 ‘마리나’라고 표현한다. 서양문화권에서 ‘미스터(Mister)’나 ‘미즈(Ms.)’를 붙이며 정중히 서로를 대하다가도 친해지면 성(姓)을 뺀 이름만으로 자연스럽게 부르듯, 독자 여러분과 그의 만남도 편안한 친구 관계처럼 연결 짓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기사체나 표준어 법칙에 따르기보다는, 가급적 그의 표현과 발음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3년 동안 한국에서 익혔다는 그의 한국어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우리 곁에 사는 이방인의 시선을 확인하기엔 훨씬 적합한 표현법이 아닐까 싶어진다.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첫인사는 존칭으로 시작했지만, 마리나는 이후 모든 발언을 평어체로 얘기했다. 그게 무엇보다 반가운 대화 분위기로 이끌었기에, 본문을 왜 반말로 적어놓았냐고 오해하진 않으시기를 기대한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여유가 넘친다. 표정이 밝다. 말을 하는 데 있어 둘러댐 없이,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드러낸다. 첫인상이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날의 대화는 100% 만족스럽게 진행되는 법이다. 한국어 반, 영어 반으로 진행된 모든 대화의 첫 문답은 당연한 듯 ‘왜 한국인가?’로 시작했다. 특별한 연고라도 있는 걸까 싶어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짧고 명쾌했다. ‘케이팝(K-Pop)이 좋아서’란다.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 친구가 케이팝 소개해 줬어. 원래는 패션이 많이 좋아서 마케팅 공부를 했고, 컴퓨터게임 하는 것도 너무 좋아해. 음악도 정말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게 케이팝하고 연결이 돼. 그게 다 합쳐진 게 케이팝이야.”
그가 살던 노르웨이는 물론, 유럽 어디에서도 케이팝이라는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단다. 그런 시기였는데도 그는 ‘콕 짚듯이’ 케이팝에 열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 좋아했던 아이돌부터 지금 좋아하는 팀까지, 게다가 그들이 속한 소속사들의 이름까지 줄줄이 열거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그를 마주 앉혀 놓으면 하루 종일 아니, 밤을 새우는 대화가 신나게 진행될 것 같다는 상상마저 떠오를 정도였다.
“어릴 땐 잘 걸었어. 그런데 일곱 살 때 아빠가 뭔가 이상하다고 했어. 그런데 노르웨이 의사들 다 뭐가 문제인지 말하지 못했어. 아빠 혼자 맨날 검색하고 또 검색하고, 그러다가 크로아티아에 갔을 때 거기 의사가 진단했어. CMT(Charcot-Marie-Tooth disease, 샤르코-마리-투스병 : 하퇴(종아리, leg)의 근육위축과 감각장애가 일어나는 유전성 신경장애), 그게 내 증상이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눌 때, 그가 전동스쿠터에 앉아 있다는 생각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그만큼 작은 크기였는데, 미국 엘에이(LA)에서 공부할 때 처음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이후 비슷한 디자인의 새 제품으로 몇 차례 교체하긴 했지만, 앞부분을 접으면 차량 트렁크에 실을 수 있어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단다. 마리나는 신고 있던 부츠의 지퍼를 내리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보조기구를 설명했다. 종아리부터 아래쪽 전체를 감싸는 형태였다.
“이거 안 하면 설 수 없고 밖에 나올 수 없어. CMT는 팔 아래와 무릎 아래에 신경이 전해지지 않아서 발목 아래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돼. 머리에선 메시지를 보내는데, 신경이 여기까지 연결이 안 돼. 그래서 손의 힘도 없어. 어릴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엄마가 그걸 못할 것 같다고 했어. 손으로 하는 일이 많은데, 나는 팔다리와 손에 힘이 점점 없어져. 하지만 예전하고 시스템과 기술이 많이 바뀌었어. 힘을 쓰지 않아도 그래픽으로 다 작업할 수 있어. 나는 다 할 수 있어.”
나는 다 할 수 있어
마리나는 보스니아 사람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오른쪽, 그리스 위쪽에 위치한 보스니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코소보와 함께 극심한 내전이 더 많이 알려질 정도로 인종갈등이 멈추지 않는 지역이다.
“전쟁 때문에 가족이 다 노르웨이로 갔어. 태어나서 십이 개월 때라서 보스니아에 산 기억은 없어. 그래도 노르웨이에서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사람들을 만나면 다 가족 같아. 다 전쟁 때문에 떠나온 사람들이라서 다 상처 받았어.”
패션 디자이너가 원래의 목표였지만, 마리나의 대학 전공은 음악경영학이었단다. 미국 엘에이로 연수를 떠나 배운 것도 뮤직 매니지먼트, 뮤직 비즈니스란다. ‘케이팝이 너무 좋아서’라는 게 그 이유로 등장한다.
“2011년에 영국 런던에 갔어. 유나이티드 큐브 콘서트, 그때 처음으로 케이팝 직접 봤어. 계속 울었어. 하루 전에도, 하루 후에도, 공연할 때도 계속 울었어. 못 믿었어. 케이팝 아이돌하고 같은 건물 안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 그때 그 아이돌들이 나한테 너무 힘을 많이 줬어. 그들이 연습하는 게 너무 세. 그런데 그 사람들 외계인 아니야. 다 사람들이야. 나도 사람이야. 그 사람들처럼 열심히 해야 해낼 수 있다면, 나도 열심히 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그래서 계속 나를 훈련시켰어. 열심히 준비했어.”
마리나는 일상의 타성을 벗어나는 내면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긍정의 힘’을 믿는 건데, 그건 쉽게 접하지 못할 깊은 인상으로 남겨지는 대목이었다.
“나는 다 할 수 있어.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어. 다 가능해. 사람들 나를 만나면 꼭 말해. ‘너 어떻게 그렇게 살아? 장애인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걸 다 해?’ 그런데 나는 한계(limit) 없어. 나는 내 몸 상태에 대해 잘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모르면 다 할 수 있어. 그런데 알면 그게 계속 생각날 거야. ‘나 이런 장애 있어서 이거 못해, 이거 못해, 이거 못해.’ 그러면서 못하고 안 할 거야. 그런데 모르면 할 수 있어. 그래서 난 알고 싶지 않아.”
마리나는 대학 졸업논문 역시 케이팝이 주제였단다. ‘케이팝이 새로운 성장사업 영역으로 등장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아주 좋은 논문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한국은 너무 작은 나라인데, 그들의 음악에는 굉장히 큰 영향력(impact)이 있다. 그게 왜? 무슨 이유가 있을까? 더욱이 케이팝의 팬들은 너무 다르다. 그게 유럽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마리나가 결행한 건 바로 한국행(行)이었단다.
국내에 외국인이 대표로 운영하는 케이팝 관련 회사가 있는 모양이다. 수소문 끝에 그 회사에 들어갔지만, 밖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운영방식에 큰 실망을 하게 됐단다. 말 그대로 ‘한국식 경영’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데, 사장과의 갈등이 너무 커져서 결국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굳게 다짐을 했단다. 누구 밑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누구의 결제도 안 받고 직접 하고 싶다는 것! 그런데 그가 푹 빠져든 한국의 또 다른 문화가 있었단다. ‘홍대 앞’으로 상징되는 젊은이들의 거리와 그들의 의상이 마리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그의 오래 전 꿈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였음을 재확인하게 된 셈이다.
“한국어 연수할 때 만난 한국 친구들이 있었는데, 학교에서 디자인 배웠대. 그래서 정말 친해졌어. 자기 동창들 소개해 줘서, 내가 만들고 싶은 옷을 직접 만들게 됐어. 디디피(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큰 원단시장이 있어서 거기서 원단을 사고, 나염 전문회사도 알게 돼서 일을 맡겨. 7호선 끝에 공장 있어서, 거기서 옷 만들어. 거기 일하는 아줌마 너무너무 친절해. 나는 공장 직접 가서 확인해. 카톡이나 이메일로는 이해가 안 돼. 실수 있으면 너무 큰일이야. 직접 확인해야 해.”
내 안은 한국 사람이야
노르웨이는 우리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복지선진국중 하나로, 북유럽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다. 그 나라에서 성장한 마리나이기에, 노르웨이의 체계적인 복지문화에 대해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걸 반전이라 해야 할까? 전혀 예상치 못한 반대의 답이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너무 많이 걱정하고, 친구들도 혼자살 수 있는지 너무 궁금해 해. 그런데 한국보다 노르웨이가 훨씬 더 어려워. 거기 지하철 없어. 기차는 타기 어려워. 버스 별로 없어. 그리고 나 일찍 일어나는 사람 아니야. 나는 밤에 일하는 게 제일 좋아. 그런데 노르웨이는 밤의 인생, 그런 거 없어. 사람들 그런 인생 못 살아. 똑같이 일찍 일어나고 똑같이 다 일찍 귀가해. 가게도 다 일찍 닫아. 난 그게 너무 어려워.”
‘반전’이라는 게 맞는 표현 같다. 그 곳에선 사고 싶은걸 사고 싶을 때 살 수 없단다. 반면에 편의점이나 필요한 매장 입구에 턱이 있어서 못 들어가면, 가까운 곳 어딘가에 비슷한 매장이 반드시 있는 게 한국이라 한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원하던 매장이 ‘거기 한 군데’밖에 없단다. 그나마 문을 일찍 닫는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입장에선 고립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의미가 된다.
“노르웨이에선 밖에서 혼자 먹으면 이상해. 그런데 여기선 안 이상해. 사람들 일 다 끝나고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어도 안 이상해. 노르웨이에서 나는 계속 장애인 느낌 있었어. 장애인으로 살면 가장 원하는 게, 이 문제(장애)에서 벗어나 지내고 싶다는 거야. 내가 그랬어. 그래서 노르웨이에선 혼자 움직일 수없는 장애인이었는데, 여기서는 장애인이 아니야. 여기선 혼자서 다 할 수가 있어. 음식 다 시켜먹을 수 있어. 노르웨이엔 그런 거 없어. 대형마트에서 배달도 가능해. 여기의 보통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한국 사람들 그게 얼마나 편한 건지 이해 안 해. 우리 엄마 아빠, 내가 왜 여기서 살고 싶은지 이제 이해해. 내 인생 이미 생겼어. 여기선 나 장애인 아니야.”
한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노르웨이에서 온 그의 관점이 이만큼 다르다는 게 내심 놀라웠다. 복지선진국의 시스템이 훌륭하게 작동되고 있음은 분명하겠지만, 마리나가 원하던 건 ‘일상의 자유로움’이라는 게 확인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 항상 나한테 물어보고 있어. ‘왜 이런 헬코리아(Hell Korea, 헬조선)에 왔냐’고. 그럼 그때 내가 물어보는 게 있어. ‘그럼 혹시 외국에서 살았어요?’ 안 살았대. ‘그럼 어떻게 그걸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안 살면 이해가 안 되니까, 우리 마음 이해 안 할 거 같아. 물론 여기도 문제 있어. 돈 문제, 경제 문제, 사건사고 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야. 그건 전 세계 다 똑같아. 그런데 여기가 더 좋은 게 많아. 사람들 너무 친절하고, 밤에 혼자 집에 가면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노르웨이에서 혼자 가면 사람들 칼로, 불법이지만 총 사고도 있어. 혼자 가면 절대 안 돼. 특히 여자는 밤에 절대 혼자 못 가. 그런데 여긴 그냥 다 편하게 살고 있어. 포장마차, 노래방, 피시방, 이런 게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한국 사람들은 그거 생각 안 해. 나는 이런 한국이 좋아.”
이 정도면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답게 사는 마리나가 아닐까 싶다. ‘마리나’는 바다를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다 해(海)와 자기 이름 중 한국의 성(姓)과 발음이 같은 리(이)를 붙여 ‘리해’라는 한국이름을 만들었다는 마리나. 그는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다양하게 펼쳐놓았다. 그리고 몸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큰 결실을 맺고 싶다고 했다.
사진촬영을 겸한 산책을 함께한 뒤, 마무리 인사 끝에 마리나에게 물었다.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은지 말이다. ‘아마도’라며 웃음 짓던 그가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독자 여러분들도 마리나와 마주칠 ‘언젠가’가 존재할 것 같다.
“내 안은 한국 사람이야. 여긴 다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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