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들의 권익을 위한 인권의 허브(hub)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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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재단 사람의 보금자리 |
서울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 내리면, 다른 지역에선 잘 보기 힘든 장면이 눈에 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친환경 생활을 일상화하는 ‘성미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풍경인 셈이다.
오가는 사람들 가득한 망원역 1번 출구를 나와 바로 옆 골목길을 걸으면, 마음 편하게 둘러볼 환경들이 펼쳐진다. 세탁소, 여러 작은 매장, 카페, 음식점, 편의점, 부동산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인데도, 어디서나 보기 힘든 점 하나가 두드러진다. 오가는 이들의 모습이 모두 여유롭다는 사실이다. 갈 때마다 신기하다고 느끼게 되는 부분인데, 쫓기듯 서두르는 모습 없이 넉넉한 마음들끼리 모여 사는 듯 서로가 정겨운 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고 덧붙이면서 계속 걷다 보면, 눈앞에 나타나는 독특한 외형의 건물이 바로 인권재단 사람의 보금자리로 존재한다. 원래 가정집이었던 걸 개보수해서 만들었다는데, 겉에서 봐도 무언가 커다란 일들이 그 안에서 진행되고 있겠다는 느낌부터 전해진다. 준공 당시 이 건물이 화제를 모았던 건, 장애와 성별로부터 자유로운 친(親)인권적 구조를 건물 전체에 구현했다는 점이었다.
▲ 각 층 사이에 M으로 표시되는 0.5층이 있다. 이동권에 제약을 갖는 이들을 위한 인권재단 사람의 배려나 돋보인다 |
“원래는 일반 가정집이었는데, 절반을 뜯고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집이 저희 마음에 들었던 건, 층마다 다락방 형태인 별도의 공간이 있었다는 겁니다. 잘 구상하고 설계하면 활용도가 아주 높아질 거라 기대할 만한 구조였죠. 그래서 내부 설비 중에 가장 큰 비용인 1억 원 가량을 들여서, 이 건물 구조에 딱 맞는 엘리베이터를 주문 설치했습니다. 1층, 2층, 3층 사이에 1M, 2M 버튼이 있죠. 1.5층과 2.5층의 공간에도 문이 열리는 겁니다. 옥상까지 엘리베이터가 열리기 때문에,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도 이 건물 어디든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옥상에서 주변 전경을 둘러보는 것도 물론 얼마든지 가능하죠.”
두 시간 넘는 대화와 건물 전체 소개까지 일일이 동행하며 친절하게 이끌어준, 인권재단 사람의 최현모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참 잘 구성하고 잘 만들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수많은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으로 설계했을 게 분명할 것 같은 다양한 내부 배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3층에는 섬돌향린교회까지 입주해 있으니, 인권재단 사람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건물 자체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셈이다.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과 ‘비장애인도 함께 쓰는 장애인 화장실’도 눈에 띄었다. 남녀 화장실을 구분할 필요 없이. 또한 장애인용 화장실을 따로 두는 게 아니라, 장애인 화장실을 비장애인이 같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상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나누고 구분 지으며 구별하는 데 익숙하죠. ‘너 따로, 나 따로’가 모든 일상의 모습들인데, 여기선 모두의 조건을 동일하게 만듭니다. 사실 비장애인이 장애인 화장실을 경험할 일은 거의 없죠. 이 화장실을 같이 이용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도 담았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에 설치된 편의시설을 살펴보면, 비장애인 화장실의 불편함과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가 있죠. 이런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면서, 인위적인 선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배려와 동행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인권도서관 동화(冬花)
▲ 인권도서관 내부 |
이전에 다락방이었다는 공간에 작지만 아늑한 도서관이 자리 잡았다. 도서관의 이름인 ‘동화’는 1988년 6월 군부독재에 저항하자고 외치면서 분신한, 故 박래전 열사의 뜻을 기리고자 그가 쓴 시 작품의 제목을 가져온 것이다. 2007년 박래전 열사 추모 19기를 맞아, 유가족은 민주화운동 정부 보상금 1억5천만 원을 전액 인권재단 사람에 기탁했다.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써 달라 했던 이 기부금은 인권재단 사람의 터를 닦는 데 크나큰 기여를 했고, 건물이 완공된 뒤 그를 기리는 이들의 마음을 모아 인권도서관을 만들었고 그 내부를 계속 채워가는 중이다. (故 박래전 열사는 인권재단 사람을 이끌고 있는 박래군 소장의 친동생이다.)
인권중심 사람
출발은 인권재단 사람으로 했지만, 시민의 자발적 힘으로 만든 민간독립 인권센터인 인권중심 사람이 더불어 운영되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다. 인권운동의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건물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언제든지 사용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인권중심 사람은 각종 회의, 세미나, 강연, 기자회견, 전시, 영상회, 작은 콘서트 등 다양한 목적을 충족시킬 공간을 갖추고 있다. 인권의 가치를 확장하고 인권 감수성을 키우게 될 다양한 행사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인권단체들의 연대회의는 무료로 공간을 지원하고 있으며 대관 수익금 전액은 다시 인권활동에 쓰이고 있다.
아는 만큼 더 보이고 새로운 방안이 떠오르는 법 아닌가. 장애계의 많은 단체와 모임들도 인권중심 사람의 내부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기존에 아쉬웠던 부분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론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공간의 부족을 힘들어했던 많은 자립생활센터나 야학에서도 편하게 이용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특별한 일 없이 그냥 들려도 되느냐고 물으니, 최현모 사무처장은 언제든지 문은 열려 있다며 환영한단다. 오면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냐고 또 물으니, 커피는 물론 준비된 여러 종류의 차와 가끔씩 보이는 간식까지 다 드셔도 된다며 그는 크게 웃었다.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인권은?
▲ 인권재단 사람 최현모 사무처장 |
사람은 인권의 내일을 위한 든든한 어깨동무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출범했다. 그래서 재정이 열악한 인권단체들의 모금과 배분사업을 지원하는 재정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지향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더불어 평화가 실현되는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간다.
인권재단 사람이 무슨 일을 해왔을까 궁금했다면, 이미 우리가 널리 알고 있던 가장 단순한 예를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 제목을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 같고, 그 다음 이야기를 엮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 또한 지난 봄에 독자들과 만난 바 있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을 지원해서 단행본을 만든 게 바로 인권재단 사람이고, 365기금이라는 새로운 기금을 운영하면서 인권침해 당사자들 삶의 궤적을 정리하고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서는 활동가들의 교통비, 식사비, 진행비를 지원하는 곳 또한 인권재단 사람이다.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특별한 인권의 날을 지원하는 것도 인권재단 사람의 큰 역할이다.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빈곤철폐의 날, 평화수감자의 날, 세계이주민의 날, 홈리스기억의 날 등 차별받는 인권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중요한 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인권재단 사람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 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의 활동, 인권아카이브 구축, 청소년인권운동, 장애인권운동,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과도 ‘함께 걷는’ 이들이 바로 인권재단 사람이자 인권중심 사람인 것이다.
사실 인권재단 사람과의 이번 만남에서 가장 집중하고자 했던 부분은 바로 ‘활동가들의 인권’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이들의 신음을 듣고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전담하는 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현장에서 민간차원으로 뛰어다니는 인권활동가들이다. 장애인들의 행진과 투쟁을 함께하는 이들도 인권운동가들이고, 방치된 노숙인들의 안전과 재기를 위해 힘쓰는 이들도 인권활동가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활동가들의 ‘현재’가 너무도 열악하고 지치는 현실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인권은 누가 어떻게 ‘어깨동무’를 해줘야 한단 말인가. 그 해답이 이미 인권재단 사람 안에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된 건 이번 만남의 최대의 수확이 아닐까 싶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365기금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저희도 인권활동가들이 많이 힘들다는 현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그 현실이 얼마나 어렵고 심각한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인권활동가들의 활동비 수준을 파악하고, 생활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한 본격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총 62개 단체 199명의 유급활동가 중 41개 단체 76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해 줬습니다. 또한 10명의 인권활동가들을 직접 만나서 별도의 심층인터뷰도 진행했죠. 결과는 저희의 예상을 뛰어넘는 참담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만큼 열악할 거라곤 사실 저희도 예상하지 못한 채, 걱정만 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밝혀진 거니까요.”
그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완성된 자료가 바로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연구’였다. 인권활동가들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초자료로, 이것 이상 생생한 음성이 있을까 싶은 조사 결과임이 분명했다. 또한 인권활동가들의 사회적 역할과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인권기금이 왜 필요한지를 말해주는 현장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절망과 절규를 애써 감춰두며 뛰어다녔던 게 그들이었다는 것이다.
“단순계산으로 정리한다면, 정부가 정한 2015년 최저임금은 시급 5580원을 기준으로 할 때 월 117만원 정도 됩니다. 조사 대상에서 주5일 전업으로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상임활동가의 평균 활동비(임금)는 1,069,100원이었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죠. 100만원에서 125만원 이하가 46.1%, 75만원에서 100만원 이하가 19.7%, 심지어 50만원 이하도 7.9%나 되는 게 현장의 실제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수입이 그런 상황에서 월평균 생활비 지출은 어떻게 될까? 75만원에서 100만원 이하가 28.9%, 100만원에서 125만원 이하가 23.7%로 과반을 넘고, 125만원 이상이라는 대답은 27.7%에 달했다. 자신이 아닌 타인과 세상의 부조리를 치유하고 해결하기 위해 밤낮 없이 활동하는 인권운동가들의 현실은 적자의 인생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게다가 휴식도 없다. 실상이 그러하기에 정해진 휴가나 안식년 따위는 아득히 머나먼 희망사항이고, 방송을 통해 자주 듣게 되는 대기업의 ‘휴가비 얼마’, ‘보너스 얼마’ 같은 얘기는 다른 나라나 다른 행성의 얘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실상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렇게 열악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응답자 대부분은 인권운동을 지속하고 싶다는 답변을 남겼다는 겁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 아무리 크더라도,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과 성취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죠. 현실이 이런데도 향후 10년 후까지 인권활동을 지속하고 싶은지 물은 질문에 57.9%가 ‘할 수 있는 한 지속하고 싶다’는 답을 내놓았다는 거, 그건 사실 어마어마한 인권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 땅의 인권활동가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 안에 희망이 있다’는 인권의 등대와 길라잡이들이 굳건히 존재한다는 거죠.”
인권재단 사람이 전국의 인권활동가들을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의 여부까지 이 지면에 소개한다는 건, ‘홍보를 위한 기사’라는 뒷얘기를 듣게 될 것 같아 이 원고엔 남겨놓지 않겠다. 활동가와 해당 인권단체 차원에서 얼마든지 검색과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활동을 이미 전개하고 있는 인권재단 사람한테는 정말 ‘멋지다!’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겠다. 현장의 세계 속에 치열하게 현실과 맞부딪치고 있는 활동가, 그 개별 단위 하나하나를 연결할 수 있는 ‘인권의 허브’로써 인권재단 사람과 인권중심 사람이 존재해 달라는 부탁을 남겨놓고 싶다.
‘허브’라는 용어의 뜻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허브(herb)는 향이 좋은 약초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차(茶)로 마시는 그 원료가 되는 것이다. 허브(hub)는 ‘여러 조건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교통의 요지’를 뜻한다. 그 많은 활동가들의 땀과 노력과 희생이 한데 모이며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곳, 그 ‘허브(hub)’가 인권재단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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