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각을 통해 살아가는 아름다운 부부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조영찬-김순호 부부
본문
기자가 <함께걸음> ‘사람 사는 이야기’ 꼭지를 담당하게 된다면, 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한번에 두 명이다. 두 사람이 부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독자들이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의 발상을 전환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또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기자의 기준에서만큼은 정말 아름다운 부부라고 단언하고 싶은 조영찬-김순호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조영찬 씨는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전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기자가 누구인지는 금세 알 수 있다. 보지 못하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듣지 못하니 소개나 인사하기 위해 하는 말을 못 들을 텐데도, 어떻게 금방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맞출 수 있는 걸까?
기자가 팔목에 착용하고 있는 팔찌를 영찬 씨가 만지게 하여 그 촉감의 팔찌를 착용한 사람이 ‘박관찬’이라는 것을 사전에 약속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영찬 씨의 손바닥에 ‘안녕하세요 박관찬입니다’라고 적거나, 점화(양 손의 검지, 중지, 약지 여섯 개의 손가락을 점자의 여섯 개의 점에 대입하여 점자형 키보드로 간주하여 터치하듯 대화하는 방법)로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려주거나, 그도 아니면 촉수어로 상대방의 얼굴수어 이름을 따로 알려줄 필요가 없다. 그냥 팔찌만 만져보고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조영찬 “그래서 언어라는 게 반드시 글을 통해서만 전달이나 표현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관찬 씨처럼 특별한 촉감의 팔찌를 통해 본인이 누구인지 알릴 수도 있고, 자기만의 독특한 머리 스타일(모양)을 만지게 해서 누구인지 알려주는 경우도 있거든요. 또 제가 아는 목사님은 본인의 팔에 털이 많다는 특성을 이용해서 만났을 때 본인의 털이 많이 난 팔을 제가 만지게 해서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웃음). 또 시청각장애인 중에서는 말하는 사람의 목에 손을 대고 그 목에서 나는 울림을 통해, 또는 말하는 사람의 입술에 손을 고 촉각으로 전해지는 입모양을 통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게 다 언어이고 의사소통 방법이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비시청각장애인이 주로 ‘말’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과 비교해 본다면, 시청각장애인은 정말 다양한 의사소통 방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보고 듣는 데에 어려움이 있어서 촉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영찬 씨처럼 잔존시력과 잔존청력을 거의 상실한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데 있어 촉각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김순호 “그렇지만 요즘 세상은 보고 들어야 할 거리들로 넘쳐나잖아요. 유튜브로 대표되는 수많은 동영상과 음성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청각 자료의 홍수 시대에서, 그 두 가지를 접할 수 있는 감각을 동시에 상실했다는 사실에 얼마나 답답함을 느끼게 될까요. 물론 점자를 통해서 책을 읽고 정보에 접근할 순 있지만, 현실에서 수많은 언어들과 시각 이미지들을 박탈당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질감이 클 것 같아요.”
조영찬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게 뭘까요? TV, 카메라, 라디오, 스마트폰, 펜, 공책…. 이러한 일상적인 물건들이 나에게는 무의미하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열쇠고리로 제작된 모형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제가 수집한 열쇠고리 중에 특히 애틋하게 여기는 게 TV, 카메라, 전화기 등이에요. 카메라를 만지면서 내가 눈이 보였다면 아내의 모습도 찍고 아름다운 자연도 찍으면서 얼마나 많은 추억을 담았을까, 내가 들을 수 있었다면 이 전화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죠. 그래서 카메라로 찍었을 만한 구름, 산, 해, 달, 별, 예술 작품들과 전화기로 나눴을 만한 이야기들을 상상해 보게 돼요.”
시청각장애에 맞춰진 지원 필요
영찬 씨는 나사렛대학교 박사과정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현재 학위논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 많은 학과 중에 왜 신학을 선택했을까.
조영찬 “어렸을 때 꼭 공부하고 싶었던 게 3가지 있었는데 문학, 신학, 철학이었죠. 그 중 하나를 공부하고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내 덕분이기도 해요. 아내가 연약한 몸과 (척추)장애로 세상을 살아나갈 자신이 없어서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삶이 새로워졌다고 하네요. 그 후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꿈을 꿨고, 기도하면서 저와 결혼하게 됐다고 해요. 그 당시 직장도 있고 차도 있는 다른 남자들이 한창 아내에게 구애를 하고 있던 때였는데(웃음), 나는 시청각장애에다 무일품이었거든요. 이렇게 암담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신 것은 아마도 무언가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찬 씨가 학교에 갈 때는 순호 씨가 집에서부터 항상 함께 간다. 학교에서 강의 내용을 문자로 통역해줄 속기사나 도우미가 있지만, 영찬 씨에 대한 문자통역 이외의 활동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순호 씨가 꼭 옆에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시청각장애로 인해 문자통역 외에도 강의에 필요한 도서제작, 이동, 식사 등 영찬 씨에게 필요한 지원이 정말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찬 씨에게는 순호 씨와 강의 내용을 문자통역해주는 속기사가 전부다. 속기사도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게 아닌, 영찬 씨의 개인 활동지원사로 지원해 주고 있다. 자연스레 학업을 하고 논문을 준비하는 등의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김순호 “영찬 씨가 가장 선호하고 편안해하는 의사소통 방법이 점화거든요. 그런데 점화는 어디에서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서 우리가 직접 가르쳐 주고 또 시청각장애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지원해야 하는지도 알려줘요. 그런데 도우미를 하게 된 학생이 점화를 어느정도 능숙하게 하고 문자통역의 요령도 생기게 될 즈음이면 졸업을 하거나 취업을 하는 바람에 도우미를 다시 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외에도 영찬 씨의 시청각장애를 잘 이해하면서 식사나 이동지원을 해 줄 수 있는 도우미가 있다면, 저도 영찬 씨가 학교에 갈 때 집에서 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으니까…. 금방금방 그만두거나 바뀌지 않고 꾸준히 호흡을 맞추며 영찬 씨를 지원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어요.”
현재 활동지원사 양성과정에서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을 교육하는 곳은 거의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정하고 있는 지침에 따라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아직 「장애인복지법」에 하나의 장애유형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시청각장애에 대한 활동지원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영찬 씨 부부가 직접 점화를 가르치고 시청각장애에 대한 활동지원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전문적인 교육이 쉽지 않으므로 그만큼 만족스러운 활동지원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기자도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저시력이라 혼자보행이 가능하므로 영찬 씨를 만나면 한번씩 그의 이동지원을 할 때가 있다. 두 사람에게서 활동지원이나 문자통역 도우미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안타까우면서도 한 가지 생각을 하곤 한다. 기자 본인이 영찬 씨의 활동지원을 하고 싶다고. 물론 기자도 듣지 못하기에 원활한 통역을 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전달해야 하는 상황만 주어진다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영찬 씨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부적인 특성은 조금 달라도 넓게 보면 같은 시청각장애인인만큼, 영찬 씨를 잘 이해하며 통역이나 지원을 해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모형을 만져보고 있는 영찬 씨
조영찬 “그동안 관찬 씨와 함께하면서 이동지원이나 타이핑치는 걸 경험해 보면, 저에게 활동지원은 정말 잘 해줄 것 같아요. 이동지원의 경우, 다른 도우미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하는 데 집중하지만, 관찬 씨는 주변 풍경이나 분위기도 알려주는 등 정말 저의 눈이 되어주려고 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정말 당사자만큼 당사자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관찬 씨가 크리스마스 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형을 선물해서 만지게 해 주는 마음을 느낄 때마다 참 고마움이 큽니다. 트리는 다이소에서도 작은 모형으로 된 걸 만져보긴 했는데, 이번에 관찬 씨가 선물해준 것처럼 생동감있는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정말 같은 시청각장애가 있으니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공감대가 잘 형성되는 것 같아요.”
시청각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린 다 다르다
우리 모두는 생각하는 게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를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군가가 한 ‘다른’ 생각이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무엇이라면,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주제로 만들었던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2012)에서 영찬 씨가 겨울바다에 가서 파도를 접해본 소감이 바로 그렇다. 겨울바다의 파도를 ‘바람부는 냉장고’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어떤 시인도 쉽게 생각해 내지 못한 공감각적 표현이 아닐까?
조영찬 “사실 나는 전혀 새로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겨울바다라서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고, 그만큼 춥기도 했으니 당연히 바람과 냉장고가 결합된 표현이 나온 거죠. 저는 내심 그보다 더 그럴싸한 표현을 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네요. 지금은 논문 준비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되는대로 옛날 저의 꿈이었던 글쓰기, 시짓기 공부를 조금씩 하면서 표현력을 길러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겨울바다의 파도가 전부가 아니다. 색깔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남자가 좋아하는, 또는 남자를 상징하는 색은 검정이나 파랑, 여자는 연두나 분홍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찬 씨가 생각하는 남성적인 색은 ‘주황’이란다. 영찬 씨가 읽었던 소설에서 소방대원이 입고 있던 작업복이 주황색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전혀 에상하지 못했던 생각이다.
조영찬 “저는 선천적으로 전맹에 가까운 준맹으로 태어나서 색깔을 구분할 줄 모르고 모든 게 흑백으로 희미하게 보였어요. 지금은 그마저도 안 보이게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아주 하얗던 함박눈이나 아주 검은 연탄, 바둑의 흑돌 등은 잘 보였어요. 그런데 다른 색깔은흰색 계열과 검은색 계열로 보여서 빨강과 주황, 분홍이 어떻게 다른지 몰라요. 노랑은 여린 흰색처럼 보였고 빨강은 검은색과 비슷한 것 같았고, 파랑은 느낌은 시원하고 서늘한 것 같은데 역시 자세히는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색깔에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있다는 관념 자체가 희미해요.”
김순호 “그런 관념이 있다고 해서 남자가 분홍색 옷을 입거나 여자가 검정색 옷을 입는다고 그게 이상해 보이는 건 아니잖아요. 색깔이란 오랜 관습에 의해 남성·여성적 이미지가 결합된 것일 뿐이지 그 색깔 자체가 성과 관련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각해요. 아마도문화권에 따라 검정색이 여성적인 것이고 분홍색이 남성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나라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결국 영찬 씨가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적인 색이 주황이라고 느낀 게 아니라, 사람마다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남성적인 색이 검정이나 파랑이었다고 해도, 분홍이나 연두색 계열을 선호하는 남성도 얼마든지 주변에 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부부
두 사람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한다. 영찬 씨는 하고싶은 말을 직접 말로 하는데, 순호 씨가 영찬 씨에게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 참 재밌다. 기본적으로 점화를 활용하지만, 여러 상황에 따라 두 사람만의 신호(sign)를 정해두고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있다.
김순호 “영찬 씨가 교회에서 전도사를 하고 또 박사과정 수업이 토론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영찬 씨가 말하는 목소리가 작아서 사람들에게 잘 들리지 않을 수도 있고, 영찬 씨의 말이 너무 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영찬 씨가 좀 더 크게 말해야 할 때, 제가 영찬 씨의 엄지손가락을 톡톡톡 두드려요. 또 저만 듣도록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커서 다른 사람들이 들을 때는 새끼손가락을 톡톡톡 두드려요. 이런 신호를 우리끼리 만들어서 상황에 맞게 활용하는 거예요.”
앞서 언급했던 시청각장애인에게는 온 우주의 모든 게 다 의사소통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된다. 촉각을 활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두 사람은 부부지만, 영찬 씨에게는 그가 보고 듣지 못하는 세상의 모습을 전해주는 아내가 최고의 통역사이자 활동지원사나 마찬가지다. 헬렌켈러에게 앤 설리번 선생님이 있었다면, 영찬 씨에게는 순호 씨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영찬 “아내는 어렸을 때 언덕에서 떨어져서 척추를 다쳤어요. 그래서 지금 키가 정말 작지요. 연약한 몸이지만 주변의 장애인들에게 정성이 담긴 음식도 종종 해주고, 공부하는 나를 항상 가까이에서 내조해주고 있어요. 정말 쉽지 않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그야말로 거인 같은, 아니 거인보다 더 거인 같은 사람이에요. 아내가 아프지 않고 계속 건강하고 행복하게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달팽이의 별’의 제목처럼 보고 듣지 못해서 촉각에만 의지해 살아가는 시청각장애인은 달팽이처럼 모든 게 다 느리다. 하지만 ‘달팽이의 별’에서 영찬 씨의 대사처럼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해 잠시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해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느리지만 한 발자국마다 소중한 의미를 담아 내딛는, 이 우주에서 가장 빛나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에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들도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시길 기대한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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